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같은 인터뷰 #30
자소서를 못 채울 만큼 내 속도 모르는데 인터뷰 할 때 남의 속은 얼마나 알까 싶어 조금 두려운 감이 있어요.
물론 사람이 고작 몇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고 쉽게 알 수 있고 판단할 수 있는 단순한 존재가 아니겠지만,
기쁜 일엔 응원하고 슬픈 일엔 위로를 할 수 있을 정도는 너님을 알고 싶은 마음에 인터뷰를 시작해요.
정성 넘치는 자기소개를 잘 받아봤어요. 근데 쓰신 건 다 기억나세요?
네. 뭐 어디 소속됐던 적이 없다는 얘기로 시작해서 그때그때 떠올랐던 거 썼던 거 같아요. 설렁탕에 깍두기 국물로 뽀얀 국물을 더럽히는 걸 싫어한다는 얘기도 그날 아침에 설렁탕 먹어서 떠올랐던 거고.
어떤 계기? 생각?으로 신청하신 건지 궁금한데
아 자기소개 보내기 얼마 전에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파티가 있었어요. 거기서 낯선 사람들을 많이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되게 뜬금없이..... 뭐라고 하죠. 네 명한테 애프터(?) 비슷한 게 온 거예요. 제가 뭐 그런 자리를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여기서 그런 자리라 함은 대놓고 흥겨운 잔치를 좋아하시지 않는다는?
기본적으로 사람이 많이 모이면, 일단 5명 이상이 모인 자리를 별로 안 좋아해요. 근데 거긴 꽤 여러 명이 모인 자리인데 친구 따라서 갔다가 그렇게 된 거예요. 엉겁결에 밥이나 먹자고 얘기가 돼서 뭐 먹게 됐는데. (네 분하고 다요?) 아 세 명요. (거르셨군요.) 이게 되게 애매했던 게 아예 생판 몰랐던 건 아니고 친구의 친구니까. “싫은데!!” 뭐 이렇게 하기는 좀 그런...
근데 이 사람들은 저를 처음 만난 거잖아요. 기껏해야 밥 먹을 때 두 번째로 만난 건데 저에 대해서 되게 의외의 답변들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굉장히 표면적인 것들로 저를 판단했겠죠. 두 번째로 만나는 거니까. 이렇게 평가하는 사람도 있고, 저렇게 평가하는 사람도 있고. 그 세 명 사이에서도 되게 갈리더라고요.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너님을 봤는데도 그렇게 갈리던가요?
약간 본인 해석하고 싶은 대로 해석한 거 아니었을까요. 모르겠어요. 실은 그것도 많이 왜곡될 수 있는 게 이 사람이 저한테 기대하는 모습이 있을 테고, ‘이 사람이 날 어떻게 평가하고 있겠구나’ 하는 막연한 제 생각도 어떻게 보면 제가 스스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틀로 끼워 맞추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 사이에서 두 번의 왜곡이 있을 수 있을 수 있겠죠. 어쨌든 다 받아들이기 나름이고 굉장히 개인적인 생각이었겠지만 되게 다르더라고요. 근데 약간 원래 그런 거에 민감한 편이에요. 다른 사람이 저에 대해서 표면적인 것들로 판단하는 것에 대해서 좀 필요 이상으로 기분이 나빠하는 편이에요 제가. 그래서 보통 여자들은 예쁘다 이런 얘기 들으면 좋아한다고 하잖아요. 저는 되게 기분 더러워하거든요 ㅋㅋㅋㅋ
낯선 사람의 판단에 좀 민감하시군요.
네. 좀 격하게 더럽다고 표현하긴 했지만 솔직히 기분이 약간 살짝 나쁜 건 사실이에요. 전혀 좋진 않아요. 좀 뉴트럴 하다고 할까요. (뭐 듣기 편한 소리는 아니라 이거죠.) 그렇죠. 차라리 그날 옷을 예쁘게 입거나 신경 쓰고 나가서 오늘 옷이 잘 어울린다는 그런 얘기 들으면 그냥 받아들일 수 있는데 그게 아니라 너 생긴 게, 얼굴이 예쁘다 이런 건 좀. 저는 거부감이 들거든요. 굳이 외모가 아니라 뭐가 됐건 간에요. 학벌도 그렇고요. "학벌 좋으시네요." 이런 말에도 "에? ↗"
그런 일이 있었는데 저도 어떻게 보면 되게 짧은 시간 안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 거잖아요. 이런저런 다양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아 예전에 내가 이런 거 하고 싶어 했었지' 하는 생각에 갑자기 너님 블로그가 떠올랐어요. 예전에 북마크 추가해놓은 게 있어서 옛날 노트북 꺼내서 찾아봤더니 아직 있더라고요. 완전 즉흥적으로 그날 새벽에 자기소개 보낸 거예요. 뜬금없이 그냥 보내볼까 해서.
스스로 느낄 만큼 남의 반응에 나름 민감한 편이시면 ’그 짧은 시간에 그 사람들은 나에게 뭘 봤나.’ 이런 생각도 들었을 것 같아요.
남의 반응에 민감하다는 게 남을 신경 쓰느라 하고 싶은 걸 못한다는 것보다는 그냥 뭔가 표면적인 걸로 사람을 판단하는 거. 내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거. 그거에 대해서 조금 불편함을 느끼는 편이에요. (그걸 폭력적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잖아요.) 그렇죠. 근데 유난히 한국 사회가 그런 게 심하기도 하잖아요. 워낙 좀 명확하게 사람을 어떤 기준으로 책정하는 것 같아서요.어느 학교 다니고, 어느 동네 살고, 나이가 얼마고, 나이가 몇인데 지금까지 뭘 이뤄놨고 뭐 이런 표면적인 게 되게 잘 보이는 사회잖아요. 한국이. 근데 그렇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다가 이런 인식들에 부딪히면 약간 그게 좀 답답하게 느껴져요.
