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같은 인터뷰 #26
8개월 만에 다시 만났다. ‘나 이 사람 좀 알아.’라는 어쭙잖은 생각은 불필요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8개월 동안 더 신선해지셨다. 여전히 자신의 삶에 대한 애정과 열정은 가득해 보였고 꺼내놓은 이야기는 속편 같은 본편이었다. (뭔 말인지 모르겠다. 분명 맨 정신인데.) 자신의 다짐을 들려줬던 지난 인터뷰에 이어 인터뷰 말미에 또다시 예고 비스무리한 걸 날려주고 갔으니 당연한 듯이 세 번째 인터뷰를 기다려야겠다. ㄲㄲㄲ 각자 서로에게 내어준 오늘의 대화가 그의 메모처럼 이해와 공감이 오갔던 소통의 시간이 되었길 바랄 뿐이다. 그래야 또 신청하겠지. 고칠 게 하나도 없었던 첫 A/S 인터뷰 시작!
# 롱 타임 노 씨
다시 한 번 신청을 해주셔서.....
저 말고 인터뷰를 두 번 하신 분들 있나요?
다시 하고 싶다고 얘기하신 분들은 있는데 말만 그렇게 해놓고 신청하신 분들은 없었어요. 이 인터뷰가 첫 번째 A/S 인터뷰에요.
제가 작년 10월에 인터뷰를 했잖아요. 그때 인터뷰를 통해 드러났던 제 생각들을 보고 몇몇 분들한테 연락이 왔어요. 그분들이랑 아직 만나진 못 했지만 온라인으로 이야기하다 보니까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분들이더라고요. 신기하게. 그래서 더 많은 이야기 나누다 보니 서로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곧 만나려고 해요. 이 인터뷰가 그런 계기가 되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낄낄 뿌듯하네요.
두 분한테는 직접 메시지가 왔어요. 우연히 인터뷰를 봤고, 어떤 생각에 공감을 해서 한 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이렇게요. 다른 두 분은 어쩌다 보니 알게 됐는데 “어? 인터뷰 본 적 있어요.”라고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저도 뭔가 뿌듯했어요.
이번 인터뷰를 앞두고 연락 주실 땐 그동안 생각의 변화가 있으셨다고 하셨는데
처음에 인터뷰를 또 한 번 하자고 했던 건 솔직히 특별한 생각은 없었어요. 근데 오랜만에 지난 인터뷰를 봤는데 내 얘긴데도 되게 이질감이 있더라고요. 보통 과거의 내가 가졌던 생각이 담긴 글을 봤을 때 이질감이 드는 경우가 있고 편안한 느낌이 드는 경우도 있잖아요. 근데 저는 이질감이 느껴지더라고요. 그새 생각이 엄청 많이 바뀌었구나 싶었죠. 이런 얘기도 했었나 싶고.(웃음) 변화된 제 자신이 새롭게 이야기를 나누면 되게 재밌겠다 싶어서 연락을 드렸어요.
저도 작년에 너님을 만난 이후로 몸무게에서 많은 변화를 이루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여튼 인터뷰 전에 너님의 페이스북 담벼락이랑 홈페이지 슬쩍 보고 왔어요. 워낙 너님이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는 건 지난번 인터뷰를 통해 알고 있어서 키워드를 세 개 정도 꼽아왔어요. 은평. 채식. 농사.
지난 2월에 전역을 했어요. 전에 만났을 때 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쏟아냈잖아요. 그때는 특히 ‘다양성’이라는 얘기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근데 그 인터뷰하고 한 달 뒤에 제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포괄하는 새로운 생각을 만난 거예요. 기존까지 내가 생각하던 다양성도 중요하지만 나를 더 잘 품을 수 있는 새로운 생각을 가지고 활동해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그래서 원래 전역하고 미국에 가서 4개월 동안 인턴을 하기로 했었거든요. 가기 전에 그 관련 분야에서 나름 놀다 가야겠다는 생각에 2, 3, 4월을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놀았어요. 그리고 미국에 갔죠.
어떤 분야의 인턴이었나요?
