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같은 인터뷰 #21
교환학생을 가게 됐다는 반년 전 너님에게 제가 말했어요.
“저한테 자소서를 써놓고 가면 6개월 뒤에 너님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사실 별 근거도 없이 내뱉은 영업용 멘트였는데 반년 전 너님이 보내준 자기소개와 지금의 너님을 나란히 앞에 두고 보니 말이 될 법도 하네요. 교환학생에 가 있는 다른 친구들도 많았지만 지난 반년간의 너님이 유난히 부러웠던 이유는 “요즘 진짜 행복해요”라는 너님의 카톡 때문이에요. 근데 솔직히 너님이 얼마나 변했는지 내가 알 길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반년 전 너님은 어땠는지 얘기하면서 인터뷰를 시작하기로 해요.
평소에 말하듯 이야기하시면 돼요.
아 저도 괜찮아요. 제 목소리 가끔씩 녹음하니까요. (엥 왜죠??) 제 목소리 듣고 싶어서요. (약간 변태 같은데) 아니 ㅋㅋㅋ 제 귀로 듣는 소리랑 남이 듣는 소리는 다르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들어보죠. 상황극도 해보고. (너님 좀 이상한데) 중학교 때도 그런 거 많이 했는데, 그 셀프 동영상 이런 거? 보는 것도 스스로 보는 거랑 남이 보는 거랑 다르잖아요. 제 얼굴 관찰하고 제 목소리도 들어보고 하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되게 구리더라고요. (그걸 통해서 얻은 건 뭐예요?) 얻은 거요? 많이 변화를 시켜야겠다. 뭐 이런 거. 목소리 같은 거면 좀 더 높게 소리를 내야겠다. 이런 거.
이렇게 오래 기다렸다가 진행하는 인터뷰는 처음이에요. 예전에 보내셨던 자소서 보고 왔어요?
아뇨. 다시 보면 너무 오글거릴 거 같아서... (언제 쓰신 거더라.) 저 교환학생 가기 전에 보낸 거니까 6개월쯤? 근데 그 자소서는 6개월 뒤에 이렇게 언급될 거라는 걸 알면서 쓴 거잖아요. 그래서인지 뭔가 다시 보기엔 너무 오글거릴 거 같아서 안 봤어요. (어떤 이야기 썼는지 얼핏 기억은 나요?) 대충 기억나는 것 같기도 하고.... 굳이 떠올리고 싶지 않은데.
너님 인스타 좀 염탐했어요. 음식 사진이 엄청 많더.... 아니 많은 게 아니라 음식밖에 없더라고요. 취미가 요리 방송 보는 거라고 하셨는데 <최고의 요리비결> 이런 거?
뭐 그런 것도 보고. 그 올리브 채널이 거의 다 요리 방송이잖아요. 그런 거 보고. Fox life에 그 길거리 음식 방송도 있거든요. 스트리트 푸드라고. 그런 방송도 보고. 요리하는 거 나오는 건 거의 다 봐요. 보는 것도 좋아하는데 요리하는 것도 좋아해요. 집에서 만들어 먹는 거 좋아하거든요.
이렇게 좋아하는 것들을 이야기해도 되는데 6개월 전 자소서엔 왜 이렇게 단점만 자랑하셨을까요?
단점 어떤 거 썼었어요? 6개월 안에 고쳐진 게 있을 수도 있잖아요.
1. 남의 시선을 많이 신경 쓰는 편이다. 2. 구두쇠다. 3. 어장관리를 즐겨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특히 거대한 수족관을 운영하셨다는 게 인상적이었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어이없다.
뭔 소리예요. 너님이 쓴 건데. 하여튼 6개월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구두쇠라고 소개하면서 “세상엔 ‘돈으로도 얻을 수 없는 가치’라는 게 있는 건데 교환 다녀오면 고쳐질까요?” 이렇게 자문하셨는데 어찌 되심?
그런 건 조금 고쳐진 것 같긴 해요. 예전에는 진짜 구질구질하게 돈 아끼고 그랬었거든요. 돈을 모아서 나중에 꼭 해외를 가고 싶어서요. 온전히 제 힘으로 못 가더라도 엄마 아빠한테 부담 주는 건 싫었어요. 제가 해외 간다고 했을 때 엄마 아빠가 기쁘게 보내주면 좋은데 돈 때문에 조금이라도 상황이 안 좋다면 저도 가서 편히 못 지낼 것 같아서요. 그래서 돈을 많이 모으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제가 써야 하는 상황에서 안 쓰고 그랬던 건 아닌데 써도 괜찮은데 안 써도 괜찮으면 쉽게 안 썼거든요.
