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같은 인터뷰 #31
인터뷰 전에 한 차례 만나서인지 훨씬 편안하다. (나만 그런가....) 가볍게 근황을 나누다 파란 불이 천천히 깜빡이는 녹음기를 내려놓으니 인터뷰이의 어깨가 반 뼘 정도 올라가는 듯 하다. 일정 부분 비약이 있을 수밖에 없는 자기소개 탓에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내가 괜히 더 두근댄다. 꽤 공들여 보내 주신 자기소개의 빈틈을 채워 줄 이야기에 본격적으로 빠져든다. 우어어어어어 빠져든다아아아아
녹음 동의 구하셔야죠.
동의 구하는 것까지 녹음하려고요. 이 녹음의 용도는 온전히 인터뷰에만 사용되며 이 녹음에 부담감을 가지는 게 당연하니 말씀드리는 건데 지금 여기서 하시는 말씀은 제가 다 듣고 마지막에 정리를 해서 드려요. 그게 검열의 과정이거든요. 이 순간 얘기하고 싶어서 얘기했지만 공개되는 게 아무래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하시면 통째로 지울 수 있고 어감이나 뉘앙스가 달라진 부분에서 수정도 가능합니다. 원칙상 익명인터뷰를 지향하지만 원하시면 공개해드립니다. 근데 인터뷰이 신청 자기소개를 두 번이나 보내셨네요.
처음에 구글로 인터뷰 신청서만 보내고 나서 저에 대해서 빠뜨린 게 많은 것 같아서 기존에 만들어놨던 걸 첨부를 했던 거예요. 지금 제가 장학재단에서 멘토링을 하고 있는데 한 달에 한 번씩 자신에 관해 발표를 하는 시간이 있어요. 내가 이때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다른 사람 앞에서 말을 하는 시간이 있는데 그 때 어떻게 하면 좀 더 효과적으로 내 25년의 생을 사람들한테 보여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다가 만들었던 거예요.
저는 좀 재밌게 제 이야기를 풀고 싶거든요. 사실 어떤 발표를 하던 간에 컨셉 잡는 걸 되게 좋아해요. 그래서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컨셉을 써서 숫자 중심으로 해당연도에 나에게 어떤 변화들이 있었나 하는 걸 보여줬죠. 돌이켜 보면 지금의 제 성향, 가치관은 대학 때 많이 형성됐다고 생각해요. 일단 자취를 하면서 부모님이 지방에 계시니까 혼자서 뭐 이것저것 도전할 수 있는 자유를 획득했던 게 있고 2학년 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그때 가치관의 격동을 경험한 것 같아요. 그 이후에 처음으로 혼자 해외로 여행을 가고 휴학도 하고 교환학생도 가고 이런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연도별로 있어서 연도별로 정리를 했던 것 같아요.
발표도 그 컨셉으로 한 거예요?
제가 제 이름을 버리고 약간 영화를 소개시켜주는 것처럼 했어요. ‘특별시사회에 초대되신 분들을 환영합니다.’ 이런 식으로. 제 이야기를 단지 감상적으로 들려주는 게 아니라 좀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전달해주고 싶어서요. 재밌었어요.
설마 오늘 인터뷰도 어떤 컨셉으로 이야기가 될 것이다 하고 생각해 오신 거?
사실 긴장을 많이 했어요. 내 이야기를 한 번도 들려준 적이 없거든요. 남들 앞에서 이야기 해본 적은 있어요. 근데 여행이야기를 한다든가 일부만을 들려줬던 거라 내가 생각한 질문과 내가 생각한 답변을 남에게 전달하는 건데 인터뷰는 누군가가 나에게 질문을 던져서 내가 자신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단어나 문장 뭐 이런 것들로 이야기하는 하는 거잖아요.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진행될지 가늠을 못하겠어서 긴장을 했었어요.
그저 편하게 하고 싶은 얘기 하고 가셨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자기이야기가 너님에게 흔한 경험은 아니라고 했는데 비록 발표라는 장치를 통해서 했지만 어땠어요? 이야기를 하고 나니까.