아까 말씀드린 ‘전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포괄하는 새로운 생각’이라는 게 생태적인 삶, 퍼머컬처 이런 분야였거든요. 미국에 블루락스테이션이라는 농장 같은 게 있는데 지속 가능한 삶 연구센터라고 대학생들이랑 연구도 하고 강연도 하고 워크샵도 해요. 농장이면서 동시에 지속 가능한 삶을 실천하고 생각을 나누는 지점 같은 곳이거든요. 군대에 있을 때라 아침점호 끝내고 국제전화로 인터뷰 보고 그랬는데 다행히 잘 풀려서 인턴으로 가게 된 거예요. 근데 한국에서 이런 삶을 미리 경험해보려고 했는데 이 분야가 좀 대안적인 삶의 방식이지 주류의 삶의 방식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지방을 돌아다닌 거예요.
서울에서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지방에 내려가신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순창도 가보고 대전, 완주 이렇게 가봤는데 되게 재밌었어요. 그리고 미국에 갔죠. 근데 1주일 만에 현지 사정 때문에 더 머물지 못하고 귀국하게 됐어요. (웃음) 군대에 있을 때부터 준비했던 계획이라 “나는 4월만 되면 내 세상이다. 미국 가서 4개월 동안 멋지게 살다 돌아와야지 생각했는데 그냥 1주일 만에 돌아온 거죠.
미국에 도착하고 이틀 정도 있다가 상황이 변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 그쪽에서 악의는 없었지만 인턴을 운영하기 힘든 상황이었거든요. 제가 우겨서 남았을 수도 있지만 그게 그 사람들에게 피해가 있을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고요. 이 상황이 내 삶에서 또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고민해보다가 결국 그대로 귀국했어요. 비행깃값 내고 1주일 놀다 온 거죠. 항공료만 제가 내고 나머지 생활비,용돈 이런 건 다 주는 거였는데. (다 날아갔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 4개월짜리 계획도 함께 날아간 거죠. 지속 가능한 삶이나 생태적인 삶, 퍼머컬처를 실천하는 삶을 미국에 가서 배우고 싶었지만 못 배우게 됐으니까 한국으로 돌아가서 내가 직접 살면서, 부딪히면서 실천해보자는 생각으로 한국에 왔어요. “더 이상 배우지 말고 실천하고 겪어보자”라는 생각에요.
# 住 : 은평이라는 공간
그 실천을 어디서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미국에 가기 전에 했던 경험과 일주일간의 검색으로 서울 은평구라는 결론에 다다랐어요. 여러 곳에 기회가 있었지만 은평구에서 해야겠다고 딱 결정하자마자 그날 오전 3시에 페이스북에 은평을 검색해 나오는 공공기관에 다 연락을 했어요. ‘나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은평에 가서 뭘 하고 싶다. 근데 돈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다.방법이 없겠냐.’ 이렇게 보냈는데 다음 날 오전 9시쯤에 은평구 마을 지원센터라는 곳에서 연락이 오더라고요.
은평이라는 동네가 특수한 지역이에요. 시민사회운동이나 연대 활동이 90년대부터 꾸준히 있어왔기 때문에 주민들 간의 관계도 뭔가 잘 엮여있어요. 그리고 현 은평구청장님이 마을이나 커뮤니티를 굉장히 밀고 있어서 마포구와 더불어 마을 커뮤니티의 중심지 지역으로 꼽히기도 하고요. 그래서인지 은평구 마을 지원센터도 되게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었는데 그쪽에서 메시지가 온 거예요. 이런 생각이나 뜻을 가진 청년들이 귀하다고 당장 도와줄 테니 내일 오라고 하더라고요. 그 자리에서 집도 두 개 소개해주고 일자리도 연결해줘서 그다음 날 면접도 봤어요. 뭔가 일사천리로 파바밧 한 거죠. 게다가 미국 가기 전에 제가 배우고 싶어서 많이 쫓아 다녔던 선생님도 마침 은평에서 전환마을 운동을 하려고 계속 준비해오시더라고요. 그런 것들이 맞아떨어져서 은평에서 내가 생각한 삶을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방에서 당장 생태적인 삶을 실천할 수도 있겠지만 도시에서 하는 게 의미 부여도 많고 저한테 더 맞는다고 생각해서요. 4월 26일에 처음 가보고 몇 차례 왔다 갔다 하다가 5월 13일에 바로 집 계약하고 들어갔어요. 거기 사람들이 다들 놀랬죠. 얘 좀 이상한 애다 하시면서 ㅋㅋㅋㅋㅋㅋㅋㅋ
은평에서 사는 게 그렇게 만족스럽다면서요.