근데 제가 교환학생으로 간 나라가 물가가 높지 않았어요. 그랬더니 제가 해외 가려고 모아둔 돈이 줄지는 않고 오히려 더 쌓이더라고요. (?? 교환학생 가서 알바하심?) 엄마가 용돈을 보내주시는데 물가가 싸니까 주는 용돈을 다 못 썼어요. 그러니까 재산이 더 불어나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나중에는 친구들한테 많이 썼죠. 불러 모아서 대접하기도 하고요. 한국 오기 전에 그 친구들한테 고마우니까 많이 사주고 그랬거든요.
저 말고 한국인들 중에 돈을 진짜 아끼는 사람이 있었어요. 제가 그 모습을 보면서 ‘아 내 친구들이 나를 이렇게 봤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긴 그렇게 물가가 비싼 편이 아닌데 계속 돈 없다면서 5천 원짜리 밥을 먹으면서도 너무 비싸다고.... 물론 거기에 계속 있으면 현지 물가에 적응돼서 비싸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래도 그렇게까지 아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한국 가서는 다시 저러지 말아야지’ 했죠. (요즘은 팍팍 쓰고 다녀요?) 그래도 팍팍 쓰진 않아요. 경제관념이 있기 때문에. 제가 스스로를 구두쇠처럼 느껴지지는 않는 정도로.
너님은 겸손의 의미로 구두쇠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뿐 솔직히 스스로를 경제관념이 있는 신여성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 같은데요.
아니에요. (그럼 너님의 씀씀이에 아쉽다는 생각인가요?) 네 제가 돈이 있으면 써도 되는데 약간 현금에 대한 집착이 있거든요. 통장 보면서 뿌듯해하는 거 좋아해요. (공이 몇 개인지 세면서?) 네네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겪은 아이의 가슴 아픈 사연임? 근데 너님은 부모님이 비교적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셔서 스스로도 부족함 없이 자랐다고 말씀하셨잖아요.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중학교 때부터였나. 세뱃돈을 제가 관리하면서부터 변했던 것 같아요. 원래 용돈을 받았었는데 생각해보니까 용돈을 다달이 받는 것보다 세뱃돈을 한 번에 받았다가 제가 쓰는 게 더 이득이더라고요. 아무래도 용돈을 1년 모으는 것보다 세뱃돈이 액수가 크니까요. 그래서 제가 1년 동안 용돈을 안 받는 대신에 세뱃돈을 제가 쓰기로 했어요. 그때부터 스스로 쓰면서 남는 돈을 자꾸 체크하다 보니까 돈을 모으는 게 몸에 밴 거 같아요. 내년엔 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조금이라도 남겨 놔야 할 것 같고. 점점 그랬던 거 같아요.
그런 자신의 모습에 대한 피곤함도 느꼈어요?
네 그렇죠. 가끔은 생각 없이 쓰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니까요. 충동구매도 거의 안 해봤어요. 충동적으로 긁으려고 카드 들면 ‘아 이거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사면 더 쌀 텐데.’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어요. 특히 가격대가 올라가면 주저하게 돼요. 아 근데 또 먹을 거에는 충동구매 많이 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싸게 살 수 있는 건 잘 안 사죠. (부모님은 되게 좋아하실 거 같아요.) 근데 엄마도 제가 너무 심하다 싶으면 가난하게 자란 것도 아닌데 왜 그러냐고 묻기도 해요. 저 빼고 우리 가족은 좀 통이 크거든요.
교환 학생 중 새로운 인연을 만날 수도 있을 거라면서 “아 설렌다!”라고 쓰셨어요.
뭐요. (만났냐고요) 아 근데. (오 재미없는 답변은 아니네요) 그냥 한 명을 좋아하긴 했어요. 외국인이요. 이전까지 국제연애는 아예 생각도 없었거든요. 근데 외국인 좋아하고 나서 온갖 연애관이라든지 결혼관이라는 게 다 바뀌었어요. 일단 국제연애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당연히 국제결혼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원래는 한국으로 돌아와선 취업 준비해서 취직하는 약간 뻔한 생각이었는데 이젠 해외로 직장을 구해볼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요.