쓰시면서 '나는 스스로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나' 이런 생각도 해보셨나요.
쓸 때 그 생각을 했다기보단 그런 생각 자체는 대학 가면서부터 되게 열심히 해왔던 거 같아요. 뭐 솔직히 대학 갈 때까지는 입시잖아요 그냥. 좋은 대학 가면 모든 게 다 해결될 줄 알고 그냥 그거 하나 믿고 열심히 살았는데 막상 대학 가고 나니까 그게 아닌 거예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한테 너무 못되게 굴었는데 그니까 약간.. 대학 가기 전까지 제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이런 거에 대해서 제 자신한테 별로 물어본 적이 없어요. 그것보다 좋은 대학 가는 게 중요했으니까.
행복에 대한 심리학에서 배웠는데 동양적 사고와 서양적 사고 간 행복을 느끼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고 하잖아요. 동양 사람들은 어떤 소셜 그룹 안에서 사회 구성원으로 어떤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을 때, 그러니까 좋은 딸일 때, 훌륭한 학생일 때, 좋은 엄마일 때, 이런 식으로 그런 역할을 해내고 있을 때 행복함을 느끼는 반면 서양에서 역할을 떠나서 개인적으로 자아실현을 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결국엔 저도 고등학교 때까지 그랬던 것 같아요. 진짜 든든한 딸이 되려고, 좋은 학생이 되려고 사회에서 보이는 역할에 충실하려고. 그래서 제 자신은 전혀 우선순위가 아니었죠. 제 자신의 취향, 성향 이런 건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으니까.
근데 대학 입학이 전환점이 되신 건가요.
전환점이라기보다 솔직히 그렇게 사는 게 힘들었던 거죠. 나라는 사람이 나를 위해 살아야 하는데 나를 완전 개무시하고 살고 있었으니까. 약간 회의감도 들고. 대학가면서 완전 멘붕이 온 거죠. 대학 가면 다 해결이 될 줄 알았는데 왜 난 아직 불행하지? 왜 나 힘들지? 약간 이런 생각. 누가 나한테 이렇게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결국 내가 내 손으로 만든 선택들인데 누구를 탓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거예요. 어 씨 뭐야! 이게 뭐야! ㅋㅋㅋㅋㅋㅋ 막 그러면서 그때부터 나를 보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실은 지금도 그런 거에 약간 딜레이가 있는 편인데 만약 기분이 나쁘잖아요. 근데 기분이 왜 나쁜지 몰라요. 기분이 나쁘다는 걸 인식을 하고 감정을 느끼는데 왜 나쁘지? 그거에 대해서 그 자리에서 바로 프로세스가 안돼요. 근데 대학 와서 연습하면서 많이 빨라졌어요. 근데 ‘기분 좋다.' 이런 건 비교적 알아차리기 쉽긴 하잖아요. 추상적이진 않으니까. 근데 좀 오묘한 감정들은 되게 복합적인 요소들에 비롯돼서 올 때가 많잖아요. 그럴 때는 진짜 좀 시간이 걸려요. 곱씹는 거죠. 근데 많이 알게 됐어요. (자신에 대해?)지난 몇 년간. 진짜 최근이에요 그렇게 알게 되기 시작한 지도.
단순히 대학에 입학해서 ‘어 이게 뭐지? 내가 생각하던 게 아닌데.’ 하는 단순한 과정이 아닐 것 같아요. 생각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건.
굉장히 긴 과정이었죠. 처음에는 계속 멘붕이었죠.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 다 상대적이라고 하지만 제 인생에 큰 굴곡이 있진 않았어요. 뭐 이혼가정에서 자랐다든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보기에 자극적인 그런 거 있잖아요. 대부분 나쁜 예들이 많겠지만. 그런 일생일대의 이벤트들은 없었지만 그에 비해 저는 굉장히 감정들을 많이 느끼며 살았어요. 환경이 그랬어요. 딱히 엄청나게 큰일이 있었던 건 아닌데 약간 사소한 동시에 복합적인 것들이 저를 굉장히 익스트림한.... 남들이 보기엔 별거 아닌 상황일지도 모르지만 그 상황들이 저한테 주는 감정적인 영향은 되게 컸어요. (그 과정에 느꼈던 감정들은 어떤 감정..?) 주로 안 좋은 감정들이었죠. 외로움. 자기 연민. 약간 그런 것들이었던 거 같아요.
결과적으로는 그 시간을 너님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라고는 판단하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그냥 안 좋은 시간들이었죠. 딱히 그 시간들에 의미를 부여하진 않아요. 그냥 말 그대로 그냥 그 시간이 있었던 거죠. 그 시간이 있기에 제가 있긴 하지만 그걸 딱히 ‘이 시간이 나를 만들었다’ 뭐 이렇게 생각하진 않아요. 그냥 지금 와서 돌이켜봐도 괴로운 시간들이고 피할 수 있었더라면 피하고 싶은. 그런 거죠.
완벽히 딱 구분하긴 어렵겠지만 그 기간이 얼마나 될까요?
한.. 대학 가서 힘들었던 것까지 합하면 거의 10년 되는 거 같아요. (그러면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덜 괴로운 시기이신 거예요?) 그럼요. 이제 제 자신에 대해서 많이 아니까 굉장히 좋아졌죠. 요즘 정말 행복해요. 한 3년 전부터. 정말 잘 지내고 있어요.
스스로에 대해 잘 아시는 것 같냐고 제가 물어본 건...