제 얘기를 꺼내면서 제 3자 입장에서 발표를 한다고 했지만 울컥하더라고요. 무엇보다 아빠 얘기할 때. 솔직히 말하면 살면서 평소에는 생각 잘 안 나거든요. 돌아가신지 4년 됐는데 저는 그냥 살고 있는 사람이고 아빠는 지금 안계시잖아요. 제가 지금 시기도 시기인지라 여러 가지 할 거 찾고 하다보면 생각이 자주 나지는 않는데 문득 그런 게 올라올 때가 있어요. 그땐 이야기를 밖으로 꺼내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나는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는데 솔직히 좀 놀라기도 했고 뭔가 내 얘기를 했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그 얘기를 사실 대놓고 잘 안 해요.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뭐 가족얘기가 나오거나 하면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인데 내가 아버지가 안 계시다는 사실을 말 하는 게 맞나 아닌가 하는 고민도 했었어요. 그러다가 이걸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한테 털어두되 그냥 스쳐지나가는 인연이면 굳이 말할 필요는 없지 않겠나 하고 저만의 답을 내린 상태에요. 왜냐면 그 사이에 약간 어색한 기운이 돌 수도 있고. (상대가 부담을 느낄 수도.) 네 그게 싫은 거예요.
제가 2학년 때 아빠가 중간고사 기간에 돌아가셨거든요. 중간고사가 앞쪽에 몰려있고 이틀 정도 쉬고 월요일에 하나를 남겨놔서 외국 친구들이랑 억새축제에 놀러갔었어요. 근데 사촌오빠가 갑자기 전화오더니 빨리 이모 집으로 오래요. 아무 설명 없이 그냥 빨리 오라고, 빨리 오라고. 이유를 안 말해주니까 ‘왜 가야되는데 나 지금 놀고 있는데’ 하다가 계속 오라고 하니까 기분이 좀 쎄한 거예요. 그래도 제가 이 친구들 구경시켜주기로 했으니까 끝나고 가겠다 했어요. 다 놀고 밥 먹고 있는데 이 오빠가 또 전화 와서 언제 오냐고. 기분이 이상해서 엄마한테 전화를 했어요. 근데 어머니 친구 분이 받으시더니 갑자기 울면서 아빠 돌아가셨다고.
지하철에서 저도 갑자기 눈물이 막 나는 거예요. 일단 서울역으로 오라해서 갔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가까운 친구들한테만 사실 알리고 내려갔죠. 동생은 군대에 훈련소 갔다가 첫 휴가 5일 앞둘 때였는데 정신이 없는 거예요. 동생한테도 연락을 해야 하는데 연락할 길은 없고 나는 눈물만 나오고. 내려가서는 안 울었거든요. 실감이 안 난다는 말을 실감했어요. 진짜 이렇게 영정사진이 있고 엄마랑 저랑 있는데 아빠는 영안실에 계신 거잖아요. 여기 분명히 있는데 세상에 없는 게 너무 이상한 거예요. 3일 내내 울진 않았다가 딱 아빠 유품 정리하는데 확....
이 얘기를 했을 때 남들이 저를 좀 불쌍하게 보는 게 싫은 거예요. 학교를 갈 때도 그 땐 힐도 많이 신고 다닐 때라서 옷도 갖춰 입고 일부러 쎄게 입고 나왔어요. 나를 좀 강하게 보이고 싶어서. 이미 학교에도 부고소식이 나와서 교수님도 다 아시고 친구들도 다 아는데 그게 너무 싫더라고요. 무서운 거예요. 애들이 나를 좀 불쌍하게 볼까봐. 그 이후에는 어느 정도 다 알기도 하고 그냥 저는 저대로 살아가니까 괜찮았는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을 때, 특히 얼마 전에 중국어 수업에서 가족에 관한 표현을 할 때 가족 구성은 어떻게 되냐고 묻는데 그냥 저는 아빠, 엄마, 동생이라고 말을 했거든요. 근데 이렇게 아빠 얘길 했을 때 ‘모두 다 어려운 시절이 있는데 난 이런 걸 먼저 겪었어.’ 라고 좀 아빠를 파는 느낌이 가끔 들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죠.
네. 그런 뉘앙스를 주려하는 게 아닌데 왠지 그런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인 것 같고 아빠한테 좀 미안한 느낌? 아빠의 죽음을 그냥...말을 하는 거 같아서. 그래서 섣불리 말은 잘 안하는 편인데 그 발표에서는 이야기를 하면서 제 자신을 보여준 것 같긴 해요.
평소에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하셔서 예상은 했지만 머릿속 생각 쓰라했는데 이렇게 많이 쓴 사람 처음 봤어요. 게다가 ‘인생’이라는 단어 자체를 메인에 쓴 경우는 많이 없었는데.
다들 어머니랑 동생은 저한테 좀 가벼워질 필요가 있다고 말해요ㅋㅋㅋ 너무 진지하다고. 제가 뭐 그렇다고 재미.... 약간 유머는 딸리긴 하는 것 같은데ㅋㅋㅋ 막 애교가 없고 항상 시리어스 한 건 아니거든요. 놀 땐 놀고 춤추고 노는 거 좋아하는데. 모든 걸 다 신중하게 생각하는 편이긴 해요. 직관을 믿기보다 이성적으로 판단을 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스스로 판단했을 때 원래부터가 그런 사람이라는 거?
