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같은 인터뷰 #25
“다 내려놓을게요.”라는 말로 시작한 분위기는 아저씨들 기자회견 못지않게 쓸데없이 엄숙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내가 입에 물고 있던 자몽을 뿜어버리는 바람에 금방 더러워졌지만. 이야기가 꽤나 궁금했다. 근황 따위가 다 내려놓을만한 무게를 가진 건가 생각도 들었다. 매 번 알다가도 모르게 베일을 쳐버리는 인터뷰이 때문에 만날 때마다 이상하게 지는 기분이어서 오늘은 좀 이기고 싶었다. 인터뷰이는 “요새 성격이 변해서 자꾸 감추는 것 같기도 하다”라고 밑밥을 깔아 놓고선 곧 나를 처음 만났을 그때처럼 담담하고 당당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고 싶은 얘기를 서면으로 부탁드렸는데 만나면 알아서 이야기할 것 같다고 하셨어요. 난 그 말만 믿고 왔어요. 너님이 리드해요.뭐 해요 요즘.
알잖아요. 게임회사에서 인턴생활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신청서도 화장실에서 몰래 쓰...... 뭐 들어간 지 얼마 안 됐으니까 눈치 보이고 그래서. 화장실에서 쉬는 방법밖에 없어요. 탕비실 이런 것도 없고.
신청서 속 키워드에 ‘자유’ ‘방황’ ‘미래’ ‘꿈’ 같은 걸 적으셨는데 특별했던 게 하나 더 있었어요. 자학?!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창 꿈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는데 반강제적으로 인턴생활을 하게 돼서 그때 쫌 생각도 많아지고 스스로를 자학하는 기분이 들어서요. 스스로에게 스트레스 받게 하는 거죠. 다른 데 꿈이 있어서 그걸 차근차근 준비하려고 마음먹은 시점에서 인턴 생활에 들어가게 돼서 제가 계획했던 것보다 3개월 정도 시작이 밀렸어요.
꿈?
하고 싶은 게 있었어요. 취미생활로만 하려다가..
잠깐만요. 제가 알기론 드럼 스틱 들고 음악 혼도 불태웠었고 뮤지컬에도 한 번 빠졌었잖아요. 해오셨던 것들과 연계가 되는 꿈인가요?
꿈을 찾으려고 되도록 많은 것을 경험해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솔직히 뭐 너님도 마찬가지일 수도 있지만 중학교 땐 고등학교 바라보고 있었고 고등학교 땐 대학을 바라보면서 살았는데 대학에 들어와 보니까 또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인 거죠. 정신없이 1년 지나니까 고민이 다시 오기 시작하고 그때부터 방황을 시작했어요. 진짜 내 꿈은 뭘까 하는 생각도 해 보고.
더 절실히 느끼게 된 건 대외 활동 4개를 한꺼번에 하면서였어요. 그때 나 자신에게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라는 질문을 해봤는데 ‘취직하기 위해서’라는 답밖에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같이 대외 활동하는 팀원들도 저처럼 취업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왜 하느냐고 물으면 이 회사에 가고 싶어서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대답을 들으면서 좀 회의감이 들었죠. ‘나는 그저 스펙 쌓기를 위해 이걸 하는 건데 이 사람들은 나름대로 정말 절실한 거였구나. 나는 별로 절실하지 않은데도 왜 이걸 하고 있지? 나도 절실한 거 한 번 찾아보자.’ 그래서 하고 싶었던 것들을 찾아봤어요.
첫 번째로 평생 악기 하나는 다뤄야겠다는 생각에 드럼을 배웠어요. 악기를 본격적으로 배우면서 알았어요. 내가 예능 쪽에 관심이 있는걸요. 드럼을 1년 반 정도 배우던 중 갑자기 선생님이 좀 전문적으로 해볼 생각 있느냐고 물어봐서 그날 바로 드럼을 그만뒀어요. (뭐임?) 회의감이 드는 거예요. 조금만 더 일찍부터 했으면 더 연주를 잘해서 밴드나 세션을 하고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너무 커지더라고요. 의욕도 없어지고요. ‘아 나는 왜 이걸 그때 안 하고..’ 하는 생각도 들고.