잘 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네. 사람이 남에게 보여주는 것에 얼마나 드러내겠고 사실 완벽히 믿지도 않아요. 제가 너님의 일기장을 훔쳐온 것도 아니고 한계는 있을 거라 분명히 생각하지만. 아 하다못해 일기장도 한계가 있겠고요. 다만 적어도 저는 ‘나를 잘 아는 사람입니다’ 라는 뉘앙스를 받아서요.
이제는 저를 잘 아는 것 같아요. 근데 꼭 내가 나를 잘 안다고 생각을 하고 방심하는 순간 무슨 일들이 터지는 것 같아요. ㅋㅋㅋㅋ(아ㅋㅋ 맞아요. 맞아요.) 이제는 계속해서 제 자신을 잘 관찰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어요. 근데 기본적으로 그런 속성마저도 이제는 파악을 하고 있다는 게 제 자신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한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첫 문장이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한 번도 한 그룹에 소속되어 본 적이 없어요.” 라는 문장을 너님이 직접 한 번 읽어주실 수 있어요?
“저는 한 번도 한 그룹에 소속되어 본 적이 없어요.” 네 없네요.
저는 읽다가 옆에다 ‘오 긍정?’ 이라고 써놨어요. 물론 제가 어투까지 직접 들은 건 아니지만 이 사람은 한 그룹에 소속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에 별 거리낌도 없고 오히려 나한테 좀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오 진짜요?ㅋㅋㅋ 돗자리 까셔야 될 거 같아요. (너님이 느낌표도 붙였기 때문에 ㄲㄲ) 아아아 그러네요.
그룹에 따라 그때그때 알맞은 모습으로 살고 있다는 말에서도 너님 스스로 되게 만족하는 느낌도 받았고요. 어떻게 살고 계신 거예요?
뭐라 할까요. 아싸죠. 아싸. 그냥 마이너리티 중의 마이너리티 아니겠어요? ㅋㅋㅋㅋ 아니 근데 저는 기본적으로 그렇게 생각해요.결국 사람들은 개개인마다 엄청 유니크하고 다 다르잖아요.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요.
소속됨에 거부감을 느끼시는 건 아니고요?
그동안 어느 한 곳에 소속되어있지 않았던 이유, 소속되지 못 했던 이유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것도 한 부분인 것 같기는 해요. 맨 처음에는 소속되지 못하는 걸로 시작을 했죠. 제가 초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외국에 나가게 되면서 언어도 안 됐었고 기본적으로 동양인이라는 마이너리티니까. 해봤자 초등학생이긴 하지만 초등학교 때까지는 진짜 사회가 원하는 대로 어느 한 그룹에 굉장히 잘 소속된 행복한 인간이었어요. 학교에서 공부도 잘했고, 선생님 칭찬도 잘 받았고 가족들한테 이쁨도 되게 많이 받으면서 자랐고.
그래서 만약 제가 계속 한국에 있었더라면 그 안에서 되게 안주하면서 살았을 거 같아요. 솔직히 어떤 대상을 밖에서 볼 계기가 없으면 그게 잘못됐다는 걸 모르잖아요. 잘못됐다고 얘기할 필요도 없겠죠. 그냥 다른 삶이죠. 계속 있었으면 그렇게 살았을 거 같아요. 근데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속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거예요. 그때부터 멘붕이 시작됐죠.
얼마나 계신 거예요?
외국에요? 지금 13, 14년째네요. 초등학교 졸업한 이후로 계속 있었으니까. 맨 처음에는 소속되지 못하는 것에서 시작했는데 이제 저도 어쩔 수 없이 그 안에서 살아남아야 하니까 제 자리를 찾아간 거죠. 제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어 그러네요. 이게 진짜 닭이 먼전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르겠네요. 소속되지 못 해서, 내가 어쩔 수 없이 살아남기 위해서 내가 이 자리를 찾은 건지. 아니면 실제로도 이런 성향이 있기 때문에 내가 소속되지 않는 선택을 한 건지.
그건 모르겠지만 어쨌든 확실하게 시작만큼은 소속되지 못 했던 거였어요. 결국엔 그런 것 같아요. 그룹에 소속되지 않아보고 한 번 그걸 밖에서 보고 나니까 약간 좀 더 객관적으로 판단이 됐던 것 같아요. 좀 더 넓게 보는 게 가능해지고. 맨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못 소속되는 거였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충분히 제가 소속되길 바라면 소속되겠다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제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 것 같아요. 물론 소속되어있는 척을 할 때도 있죠.
생각하시는 소속의 정도가 있을까요? 전혀 집단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게 가능할까 싶어요.
그게 한국처럼 집단생활이 많은 사회에서는 말이 안 되는 것 같을지 모르는데 외국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것 같아요. 학교를 다님에도 불구하고 딱히 학교에도 소속감이 없는 거예요. 나는 이 학교 학생이다 뭐 이런 것도 하나도 없었고. 그 안에서 딱히 같이 어울리는 친구, 그것도 그때그때 몇 명 몰려다니지만 지금까지 연락하는 친구나 그룹? 칠공주파?ㅋㅋ 뭐 이런 것처럼 끈끈하게 뭔가 하는 건 없죠.
소속감이라는 게 아까 말씀하신 멘붕의 상황, 당시 느꼈던 외로움과도 이어지지 않을까요.
뭐 그렇죠. 그 당시에는 그게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죠. 어쨌든 굉장히 대조되는 삶이잖아요. 초등학교 때까진 어떤 곳에 소속되어서 가뜩이나 소속된 그룹 안에서 굉장히 인정을 받으면서 지내다가 어느 한 곳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인정은커녕 관심도 못 받는 곳에 가니까 이 외로움이.... 사람들이 ‘아 나 되게 외로웠어.’ 라고 얘기하면 ‘뭐 남자친구?’ 이런 반응을 보이지만 그 외로움이 아니라 정말... 차라리 누가 날 미워해줬으면 했어요.