그런 것 같아요. 아직도 기억나는데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에 대해서 친구랑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저는 누구를 좋아하면 ‘내가 왜 얘를 좋아하지?’ 하고 항상 이유를 생각했었어요. 그냥 좋으면 좋은 건데. (너님을 납득시켜야..) 맞아요. 나를 납득 시켜야 되는 거야. 근데 친구는 그건 감정인데 왜 자꾸 머리로 생각하느냐고 하더라고요. 거기서 제가 항상 이성적인 잣대를 들이미는 걸 깨달았어요. 근데 요즘에는 그게 되게 어리석은 생각인 걸 많이 느끼고 있어요.
요즘 책을 많이 읽는데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에서 우리가 하는 의사결정의 95%가 무의식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의식차원에서는 5%밖에 이루어지지 않는대요. 그리고 전에 수업 들었던 교수님이 쓰신 책을 우연히 다시 읽었는데 거기에도 같은 이야기가 나오고요. 그런걸 보면 내가 스스로의 틀에 자꾸 나를 가두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지금은 좀 마음가는대로 해보자는 다짐을 하고 있어요. 감정에 좀 충실해 보려고요. 이유를 안 물으려고요. 뭔가를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분명히 내가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얻은 정보들이 조합돼서 나한테 적합한 결정을 내려준 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왜 해야 하지? 꼭 해야 하나?’ 라기 보단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이에요.
근데 제가 살면서 되게 이분법적인 사고를 많이 했었어요.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세상에 대해서 흑백으로 나눴었거든요. 기업은 다 쓰레기, 나는 착한 일을 하고 싶으니까 NGO나 국제기구에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고요. 대기업에 관해서 안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듣던 것도 있지만... 제가 울산에서 태어났어요. 20년간 아버지처럼 울산에서 회사 다니시는 분들을 많이 봤어요. 아침 일찍 나가고 저녁에 들어와서 밥 먹고 잠자고. 진짜 쳇바퀴 같은 삶인 거예요.
돌아가시고 나서 보니까 아빠의 삶이 없더라고요. 우리 가족의 삶을 산거지 아빠만의 삶은 없었던 거예요. 물론 그런 것 덕분에 우리 가족은 유복하게 살았지만 솔직히 아빠 인생이 너무 불쌍한 거예요. 그리고 그즈음에 사촌오빠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라는 책을 추천을 해줬는데 그 책을 읽으면서 진짜 내 인생에서 소중한 것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게 됐고 일상의 사소함이 많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러면서 한국 사회에서 주입되는 것들에 대해서 다 반기를 들었던 것 같아요.
작년 초까지 그랬던 것 같아요. 이제 그 이분법적인 기준이 많이 깨져서 좋고 나쁨을 스스로 판단하지 않기로 했어요. 기업에서 일을 해도 사회에 분명히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사람도 있고.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내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사는지가 가장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옛날에는 ‘나는 이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왜 쟤는 이렇게 안 살지?’ 이런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길가다가 누가 쓰레기 버리면 아 쟤는 자연에 대해서 생각을 안 하나? 하 이렇게 하면 지구가 분명히 아플텐데. 좀 그런 스트레스를 혼자 많이 받았어요. 근데 지금은 나 혼자라도 잘 하면 좋은 기운이 퍼지지 않을까. 나라도 잘하자 라는 쪽으로 바뀐 것 같아요.
쓰디쓴 실패라고 썼던 건 어떤 의미에요?
실패라는 단어 자체를 썼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처음에 언급했던 건 수능에서. 저 고3 때 진짜 공부 열심히 했거든요. 중학교 때까지는 그냥 노는 축에 속했는데 고등학교 때부터는 왠지 공부하고 싶어서 7시 10분에 학교 가면 11시 반에 집에 왔거든요.학원 안다니니까 무조건 혼자 한다는 마음으로 공부했는데 지나가다가 학교 일진애가 제가 맨날 열람실에서 공부하는 거 보고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너 그렇게 해서 어디가나보자.” 딱 이 말을 듣는데 그때 약간 오기가 생기는 거예요. 약간 열 받기도 하고.무조건 열심히만 하면 되는 줄 알았어요. 진짜 치열하게. 화장실 갈 때도 단어장 들고 가고. 그냥 좋은 대학을 가고 싶었던 거 같아요. 뭐가 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고. 실패를 맛보고 나서 반수를 하면서도 나한테 여유를 줘야겠다는 건 아는데 그걸 컨트롤을 잘 못하겠더라고요.