안 그래도 누가 연고도 없는 도시에서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어보길래 만족스러웠던 이유를 생각해봤어요. 저는 2012년도부터 스트레스라는 걸 잘 모르고 살았거든요. 근데 되게 즐거운 생활이었지만 아름답진 않았어요. 개인적으로는 되게 즐거운데 나를 둘러싼 환경이라든가 이런 것들은 그렇지 못 해서 뭔가 공허함 같은 게 있었고요. 스트레스는 아니지만 허전함 같은 게 분명 있었거든요. 근데 지금은 여기 은평에 온 뒤로는 즐거우면서 아름다워요. 내가 필요한 자원들도 여기 다 있고, 내가 꿈꾸고 바라보는 삶을 나눌 사람들도 여기 다 있고요. 내 마음도 즐거운데다 내가 있는 환경이 아름답기까지 하니까 뭔가 부족한 게 없는 거죠.
제가 아는 은평은 서울스럽지 않은 분위기가 있는 동네?
말씀하신 부분이 정확하신 거 같아요. 맨 처음 갔을 때 어느 동네는 시골인 줄 알았어요. 근데 그런 부분이 제가 정확하게 원했던 것 같아요. 왜냐면 저는 지리산에서 살아볼까 그런 생각도 했었거든요. 이런 오해가 있었어요. 생태적인 삶을 살려면 산에 들어가서 안 씻고 퇴비 활용해 가면서 살아야 한다는. 근데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거였고 현실적으로 제가 할 수 있는 곳은 도심 쪽이었던 게 사실이에요. 서울 안에서 그런 방향을 지향할 수 있는 곳이 어디 있을까 하고 찾아본 건데 은평의 분위기가 저한테 딱 맞는 부분이더라고요. 말 그대로 서울 속 서울 같지 않은 곳. 그래서인지 생태적인 삶을 위한 기회도 많고요. 갈현 텃밭이라고 은평에 꽤 넓은 땅을 텃밭으로 만들었어요. 도시 곳곳에서 이런 시도들이 있으니까 저한테는 딱 맞았죠.
너님 타임라인 보고 곧 수염 기르고 <나는 자연인이다> 나오실 것 같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저는 무의식적으로 풀 냄새나는 삶은 노후의 일, 퇴직 이후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관심을 보이는 청년들이 많나 봐요.
엄청 많습니다. 서울에서 만난 사람도 대전 가면 다 알고. 지역별로 공동체들끼리는 다 연결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관련 행사 한 번 가면 서로 다 알아요. 모여서 하는 얘기 들어보면 ‘청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대안적인 삶의 방식, 생태적인 가치에 관심을 가지고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에 환멸, 회의를 느껴서 왔다’는 이야기를 점점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객관적인 통계치를 따질 순 없지만 그렇게 곳곳에 방문하는 사람들이나 주민으로 들어오고 싶다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고 해요.
# 衣 : 퍼머컬처?
지난 인터뷰를 다시 한 번 보면서 나름대로 키워드를 뽑아봤어요. ‘삶을 관통하는 한 가지를 찾고 있고 그걸 찾기 위해 다양성 안에 자신을 빠뜨려서 찾아보겠다.’ 대충 그런 거였거든요. 그때는 몰랐는데 다양성을 추구했던 게 그 당시 제 레벨 같은 거였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전에는 ‘나 취직할 거야. 뭐 할 거야.’ 이런 목표들이 단계적으로 왔었는데 다양성을 추구하는 게 끝판왕인 줄 알았던 거죠. 그래서 ‘다양성이 정점이니까 다양성이라는 걸 토대로 내가 찾고 싶은 걸 찾아갈 거야.’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제 나름대로 다양한 경험을 하다 보니까 결국에는 다양성 위에 뭔가 하나 더 있는 걸 깨달은 거예요.