교훈 말고 그 남자가 궁금해요.
제가 좋아하던 애는 동남아인이었어요. 근데 저는 동남아인이면 다 마르고 왜소하고 그럴 줄 알았는데 그 친구는 좀 다른 더라고요. 키도 크고 덩치도 있고 엄청 활발하고 영어도 잘하니까 너무 멋있어 보였어요. 무엇보다 저를 되게 많이 도와줬거든요. 그래서 좋아했었죠. (별다른 일 없었나요?) 그냥 썸 비슷한 게 있긴 했어요. 그래서 제가 한 번 떠봤더니 자기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는데 외국인이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게 너님?) 그 친구 이야기를 들어봤을 때 저 아니면 다른 한 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친구가 유난히 친했던 여자애는 저랑 그 한 명이거든요. 왜 고백 안 하고 망설이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너무 바쁘고 시간도 없대요.결국 그 애는 곧 떠날 테지만 나는 그 애가 웃는 걸 보는 것만으로 만족한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저는 그 다른 여자애를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그래도 그 애는 그래도 다른 교환학생들보다 좀 더 있지 않느냐고 말했죠. 그 다른 여자애는 1년짜리 교환학생이었거든요. 그랬더니 그 친구가 “너는 내가 누굴 좋아하는지도 모르네.”라고 하는 거예요. (꺄) 그러니까 저인 거 같잖아요. 그런데 사귀자 이러는 게 아니라 바쁘고 잘 챙겨줄 수 없을 것 같다는 얘기를 하니까.... 대신 “그녀는 나보다 좋은 남자를 만날 자격이 있는 여자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더라고요. (낭만적이네요) ㅋㅋㅋ 아 근데 이거 진짜 영어로 들으면 되게 낭만적이에요.
아 낭만은 됐고 결국 그렇게 끝난 거?
하여튼 그때부터 점점 더 국제연애 이런 걸 꿈꾸고 그랬어요. 그 친구는 진짜 엄청 바빴어요. 되게 치열하게 사는 한국 사람 같은 그런 케이스였어요. 너무 바빠서 저도 자연스레 그 친구랑 점점 마주치기가 힘들어졌어요. 그렇게 흐지부지됐죠 뭐. (그래도 좋았겠어요.) 그렇죠. 좋았죠. 그땐. 그래도 저는 진짜 마음이 있으면 고백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도 아니고 저는 1월에 돌아가야 하니까 너무 늦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 남자가 정면으로 고백했으면 상황은 달라졌을까요?) 어떻게 됐을지 모르죠. 근데 같이 교환학생 가서 현지인 여자 친구 사귄 오빠가 있어요. 지금도 잘 연락하고 지내더라고요. 여자 친구 보러 4월에 또 간대요. 그런 걸 보면 좀 부럽죠.
해외에 나가면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진다는 게 그런 의미인가 봐요. 연애, 결혼은 물론 취업이나 사는 것도 충분히 해외에서 가능하겠다 싶은?
이제 저도 막 학기라서 취업 준비를 할 텐데 요즘 취업이 잘 안 된다고 하잖아요. 해외에서 또래 애들이랑 이야기해보면 특히 취업 고민은 우리나라랑 일본 애들이 심하더라고요. 다들 너무 힘들다고 해요. 근데 다른 나라 친구들 보면 좀 생각이 많이 다른 것 같아요. 특히 호주 애들은 그냥 자기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 거라고 이야기해요. 제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지는 몰라도 딱히 밥걱정,취업 걱정은 전혀 안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그리고 애초에 구직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는 이미 자신이 할 게 딱 정해져있어요.
자신이 하고 싶은 게 분명하니까 그런 걸까요?
그런가 봐요. 제가 만난 사람 중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은 서른여섯이었는데 직장 다니다가 다시 공부하고 싶어서 공부하러 왔대요.그런 게 너무 부러운 거예요. 우리나라에서는 상상이 안 되잖아요. 때 되면 취업 준비하고 일하다가 결혼하겠죠. 왠지 우리나라만 이런 거 같고 다른 나라 애들 보면서 좀 부러웠어요. 그러니까 만약 우리나라에 내가 설자리가 없으면 외국으로 나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죠. 그래서 해외도 알아보려고요. 아직 어학공부를 더 해야 하지만.