작년에 독일에 있는 NGO에 일을 하러 가게 됐는데 그때도 이런 곳에서 일을 하면 뭔가 세상이 변할 줄 알았고 이렇게 하는 것만이 답인 줄 알았어요. 근데 그때 사람한테 데이기도 했고 제가 참여했던 그 프로젝트가 제대로 잘 안 끝나기도 했어요. 잘 데도 없어서 거기 참가자들이랑 떠돌이가 되기도 했었고. (인프라가 열악했나 봐요.) 돈이 없었으니까. 제 돈 내고 간 거예요. 숙박만 해결해준다고 했는데 2주는 살 곳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살 곳이 없는 거예요. 그리고 참가자랑 리더간의 다툼도 있었어요. 그래서 약간 캠프가 파투 날 삘.
아무튼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내가 착하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다 이기적으로 변하는 모습도 보면서 사람에 대한 믿음도 많이 깨지고... 이렇게 하는 것만이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실패라는 단어를 썼던 것 같아요. 작년에 UN 인턴십도 준비를 했었어요.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어서. 착한 일을 하고 싶었으니까. 마지막 최종에서 떨어져서 독일로 갔던 건데 그것도 실패였던 거죠. 사실 그 전까지는 대외활동이라던가 학교에서 하는 프로그램들에서 소소한 성취를 많이 해왔었거든요. 그래서 내 인생이 잘 풀릴 줄 알았어요. 내가 원하고 진심을 담아서 하면 다 되는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던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이 틀어지면서 좀 더 명확해지는 삶에 대해서 고민하신 거?
저도 여전히 보통사람이고 남들과 그리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가지만 <브리다>라는 책에서 주인공은 그냥 살아가요. 내가 삶을 이끄는 게 아니라 그저 살아가다가 우연히 자기가 마법사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아요. 그걸 깨달으면서 마법사도 찾아다니고 마법을 배우러 다니는데 그게 너무 두려운 거예요. 이게 일단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이기도 하고 새로운 자신을 받아들이는 게 너무 어려운데 두려워도 묵묵히 가요. 내 앞에 펼쳐진 선택지들이 어떻게 보면 우연적인 요소일 수도 있는데 운명일 수도 있는 거잖아요. 물론 운명이 있는지 없는지는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그 주인공이 그 길을 가고 그 안에서 저한테 인상 깊었던 구절들이 몇 개가 있거든요.
저 같은 경우는 이 길을 잘못 갔을 때 돌이킬 수 없을까봐 그런 두려움이 되게 컸어요. 실패를 하는 것 자체가 두려웠어요. 그래서 이것저것 조금씩하고 제대로 깊게 해보지 못했고 내 재능이 뭔지에 대해서는 사실 잘 생각 안 해봤던 것 같아요. 외부상황 속에서 좋은 잣대들을 자꾸 들이밀면서. 나는 나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외부에만 신경을 썼던 거죠. 그 책을 두세 번 읽고 하면서 제 자신에 대해서 많이 생각을 해봤던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게 뭐고 가야할 길은 뭐고 가고 싶은 길은 뭔지. (가치관으로 삼았던 게 내가 정한 게 아니라는) 그죠. 주입된 좋고 나쁨이랄까. 내 목소리를 듣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책에 브리다가 아버지랑 바닷가에 가는 장면도 나오는데 아빠가 바닷물이 찬지 안찬지 물어봐요. 그래서 살짝 브리다가 발을 담그는데 아빠가 그냥 풍덩 빠뜨리거든요. 그러더니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이 ‘너가 진짜 뭔가를 제대로 경험을 느끼고 싶으면 그렇게 얕게 발만 담궈선 안 된다. 깊게 한 번 빠져봐야 하지 않느냐.’ 브리다도 이때까지 깊은 경험이 두려워서 조금씩 발만 담궜던 걸 깨닫고 그때부터 자기만의 길을 가거든요. 저도 조금조금씩 다 했지만 뭔가 깊게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한길만을 가볼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 것 같아요.
생각이 많은 만큼 하고 싶은 게 많아요?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낄 정도로?
네. 그냥 모든 걸 다 배우고 싶어요. 지적욕구가 커가지고. (평소에도 바쁘겠어요 그럼.) 평일에는 스스로 바쁘게 만들어요. 지금 배우고 있는 것들도 매일 매일 해야 하니까 꾸준히 해보자고 결심했었는데 오늘 정리를 해보니까 제가 대학원에 가고 싶어서 영어점수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라 그거 하나만 한 달 동안 붙잡고 있어도 성공이라는 생각에 다른 건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어차피 한 번에 다 못 할 거니까.