근데 그 경험을 기점으로 그래도 ‘와 내가 이런 걸 해볼 수 있었는데 딴 것도 해볼까’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시기적절하게도 당시에 딱 맘에 들어왔던 명언이 “경험이란 건 가치를 매길 수 없는 보물이다.”라는 한 줄이었어요. 내 인생은 한 번뿐인데 공부만 할 순 없잖아요. 크게 재미도 없고. 그렇게 드럼에서 시작해서 댄스 스포츠도 배웠고 평소에 관심 있던 춤도 배웠고 최근에는 뮤지컬 공연도 해봤어요. 운 좋게 그중에 하나가 꿈이 됐어요.
뮤지컬...?
네 (단 한 번의 공연이었는데 기억이 되게 진했나 봐요.) 엄청 진했죠. 드럼 배우면서 무대에 오르는 재미도 느꼈고 댄스 스포츠를 배우면서 사람들이랑 몸 부딪히는데 묘미를 느꼈어요. 이 두 가지 매력을 합쳐 놓은 게 뮤지컬이었어요. 사람들과 몸을 부딪히고 무대에 서는 것도 좋았지만 뮤지컬은 춤, 노래뿐 아니라 연기까지 복합적으로 섞여있다는 걸 알고 그 매력에 빠진 것 같아요.
예능에 관심이 생긴 게 드럼 덕분인 거예요? 아니면 어렸을 때부터 관심이 많았던 건가요?
초등학교 때 처음으로 플롯이라는 걸 배웠어요. 초등학교 때 보통 여자애들이 피아노 배우잖아요. 근데 제가 악보를 두고 연주하는 걸 되게 싫어하거든요. 피아노도 재밌긴 재밌는데 악보를 두고 연주하는 거에 조금 강박관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체르니 숫자 올려가는 게 너무 싫은 거야. 그래서 엄마한테 다른 악기가 배우고 싶다고 했어요. 되게 리드미컬하고 그런 걸 배우게 될 줄 알았는데 딱 플롯을 내놓는 거예요.
그렇게 플롯을 처음 배웠어요. 어렸을 때니까 내가 잘하는지 못하는지 그런 건 잘 몰랐는데 같이 배우던 친한 친구랑 공연도 한 번 했어요. 그때 선생님이 저한테는 악보를 세 장짜리를 주더라고요. 친구는 한 장을 주고요. 연습을 할 때도 저한테 많이 신경을 써주시고 그랬어요.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선생님이 엄마한테 제 진로를 플롯 쪽으로 시켜보는 게 어떠냐고 직접 얘기를 했대요. 그때 부모님은 싫어했죠. 부모님 다 공무원이고 오빠도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어서요. 그래서 그냥 그렇게 끝났어요. 전 그걸 그다음 해에 알게 됐어요.
아.... 너님한테는 플롯 해볼 거냐는 얘기는 없었고요?
ㅇㅇ 안 해줬어요. 배우면서도 선생님이 나한테 ‘잘한다 잘한다’ 해주니까 나름대로 이쪽에 소질 있나 보다 생각도 했었는데 갑자기 마지막 수업을 한 이유가 엄마의 압력 때문이었어요. 잘 배우고 있는데 못하게 하니까 ‘아 나는 재밌는데 엄마는 왜 안 시켜주지 라고만 생각하다가 그때부터 모든 악기를 만지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접하기 쉬웠던 리코더, 단소, 장구 이런 것부터 다 만져본 거 같은데 만지기만 하면 부모님이 다 싫어하니까 어린 마음에 그냥 하면 안 되는구나 했죠. 그러다 고등학생 때는 입시가 걸려있으니까 엄마의 압력도 컸고 오빠도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간 상황이라서 잠시 눌러뒀다가 대학 와서 터진 것 같아요. (아 그럼 중고등학교 땐 공부만 하시고?) .... 공부만 했던 건 아닌 거 같은데.... 악기를 못 한 거죠. 건들지도 못했어요.