왜냐면 실은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도 굉장히 그 사람한테 관심을 쏟는다는 거거든요. 그 사람을 의식적으로 되게 인식하고 그 사람한테 나의 어떤 감정을 품는다는 것 자체가 상대에게 굉장히 큰 에너지를 쏟는다는 거니까 차라리 미움받았으면 했어요. (너무 외로워서..) 관심을 너무 못 받으니까. (혼자 가신 거예요?) 아뇨. 아빠가 기러기 생활을 했거든요. 아빠는 한국에 계시고 엄마랑 동생이랑 같이 있었는데. 진짜 지나가는 사람.. 지나가다 1-2초 눈 마주치는 사람이어도 나를 조금만 더 눈여겨봐줬으면... ㅋㅋㅋ 그런 생각하면서 지냈던 것 같아요.
지금도 외국에 살고 계신 거?
이제는 아빠가 미국으로 오셔서 가족들은 다 거기 있는데 저는 기본적으로 한국이 좋네요. 그래서 한국에 자주 나와 있어요. 아직 학교 다니고 있긴 한데 지금 논문만 마무리하면 되는 상황이어서 어디에 있든 딱히 상관이 없거든요. 한국이 편해서. ㅋㅋ
가족들이 함께 갔어도 학교도 다니고 하니까 집에서 채워줄 수 있는 게 부족했나 봐요.
집의 느낌이 없었어요. 저는 지난 14년 동안 집이 없었어요. ㅋㅋㅋㅋ 근데 이거 갈수록 불쌍해진다.ㅋㅋㅋㅋㅋ 부담이 컸죠. 일단 잘 살아서 간 유학도 아니었고 어쨌든 엄마 아빠는 나름 나한테 올인 한다고 절 데리고 간 건데. 실은 제 자신을 이렇게 관찰하거나 챙기지 않고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들을 우선순위에 놓고 달릴 수 있었던 이유에는 가족도 있었죠. 왜냐면 그게 되게 죄스럽게 느껴졌거든요.
나한테 요구되는 것들을 뒤로하고 내가 원하는 것, 나한테 귀 기울인다는 것 자체가 좀 이기적이다(?)라고 느껴졌어요. 어려운 상황에 나 하나 공부시키겠다고 왔으면 어쨌든 공부해야지. 그리고 기본적으로 가족이 떨어져 있어서인지 다 안 좋았어요. 다 힘들었어요. 엄마도 힘들었고 동생도 힘들었고 저도, 아빠도 힘들었고. 그러니까 누구 하나 서로 챙겨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가장 감정적으로.. 힘들 때 가족한테 기댄 적이 한 번도 없네요. 네. 없어요.
필요는 하셨을 텐데...
그죠. 필요했죠. 당연히. 사춘기 땐 감정 변화도 크고 진짜 그때는 정말 작은 거에도 엄청 마악~ 이럴 시기잖아요. ㅋㅋㅋㅋㅋ 근데 기댈 수가 없었던.... 몰라요. 안 기댄 건지 못 기댄 건지. 둘 다죠 뭐. 그래서 별로 집이 집 같지 않았어요.
상황에 대해서 가족 사이에서 얘기해본 적이 있어요?
근본적으로 그게 해결이 됐으니까 지금 제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거겠죠. 그때도 엄청 얘기하려고 했어요. 힘들었을 때 제일 먼저 가족들한테 터지더라고요. 어쨌든 나한테 가장 가까운 사람들인데 왜 날 이 지경으로 만들었냐. 왜 이 지경이 되도록 가만히 있었냐. 그런 감정이 엄청 커서 대학교 가서 한창 멘붕 왔을 때 가장 먼저 화살이 가족들한테 갔었어요.
가족들은 어떤 반응이었어요?
이제 와서는 인정하지만 맨 처음에는 인정 안 했죠. 계속 모른 척하고. 나만 힘들었던 게 아니라 다 힘들었던 거니까 엄마도 인정하기 싫은 거죠. 어쨌든 정말 지긋지긋하게 얘기했어요. 맨날 집에 갈 때마다 울면서 왜 유학을 시켰냐면서 완전 깽판 치고. 그 얘기 꺼내면 엄마는 또 저 얘기 꺼낸다면서 한숨 쉬고 아빠는 그냥 방에 들어가버리시고.
딱히 뭐 이걸 계기라고 말하고 싶진 않는데 한 2년 전에 대학 졸업하고 대학원 다닐 때 제가 아팠었어요. 그래서 난리 났죠. 엄마는 울고 ㅋㅋㅋ 아픈 게 억울하고 화가 나긴 하지만 그걸 계기로 엄마를 비롯한 가족들이 서로 좀 더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정확히 말하면 그것도 일련의 과정이었어요. 점점 나아지고 있던 상황에서, 엄마도 점점 제 얘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있던 상황에서 그런 일이 있었죠. 실은 아프면서 엄마가 저를 더 이해하게 됐다기보다 제가 엄마를 더 이해하게 됐던 것 같아요.
전에는 무조건 원망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결국엔 ‘엄마는 엄마구나. 나는 엄마 자식이구나.’ 생각했어요. 어쨌든 다른 사람이니까 100% 이해할 수는 없잖아요. 엄마도 주변 상황들에 따라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걸 텐데. 이 사람 저 사람 다 나름대로 사정이 있구나. 나도 내 나름의 사정이 있는 것처럼. 그냥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면 되는구나. 다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을 땐 그 부분에 대해 알려주고 서로 미안하다고 얘기해주면 되는구나.