욕심이 많은 걸 저도 알아요. 근데 내려놓는 법을 몰랐어요. 명확한 목표 없이 무조건 배우는 데 의의를 둔 거에요. 근데 내가 배우고 나서 어딘가 써먹어야 하잖아요. 나만 가지고 있으면 뭐해ㅋㅋ 그래서 차근차근 생각해서 조금은 내려놓기도 하고. 이제는 받아들이고 있어요. 내가 다 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고 나니까 기분이 어때요?
좀 슬픈데 사실. 이게 좀 민망한데 제가 주로 쓰는 아이디에 들어가는 단어가 있거든요. ‘Alpha’ 알파걸이라고 예전에 한창 유행했던 말 있잖아요. 뭐든 다 해내는 사람. 저는 그런 사람이고 싶었던 거예요. 근데 이제는 내가 다 할 수 없고 같이 하는데서 의의를 찾는 편이기도 하고.
아버지 돌아가시고 생각을 정리할 여행을 하셨다고.
제가 일기 쓰는 걸 좋아해서 여행가면서 항상 일기를 썼거든요. 그걸 다시 보면 그때 어떻게 생각을 정리했고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정확히 말씀드릴 수 있을 거 같은데. 베트남에 워크캠프를 갔었거든요. 제가 교육 쪽에 관심이 많아서 고아원으로 갔어요. 거기 애들은 정말 가진 게 없는데, 심지어 몸도 불편하거나 정신적으로 불편한 애들도 있는데 너무 행복하게 지내는 거예요. 이때까지 한국에서 살면서 남들이 이게 중요하다고 했던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그곳에서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여전히 저는 야망은 있지만 ‘반드시 성공을 해야 돼’ 라는 생각은 사실 많이 깨졌어요. 여행을 하면서 사소한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던 것 같아요. 여행하면서 카우치 서핑을 했었거든요. 그때 이게 많이 안 유명할 땐데 영어 학원 다닐 때 제가 휴학하고 여행 가려고 한다니까 선생님이 이걸 추천을 해주는 거예요. 그래서 돈을 아끼는 목적도 있지만 최대한 그 나라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자는 걸 목표로 여행 한 달 동안 다 카우치 서핑을 하려고 했어요. 숙박을 하나도 안 잡고 갔어요.
이욜 다 성공했어요?
아니죠. 처음부터 실패했어요.ㅋㅋ 첫날 파리에 도착해서 호스트한테 전화를 했어요. 그랬더니 너 왜 지금 파리냐고 나한테 물어요. (;;) 내가 분명히 목요일 아침 7시에. 아직도 기억해 시간을. 도착한다고 했는데 자기 지금 일하고 있대요. 토요일에 오는 줄 알았대요. 이게 무슨 소린가 벙쪄 있는데 자기 지금 일해야 하니까 저녁에 전화를 하겠다는 거예요. 빌려갔던 유럽 가이드북도 다 잃어버리고, 프랑스 말 하나도 모르는데.
근데 딱 하나 기억나는 게 거기서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는 방법이었어요. 그래서 캐리어 끌고 배낭 메고 버스를 타서 오페라 역에 내렸어요. 오페라 앞에 유니클로 매장이 있거든요. 근데 갑자기 또 비가 오는 거예요. 어디 갈 때도 없으니까 거기 계단 앞에 쭈그려 앉아 있었어요. 어떻게 하나 했는데 베트남에 같이 갔던 오빠가 시간나면 내 프랑스 친구 만나라고 소개해준 애가 있거든요. 도움을 청할 데가 없어서 걔한테 문자를 보냈는데 두 시간 지나서 얘한테 답장이 온 거에요. 이런 상황이라고 얘기하니까 자기가 가겠대요. 그래서 혼자 네 시간 동안 거기 있다가....
유니클로에서 옷 구경이라도 하시지.
너무 무서운 거야. 첫날부터 꼬여버리니까. 그니까 아무데도 가지말자 생각했죠. 짐도 많고 해서 그냥 앉아있었는데 그 친구가 오자마자 안아주는 거예요. 그리고 다 구경시켜줬어요. 커피도 사주고 지하철 표도 끊어주고. 내가 너무 긴장해있으니까 자기 누나 일하는데 제 짐 맡겨놓고 다 구경시켜주면서 다녔는데 그 친구랑 한 11시까지 있었는데도 잘 데가 안구해지는 거예요. 호스트는 연락이 없고. 결국 건너 건너서 모르는 사람 집에 가서 새벽에 잤거든요.
그야말로 진짜 카우치 서핑...