그러면 드럼을 처음 배울 때도 부모님이랑 갈등이 있었을 거 같은데요.
당연히 몰래 배웠죠. 당시에 용돈을 30만 원 받았는데 드럼 레슨비가 20만 원이었어요. 1주일에 1번씩 한 달 수업료 가요. 자연스럽게 10만 원으로 살아야 하는 삶을 살았죠. (그래도 여잔데....) 옷도 거의 안 사고 밥만 어떻게 먹고사는 정도. 그래도 하숙을 하고 있어서 밥은 꼭 하숙집에서 먹었어요. 돈이 없으니까. 친구들이랑 따로 약속도 못 잡았어요. 공연한 것도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요. 부모님은 당연히 모르시고.
댄스스포츠는 수업 듣다가 재미들이신 거?
얘기해도 되나... 그냥 개인적인 거라서. 댄스스포츠 한 이유가 있었어요. 수업을 신청한 이유요. (아하! 연애하려고?) 이미 하고 있었어요. (그럼 뭐지여ㅠ) 원래 우리 부모님은 취직을 하든 말든 빨리 졸업을 하라고 이야기하는 편인데 내가 학기를 끝내고 휴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어요. 부모님이 학교를 쉬라고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요.
2학년 방학에 기숙사에 살았었어요. 친구가 학생회 한다길래 그것 좀 도와주고 그랬어요. 그땐 배우던 드럼도 그만뒀던 때라서 따로 하는 것도 없었고. 어느 날 그냥 자다가 일어났는데 베개에 피가 묻어있는 거예요. 자고 있는 도중에 가위눌린 듯 발작을 했던 기억도 있고. 자다가 혀를 깨문 것 같았는데 혀 깨물고 죽는 게 정말 이런 느낌인가 싶을 정도로 좀 무섭긴 했어요. 엄마한테 전화를 했죠. 자다 혀 깨문 것 같다고. 혀에도 상처가 있었거든요. 근데 그게 일주일에 한 번씩 그러다가 점점 횟수가 늘더니 심할 땐 1주일에 세 번씩 그랬어요. 정말 자려고 눕기가 무서울 정도로.
꿈을 꿔서 그런 건가요? 가위눌려서?
저도 그렇게만 생각한 거죠. 가위눌려서 무서워서 혀를 깨물었구나 이렇게 생각했는데 그 발작하는 과정이 다 기억이 나요. 실제로 그 시간이 짧은지 긴지 모르겠지만 되게 짧게 느껴지고 결국 마지막은 기절로 끝이 나요. 삐- 하는 이명도 들리고 주위에 있는 사람 소리도 들리는데 막 정신없어하다가 기절을 하는 거예요. 이 횟수가 늘어나니까 저도 제 몸이 좀 이상한 걸 느껴서 엄마한테‘나 종합검진받고 싶다. 몸이 이상하다.’라고 했어요. 처음에는 역류성 식도염인 줄 알고 그 약을 먹기도 하고 이를 갈아서 그런가 해서 마우스피스같이 생긴 실리콘 이 교정기도 하고 자기도 했어요. 근데 증상은 계속되고 일주일에 서너 번씩 기절을 하니까 못 버티겠더라고요. 말했죠. 엄마 나 진짜 검사 받아야 할 것 같다고 진짜 아닌 것 같다고. 그래서 대학병원에 갔어요.