완벽히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렇게 하는 게 현명한 대처법이라는 걸 깨달았던 것 같아요. 예전에는 저도 말하는 방식이 막 “왜 그랬어!!!” 약간 그런 식이었는데 이젠 엄마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나한텐 정말 거지 같은 시간이었다. 그것 또한 인정해라.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죠. (웃음)
인터뷰이들이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 자기소개부터 과거의 이야기를 해주시는 경우가 많아요. 제 질문이 과거를 향해있어서 그렇지 너님은 과거의 얘기를 하려고, 뭔가 응어리를 풀려고 신청하신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네. 없어요. 응어리 ㅋㅋ 지금의 나를 설명하기 위해서 과거가 꼭 필요하기 때문에 이야기하긴 하지만.
이중적인 사람이라고 소개한 것도 재밌었어요.
말씀드렸다시피 몇 년 전부터 제 자신을 관찰하고 있다고 했잖아요. 되게 재밌어요. 제 자신에 대해 새로운 걸 하나하나 알아간다는 것 자체가. (지금도 새로운 게 계속 나와요?) 계속 나와요 ㅋㅋㅋ 이틀 전에도 새로운 거 하나 깨달았거든요. 제가 공대 공부를 했는데 제 성향은 굉장히 문과적이에요. 읽고 쓰고 하는 거 좋아해요. 말하는 것도. 저 말 괜찮게 하지 않아요? 말도 잘 하는 편이에요. 발표, 토론 이런 것 하는 것도 좋아하고 잘하고. 생각을 해 보니까 미국에 가기 전까지는 그런 성향이 있어서 리더의 역할을 많이 맡았던 것 같아요. 해봤자 초등학교지만 조별로 뭔가를 할 때도 장을 맡거나 나가서 발표하고, 글쓰기 대회 나가면 상 받아오고 이런 식으로. 그랬는데 외국 가서 일단 언어적인 소통이 안 되니까 그게 다 안 되는 거예요. 글쓰기도 안 되고 읽기도 안 되고 토론하는 것도 안 되고 아무것도 안 되는.. 그러니까 내가 잘 할 수 있는 게 수학? 이런 쪽 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공대로 흘러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얼마 전에 처음 했어요. 수학은 사실 말 못해도 할 수 있잖아요. 숫자로 보여주는 거니까. 제가 그런 쪽을 더 좋아했던 것도 결국 인정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아했던 것 같아요. 내가 글쓰기 수업에선 인정을 못 받는데 수학은 일단 100점 받아오면 ‘얘 수학 잘하는 애구나’ 그렇게 되니까 그쪽으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칭찬을 받으니까) 네 그렇죠. 뭐 잘하기도 했고요. ㅋㅋㅋㅋ
점점 자기 발견에서 자기 자랑으로 가시는 거 아님?
ㅋㅋㅋㅋㅋㅋㅋㅋ 어쨌든 공대 가서 이제 대학원도 졸업하고 그 이후에 뭘 할까 하는 시점에서 생각을 해보니까 정~말 공대는 저랑 안 맞는 거예요. 그래서 그 질문을 던지기 시작 한 거죠. ‘아니 왜? 왜 공대를 갔지?’ 하는 생각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까 갑자기 그걸 깨달았어요. 아 자연스럽게 환경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구나.
대학원에서도 공대 공부를 하셨나요?
대학원에서는 음악이랑 융합한 공학 공부를 했어요. (대학원 다니실 때까진 공대가 안 맞는다는 생각은 안 하신 거?) 기본적으로 안 맞는다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공부 자체는 되게 재밌어했어요. (잘하기도 하셨고?) 잘하진 못 했어요. 대학가서는 굉장히 시달렸죠. 그래도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고 ‘왜?’ 라는 질문에 와꾸가 맞는 대답이 안 나오면 되게 답답해하는 성격이라서 공부 자체는 되게 재밌게 했어요. 기본적으로 호기심도 많은 편이라 뭔가를 알아가면서 좋았던 것도 있고요.
근데 그 이상으로 파고들 정도로 좋아하는 수준은 아니라는 거죠. 공학 전공해서 구할 수 있는 일의 특성 자체도 굉장히 전문적이잖아요. 이렇게 사람들이랑 인터랙팅 하면서 하는 것보다는 진짜 책상에 앉아서 생각하면서 코딩하고 그런 건데 저는 그것보다는 다른 쪽에 더 적성이 맞는 사람이거든요. 이것도 이중성인데 사람 만나면서 스트레스 받는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말하는 것도 좋아하고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해요. 물론 잃는 에너지도 있지만 거기서 받는 에너지도 많고요. 어쨌든 대학원 갈 당시에는‘왜 공대에 왔지?’라는 생각보단 ‘공대의 어떤 부분이 나한테 안 맞지?’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본인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시네요. 그전에 생각 못 했던 걸 원 없이 생각하시는 거 같은데.
그렇네요. 그런 것 같기도 해요. 몰아서 생각을 하다 보니까. 이전까지 안 했든 못 했든 지금은 계속 새로운 게 나와요. 그래서 재밌는 거 같아요. 행복하게 지내는 최근 몇 년간은 물론 스트레스 받는 일도 많고 힘든 일도 있고, 우울할 때도 있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되게 설레는 것 같아요ㅋㅋ (너님의 행보가?) 다가올 날들이. 나 자신에 대해서 자꾸 새로운 걸 발견하다 보니까 더 보고 싶은 거예요. 새로운 것에 나를 노출시켰을 때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떻게 대처할까 그게 되게 궁금한 거 같아요. 물론 그 새로운 것들 중에 안 좋은 것들도 많았어요. ‘아 내가 이런 것 싫어하는구나. 이런 걸 못 견디는구나.’ 근데 어쨌든 그것 자체도 굉장히 좋은 정보잖아요. ‘극한 상황이 왔을 때 내가 어떻게 반응하나 봐야지’ 하는 의도는 아니에요. 결국 스스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정보도 불확실한 정보지만 그 정보를 통해서 나는 나름의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고 그런 선택을 하잖아요. 근데 사람 일이라는 게 정말 복합적이니까. 대학원 간 것도 그랬어요. 음악 좋아하고 전공을 공대를 했으니까 공대랑 음악이랑 합치면 내가 졸라 좋아하겠다!해서 간 거예요. 이것저것 고려했을 때 나름 최선의 선택을 한 거죠. 그렇게 갔는데 진짜 너무 싫은 거예요. 너무 재미없었어요.