듣는 나도 부럽네요. 우리나라랑은 무슨 차이일까요.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직업으로 가지는 느낌이었어요. 우리는 4학년 되면 공고 뜨는 대로 이력서를 다 넣어보잖아요. 그런 게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걸 골라서 해요. 제가 만나는 사람들은 다 그랬어요. 호주 친구 한 명도 너님처럼 사람들 인터뷰하면서 살아요. 그렇게 하다 보니까 나중에 잡지에 실렸대요. 그런 게 기회가 되고 계속 사진, 동영상 같은 걸 편집해서 업로드하면서 그렇게 지내더라고요. 사람들 인터뷰하러 여행도 떠나고요. 그런 걸 보면 스스로 해야 할 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즐거워서 하는 거잖아요. 그런 게 되게 부러웠죠. 또 한 명은 서퍼 친구였는데 서핑 하는 걸 좋아해가지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걸 계속했더니 서핑을 잘하게 됐대요. 유명한 데서 협찬받고 대회 상금 타서 생활하고 그래요. 사실 우리나라는 직업에 대한 귀천 같은 것도 아직 따지는 거 같은데 거기는 자기 하고 싶은 걸 당당하게 하면서 사는 게 되게 부러웠어요.
한국이랑은 좀 비교되는 상황이었겠어요. 너님은 스스로 남의 시선을 많이 신경 쓰는 편이라고 했잖아요. 앞으로 너님의 하게 될 일에 대해서도 신경이 쓰이겠어요.
솔직히 저는 작은 회사에서 일해도 상관없는데 남들이 저를 보고 ‘쟤 저 정도밖에 못 갔네.’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할까 봐 그런 걸로 고민할 거 같아요. (그래도 자기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삶도 있다는 걸 직접 보고 왔잖아요.) 근데도 한국에 있으면 왠지 그래요. (해외에 있으면 덜 할 텐데 차라리?) 그렇죠. 그래서 더 해외 가고 싶어요.
교환학생 계기로 인맥 정리하고 싶다는 얘기도 했었는데 성공하셨나요? 연락을 자주 했던 친구들이 있고 상대적으로 그러지 못한 친구들도 있을 텐데.
아무래도 제가 해외에 있으니까 외로울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마다 연락을 하면 그냥 제가 진짜 친구로 느꼈던 애들이 누군지 알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별로 크게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이 오히려 저를 더 생각하는 거 같은 그런 사람도 있었고요. (미안하기도 고맙기도 했겠어요) 네 그렇죠.
자신은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소개했어요.
제가 남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는 건 그만큼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더 어릴 때만 해도 소수의 친구들과 깊게 사귀는 것을 좋아했는데 클수록 많은 친구들에게 관심받고 사랑받는 게 좋았어요. 근데 그렇게 사람을 알고 지내니까 결국에 믿던 친구들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했어요. 아마 이때부터 남들을 잘 믿지 못하고 그만큼 신경도 많이 쓰게 된 것 같아요.듣기만 해도 피곤하죠. 저도 그걸 아니까 아무한테도 티 내진 않아요.
그럼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은 누구한테 해요?
제가 너무 고민이 있고 이런 걸 스스로의 입으로 얘기하는 게 초라할 때 언니한테 얘기 많이 해요. 친구한테 말하기 좀 그럴 때요.그런 걸 얘기할 수 있는 친구가 있긴 한데 그 친구가 지금 외국에 있어요. 뜬금없이 연락해도 그 친구는 물론 다 받아 줄 테지만 그 친구도 외국 땅에서 힘들 때가 있을 텐데 제가 힘들 때마다 이렇다 저렇다 하기엔 좀 미안하잖아요. 그래서 보통 혼자 많이 생각하죠. (혼자 많이 해결하려 해요?) 네네. 자기 합리화시키고요.
친구한테 배신당한 기억 때문에 다시 친구의 바운더리를 좁히고 계신 건가요.
아뇨. 근데 저는 나름 두루두루 마음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그 친구 입장에서는 저한테 섭섭함을 느껴서 등을 돌렸던 거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새로운 사람들 만나고 그러는 건 좋아하는데 진짜 서로 가깝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을 더 챙기려고 해요. 예전에는 모두를 친구로 두려고 했다면 지금은 알아가기는 하지만 친구는 별개의 개념이랄까. 모두가 내 친구일 순 없죠. 그땐 어려서 저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어요.