사실 엄마는 그때도 역류성 식도염인 줄 알고 내과에 데려갔어요. 내과에 갔는데 증상을 설명을 해 달라 길래 이랬고 저랬다 했더니 여기가 아닌 것 같다는 거예요. 신경외과를 가래요. 무슨 신경외과야 하면서 갔더니 뇌신경외과에 데려가더라고요. 거기서 다시 증상을 얘기하는데 의사가 제 말을 안 믿는 거예요. 뇌전증 증상이랑 비슷한데 (간질이라는 병명이 편견이 심해서 바뀐 게 뇌전증임) 그 증상이 남들하고 하고 좀 다른가 봐요. 원래 뇌전증 환자는 기절하고 기억이 안 난다는데 난 그 과정이 다 기억이 나거든요. 숨 못 쉬는 게 느껴지고 몸이 넘어가는 게 느껴져요. 그래서 한 번은 증상이 나올 때 소리를 질렀어요. 오빠 보라고. 오빠 나 살려달라고. 오빠가 막 달려왔는데 내가 이러고 있으니까 어쩔 줄 모르더라고요. 119를 불러야 하는데 무서워서 번호를 누르지도 못하고. 근데 난 그 상황에서 소리가 다 들려요. 오빠가 “괜찮아? 괜찮아?” 하는 소리도 다 들리고. 근데 그게 괘애앤차아않아아?이런 식으로 느리게 들려요. 그렇게 한 10분 정도 발작이 느껴지다가 어느 순간 딱 끊겨요. 그리고 기절하는 거예요.
그렇게 증상 얘기를 의사한테 했어요. 기억이 다 나고 그랬다. 5분에서 10분 정도로 느껴진다. 그랬더니 의사가 “아 그런 게 어딨어.” 이러는 거예요. 내 말을 믿어줄 수 있는 건 의사밖에 없는데. 엄마 아빠는 본 적이 없으니까 믿지도 않았거든요. 의사도 엄마도 오빠한테 전화를 해서 설명을 하는 걸 듣고 믿더라고요. 그때 엄청 서러웠어요. 아픈 것도 미치겠는데 내 말을 믿질 않으니까.그렇게 처음으로 뇌전증이라는 병명을 듣고 별 검사를 다했어요. MRI도 찍어보고 했는데 아무 이상이 없대요. 증상만 나오고. 의사가 서류를 싸인해달라고 내밀더라고요. (??) 연구하고 싶다고. 아빠는 그때 화를 냈어요. 그렇게 되면 내가 실험 대상이 되는 거니까.
검사를 끝내고 약을 받았어요. 근데 약이 뇌로 바로 가는 약이다 보니까 부작용이 장난 아니더라고요. 난 태어나서 두드러기 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처음 약을 먹으니까 온몸에 다 올라오더라고요. 그 약의 부작용이 몇 개가 있었는데 나는 두드러기, 시력감퇴, 기억력 감퇴 이런 게 있는 거 같아요. 동기들 얼굴도 기억이 잘 안 나더라고요. 그래서 집에서 휴학을 하라고 한 거였어요. 그래도 난 학교 다니겠다고 했어요. 의사도 병을 잊고 싶으면 재밌는 운동 같은 걸 하라고 말하길래 댄스스포츠를 시작했던 거예요.
약을 먹으면 괜찮겠지 생각했는데 부작용이 있으니까 스트레스를 계속 받았어요. 약은 계속 먹어야 하고. 나는 당시에 신세 한탄할 사람이 남자친구 밖에 없었는데 남자친구는 잘 몰라주고 아파야 얼마만큼 이겠어 이렇게 생각을 하니까 좀 그랬어요. 댄스스포츠 배우는데 거기서도 이런저런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고요. 그래서 그 학기 끝나자마자 바로 휴학했어요. 오늘 이 얘기는 하려고 했어요. 이 병 얘기는 해봐야겠다고. 아무도 잘 모르고 이제야 말할 수 있는 거라서.
약을 먹어서 지금은 괜찮으신 건가요?
