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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구석이라도...?

개똥같은 인터뷰 #22

by 태희킷이지
개똥같은_인터뷰_로고(흰).jpg

https://youtu.be/oFkSMHle8-M

스스로 실패라고 생각했던 순간을 이야기하던 중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해피엔딩이라는 제목이 인터뷰이의 자신감과 잘 어울린다.


요즘은 타임라인만 봐도 멋있는 사람이 무지 많아요. 그 사람들만 잡아들여도 향후 1년간 인터뷰이 구하는 일은 걱정 없을 것 같아요. 특별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지만 제 생각에 멋있는 분들은 공통적으로 그 사람만의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그런 무기는 특별히 선택받은 아이들만 갖고 태어나는 줄 알았는데 남들 사는 꼴을 지켜보다 보니 다들 각자 알아서 찾아내는 것 같네요.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오늘 인터뷰이의 무기를 자신감이라고 생각해요. 한 번쯤 물어보고 싶었어요. 믿는 구석이라도...?





정확히 16분 늦으셨어요. 일단 앉으시고 늦으신 계기부터 들어볼게요.


하하;; 짐 싸다가 늦었습니다. (어떤 짐이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벌써 인터뷰 시작인가요. 지금 너님이랑 인터뷰하고12시에 저도 인터뷰를 하나 따러 가야 해요. 4시, 6시에 미팅이 잡혀 있어서 그 미팅 자료 준비하고 짐을 좀 챙긴다고 늦었어요.


옴머 바쁘시네요. 근데 그런 거 미리미리 안 하시나 봐요?


아ㅋㅋㅋㅋㅋㅋㅋㅋ 네 죄송해요. 근데 이 인터뷰는 서로 인사도 안 하나요?


네 시간은 금이니까요. 구글 양식으로 인터뷰 신청을 받았더니 아무래도 답변들이 키워드 중심이라 좀 아쉬워요. 자세한 이야기가 나와야 제가 좋은 질문을 드릴 수 있을 텐데 너님이 연예인은 아니잖아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자기소개를 봐도 그냥 양민이셔서 딱히 특출난 게 없어요. 어디 벼슬하신 게 아니잖아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ㅎㅎ 지각해서 심술 좀 부려봤어요. “여유 있으면 하고 싶은 건 뭐냐”는 질문에 방 정리, 그리고 이것저것이라고 답했어요. 인터뷰 신청서를 봐도 요즘 너님에게 필요한 건 ‘정리’라는 생각이 드네요.


맞아요. 진짜 맞아요. 그래서 신청한 거예요.


얼리버드런, 토익, 스페인어, 여행 계획. 이렇게 근황으로 꼽으셨는데 많이 바쁜가요?


요즘은 얼리버드런 대회 준비하느라 제일 바쁘죠. 저는 작년까지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 가있었어요. 원래 5월까지 있을 계획이었는데 작년 12월에 갑작스럽게 들어오는 바람에 시간이 좀 붕 떠서 저를 좀 잡아둘 게 필요했어요. 제가 5월까지 원래 계획했던 것들이 다 틀어져서 이대로 그냥 가다가는 뭔가 흐지부지되어버릴 것 같은 거예요. 근데 마침 얼리버드 2회 대회를 해보자고 얘기가 나와서 한국 들어오자마자 1월부터 행사 기획을 해오고 있어요. 처음에는 1회 대회 준비했던 분들에 저까지 4명에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다 나갔어요. 인턴에 취업 준비에 다들 바쁘다 해서 저 혼자 총대 메고 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책임감이 상당하시겠어요.


그렇죠. 참가자들도 천 명이다 보니까 부담도 되고요. 그래도 이렇게 일단 시작을 해서 대학내일을 비롯해 여러 군데 스폰 받으려고 이리저리 컨택도 하면서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어요.


어때요. 성과 괜찮나요?