여태 쓸데없이 딴 얘기하느라 힘들었어요. 어장관리 얘기해야죠.
근데 어장관리라기보다는 거절하면 상대방이 상처 받을까 봐 같이 맞받아치고 한 게 상대방에겐 오해를 불러일으킨 일이었던 거 같아요. 제가 거절을 진짜 못해요. 이게 제가 착해서가 아니라 거절했다가 남들이 절 싫어할까 봐 그런 거예요. 위에서도 말했듯이 제가 남 눈치를 많이 봐서 그래요. (“제가 보기와 다르게 인기가 좀 있거든요.” 이런 얘기도 하셨음)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민망하네요. 인기라기보다는 그냥 유난히 엮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어요. 근데 안 좋은 쪽으로도 엮여서 거기 가서 한국인 남자 한 명이랑 트러블이 있었어요. 엄청나게 싸웠어요.
행복하셨다면서요.
행복한 생활의 오점! 엄청 격하게 싸웠어요. 태어나서 한 싸움 중에 다섯 번째로 꼽을 정도로. (엄청 격하게라고 하시고 다섯 번째라고 하시면 평소에 많이 싸우시나보네요 ㄲㄲ) 아니에요. 진짜 너무 화나서 꼭지 돌아서 쌍욕하고 그랬어요. 표준말 쓰고 싶은데 말이 안 나와서 사투리로요. (왜 싸우심) 그 사람이 저를 좋아했었는데 저는 아니었어요. 근데 좋아하는 티를 너무 내니까 저도 모르게 정색하고 좀 차갑게 대하고 그랬어요. 저도 모르게 짜증스러운 말을 툭툭 내뱉다보니 싸움까지 이어졌어요.
그 정도로 신경 쓰였을까요.
무지 신경 쓰이죠. 그 사람은 제가 뭘 하든 진짜 다 붙어 다니려고 했어요. 외국인들이 저한테 매 번 물어봤어요. 쟤가 너 남자친구냐고. (아 그 정도로;;) 제가 생활을 하는 게 너무 불편한 거예요. 어딜 가든 다 붙어 다니려고 하니까요. 제가 여행 가는 것도 일부러 얘기 안 했어요. 간다 하면 따라올까 봐요. 그 사람이 저한테 잘해주기는 엄청 잘해줘서 잘해준 걸 생각하면 또 미안하기도 해요. 저는 나름 정중하게 여기서는 한국인 사귈 생각이 없다고 거절을 했죠. 원래 같으면 누가 나를 좋아하는데 내가 아니면 그 마음 정리하게 도와주는 게 낫잖아요. 근데 그 사람은 그건 싫다 하고 안 마주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보니까 저는 싫은 데도 그 사람을 계속 봐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결국 지금 스스로 ‘나는 이 정도의 매력이 있다.’ 라고 하신 거죠?
ㅋㅋㅋㅋㅋㅋㅋ 제가 좀 처음 만났을 때 사람들 얘기를 잘 들어주고 호응을 잘 해주는 편이에요. 사실 안 친한 사람들한테 거절을 잘 못해서요. 그 사람이랑 친해지게 된 계기도 뭐 사러 갈 게 있는데 혼자 가면 심심하다고 해서 같이 간 거예요. 원래 마트만 같이 갔다가 아는 동생이랑 따로 점심을 먹으려고 했는데 걔가 자느라 연락을 안 받더라고요. 그래서 둘이 밥을 먹게 됐어요. 밥 먹고 카페 갔다 오고 하니까 그날 하루를 둘이 같이 논거에요. 그날 이후로 그렇게 돼버렸어요. (그날 이후로 그 남자를 어항에 가두신 거예요?) 그날 이후로 자꾸 관심을 보이는... (결국 푹 빠져버렸다는 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아 하여튼 모르겠어요.
하루 동안 자신의 능력을 어떻게 발휘한 건지?
다들 처음 만나면 공감대 형성하려고 노력 많이 하잖아요. 얘기하다가 뭔가 이 사람이 이 얘기에 관심이 있는 거 같다 하면 그 얘기를 계속하는 거죠. 사실 안 그런데도 맞아 나도 그래 이런 식으로. (사기꾼이시네요.) 좀 그런가.