전조증상이란 게 있어요. 시작하기 전에 약간씩 올라오는 건 아직도 있어요. 약은 지금 2년 반, 3년째 먹고 있는데 원래 이게 2년이면 끊겨야 하는 거래요. 모르겠어요. 그냥 언젠간 낫겠지 그런 생각하고 있어요. 아침, 저녁으로 약 먹으면 증상은 없어요. 3년이나 먹었으니까 있으면 안 되죠. 난 나 자신이 어떻게 되는지 아니까 그 상황에 있으면 건드리지 말라고 했어요. 건드리면 내가 더 오래 기억하거든요. 그냥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빨리 기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그러니까 의사는 그 상황을 기억하는 증상은 처음 봤다고 믿을 수 없다고 그렇게 얘길 하더라고요. 그래도 나는 다행히 평소에 그러는 게 아니라 꼭 자다가 새벽에 그래가지고 그건 다행인 것 같아요. 걸어 다니다가 그랬으면 위험하고 넘어질 때 머리 다치고 그랬을 텐데 그건 아니니까 진짜 다행이죠. 기절을 하고 푹 자고 일어나면 진짜 멀쩡하니까. 다만 그 상황이 기억이 나니까 더 괴로운 거예요. 증상의 시작이 항상 5시-6시쯤이어서 그 시간까지 일부러 안 자고 그랬어요. 자기도 싫고.
지금에서야 담담하게 이야기하시지만 그땐 더 힘들었을 텐데. 저 같았으면 엄마도 밉고...
다 미웠어요. 안 울 때가 없었어요. 맨날 울었어요. 그냥 누워있으면 눈물이 막 나고. 내가 원래 눈물이 별로 없거든요. 슬픈 영화를 봐도 그냥 멍하고 덤덤하고. 사람들이 드라마 보고 운다는 게 진짜 이해가 안 됐거든요. 근데 그때 이후로 눈물이 너무 많아져서 뭐 볼 때마다 울어요. 그래서 ‘눈물 연기 라는 게 이런 데서 나오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ㅋㅋㅋ 이제 눈물 연기 하나는 잘하겠구나 싶어요. 그때 이런 얘기하면 엄청 울었을 거예요. 아무렇지 않다고 말하면서 펑펑 울고. 그래도 그때 이후로는 엄마가 터치를 안 하더라고요. 이런저런 걸 하겠다고 해도 터치를 안 해요. 드럼 쳤던 것도 그때 얘기했어요. 나 공연을 했었다고.
평소에 집에서 부모님이랑은 얘기를 많이 하심여?
얘기 많이 해요. 아픈 거는 더 얘기 많이 했죠. 근데 그때 아프다는 걸 엄마가 못 믿었던 상황에 대한 미움은 아직도 갖고 있는 거 같아요. (서러움?) 응 서러움. 그래서 맨날 얘기를 피하려고 해요. 얘기하면 눈물 나오려고 하고 그때 생각하면 엄마가 미우니까.그래도 엄마는 미워하면 안 되는 존잰데... 하고 넘기는데 이제는 맨날 약 가지고 싸워요. 너 약 안 먹었지 안 먹었지 하면서. 그런 것 빼곤 좋아요. 고민 같은 것도 얘기 많이 하고. 근데 아프니까 날 건드리지 못하더라고. ㅋㅋㅋㅋ (벼슬하나 하셨네여) 이게 정말 좋은 거 같아요. 특히 아빠가 내가 뭐 하는 거 싫어했거든요. 한 번은 딴따라 하지 말라는 식으로 비하하기도 했어요. 근데 그 이후론 그냥 아무거나 하래요.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그냥 낫기만 하면 되니까 아무거나 하래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휴학하면서는 뭐 하셨어요?