그래도 전공이 있으면 이 분야의 산업에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실 텐데. 한국에서 공학 전공을 하신 분들은 더더욱 그럴 것 같다는...
실은 그거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 같아요. 이십 몇 년밖에 안 살았는데 내가 좋아하는 걸 어떻게 다 알까요? 정말 죽을 때까지 이러지 않을까요? 나 자신이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계속 변하고 있으니까 그거 따라서 예전에 처했던 상황이라도 다르게 반응을 할 수도 있는 거고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르는 거잖아요. 죽을 때까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찾다 죽지 않을까요? (그 과정이 바로 인생이닷!) 이제는 궁금해요. 50살 땐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또 어떤 새로운 것들을 하고 싶어 하고 있을까.
너님이 지금 좋아하는 거는 어떤 거예요?
기본적으로 제 자신을 표현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음악도 좋아하는데 곡 쓰거든요. 글 쓰는 거,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하고. 예술 쪽으로는 그런 거 좋아하고. 글쎄요.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하는데 아무래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건 한계가 있으니까 다양한 사람들이 쓴 글 읽는 거 좋아하는 거 같아요. 블로그 같은 거 찾아보는 거ㅋㅋ 그런 거 많이 해요. 그냥 궁금하거나 모르는 거 있으면 뜬금없이 구글링해서 첫 페이지부터 다 읽어보고. 위키피디아부터 시작해서 ㅋㅋㅋ 그런 식으로.
아 여기 써주셨네요 음악과 술!
네 맥주, 막걸리, 와인 좋아해요. (한국 맥주?) 한국에 마실 맥주가 없잖아요 ㅋㅋㅋ (ㅋㅋㅋ 그래도 요즘은 맛있는 데 많이 생긴다더라고요.) 네 요즘은 크래프트 비어 엄청 유행해가지고. (저는 밀맥주 좋아해요. 꼴딱꼴딱 잘 넘어가서.) 그리고 향이 되게 향긋하잖아요. 좋아요 밀맥주. 밀맥주 블루문 병으로 많이 팔던데. 거기에 오렌지를 짜서 먹으면 맛있어요. 펍에서 블루문 생맥으로 시키면 원래 오렌지 껴서 줘요! 밀맥주는 오렌지를 짜서 먹으면 다 맛있어요.
오옷 새로운 사실.
드래프트로 보통 코로나 이런 건 라임 이런 거 끼워서 나오잖아요. 블루문은 오렌지 끼워서 나와요. 왠지 껴서 먹으면 더 향긋하고 맛있어요. 드셔보세요. (적어놔야겠어요. 밀맥주엔 오렌지!)
보고 배우는 걸 좋아한다고 하신 걸 보니까 눈에 욕심이 보여요.
그럼요. 이중성 얘기는 계속 나오지만 이상적이면서도 굉장히 현실적이어서 명예..? 인정받는 거 좋아해요. 인정받고 칭찬받는 거 누가 안 좋아해요ㅋㅋㅋ 그거 중요하게 생각해요.
근데 그 인정을 해줘야 하는 사람이 꼭 여러 사람일 필요는 없나 봐요.
제 생각에 ‘이 사람한테 인정받으면 됐다.’ 싶으면 되는 뭐 그런 정도? (내가 인정한 사람한테) 맞아요. 내가 인정한 사람한테 인정을 받는 거.
이렇게 인터뷰 할 수 있게 신청을 해주시는 것 자체도 저한테는 일종의 인정이고 응원 같아요. 뭔가를 지속하려면 남에게 받든 스스로 하든 응원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맞아요. 진짜 중요한 원동력인 것 같아요. 아무도 인정 안 해주면...... 음악도 결국 그런 것 같아요. 만들어 놓고 들려줬을 때 ‘아 음악 너무 좋다. 계속 듣고 싶다. 가사가 너무 좋다. 이 부분이 너무 좋다.’ 이러면 그래~ 나 음악 계속해야 돼ㅋㅋㅋ (곡을 직접 만드시기도 하신다 했잖아요.) 네 지금 앨범 준비하고 있어요.
아까 자랑하신 게 헛되지 않을 만큼 다재다능하신 거 같은데.
쓸데없이 그렇죠. 정말 쓸데없이 이것저것 할 만큼 해요. (관심사가 좀) 넓어요.
그런 분들이 애정을 느끼는 대상이 많다 보니까 이것저것 시작도 잘하고 잘하는 것도 많지는 것 같아요. 근데 너님은 딱 하나 잡아서 잘하는 일을 찾고 싶나 보네요.
뭐 딱히 그런 건 아니에요. 워낙 다양한 거 보고 다양한 데 노출되고 하는 걸 좋아하고 또 거기서 되게 많이 힘도 얻고 하니까 딱히 그렇진 않은데 어쨌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데는 전문적으로 뭔가 하나를 파야 아무래도 좀 더 Fit-in 하기가 쉽죠. 그리고 어떤 한 분야에서 프로페셔널이 될 수 있는 건 멋있는 것 같아요.