ㅋㅋㅋ 진짜 카우치 서핑했어요. 그 후에도 그 친구가 자기 친구 집에 묵게 해줬거든요. 또 모르는 집 가서 5일 있었나? 되게 고마운 사람들이죠. 파리여행을 그렇게 마치고 오스트리아에서도 카우치 서핑을 했었고 기차를 못 구해서 스위스에선 예정했던 일정이 꼬였는데 부랴부랴 게스트하우스 가서 자기도 하고. 그 친구한테 너무 고마워서 파리에 다시 왔었는데 지금도 그 친구랑 4년 째?
아 연락해요?
네. 이번에도 걔가 여자 친구랑 같이 한국 와서 한 번 만나기도 했고. 저도 파리 갈 때마다 만나기도 했고 걔 친구들이 한국에 왔을 땐 제가 다 구경시켜주기도 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카우치 서핑하면서 되게 다양한 사람도 만나고 사실 되게 긴장도 많이 했어요.솔직히 말하면 민폐를 끼치는 거 같아서 눈치도 많이 봤는데.
그게 혼자 정리하는 시간?
아 맞다 그 얘기하고 있었지. 여행 중에 여러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느낀 게 한국에서는 항상 성공해야 되고 좋은 직장을 얻어서 어느 정도 승진하고 좋은 차타고, 좋은 집에서 살아야하는 게 정석이잖아요. 근데 이 사람들은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거 하면서 소박하게 사랑하는 사람이랑 사는데도 너무 행복해보이고 여유롭고 삶에 대한 만족도가 너무 높은 거죠.
한국에서는 솔직히 구조적인 모순이 아직 많잖아요. 차별도 있고. 구조에서 벗어나면 삶이 좀 힘들어지는 걱정을 많이 해야 되고.그래서 엄마는 한국에 살면 이렇게 사는 게 편하다고 너는 지금 여기 있는데 왜 자꾸 다른 나라의 사례를 듣고 그것만 옳다고 생각을 하냐는 말씀을 많이 하세요. 저는 항상 거기에 반기를 들었었는데 지금은 엄마나 동생의 말도 솔직히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부정은 안하는데 그래도 여전히 나의 기준은 이런 것 같아요.
좀 더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느냐 없느냐. 부, 명예, 직장 이런 걸 떠나서요. 그래서 내가 행복감을 느낄 때가 언젠지를 많이 고민을 하는 것 같아요. 여행을 하면서 이렇게 한국에서 말하는 이런 길만이 답은 아니라는 걸 직접 경험을 했으니까 알잖아요. 근데 한국에 사니까 솔직히 벗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없지 않아 있어요.
부모님도 그렇고 너님과 관계된 꽤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서 사니까?
그렇게 사는 게 여기에서는 좀 쉬운 길이라고 생각을 하니까. 예를 들어 대기업에 취업을 한다고 해도 나이가 제약이 가는 건 사실이잖아요. 나는 나이를 먹고 있는데 취업준비는 안하고 자꾸 다른 생각만 하고. 이게 내 욕심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죠. 구조와 개인이 대항을 했을 때 개인은 분명히 하염없이 약한 존재일 텐데 내가 괜히 오기를 부리는 게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응해서는 안 된다고는 생각해요.
경험을 통해 그때마다 품고 있는 가치관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요즘 너님이 품고 있는 생각 중에 이건 꽤나 끌고 갈 것 같은 생각?
일단 사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감사히 여기자. 예전엔 꿈이라고 하면 저의 커리어와 관련돼 있었어요. 연애를 하는 것도 사실 사치라고 생각을 했었고. (아 꿈에 밀려서?) 그냥 오로지 그냥 난 뭘 하고 뭘 이루고 싶은지 더 경험하는 것에 많이 치중을 했던 것 같아요. 친구들이랑 만나는 시간이나 책 읽고 영화보고 생각하는 시간이라던가, 가족들이랑 시간을 보내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요즘 많이 느끼고 있고. 이걸 느꼈던 거는 얼마 안됐어요.
11월초에 4개월 동안 했던 인턴 마치고 거의 10개월 만에 집에 내려가서 일주일 있다가 왔는데 그때 엄마랑 사소한 얘기들 하면서 이런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는 걸 느낀 거예요. 지금 서울에 있으면 조그마한 방 안에서 밥도 혼자 먹고 혼자 잤을 텐데 따뜻하게 엄마 옆에서 자는 것도, 가족들이랑 이런 얘기하면서 울고 웃고 하는 것도 너무 좋고 재밌어서 이런 시간이 많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느린 삶을 좀 살고 싶다는 거. 저는 항상 좀 바쁘게만 살고 마음이 항상 바빴어서 제가 이때까지 지내왔던 거랑 좀 반대로 가려고 해요. 그게 또 다른 나를 만날 수 있는 길이니까. 그리고 표현을 많이 하자는 거. 표현을 많이 하는 게 되게 중요하다는 걸 많이 깨달았어요.