이건 보편적인 게 아니라 제 생각일 뿐이지만 ‘다양성 안의 통일성’ 이렇게 표현을 하거든요. 세상에는 정말 많은 다양성이 존재하고 그것들은 상대적이지만 그 안에 내재된 ‘보편적인 뭔가’가 있다! 그 관통하는 생각이 퍼머컬처라는 거였어요. 저도 아직 배우는 중이라 자세히 설명은 못하겠지만 퍼머컬처의 요지는 삶의 방식에 관한 얘기에요. 철학, 주거, 음식, 에너지, 기술 등 많은 삶의 방식을 포괄하면서 삶의 윤리, 원칙, 태도 등을 다루는데 퍼머컬처를 접하면서 이전까지 끝판왕이라 생각했던 다양성보다 한 차원 높은 걸 발견했다고 생각했어요. 퍼머컬처 안에서 다시 한 번 내 삶을 관통하는 걸 찾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요. 그래서 이 안에 녹아들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퍼머컬처를 연구하는 사람한테 전부 다 연락하고 모임에도 찾아가고 그랬거든요. 지금도 여전히 퍼머컬처가 굉장히 큰 주제라고 생각을 해서 어떻게 그걸 내 삶에 녹여낼 수 있을까 궁리를 하고 있어요.
퍼머컬처를 한마디로 하면 ‘자연 따라 사는 삶의 방식’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퍼머컬처의 원리 같은 걸 보면 ‘자연 속에서 패턴을 발견해 우리 일상 속에 활용하라. 자연을 관찰하라. 자연에서 배우자.’ 이런 이야기들이 되게 많거든요. 농사를 지을 때도 보통 관행농업이라고 해서 생산성을 위해 제초제 확 뿌리고 그러는데 사실 자연에서는 그냥 냅두고 보는 거거든요. 후쿠오카 마사노부가 말하는 자연 농법 같은 게 대표적일 것 같아요. 에너지 활용 같은 경우도 자연에서 착안해 적정기술을 활용한다든가 하고요. 퍼머컬처의 세 가지 큰 원칙을 보면 사람을 아끼고, 흙을 아끼고, 공유하자라는 이야기가 있는 데 결국 지구와 자연에 관한 이야기인 것 같아요. 그래서 자연 따라 살자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퍼머컬처도 그 분야가 되게 다양한데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건 뭘까. 나에게 중요한 건 뭘까’ 생각했을 때 우선 내 삶에 뭔가 독립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봐요. 의존이라는 것 자체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어딘가에 매여 있다는 건데 매여 있으면 결국 내가 원하는 걸 추구하지 못할 상황도 오겠구나 싶어서요. 그럼 어떤 부분에서 의존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해봤더니 삶의 필수적인 부분에서 독립해나가지 않으면 결국 어떻게든 의존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가장 대표적인 의, 식, 주 그리고 교육, 의료 이렇게 다섯 가지를 꼽아봤어요. 이런 생각 때문에 마을 공동체 쪽으로도 관심이 생겼고, 대안적인 삶의 방식에도 관심이 생겼어요. 이런 식으로 내가 삶을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 독립할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자연이라는 말 자체부터 있는 그대로를 의미하니까 말씀하신 독립적인 삶과 자연스레 연결되는 것 같아요.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려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마을 공동체에 관심이 갔어요. 내가 농사도 짓고, 집도 짓고, 아프면 치료하고 전부 다 할 수는 없잖아요.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기능별로 담당하면 나름대로 자립을 이뤄내지 않을까 해서 2, 3, 4월 동안 돌아다녔고 미국에도 가보고 했는데 이미 하고 있는 곳도 많고 나름대로 성과를 낸 곳도 있지만 망한 곳도 있고 와해된 곳도 있더라고요. 어찌 됐든 그런 공동체적인 생활 안에서 뭔가를 이뤄내야겠다는 결심 같은 게 있었고 그 공동체 안에서 내가 담당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해봤어요. 근데 저한텐 제일 맞는 게 농사인 것 같더라고요. 땀을 흘리면서 일하는 걸 좋아하고 자연과 계속 교감하면서 살길 원하고 이런저런 특성을 생각해봤을 때요.