호응만 잘해줬더니 남자들이 그물에 걸렸다 이거죠. 전에도 아쿠아리움을 운영하셨다고 하니. 뭐.
아 무슨 아쿠아리움이에요!! 근데 저를 좋아했던 사람들 보면 제가 다 저랑 얘기를 많이 했던 거 같아요. 남들이 귀찮아하는 걸 제가 거절을 잘 못하니까 다 듣고 이야기하고 하는 거죠. 사실 맨 처음에 저도 모르게 어장관리를 하게 된 것도 누가 밥을 먹자고 하면 좀 싫은데도 거절을 못 해서.. (잠깐만요 지금 소름 돋는 데.. 혹시 이 인터뷰도...) 아니에요. 이건 재밌을 거 같았어요.
본인이 하시던 게 어장관리였다고 생각이 든 계기라도 있었나요?
그냥 지나고 나니까 그렇게 생각이 드는 거죠. 다 받아주고 했던 행동들이 모두 상대에게는 여지로 느껴졌을 수도 있죠. 근데 솔직히 나를 좋아하나 하는 느낌이 와도 뭔가 확실치가 않으니까 제 입장에서 그냥 거절하기는 뭐 저 혼자 김칫국 마시는 거 같기도 하고 그렇잖아요. 그땐 그랬죠.
막 학기 개강을 앞두고 기분이 좀 특별할 거 같은데.
개강하면 저희 학교로 오는 교환학생들이랑 되게 친해지고 싶어요. (너님이 경험을 했으니까 도와주고 싶고 그런 건가요?) 네네 진짜 도와주고 싶어요. 제가 가기 전에 외국인 학생 버디를 해줄 수 있었는데 좀 귀찮을 거 같아서 제가 거절했었거든요. 근데 인과응보였는지 교환학생 가서 제 버디가 진짜 안 도와줘서 처음에 방 잡는 것부터 너무 고생했어요. 그때 ‘아 나는 돌아가서 버디 하면 엄청 열심히 도와줘야지.’ 하고 마음먹었죠.
또 제가 거기서 저희 학교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현지인 친구를 한 명 만났어요. 근데 걔가 한국에서 친구 사귀기 너무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한국 애들이 다 서양 애들 좋아하고 자기랑 별로 친해지려고 하지 않는다고요. 그 말 들으니까 제가 버디 거절했던 것도 생각나면서 되게 부끄럽더라고요. 저도 교환학생 가면 현지인 친구들이랑 친해지기보다는 거기 온 유럽 애들이랑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가보니까 너무 웃긴 생각이었더라고요. 저도 가서 생각이 바뀌었으니까 한국으로 온 동남아 친구들 맡아서 많이 도와주고 싶고 그래요.
마지막 질문은 저희 회사에 해줄 욕이나 칭찬이에요.
인터뷰이의 폭을 어떻게 더 넓혀나갈 수 있을까요. 인터뷰를 하고 싶은 사람이 서울부터 지방까지 다양하게 있을 수도 있잖아요.인터뷰하는 사람의 바운더리가 넓어지면 되게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저는 마지막에 누가 너님을 인터뷰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많던데) 그 사람들을 한꺼번에 모아두고 한 명씩 너님한테 질문을 하는 거죠. (약간 팬미팅 느낌인데.) ㅋㅋㅋ 근데 다 독자기도 하니까요. 독자의 생각도 들어볼 필요가 있는 거죠. 근데 제가 또 인터뷰하고 싶으면 어떻게 해요?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면?
그러면 뭐 A/S 가는 거죠.
“너님은 뭐든 들어주신다고 하는데 사실 저는 잘 들어주는 척만 하는 거 같아요.
이 사람이 신나서 얘기하는데 맥을 툭 끊을 수는 없으니까요.”
저는 잘 듣는 게 별다른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 맥을 끊지 않고 좀 기다려 주는 게, 천천히 들어주는 게 잘 듣는 거 아닐까요.
잘 들어보겠다고 랩 가사처럼 귀에 때려 박을 순 없잖아요.
그나저나 너님이 잘 들어주는 매력으로 남자들을 무자비하게 잡아들인 것처럼
저도 이젠 인터뷰이들 어장관리 좀 할래요. 반갑습니다. 개똥같은 어항에 온 걸 환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