감정표현?
그게 쉽진 않은데 가족한테는 요즘 잘하거든요. 아빠 돌아가시고 표현을 많이 해야 한다는 걸 느꼈어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엄마한테 사랑한다는 말도 자주하고 편지도 자주 쓰고. 제가 엽서 쓰는 걸 되게 좋아해서 엽서 모으는 것도 되게 좋아하거든요.친구들한테도 쓰는 거 되게 좋아해요. 연말이라든가 생일이라든가 이럴 때도 많이 쓰는데 어쨌든 소중한 사람들에게 표현을 많이 하자는 거.
결국 이리저리 해외로 돌아다녔을 때가 자신한테 없는 모습을 찾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네요.
예전에는 무조건 나가는 것만 좋아했다면 지금은 내가 여기서 하는 것도 못하는데 여기서부터 시작하자는 마음이 커졌어요. 한국이 내 나라잖아요. 밀쳐내기만 했다면 이제 안기로 했어요.
그렇게 싫어하셨음? 조선을?
이민 가려고 이민법도 찾아봤었어요. <국가란 무엇인가>를 읽고 정말 국가가 뭔지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내가 내린 답은 이거였어요. 선택할 수 있는 존재. 여전히 이민을 가도 애환이 있겠죠 다. 그래서 지금은 좀 애정을 가져보려고요. 그리고 모든 사람이 자기 삶을 위해 고군분투 하잖아요. 근데 옛날에는 그런 걸 잘 몰랐거든요. 이 사람은 그냥 주어진 대로 살아간다고만.... 내가 뭐라고 그 사람들을 깔봤던 거예요. 솔직히 말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삶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살아간다고까지. 내가 뭐라고.... 이젠 겸손해졌어요. 많이.
지금은 이민 갈 생각 없어요?
사실 가고 싶어요. 그냥 이 나라가 싫은 게 아니라 보통 사람이란 게 이렇게 안정되고 익숙한 환경에서는 마음 편하게 살아가는데,새로운 환경에 갔을 때 새로운 도전을 많이 하게 되고 거기서 내가 더 발전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공부를 더 새로운 환경에서 하고 싶은 욕구도 큰 것 같아요. 근데 여기 눌러 앉을 수도 있겠죠. 사랑하는 사람이 여기 있다면?
마지막 질문으로 제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거 물어보는데 너님은 진지한 사람이니까....
아 왜요. 나 새로운 면도 있다고요.
더 진지한 맞춤형 질문을 드릴게요. 예전에 인터뷰이 한 분이 인터뷰 할 때 왜 사냐는 질문 해보라고 했었거든요. 너님은 왜 살아요.
아 뭔가 부담되는데. 아 쾅 터뜨려야 되는데. (생각 중) 음 거지같은 세상 속에서도 조금의 아름다움을 맛보고 싶어서. (제 눈치를 보심) 아 별로 안 터뜨렸다.
그게 너님의 욕심이네요.
그죠 결국 나 좋으라고 사는 거죠. 너님은 왜 사세요.
저는 아직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잘 몰라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때까진 살아봐야죠.
알 수 있을까요?
알 수도 있을 거 같은데.. 기왕이면 알고 죽었으면 좋을 것 같긴 해요.
사람마다 답이 다르겠지만 어찌됐든 우리 모든 신경은 뇌에 의해 지배를 받잖아요. 뇌 자체가 인식하길 모든 동물의 욕구, 궁극적인 목적이 생존과 번식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 말이 일리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인간도 솔직히 태어났으니까 사는 거죠. 근데 탄생이라는 게 정말 신기한 게 저희 다 요만한 세포였잖아요. 근데 이렇게 자꾸 커가고 변하고 하는 게 너무 신기한 거예요. 또 생각해보면 솔직히 죽는 게 두려우니까 사는 것 같기도 하고. 아빠 돌아가실 때도 이 생각 많이 했어요. 사후세계가 있는지 없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마음으로 제사를 드리는 거긴 하지만 신체기능이 죽으면 그냥 죽은 거잖아요. 심장이 멈추고 뇌가 멈추면 죽었다고 하던데. 결국 죽음은 뭔가 싶기도 하고.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하신다면서요. 내리신 결론이 있어요?