일단 식량 자급을 위해 농사를 배워서 커뮤니티 안에서 한 기능을 담당할 수 있다면 공동체 안에서 퍼머컬처를 실천하고 실현하는 삶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은평에서 전환마을 은평이라는 이름으로 전환마을 운동도 하고 있고 정말 많은 프로그램들이 마을 특성상 운영되고 있어서 당장 텃밭에서 농사도 지을 기회가 생겼어요. 지금은 퍼머컬처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데 한 15명 정도 함께 땅을 밟으면서 농사를 짓고 있어요. 1기는 저 군대에 있을 때 했고 제가 지금 2기로 농사를 짓고 있어요. 전환마을 은평 운동하는 분들, 텃밭을 운영하는 분들, 1기 분들도 같은 방향성을 가지고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다 보니 앞으로 더 발전할 것 같아요. 정규 학위가 나오거나 자격증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농사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하는 스터디 모임 같은 그룹이거든요. 뭐 여기 와서 밭 일군다고 해서 돈 버는 것도 아니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농사 관련된 일을 해보려고 해요.
# 食 : 채식
어떤 거 심으심? 직접 농사를 지어보니 어떠세요.
ㅋㅋㅋㅋㅋㅋㅋ 되게 웃긴 게 전 농사를 짓고 싶은데 평생 도시에 살아서 농사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요. 그래서 같이 하시는 분들이 뭐 심자 뭐 심자 하시는데 하나도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일단 다들 심고 싶어 하는 거 같이 심었거든요. 당귀랑 허브류 쫙 심고..... 분명 또 뭔가를 심고 있을 거예요. 요즘 너무 머리가 터질 것 같아요. 공부를 새로 하니까. 그래서 전부 다 기억은 못하겠는데 아무튼 많이 심고 있어요.(웃음)
저는 농사지으면 제 삶이 없어지는 줄 알았어요. 농사는 너무 바쁘고, 너무 힘들고 그런 건 줄 알았죠. 보통 농사를 구분할 때 관행농, 유기농, 자연농 이렇게 나누는데 저는 서구식으로 약도 손쉽게 뿌리고 막 수확하는 관행농만 있는 줄 알았거든요. 그래서 농사는 힘들고 어른들만 하는 거고 그렇게만 생각했는데 사업이 아닌 삶의 방식으로서 나를 위한 농사가 뭐가 있는 게 알게 됐어요. 자급을 위한 농업, 주체적인 삶을 위한 농업이라는 걸 발견하면서 농업에 대한 생각이 확실히 바뀌었고 ‘이게 기쁜 일이구나. 내 삶과 분리되는 일이 아니라 되게 자연스러운 일이구나.’ 이런 인식으로 많이 바뀌었어요. 늦어도 4년 뒤. 2019년 전까지는 자급을 위한 전업농으로 전환을 해보려고 해요. 주 직업으로 농부가 되려고 한다는 뜻이에요.
채식은 군대에 있었던 작년 7월쯤부터 했어요. 약간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는데 그땐 윤리적인 이유로 시작했었어요. 건강을 위해서 간헐적 단식하고 채식을 같이 했어요. 그렇게 군대에서는 한 4개월 정도 했어요. (단식은?) 1주일에 한 번씩 하루는 아예 안 먹었어요. 그러다가 방법을 바꿔서 매일 10시간 단식으로 바꿨어요. 저녁을 먹고 그다음 날 아침까지 안 먹는 거죠. 그 10시간이라는 게 우리 몸의 해독작용을 위해 공복을 유지하는 시간이거든요. 제대하고 나서 제가 시골에 내려가 살았으면 완전히 채식을 했을 텐데 여기서 사니까 일단 돈 때문에도 쉽지 않더라고요. 생활비 때문에 집에 있을 때는 웬만하면 채식을 하고 밖에 나오면 사람들 만나는 것에 따라 좀 유동적으로 먹고 있어요. 군대에 있을 때 초반에 살이 엄청 쪘었거든요. 물론 채식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채식도 하고 운동하고 단식도 하니까 살이 엄청 쭉 빠졌어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살이 안 찌네요.
내가 해야겠어요.