아직까지 괜찮은 거 같아요. 나쁘지 않아요. (인턴에 취업 준비에 떠나간 3명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채운 너님의 독보적인 역량 덕분인가요?) 그건 아닌 거 같아요. 그 분들 없었으면 1회 대회도 성공적으로 할 수 없었을 거고 그 분들 덕분에 이걸 시작할 수 있던 거니까. 솔직히 같이 하자고 이야기를 안 해줬으면 시작도 못 했겠죠. (그런 교과서적인 답변 말고 너님의 속마음을 듣고 싶어요.그 친구들 맘에 안 들죠?) 근데 이해는 돼요. 아무래도 부담스럽겠죠. 저는 휴학생이지만 그 분들은 취업 준비에 인턴으로 바쁘니까.


검은 속내는 모르는 거죠. 그 셋은 휴학생인 너님을 대회의 책임자로 앉혀놓고 안도했을 수도 있잖아요. 술잔을 나누며 공동의 죄책감을 떨쳤을지도...


ㅋㅋㅋㅋㅋㅋㅋㅋ그런 것도 있을 거예요. 솔직히 섭섭한 점도 없지 않아 있어요. 같이 시작했는데 다 발뺌했으니까. 모르겠어요.정확히. 그게 아니라고 생각해야죠. 착하게. 좋게 좋게.


요즘 대회 준비 말고도 바빠 보였어요.


네 정리할 시간이 좀 필요했어요. (학원도 다니신다고 들었는데.) 스페인어 두 달하다가 어렵더라고요. 그리고 지금 얼리버드 때문에 정신이 없어가지고 공부도 제대로 안 되고 해서. (때려치움?) 때려치운 건 아니고 조금 공부를 쉬고 있어요. 오픽이랑 토익은 시험도 다 치렀고요.


페이스북에 성적표 올린 거 봤어요. 저도 문맥상 축하한다는 댓글은 달았는데 사실 점수가 뭐가 뭔지 몰라요. 댓글 뉘앙스 보고 높은 점수겠거니 생각은 했는데.


오픽 점수는 좀 높은 거. 전공이 영어다 보니까. 해야죠.


영어도 그렇고 스페인어도 그렇고 언어 쪽에 관심이 있으신 거 같아요. 미래의 진로와 연관도 있을 거라 추측해봤어요.


미래랑 연관도 있고 그냥 영어는 요새 필수잖아요. 스페인어는 유럽에 있을 때 언어가 섹시하다는 느낌을 처음 받아서 배우고 싶었어요. 진짜 그 발음이! 그리고 남미나 스페인 애들이 특유의 그 흥이 있잖아요. 그 리듬과 열정, 뭔가 핫한 그런 느낌이 있어요.(그런 느낌을 공유하고 싶어서?) 네 그래서 언어를 한 번 배워봐야겠다. 얘네랑 그 문화 속으로 들어가 보려면 배워봐야겠다 싶었죠. 그리고 남미 시장이 또 뜨잖아요. 지금은 중국 시장이 뜨지만 나중에 10년 뒤에는 남미가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고요. 중국어하면 중국으로 출장 가지만 스페인어하면 남미로 출장 갈 거 아니에요. (남미라는 나라에 대한 로망이..) 30살 되기 전에 여행 한 번 가보려고요. 그래서 미국, 남미로 여행 계획도 세우고 있어요.


솔직히 근황에 대한 질문에서 여행 계획이라는 답변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대부분 너님 또래의 친구들은 취준이라고 썼을 텐데 스페인어 배운다고 쓰는 것도 그렇고 좀....


정상은 아니죠?ㅋㅋ


의아하기보단 너님답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이 시기에 여행 계획을?


어차피 취업은 제가 원할 때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욜 자신감 보소. 아주 더 크게 말해봐요.) 언제든지 붙을 수 있다는 이상한 자신감이 있어요. (ㅎㅎ 오픽 점수도 있고?) 뭐 그것도 있고 여러 가지 경험도 있고. 제 생각에 요즘 취업이 안 된다 안 된다 해도 갈 사람들은 다 가는 것 같거든요. 저도 그중에 하나가 될 거라고 자신해요. 왜 요즘 취업을 못할까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다들 좀 나약한 거 같아요. 제가 취업을 안 해봐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진짜 생고생도 해보고 해외 나가서 봉사활동도 해보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다 집에서 집밥 먹으면서 따숩게 자라고, 자기가 좋은 것만 하고,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원하는 거 다 하는 게 익숙하다 보니까 나약함이 생기는 거 같아요.