그 한 마디 안에서도 현실과 이상을 오가네요.
그러네요. 제가 이렇게 생겨먹은 걸 어쩌겠어요.ㅋㅋ 그리고 이제 사회가 너무 세분화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모던 타임즈에 나오는 그런 느낌으로 점점 가고 있잖아요. 인간이 뭔가 특화된 일을 해야 뭔가 인적 자원의 가치가 있는 것 같이 그렇게 되니까. (그에 반하는 욕구가 창업으로도 이어지는 것 같아요.) 스타트업도 관심 있어요. 전공도 그쪽이니까. 전기 전자랑 컴공이거든요.
두 개를 하신 거예요?
복수전공이 아니라 저희 학교는 그게 붙어있어요. 컴공은 관심이 추호도 없었는데 어쩌다 하게 됐어요. 근데 결국 학교를 나와서 정말 직업을 구하려고 하면 그게 이게 이력이 되더라고요. 요즘 컴공 많이들 찾으니까.
학교를 계속 미국에서 다니셨으면 한국은 가끔 오시는 거겠어요.
방학 때 가족들 보러 왔었죠. 근데 가족도 이제 미국에 있으니까 여기 있는 가족이라고 해봤자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학부 마지막 때 1년간 교환학생을 한국으로 왔었어요.
신기하네요. 그 1년은 어떤 기억인가요.
제가 자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 전환점이었던 것 같아요. 미국에 살면서 시달리다가... 어쨌든 환경도 되게 중요한 거 같아요. 아무리 내가 혼자 발버둥 치면서 바뀌려고 해도 그 주변 환경이 도와주지 않으면 정말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다 마음먹기에 달렸다, 마음가짐에 따라 뭐 달라질 수 있다는 그런 말인데 ‘아니 니가 그 상황에 놓여봤어? 니가 그럴 만한 상황에 대해서 뭘 아는데 그런 소리를 해.’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있기도 하거든요. 정말 뭐 하나라도 계기가 있었더라면 좀 더 용기를 냈을 수도 있을 거 같은데 그런 계기조차 없었어요. 저는 용기라는 것도 정말 내 의지로, 100 퍼센트 내부적으로 오는 게 아니라 외부적인 요인도 확실히 같이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어쨌든 저한테는 여기 교환학생 온 게 그런 계기였어요. 뭐 솔직히 그냥 놀러 온다 생각했죠. 그리고 다른 곳도 아니고 한국이니까 더 다양한 걸 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내가 한국에서 왔기 때문에) 그렇죠. 근데 제가 음악 동아리를 들어 간 게 큰 영향을 주긴 했어요. 워낙 음악 한다고 하는 사람 중에 괴짜도 많고 생각이 좀 오픈된 사람이 많으니까. 그나마 어떤 조직에 소속됐다고 굳이 꼽자면 그 동아리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교환학생 와서 한 동아리.
교환학생이 동아리를 하는 경우가 흔치 않은 것 같은데.
그렇죠. 좀 엉겁결에 낚였어요. 정말 우연히 한 건데. 어떤 학점이 하나 모자라서 음악 관련 세미나 수업을 들은 게 있었는데 거기에 그 동아리 친구들이 엄청 많이 온 거에요. 음악 관련 세미나니까. 어쩌다가 얘네들한테 낚여가지고 보통 동아리 들어갈 때 인터뷰 보고 들어가는데 그것도 안 보고 낙하산으로 들어갔어요. ㅋㅋㅋ (교환학생이라고 생각 못 했던 걸 수도 있겠어요.) 그랬던 거 같아요. 보통 교환학생들 오면 영어 수업 듣는데 저는 한국말 잘 하니까 다 한국 수업 듣고 그랬거든요.
어떤 음악 하는 동아리에요?
작곡 동아리에요. 1년에 한 번씩 정기공연도 하고. (직접 연주도?) 아 그게 문제에요. 작곡을 한다고 해서 악기를 잘 다루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매번 할 때마다 문제였죠. 어쨌든 우리가 쓴 곡 다 공연 올려서 사람들도 초대하고. 그러면서 지냈어요.
자기소개에 있던 이 말은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어요. 파스텔 톤의 색 같다?
그게 생각이 난대요. 제가 그렇대요.ㅋㅋㅋㅋ
그걸 기억하시는 걸 보면 너님에게 의미 있는 사람한테 들었던 얘기 거나 많은 사람한테 들었던 얘기 거나..
한 서너 명한테 들었던 것 같아요. 그냥 뜬금없이 (왜? 라는 질문 좋아하신다더니 그땐 안 물어보심?) 물어보면 “그냥 그게 너 같아. 그게 너야.”
너님 나름대로 무슨 의미겠구나 생각하신 건?
그냥 전반적인 느낌 아닐까요. 사람 봤을 때 그런 느낌 있잖아요. 외적인 것도 있겠고 생긴 게 그냥 동글동글하게 생겼잖아요. 그런 것도 있는 것 같고. 저는 좋게 생각해요.ㅋㅋㅋ (좀 구체적으로요) 뭔가 강한 이미지는 아니죠. 되게 은은한 느낌인데 어쨌든 향기 있는 사람이라는 그런 뜻 아닐까요? 되게 소소한 약간 그런 느낌 아닐까요. (만족하시나 보네요) 그런 거 같아요. 실제로 제가 파스텔 톤 좋아하기도 해요.
표정이 다양하다고 하신 건 인터뷰하면서 충분히 느끼고 가는 것 같아요.