뭐든 자기한테 맞는 걸 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자신한테 맞지 않는데 억지로 하면 오히려 건강에 나쁠 수도 있으니까. 많이 먹는 게 몸에 좋은 사람도 있고.... (아 저 많이 먹진 않음 ㅡㅡ)
근데 저는 말씀하신 대안적이 삶의 방식에 ‘대안’이라는 말 자체에 위험한 점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대안이라는 말 자체가 품은 한계랄까. 결국 정착된 대안은 더 이상 대안이 아니잖아요. 그런 면에서 위기감이나 걱정은 없나요?
개념을 설명하기 익숙하지 않아서 대안이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사실 제가 생각하기엔 주류랑 대안이라는 게 아예 없는 것 같아요. ‘나는 대안적인 삶을 살 거야. 저기 주류사회가 있는데 저게 나한테 안 맞아서 나한테 맞는 답을 찾기 위해서 이런 삶을 사는 거야.’라는 생각은 없거든요. 그냥 나는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사는 거고 이게 실패하든 성공하든 내가 가는 길일뿐인 거죠. 사실 성공이나 실패도 순간적이고 상대적인 과정이잖아요. 내가 가는 길이 힘들다고 포기하고 쉽다고 갈건 아니잖아요. 주류랑 대안이라는 구분은 사실상 없다고 생각해서 거기서 오는 위기감이랄까 모순에 대해 사실 생각은 안 하고 있어요.
결국 주류라는 개념은 일정한 프레임 안에서 결정되는 거잖아요. ‘한국 사회에서의 주류’ 이런 것처럼요. 특정 프레임 안에서 보이는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저는 신경 안 쓸 것 같아요. 제가 사는 방식이 주류면 ‘그래 나 주류야. 근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이럴 것 같아요. 굳이 대안이라서 이 삶의 방식을 선택한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 기대되는 속편
지난 인터뷰에 다양성과 관통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처럼 이번에도 뭔가 하나를 남기고 싶은 게 있어요. 제가 최근에 캔 윌버라는 사람의 책을 읽었는데 그 사람이 하는 얘기가 세상을 커다란 하나로 보면 종교도 있고, 철학도 있고, 예술도 있고, 정치도 있고 엄청나게 분야가 다양하잖아요. 그 다양한 분야만큼이나 엄청나게 많은 해석이 존재하는데 이 캔 윌버라는 사람이 그 모든 해석을 한군데 다 모아가지고 세상을 해석하는 지도라는 걸 만든 거예요. 그걸 통합 이론이라고 이름 붙이고 그에 관련해 책을 계속 쓰고 있는데 자기는 세상을 해석하는 다양한 것들을 한 군데 모았고 그걸 통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지도가 생긴다면 개개인들이 삶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되고 각자의 분야에서 자기가 원하는 바에 더 가까워질 수 있겠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퍼머컬처를 접하고 크게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근데 퍼머컬처와 생태적인 삶을 접한 뒤에도 한 가지 의문이 있었거든요. 사회적인 활동과 개인적으로 행하던 철학적인 탐험과 영적인 모험을 어떻게 병행할 수 있을까. 그때는 이 두 개가 상충하는 것처럼 느껴져서요. 지난 인터뷰 때 ‘나는 모든 것으로부터 배우겠다. 모든 건 가치가 있다.’ 이런 말을 했었는데 그 논리대로라면 모든 주장이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어떤 걸 지지하거나 어떤 걸 주장한다는 것 자체가 양립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예를 들면 자본주의에도 배울 게 있고 나쁜 게 있고, 생태주의도 배울 게 있고 나쁜 게 있기 때문에 사실 관점의 차이이지 어느 것에 가치를 둘 수 없다는 거죠. 그렇게 되면 의견을 제시할 수도 없고 주장할 수도 없고 정치적인 참여를 하는 것도 큰 틀에서 보면 무의미한 것이라는 생각에 계속 갈등하고 있었거든요.
그걸 해결 못하고 있다가 지인이 너의 생각을 한 번 더 바꿔줄 책이 있는데 읽어보라 해서 캔 윌버를 접한 건데 아직 책을 한 두 권밖에 못 읽었는데도 명쾌하게 싹 해결되는 거예요. 이 사람이 말하는 지도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정답이라고 말은 할 수 없겠지만 제가 느꼈을 땐 정말 명쾌하게 정리되는 것 같았어요. 퍼머컬처를 품고 있다가 이 세상의 지도라는 걸 접하게 됐고 그 안에서 퍼머컬처가 어떤 위치인지 좀 파악하게 됐어요. 지금까지 퍼머컬처를 통해서 삶을 관통하는 것 찾아가려고 했다면 지금은 퍼머컬처도 있지만 캔 윌버의 통합 이론 지도도 손에 들고 계속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개개인이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큰 생각을 제시를 많이 해줬다는 건가요? 그 지도라는 게.