온실 속의 화초?


조금만 실패하면 주저앉고 스스로를 실패자로 낙인찍잖아요. 후회 없이 부딪혀보면 실패하더라도 거기서 또 내가 얻는 게 있을 텐데. 제가 최근에 카톡 프로필에 해놨는데 “실패는 잊어도 실수는 잊지 마.” 그 말이 되게 멋있는 거 같아요. 실패는 누구나 다 해요. 근데 일부 사람들은 자신이 실패하면 그걸로 그냥 끝이라고 생각하고 낙오자라고 생각을 하니까. 그런 나약함 때문에 취업을 더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저도 이런 나약함을 조금 더 극복을 해보자 하는 마음에서 여러 가지 경험들을 해왔던 것 같아요. 아까 말씀하신 대로 이젠 제 또래 친구들이 대학원도 가고 대기업에도 취업들을 많이 했어요. 심지어 저보다 어린 친구들도 지금 취업하고 있으니까 말 다했죠. 근데 뭐 1, 2년 빨리 간다고 해서 1, 2년 더 오래 임원직으로 버티고 있는 건 아니잖아요. 남들보다 1, 2년 늦어도 그만큼 1, 2년을 알차게 보내고 준비를 잘 해서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의 회사에 가서 일을 시작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요.크게 조급한 건 없어요.


취업이 그렇게 큰 고민인 상황은 아닌 거군요.


이제 점점 생기겠죠. 5월부터 저도 고민을 좀 해야죠. (그래도 막연한 취업 불안감은 덜한 것 같은데?) 사실 불안감은 그렇게 없어요. 물론 누구 취업하고 잘 됐다 하면 조금 부럽기도 하고 나도 빨리 취업을 하긴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리고 이제 부모님 친구분들의 아들, 딸들이 취업을 하니까 저도 일단은 취업을 해서 타이틀이라는 걸 부모님께 안겨드려야겠다는 생각도 들죠. 그래도 불안감은 크게 없는데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어요. (뭔데요?) 이제 제 또래 여자들이 직장인이잖아요. 그러니까 연애할 때 직장을 보는 거예요. “아직도 학생이세요?” 이런 반응이 올까 봐 뭐 그런 건 있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더 어린애를 만나야 할 거 같아요.


단지 그 이유 때문이죠? 개인 취향이 아니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요즘 하는 생각에 ‘사업’도 쓰셨더라고요.


미래에는 사업도 생각하고 있어요. (아이템을 알려주시면 제가 훔쳐 갈 게 분명하니까 너무 구체적으로는 말하지 마요.) 저는 최대한 전공을 살리려고 생각하거든요. 원래는 레스토랑 사업을 하려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너무 리스크도 크고 힘들 거 같아요. 특히 대한민국 땅에서는 하기가 힘들 거 같아요. 이거 잘 되면 다 따라 해서 서로 죽이니 꼴이 나니까 그건 안 될 거 같고. 저는 한식의 세계화 방안을 기획해서 한식을 해외에 알리고 동시에 한국에 있는 국민들과 외국인들도 한식을 좀 즐길 수 있게 만들어 보고 싶어요.


너님이 해온 경험 중에서 스스로에게는 대실패였지만 나약해지기보다 오히려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된 사례가 있나요?