없어요. 예전에는 많이 두려워했고 진짜 무서웠어요.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많이 인지를 하고 있고. 여전히 안 무섭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저는 죽는 게 무섭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파리 테러 났을 때도 너무 무서운 거예요. 너무 슬프기도 하고. 저기 있는 사람들도 자신이 저기 있을 때 테러가 날 줄은 몰랐을 텐데. 근데 이제는 어떠한 선택을 할 때 내가 죽는 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면 선택에 있어서 용기가 생기는 것 같아요.
죽기 전에 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네. 그리고 병상에 누워있는 모습을 그려보면 내가 죽을 때 이런 저런 선택을 한 거에 대해서 후회를 할까? 하는 생각도 들 것 같고. 아 진짜 무섭다. 없는 거잖아요.
다른 세상이 있을 수도 있죠.
그렇죠. 그러니까 그 전에 진짜 많이 사랑해야 하는 것 같아요. 아 연애 왜 안 물어보세요. 연애 키워드 넣어놨는데.
아 맞다. 지금껏 얘기했던 자연에 대한 사랑이나 인류애는 충분히 알겠으니.
이성에 대한 사랑? (아니 동성도.) 아 그렇죠. 하고 싶네요. 요즘. 아까 말했잖아요. 사소한 것이 정말 중요하다. 그 사소함을 나눌 사람이 있다는 건 되게 좋은 거죠.
근데 꿈과 커리어에 연애라는 애가 밀렸었잖아요. 이제 동등한 입장으로 올라오는 건가요?
사랑이 좀 더 큰 거 같아요. (연애가 언제부터 앞지르기 시작했을까요?) 얼마 안됐어요. 저한테 멘탈이 강하다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 멘탈 약하거든요. 한번 터지면 무너질 때가 있어요. (복구가 쉽지 않을 정도로?)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럼 좀 강한 건가 보다.ㅋㅋㅋㅋㅋ 어쨌든 예전에 남자친구가 있을 땐 주체와 주체로서 서로 자기 일 잘 하고 잘 지낼 때 우리 관계도 더 좋아진다고 생각을 했어요. 근데 제가 되게 외로울 때가 있었는데 그때 얘가 없으니까 연결되는 다리가 없는 것 같아서 결국 헤어졌어요. 주체로서 잘 존재를 해야 연애도 잘 되는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저는 사람이 외로운 존재, 고독한 존재라기 보단 약한 존재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그냥 그 약함을 서로 나눌 수 있고 서포트 해줄 수 있는 관계가 있으면 어떤 일을 하던 간에 그것만으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특히 요즘에는 나의 사소함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그냥 내 하루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 편하게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되게 좋겠다고 생각하는 거죠.
제가 이때까지 혼자 경험하면서 느꼈던 것들은 이제는 조금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여전히 틀에 갇혀있지만 내가 오랫동안 경험해보지 못했던 연애, 이 연애를 하면서 배울 수 있는 것도 되게 많으니까요. 새로운 삶을 맛보게 되는 거랄까. 사랑하는 사람의 세계관을 내가 공유하는 거니까. 예전에는 내 세계관이랑 비슷한 사람을 찾고 만나고 싶었는데 요즘엔 그냥 끌리는 사람이 답인 것 같아요. 좋아하는 데 이유 없고. 그 전에는 사실 그 사람의 세계관을 인정해주는 법을 잘 몰랐거든요. 이제는 다양한 개인으로 존재하다가 그 접점이 생기는 것만으로도 되게 위대하다는 걸 느껴요. 아 근데 어려운 거 같아요. 연애하기도.
우선 너님을 소개하는 ‘특별 시사회’에 단독 초청을 받아 너무나 영광이었어요. 살뜰히 갈무리된 너님의 기록과 이야기를 보고 듣고 있자니 뭔가 커다란 여행 다큐를 본 기분이었어요. 전 워낙 여행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지라 여행을 통해 퐁퐁 샘솟는 생각과 그 변화를 듣는 것도 신선했지만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깊은 삶의 고민과 나름의 기준에 대해 들을 수 있어서 더 좋았어요. 저와의 인터뷰에서 그랬듯 너님은 분명 다른 분들과도 삶의 대한 깊은 고민까지 솔직하게 나누실 수 있는 분이라 생각해요. 주위사람들은 이미 그런 존재로 여기고 계실 것 같고요. 여행을 비롯한 경험과 꾸준한 고민으로 발견한 너님의 사소한 것들, 너님의 일상을 소중히 지켜내셔서 원하시는 대로 ‘좀 더 인간적인 삶’을 사실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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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는 연애를 시작하셨다고 해요.
인터뷰 때는 어렵다고 하더니만 잘만 하시네요. 흥
빌어드실 나는 언제 연애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