제시라기보다 그것들 간의 관계도 규명하고 있어요. 이 사람의 책에선 의식의 스펙트럼이라고 해서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어떤 의식의 성장단계가 있다고 봐요. 매슬로우가 다섯 가지의 욕구 계층을 이야기 한 것처럼 인간의 삶 속에서 성장단계를 쭉 나누거든요. 인간은 자기의 의식 상태에 따라서 볼 수 있는 게 다르고, 해석할 수 있는 세상이 달라서, 자기가 받아들이는 삶의 양식도 다르대요. 다양한 삶의 양식을 나타낸 지도에 개인의 단계별 의식 상태를 더해나가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뭔가 다차원적인 지도라고 해야 할까요.
퍼머컬처 같은 경우에도 단순히 생태적인 삶이구나 이렇게만 생각했을 텐데 다양한 삶의 방식과 그 해석이 쭉 펼쳐진 상태에서 내가 어느 정도 수준에 있고 이 상태에서 어느 단계에서 뭘 볼 수 있고 이런 게 다 다차원적으로 보이는 거죠. 의식의 스펙트럼에서 각 단계에 대한 설명을 좀 오랫동안 읽어보고 내가 이쯤 있겠는데 생각했는데 제 입장에선 나름 다 맞더라고요. 내가 어떤 과정을 거쳐 왔는지도 그 속에서 그려지니까 신기했어요. 내가 어디 있는지를 알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보인다고 하잖아요. 어떻게 가야 하는지도 보이고. 그런 부분에서 되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물론 믿음은 깨지기 위해 존재하는 거라 생각해서 이 이론에 대한 믿음이 깨질 때 나는 더 성장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있어요. 그때까지 제가 앞으로 더 의식적인 성장을 하는데 어떤 길잡이가 될 거라 생각해요.
그게 영원한 답이 아니라면 너님은 또 새로운 답을 찾으시겠죠.
네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요. 이 얘기를 마지막으로 인터뷰에 담아놓고 싶었어요. 말씀하신 대로 지금은 여기 빠져있는데 달라진다면 또 뛰어나와서 또 다른 데 가겠죠. 그래서 내가 여기 빠져있는 이 순간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게 중요할 거라 생각했어요. 제 개인적으로. 당분간은 제가 생각하는 방향대로 농사도 짓고 퍼머컬처도 실천하면서 살겠지만 다른 것들도 균형 있게 보면서 의식적인 성장을 하려고 노력할 것 같아요. 가치관, 삶의 방향, 농사, 퍼머컬처, 통합 이론 등에 대한 관심을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은 언제든 연락 주세요! (https://www.facebook.com/explorerkook)
나는 머리도 큰데 뇌가 작은 건지 내 방만큼이나 머릿속도 정리를 잘 못한다. 그렇다고 정리를 안 하고 살 수는 없어서 나름대로 벽에 포스트잇도 붙여가며 생각도 이어보고 큰 종이에 그림이랑 글자 같은 걸 끄적여 보기도 하지만 여전히 정리는 안 된다. 또 정리를 한답시고 때 되면 찾아오는 24시간을 살지 않을 수는 없어서;; 그냥 살면서 정리를 하고 정리를 하면서 살고 있다. <쥬라기 월드>에 나오는 닝겐들처럼 내가 싼 똥을 치우지도 못하는 이런 상황에서 계획 같은 건 더욱 못 하고 있어서 자주 답답함을 느낀다. 근데 오늘 만난 이 인간은 몸에 이끼 낄 새도 없이 굴러다니면서도 어떻게 자기 머릿속을 이렇게 정리하고 다니는지 모르겠다.안되겠다. 오늘도 가만히 이끼 양육에 힘쓰던 나도 오늘부터 굴러다녀야겠다. 굴러다니는 돌 같은 이 사람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