무슨 질문이 면접 같네요. 저는 무수히 많은 대외활동을 떨어져 봤어요. 심지어 GS25에서 하는 서포터즈는 3번인가 4번 지원했는데 다 떨어졌어요. 그것도 서류에서요. 너무 하고 싶은 맘에 블로그 검색으로 GS25 서포터즈를 했던 사람을 찾아냈어요. 그리고 다짜고짜 쪽지를 날려서 물어봤죠. ‘나 이거 진짜 하고 싶어서 계속 지원하다가 군대 다녀와서도 지원해봤는데 또 떨어졌다. 정말 하고 싶은데 붙는 방법 좀 알려 달라. 자소서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당신 걸 좀 보여줄 수 있느냐.’ 그랬더니 그분이 쿨하게 “한 번 만나요.”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군자까지 가서 만났죠.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하고 자소서도 보내준다고 해서 그렇게 도움을 받아서 다시 한 번 썼어요. 그리고 또 떨어졌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떻게 해서 면접을 가도 떨어졌어요. 대우건설 홍보대사를 지원해서 면접까지 갔는데 바보짓 했죠. 제가 교정하기 전에 앞니가 나와서 생긴 게 비버 닮았었거든요. 그래서 별명이 비버였어요. 별생각 없이 면접 가서 ‘근면 성실하게 일하는 비버처럼’이라는 말을 했는데 알고 봤더니 타 건설사 광고에 나오는 캐릭터가 비버였더라고요. 거기서 이미 끝났죠. 면접관이 직접적으로 얘기하더라고요. “타 건설사가 밀고 있는 비버 캐릭터를 좋아하시나 봐요?” 그때부터 말렸죠. 아 이런 게 면접이구나 싶기도 하고요. 어렸을 때지만 나름대로 기억에 남았던 실패 경험인 것 같아요. 숱하게 많이 떨어지니까 솔직히 처음엔 ‘아 왜 떨어지지?’ 싶었죠. 근데 그 탈락 경험을 거치니까 지금은 아는 거죠. 그때 저는 지원서에도 사진 같은 거 하나도 안 넣었어요. 온통 글만 때려 박은 거야.뭣도 모르니까. 면접 가서 자기소개 시작하라고 하면 “안녕하세요. 저는 누구입니다.”라고 재미없게 시작하고요. 떨어지는 경험으로 노하우가 생겼던 거 같아요.


학교 안에서도 너님의 과거가 순탄하지는 않았다고 들었어요.


사실 전 처음에 공대로 입학했어요. 근데 지금은 공대랑 아무 상관없이 영어과랑 외식경영학과 복수전공해요. 원래 화학과나 화학공학과 가서 엔지니어가 되거나 그 분야로 취업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죠. 실제로 취업도 잘 되니까요. 그런 마음으로 대학에 들어왔는데 어떻게 선배를 한 분 만나게 됐어요. 그분이 공대로 들어와서 행정학과로 전과를 하신 분이었는데 전과해서도 과탑하고 그랬거든요. 우연하게 그분이랑 얘기를 좀 해봤더니 ‘아 전과를 해볼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요. 전공이 안 맞아서요?


안 맞았던 건 아닌데. 뭔가 재밌는 걸 해 보고 싶어서요. 대학에 왔는데 똑같이 생물 풀고 있고, 미적 풀고 있잖아요. 특별히 생각하는 공부가 아니고 고등학교랑 똑같아 보였거든요. 그리고 화학과는 3, 4학년 때 실험 방이라는 데 들어가요. 방학이면 그 실험 방에서 9시부터 밤까지 노예처럼 살아야 해요. 난 그게 너무 싫은 거야. 방학 땐 쉬거나 여행도 가고 싶을 텐데. 그때 그 선배가 조언하기를 막연하게 전과를 하려 하진 말고 일단 가서 수업 두 개정도만 들어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1학년 2학기 때 서울 캠퍼스로 외식경영학과 수업을 들으러 갔어요. 2개 들어봤는데 아 괜찮은 거예요. 새로웠어요. 아 이거다 싶어서 2학년 1학기부터 외식경영 수업을 다 몰아들었어요. 어차피 전과할 거니까. 교양 몇 개 듣고 공대 수업은 하나도 안 들었죠.


그러면 공대에서 전공은 몇 개나 들어본 거예요?