그냥 계속 집에 있었죠. 할 것도 없고. 뭘 하려고 해도 다 막아서 좀 괴로웠어요. “엄마 아빠 여행 갔다 올래.” “안 돼. 혹시 모르잖아.” “어디 갔다 올게.” “안 돼. 혹시 모르잖아.” 매 번 혹시가 들어가게 된 거죠. (너님도 불안했을 거 같은데요) 그래도 1년 되니까 증상이 없어서 좀 안심이 되더라고요. 사실 고3 때부터 전조증상이 있었는데 나랑 엄마는 그게 전조증상인지 몰랐던 거래요. 학교에서 12일 되면 12번이 책 읽잖아요. 그래서 일어나서 책 읽는데 중간에 갑자기 발음이 어눌해지고 읽다가 갑자기 뭔가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어요. 나는 정확히 읽는다고 읽는데 발음이 이상해지는. 뭐가 올라오길래 역류성 식도염인 줄 알고 위내시경을 했는데 위가 선분홍색이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쁜 색! 정말 이쁜 색요. 대학 들어와서는 아무렇지 않았으니까 괜찮나 보다 하고 넘겼었는데 그게 전조증상이었대요. 아직까지 완벽하게 낫는 건 없대요. 왜 걸렸는지는 아직도 모르겠고. (저 같으면 되게 무서 웠을 것 같아요.) 무서워요. 진짜 무서워. 왜 나한테 왔지.... 이런 생각도 들고. 그래도 이 경험 없었으면 지금 이렇게 살지 않았을 거 같아요.
스스로 합리화가 됐을 듯요. 하고 싶은 거 하라고.
진짜 하고 싶은 거 해야겠다 싶었죠. 언제 죽을지 모르는 거니까ㅋㅋㅋ 그래 인생은 재밌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죠. ‘경험은 엄청난 보물이다’ 라는 말을 품고 있었는데 이 일이 터지고 나선 좀 더 간절해진 것 같아요. 해야겠다 라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거 안 하면 안 되겠다. 정말 후회하겠다. 이런 마음?
아 뮤지컬 얘기해야 하는데 이제 시작함;; 언제 처음 시작한 거예요?
원래부터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뮤지컬 공연 찾아보면서. 근데 내가 내 한계를 아니까... 노래를 엄청 잘하는 것도 아니고, 연기를 해본 적도 없고, 성량이 좋은 것도 아니고, 경험도 없고, 발음이 정확하고 이런 것도 아니라서 되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전문적으로 시작한 게 아니라 소모임에 들어가게 됐어요. 원래 3개월 과정이었는데 우리 기수는 시간이 안 맞아서 공연을 못 하는 기수였어요. 그리고 우리 기수가 인원이 5명이었는데 5명으로 무슨 뮤지컬을 해요. 게다가 한 명만 뮤지컬 경험이 있던 애고 날 포함해 나머지는 생초본데. 그러던 중 한 명이 나가서 결국 4명밖에 없었어요.
근데 우리끼리 자체적으로 모이기 시작했어요. 우리 그래도 3개월 동안 하는데 공연은 한 번 해봐야 하지 않겠냐고. 우리 네 명이 너무 열심히 하고 서로 으싸으쌰가 잘 되니까 그 대표가 보기에도 되게 특이했나 봐요. 공연하는 게 어떠냐고 얘기가 나와서 그 뒤로 6개월 더 연습했어요. 힘든 일이 되게 많았죠. 4명인데 한 명이라도 빠지면 이게 연습도 안 되고 단체곡도 네 명밖에 못 부르니까 소리가 크지도 않고. 그래도 이렇게 저렇게 한 명씩 멤버가 늘어났어요. 원래 공연하던 사람이 관심 있어서 오기도 하고. 연습 되게 많이 했어요. 그때 너무 배고파서 매일 야식을 엄청 먹었는데도 뮤지컬 하면서 하루에 7시간씩 막 춤추고 노래하니까 살도 안 찔 정도로요.