네ㅋㅋㅋㅋㅋ 표정이 다양하다는 얘기도 여럿한테 들었어요. 담당 교수랑 얘기할 때도 워낙 표정 잘 드러나서 못 알아듣겠다 싶으면 아 진짜 뭔 개소리하냐 이런 표정이 나오니까 교수가 당황해서 알아듣고 있냐고 묻고 ㅋㅋㅋ 그럼 전 아 모르겠다고ㅋㅋㅋㅋ
아무래도 외국에 오래 있었으니까 한국 와서 만나시는 분은 좀 한정적이겠어요.
아니에요.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해서. 그리고 기본적으로 동아리 활동하면서 알게 된 친구들도 많고 유학생들 중에 졸업하고 한국 와서 지내는 애들도 많아서 그런 친구들 봐요. 방학 때는 무조건 와요. 제가 미국을 별로 안 좋아해요. 힘들어해요.
좋았던 기억이 아니어서 그때?
그것보다 그냥 마이너리티로 사는 게 힘들어서? 어쨌든 미국은 백인들을 위한 사회잖아요. (여행 가면 그렇게 좋다던데) 저도 가서 한 달만 여행하는 거면 가고 싶어요. 사는 건 싫어요. 흐흐
인터뷰 자체에 대한 관심도 많으신 것 같아요. 읽는 거 좋아하다고도 했고.
약간 관음증인가 봐요 ㅋㅋㅋㅋㅋㅋㅋ
아;; 저도요. 물로 내가 사는 꼴도 잘 모르지만 남들은 어떻게 사나 무지 궁금해서요.
좋은 거 같아요. 재밌는 거 같아요. 재밌죠? 다양한 사람 만나면. 이런 식의 만남이 아니면 딱히 이 사람의 속 얘기를 들을 수가 없잖아요. 인터뷰라는 컨텍스트가 없었으면.....
사실 인터뷰라고 할 건 없고 같이 떠드는 거죠. 오시기 전에 예상하신 거라도.
정말 아무 생각 안 하고 왔어요. 이런 분위기일 것 같았어요. 기본적으로 약간 그런 블로그 운영하신다는 것 자체에서 ‘편한 사람이겠구나. 별로 긴장할 필요 없겠구나. 그냥 수다나 떨러 가야겠다.’ 그러고 왔어요. (되게 기분 좋은 얘기네요.ㄲㄲ) 어떤 이야기를 할까 딱히 기대하고 오지도 않았던 게 어떤 사람이랑 얘기하느냐에 따라서 어떤 얘기가 나올지 굉장히 달라지잖아요.
너님 한 마디를 하는데도 표정이 여러 개가 나와요. 너님도 스스로 발견하는 게 신기하다고 했는데 보는 저도 신기하네요.
ㅋㅋㅋㅋㅋ아 되게 창피하네요. 제가 거울보고 얘기하는 게 아니니까 제가 어떤 표정 짓고 있는지 정말 모르거든요. 못생긴 표정이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도 들고.
아 저도 가끔 그래요. 눈, 코, 입을 어디다 둘지 모르겠는.. 다행히 제가 인터뷰이가 된 경험은 많지 않으니까.
안 그래도 그걸 한 번 제안할까 하고 했었어요. 너님이 인터뷰 당해 본 적이 있나 궁금했어요. (몇 번? 근데 제가 하는 것처럼 막하는 인터뷰는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 걸 한 번 특집으로 올려도 재밌을 거 같아요. 제가 해줄게요.ㅋㅋㅋㅋ
인터뷰가 저한테도 되게 소중한 시간인 게 제가 말로는 들어준다고 자선행사하는 것 마냥 얘기하지만 이 시간이 제 얘기하는 시간이기도 해서 ㄲㄲ 근데 이 인터뷰 좀 오래 걸릴 것 같음.
뭐 내년에 나와도 상관없어요. (그러지 말래도 정말 그럴 거 같아요.)
인터뷰 같은 걸 하고 싶어 했다고도 하셨고 관음증도 있으시다 했으니 인터뷰를...
할 것 같아요. 이런 형식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양한 사람 만나는 것 좋아하고 남의 얘기 듣는 거 좋아하고 수필이나 인터뷰집 읽는 것도 좋아하고. 여행 다니는 거 좋아하고 새로운 환경에 노출되는 거 좋아하니까. 한 번 그런 테마로 여행을 가고 싶더라고요.여행 다니면서 사람들 만나는.
저도 여행을 가서 인터뷰를 하면 재밌을 거 같은데... 영어공부해서 해봐야죠.
더 다양한 얘기들 많이 올려주세요.
올라와 있는 인터뷰 좀 보셨나요.
몇 개 쫌 봤어요. 수필을 좋아했던 이유도 되게 힘들었을 때 위안을 많이 받아서거든요. 이렇게 다양하게 사는구나. 그런 데서 위안을 얻었던 것 같아요. 이런 얘기들이 결국은 누군가에게는 힘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다양한 생각을 하면서 얼마나 또라이 같이 살고 있는지 잘 담아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결국에는 다 또라이다! 이걸 강조해서ㅋㅋㅋㅋㅋ 많이 많이 써주세요.
최근 읽었던 책 덕분에 ‘취향’이라는 단어를 자주 생각하게 됐어요. 죽을 때까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찾으면서 살 것 같다는 너님 말대로 별 특별한 일 없이 보내는 하루도 생각해보면 모두 취향의 영향 안에 있는 듯 해요. 아직 사는 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 인생이란 게 내 취향을 좀 더 분명히 하는 과정이라면 좀 맘편히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각자 취향 껏 살다가 다음에 마주칠 땐 너님도 나님도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까 기대돼요.
++ 그나저나 ‘또라이’를 넣어 네이버 맞춤법검사기에 돌리면 ‘미친놈’으로 바뀌어요. 무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