공대 전공요? 빵 개. 전공 교양 이런 거 들어본 거죠. 화학, 생물, 미적 이 정도.


개론, 원론 이런 거 같은 건가요?


그렇죠. 그거 듣고 이걸 대학까지 와서 또 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에 때려치웠죠. 그리고 외식경영 전공에 올인한 거예요. 사실 되게 힘들었어요. 혼자 수업 듣고 혼자 밥 먹고. 더군다나 국제캠퍼스 기숙사 사니까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수원역에서 전철 타고 회기까지 오가고 했죠. 그 생활을 한 학기 동안 했어요. 거기다 동기들이 2학년 1학기 때부터 새내기를 한 명씩 잡더니 연애를 시작하더라고요. 연애하니까 애들이 다 칼퇴하고 갠플하잖아요. 그래서 더 2학년 1학기가 힘들었어요.


그렇게 수업을 들었는데 2학년 1학기에 자리가 안 나서 전과를 못 했어요. 근데 2학기 때도 자리는 안 생기더라고요. 어떻게 해야 하나 싶다가 그래도 일단 2학기도 전공으로 다 채웠어요. 그리고 2학년 마치면서 군대 가기 전에 다시 전과를 신청해봤어요. 또 안 되더라고요. 3번 연속으로 실패하니까 아 이젠 그냥 군대 갔다 와야겠다 싶었죠. 친분이 있던 교수님들한테 조언을 구해도 별다른 방법이 없더라고요. 학적 이동 같은 건 교무처에서 담당하니까. 이건 교수님 레벨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총장님한테 친필로 편지를 썼어요. 왠지 이메일 같은 건 버려질 거 같아서 직접 쓴 편지 들고 총장실로 갔어요. 안 계신다길래 총장님한테 이 편지를 꼭 좀 전해달라고 비서실에 맡기고 왔죠. 그렇게 맡겨놓으니까 한 일주일 뒤에 메일이 한 통 오더라고요.


ㄷㄷ 총장찡한테요?


ㄴㄴ 교무처에서. 전과 시스템에 대해서 메일로 설명을 해주시더라고요. 뭐 요약하면 외경에서 몇 명이 나가야 자리가 열리는데 사실상 과에서 재적을 당하거나 자퇴를 하는 인원이 있어야 전과가 가능한 상황이었어요. 그 말 듣고 군대에 갔어요. 전역을 하고 나서 다시 한 번 전과 공고를 기다렸는데 역시나 자리가 안 났어요. 이제 4번째죠. 그래서 노선을 바꿔서 경영학과로 전과를 해서 외식경영을 복수전공하자고 마음먹었어요. 그런데 경영학과 전과가 쉬운 게 아니더라고요. 4.3만점에 4.1, 4.2 이런 애들이 가는 건데. 저는 학점이 그만큼 되진 않았으니까 서류 넣고 면접 봤는데 떨어지더라고요. 그렇게 떨어지고 그때 휴학을 했어요.


전과만 기다리다 휴학은 왜 해요?


시간을 날리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되게 치밀한 계산을 했어요. 그때 휴학하고 나선 영어공부를 시작했어요. 사실 그 당시 제겐 편입, 토플 이렇게 두 갈래의 길이 있었어요.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하는데 저는 아직도 그 순간 제가 정말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친구가 편입을 마음먹었다면서 같이 공부해보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혼자 생각해봤죠. 내가 편입을 시작하면 잘할 수 있을까. 1년 동안 입시 준비하듯 공부해야 한다는데 정말 자신이 있나. 결국 고민 끝에 내 생각이 확실히 선 게 아니라면 하지 말자는 결론을 내렸어요. 그래서 토플을 한 거죠. 어차피 교환학생도 염두에 뒀거든요. 이게 저한테는 진짜 인생의 전환점이 된 거예요. 넉 달 정도 진짜 빡세게 했죠. 잠도 하루에 다섯 시간만 자고. 나머지 시간 다 토플만 했으니까. 연애 같은 건 꿈도 못 꿨고 친구도 잘 못 만났어요. 그렇게 공부해서 토플은 7월에 원하는 점수를 냈고 하반기에는 영어회화를 공부를 했어요. 근데 그때 영어공부를 하면서 진짜 공부가 재미있었거든요. 그때 영어과로 전과를 결심했어요. 영어가 나랑 잘 맞는 거 같았거든요. 그렇게 영어과로 전과하고 외식경영을 복수전공하면서 학교를 다녔죠.


