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탐라유배일지] 바다보고 칭따오

17일차

by 태희킷이지
09271756.jpg


2016. 10. 7.


코골이 2중주 덕분에 4시가 임박해 잠이 들었는데도 생각보다 일찍 잠에서 깼다. 어차피 이따 낮잠을 잘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미련없이 침대를 벗어난다. 손전화에 적어뒀던 어제의 유배일지를 빠르게 블로그에 옮겨 정리하고 책을 읽다가 하나로마트 반찬으로 점심을 먹는다.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데 괜히 냉장고에 얼굴을 들이밀었다가 칭따오랑 마주쳐서 과자를 사러 편의점에 간다. 오른손은 주머니에 찔러넣고 왼손으론 알새우칩 한 봉지를 흔들면서 씩씩하게 돌아온다. 성실하게 출렁이는 바다를 보며 낮술을 했더니 몸이 나른해진다. 이때다 싶어 바로 누워버린다.


이렇게 단순하고 편안한 매일매일을 보내고 있는데 오른손에서 피어난 빌어드실 한포진이 점점 더 심해진다. 새끼 손가락에서 시작된 지독한 놈들은 이미 모든 손가락들을 정복하고 손바닥으로 옮겨간다. 하루종일 벅벅 긁고 싶을만큼 간지러우면서도 살이 쓰려서 땡땡 얼은 얼음팩을 계속 쥐고 있다. 다음 주에 서귀포로 병원에 가보겠지만 강력하다는 소개말과 다르게 별 효과가 없는 허연 연고 하나만 처방해줄까봐 벌써 걱정된다.


하루종일 흐렸지만 아쉽게도 비는 오지 않아서 오늘도 기쁜 마음으로 달리기를 하러 다녀왔다. 곧 올 거라는 비를 기다리면서 막걸리를 마시기로 했다. 스탭동생이 안주 겸 반찬으로 김치전과 두부김치를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걸 보니 단전에서 존경심이 마구마구 솟구친다. 고소하고 달달한 볶음김치를 입에넣고 초록뚜껑 제주 막걸리와 함께 넘긴다. 유배와서 하얀뚜껑 제주막걸리만 마셔봤는데 초록뚜껑 제주 막걸리가 국산쌀로 만든거라고 한다. 오호. 식탁위에 있던 세 번째 막걸리 병이 바닥에 내려갔을 때 기다리던 비가 내렸다.


웹툰보다 재밌는 국정감사 짤을 보고 낄낄대다가 잤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탐라유배일지] 오랜만에 달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