그때 공연 초대해주셨을 때 좀 자신감이 느껴졌어요. 지금 인턴 안 했으면 뭐하고 있었을까요?
입시 준비하고 있었겠죠. 전문대로. 일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했는데 일 시작하기 전에 이것쯤은 꼭 하기로 마음먹었던 것들을 실천하지 않고 있는 게 스스로 보여요. 그래서 전에 봐둔 뮤지컬 멘토 프로그램에 연락해볼까 말까 하다가 내일 처음 만나기로 했어요. 한 번 연락하기가 힘들지 막상 시작하니까 자신감이 생기네요. 이제 진짜 시작하겠구나 하는 느낌도 들고. 솔직히 뮤지컬 배운다고 하면 다들 보컬부터 가르쳐주려고 하는데 연락해보니까 이 사람은 뮤지컬 하려면 연기랑 무용부터 배워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되게 좋은 게 멘토로 와주는 사람이 다 현직 배우들이라서 제대로 배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본격적인 시작이네요.
모르겠어요. 나도 나 자신이 어떤 실력인지 모르니까. 전에 했던 건 공연만을 위해 놀면서 한 거라서 봐야 알겠죠. 나한테 가능성이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는 거니까 시작은 해 봐야죠. (그래도 자신은 있어 보이는데.) 솔직히 아직 아무것도 안 해봤는데 자신감이 있고 없고가 어딨어요. 지르는 거지. (그래도 더 재밌는 게 생기기 전까진 열심히 하지 않을까요.) ‘더 재밌는 게 있을까?’ 이 생각이 들 정도로 뮤지컬이 재밌었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시작하겠죠. 다른 것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었는데 이것만큼 생각이 안 나는 걸 보면.
스스로 길을 잘 찾아가는 것 같아요.
아직 후회는 안 해요. 근데 솔직히 안 하고 후회하느니 하고 후회하는 게 낫다는 말은 진짜 맞는 거 같아요. 드럼 배우고 그랬을 때도 그렇고 그 말이 딱 맞는 거 같아요. 안 배웠으면 엄청 후회했을 거예요. 스틱을 언제 잡아 봐요. 늙어서 할 순 없잖아요. 대학생 때 나름 하고 싶은 것들도 해보고 별일도 다 겪고 나니까 그냥 세상에 무서운 게 없어진 것 같은 기분이에요. 좀 그랬던 것 같아요.
이따금씩 봐도 뭔가 꽂혀있는 게 있는 거 같아서 재밌게 사는 것 같았어요.
인생 재밌죠.
마지막으로 저희 회사를 위해 쓴소리나 단소리 투척해줘요.
생각했던 건 많았던 것 같아요. 이거 한다고 했을 때 뭔가 자체부터 좀 자기 손해 보려고 하는 건가..... 싶었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자기 손해를 창출에 능하긴 합니다) 하는 일에 의미는 있는데 그 의미를 많이 알리지는 못한 거 같아서 좀 아쉬워요. 사진전도 의미는 되게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별로 관심이 없는 거 같아요. 보러 오는 사람은 많았던 것 같은데 의미를 확실히 전파를 했으면 많이들 보고 많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까 싶어요. 왜 홍보를 잘 안 했는지 모르겠어요. (나름 한 건데..) 시키지 좀 공유해달라고. (자신감이 없다고 표현하긴 싫지만 자신감의 바운더리가 고작 나까지인가 봐요.) 좀 넓혀요.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리고 나름 회사처럼 만들어서 남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는 거 아닌가요? 뭐라 해야 하지. 골수팬은 있는데 대중성이 없는 느낌이에요.
쫄아서 그런 거 같아요.
왜 쫄아요. 사장인데.
그러네.
인터뷰이의 얘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노래 가사처럼 되게 쿨했다.
쉽게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어렵게 생각할 필요도 없으니까
오늘 인터뷰는 그만 고치고 뭐 이렇게 대충 그냥 질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