스스로 재밌는 공부해보겠다는 기대 하나로 먼 길 돌아오셨네요. 의도한 대로 쉽게 되지는 않았지만 결국엔 전공도 찾아갔구요.총장찡한테 편지도 써보는 용기는 부럽네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해보는 성격이에요.


스스로 영어공부가 잘 맞는 걸 알고 영어과로 전과를 선택할 수 있었던 것도 직접 영어공부를 해봤기 때문이잖아요. 사실 생각만 앞서는 경우가 참 많은데 말보다 행동으로 앞서가는 스타일 같아요.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죠. 생각만 심각하게 하는 경우도 있어요. 머릿속으로만 선택지들을 재고 비교하다가 필요한 순간에 확실하게 결정을 못 내리는 경우도 있었어요. 호주 워홀 같은 경우가 그랬어요. 워홀 갈 때 갈까 말까 정말 고민 많이 했거든요. 학점 하나 남겨두고 4학년 2학기가 끝난 상태였는데 이어서 마지막 학기를 마치고 취업을 할까 하는 생각도 있어서 고민을 되게 많이 했어요. 2월부터 두 달 정도 정말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시간은 가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큰 종이를 하나 사다가 내가 호주 워홀에 갔을 때 장점, 단점을 리스트업 했어요. 그때 고민되던 선택지 중에 하나가 미국 인턴십이어서 미국 인턴십에 갔을 때 장단점 그리고 졸업하고 취업을 했을 때 장단점도 써봤죠. 그렇게 세 가지 선택지를 깔아놓고 비교를 했더니 답이 보이더라고요. ‘호주 가자! 지금 아님 못 간다. 내 인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으로 비행기 탔죠.


워홀을 결심하는 분들은 목표하나는 품고 가잖아요. 여행, 돈, 어학... 너님의 핵심적인 목표는 뭐였어요?


전 돈 벌러 갔어요. 돈 벌고 틈틈이 여행하는 걸 목표로 삼았어요. 영어는 아니었어요. 영어를 잘 하진 않지만 가기 전에 들은 숱한 경험담들로 거기 가서 영어실력은 안 늘 걸 알았기 때문에.


사실 여행이든 돈이든 영어든 하나만 잡아도 성공이라고 하잖아요. 어떻게 꽤 버심?


일단 번 돈은 호주에 다 있어요. 환율이 너무 많이 떨어져서 바꿀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일단은 묵혀두고 있어요. 가면 돈은 진짜 잘 벌려요. 특히 영어를 좀 해서 가면 돈은 잘 벌 수 있어요. 팁만 한 달에 80만 원씩 받았으니까. (팁만? 그럼 월급은 어느 정도?)저는 레스토랑에서 일하면서 한국인들한테 영어 과외도 했었는데 한 달에 잘 벌 때는 500? 평균적으로는 350에서 400 정도 벌었어요. 근데 그만큼 물가가 세니까 호주에서 쓴 것도 많았죠. 이 돈은 사실 가족여행을 위해서 번 돈이에요. 4월에 보라카이에 가요.다 예약해놨고 곧 비행기 탑니다.


전지를 펼쳐 적어내려 가면서 고민을 끝낸 것도 행동으로 앞서는 모습 같아 보이는데요.


생각해보니까 그런 편이네요.


생각만 많이 했다고 표현했지만 그 정도의 고민은 누구나 하는 것 같아요. 특히 워홀 같은 큰 결정은 더욱 그렇겠죠. 고민을 하되 자기 상황에 적극적으로 임하시는 것 같아요.


전지에 적어 내려가는 건 나중에 고민될 때 해 봐요. 진짜 좋아요.


여행 계획을 근황으로 적어주시기도 했고 그만큼 해외 경험도 많으신 걸로 알아요. 근데 저는 개인적으로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이라서 저 같은 사람한테 들려주고 싶은 여행의 매력은 뭘까요.


근데 뭐 여행을 안 좋아하면 집에 있어야죠. 자기가 좋아하는 거 하면서 사는 건데 제가 여행을 좋아한다고 해서 여행을 가세요!가세요! 하는 건 웃긴 거 같아요.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너님에겐 집이 여행지일 수도 있는 거죠. 집에서 여행하는 거지 뭐. 질문대로 여행의 매력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새로운 걸 본다는 거?


‘새로움’이라는 단어에 흥미를 느끼시는 거 같아요. 새로움을 추구하시는 분이라 여자 친구도 자꾸 새롭게 바뀌시는 건가요?


하하하하하하하 이거 부숴도 돼요?


ㅈㅅ 농담이고 앞으로도 여행은 계속하실 예정인가요?


뭐 일 시작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근데 이미 맛을 보셨으니까 뭐) 진짜 한 번 맛을 보면 헤어 나올 수가 없어요. 마약 같아요. 때 되면 가서 새로운 걸 봐야 돼요. 뭔가 뻔한 얘긴데 진짜 안목이나 보는 눈이 좀 달라지는 것 같아요. 우린 이렇게 사는데 얘네는 이런 걸 먹고 이렇게 생활하네. 그러면 이거랑 이걸 합쳐서 어떻게 해보면 안 될까 뭐 이런 생각도 들고. 우리나라에선 이게 되게 싸. 근데 여긴 되게 비싸. 그럼 여기서 가져다 여기 팔면 되겠다. 뭐 이런 것들도 보이고 재밌어요.


여행이 주는 힘은 결국 경험이 주는 힘이랑 같다고 생각해요. 해외에 다녀오면 세계지도에다가 여기 갔다고 색칠하거나 표시해놓잖아요. 그런 점들이 모여가지고 언젠가 하나로 이어지는 선이 되는 거 같아요. 지금은 따로따로 노는 점들일 뿐이지만 인생에 있어서 여행을 비롯한 내 경험들은 언젠가 다 이어질 거라 이거죠. 제가 해 온 경험들도 죽기 전엔 하나하나 다 연결되겠죠. 그 스티브 잡스도 그런 말했다잖아요. 자기가 서예 수업을 들었던 게 애플에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다. 그 순간은 배운 게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모든 경험은 되게 중요하고 소중한 거라고 생각해요.


해외에서 새로운 안목이 생긴다고 했는데 해외 갈 때마다 새로운 안목, 즉 보는 눈이 달라져서 여자친구랑 헤어진 건가요?


하하하하하하하하 이거 부숴버려도 돼요?


ㅈㅅ 농담이고 공식적인 마지막 질문은 저희 회사에 대한 욕이나 칭찬인데 요즘 칭찬 너무 많이 받아서 지겨우니까 욕해봐요. 밑도 끝도 없는 쓴소리.


혼자 낑낑대면서 인터뷰이 기근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막 기고만장해서 잘하는 거 같아서 되게 보기 좋아요. 뭔가 혼자서 길을 개척해가는 모습인 거 같아서. 욕할 게 없어. 그냥 이거나 먹어.


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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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 없는 자신감이 위험해질 수 있는 이유는 자신감이라 믿어왔던 것들이 정신을 차려보면 무모함으로 바뀌어있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용기가 아닌 철저하게 고민된 근거는 자신감의 질을 바꿔놓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머리만 굴리기보단 행동으로 적극적인 고민을 이어왔기 때문인지 너님의 자신감은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어 보인다. 앞으로도 후회가 남지 않을 만큼 노력할 너님이 해피엔딩을 꿈꾸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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