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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탁 진 Jul 02. 2022

후투티 새가 몰고 온 수목원의 여름

점점 변해가는 것들...

               후투티 새가 몰고 온 수목원의 여름 



  푸른 수목들 사이로 바람이 불어온다. 새들의 지저귐 소리도 들려온다. 하지만, 시원하다기보다 후텁지근한 바람에 뒷덜미가 온통 땀으로 젖어내린다. 


  더운 여름이 해마다 한 발짝씩 더 빨리 찾아오고 있다. 땀이 줄줄 흐르는 한낮의 불볕더위와 잠 못 이루게 하는 열대야가 벌써부터 우리를 지치게 하고, 작은 일에도 짜증과 불쾌감이 솟아오르게 만든다. 그제는 장맛비라고 아침부터 세차게 쏟아붓더니 남국의 스콜처럼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뚝 그쳤다. 뜨거운 해가 얼굴을 내밀어 땅 위의 수증기를 피워 올리며 한증막 같은 무더위를 만들어버렸다. 


  대구 수목원 사잇길을 걷다가 잠시 돌의자에 앉아 쉬는데, 새들의 지저귐 사이로 색다른 음색의 새소리가 들린다. 자세히 귀를 기울여야 겨우 알아들을 만큼 주변의 새들이 너무 많이 조잘거리고 있었다. 아내는 처음 본 새가 색다른 게 예쁘다며 핸드폰 카메라를 켜서 자세히 찍으려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겨 다녔다. 곁에 있던 나이 지긋한 노인이 "후투티 새로구나..." 하며 중얼거렸다.  


  후투티 새... 이름도 어째 외국스럽기도 하고... 색깔도 화려한 것이 어느 열대 지방에서나 살 법한 생김새를 가진 후투티 새... 혹여 수목원에서 일부러 잡아다가 여기서 살라며 풀어놓은 것은 아닐까? 잠시 터무니없는 생각을 해보았다.


  궁금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검색... 더운 여름에 찾아오는 여름 철새라고, 우는 소리가 '후투투'처럼 들려 후투티라고 지어졌다는... 머리에 화려한 색깔의 깃털을 꽂은 인디언 추장을 닮았다고 인디언 추장 새라고도 한다네... 여름이 데리고 온 남국의 철새, 후투티... 


  흔히 보던 참새, 까치, 까마귀, 비둘기 등등... 이런 텃새나 겨울이면 찾아오는 오리 과의 여러 철새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기에 보는 이 마다 호기심을 가지고 본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여름 철새라고, 그다지 많이 들어본 것 같지도 않았다. 


  우리나라의 기후가 점점 아열대화 되어가면서 이 열대 지방에서 찾아오던 후투티 새가 겨울이 와도 여전히 남부지방에서 눌러살기도 한단다. 더운 지방에 사는 후투티가 견딜 만큼 우리나라의 겨울 날씨가 그다지 춥지 않게 되었다는 말일 게다. 예전에 우리가 알던 그런 추운 겨울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점점 따뜻하고 더운 계절이 길어져간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에는 사계절이 있다. 계절은 철새처럼 때가 되면 찾아와 머물다 떠나곤 한다.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찾아오던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점점 길이가 달라지고 있다. 아마도 지구 온난화의 영향일 게다. 봄인가 싶으면 어느새 여름이고, 가을이 오나 보다 싶으면 금세 겨울 찬바람이 불어댄다. 즉, 여름과 겨울만이 뚜렷한 거 같다. 그것도 겨울은 겨울 같지도 않고... 여름은 점점 더 남국의 여름처럼 찌는 듯한 무더위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이런 계절의 변화는 생태계뿐 아니라 우리 생활에도 변화를 가져다주고 있다.  



  제주도에 사는 친구에게서 택배가 왔다. 상자를 열어보니 싱싱하고 달콤한 애플망고가 가득 들어있는 게 아닌가. 연락도 없이 이런 걸 보내다니, 나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김포에 있는 가족들에게 과일을 보내며 내 생각이 나서 한 상자 보냈다고 한다. 서로 멀리 살다 보니 몇 년에 한 번 볼까 싶은 친구는 고교 동창이다. 오랜만에 반가운 목소리를 들으며 안부와 고마움을 전했다. 


  망고란 열대 과일도 예전에는 동남아로 여행이나 가면 먹어볼 수 있는 과일이었다. 15여 년 전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갔다가 먹어보았던 망고가 얼마나 달달하고 맛있었는지, 귀국할 때 선물로 말린 망고를 한 아름 사온 적도 있었다.   


  그런 열대 과일들이 이젠 우리나라 제주도나 남부지방에서 열리고 있다. 물론 약간의 온실 기술들이 필요하겠지만... 그만큼 우리나라의 기후가 더워졌다는 말일 게다. 


  달콤하고 맛있는 열대 과일들을 쉽게 먹을 수 있어 좋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점점 열대화 되어가는 날씨가 걱정스럽기도 한 일이다. 어쩌면 머지않아 가로수가 바나나 나무로 바뀌고, 강에는 악어나 하마가 사는 날이 오지나 않을는지... 원숭이가 우리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먹을 것을 달라며 귀찮게 하지나 않을는지... 너무 생각이 빨리 가는 건가? 모를 일이다...


  여름 철새, 아니, 이미 텃새가 되어버린 저 후투티 새는 멋있는 옷차림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땅강아지를 즐겨 먹는다는 후투티 새는 부리로 땅을 파헤치고, 벌레나 곤충 따위를 잡기 위해 똥 무더기를 뒤적거리느라 자기 몸에 묻은 고약한 냄새도 알지 못한다고 한다. 


  후투티 새에게는 콧구멍이 없는지, 후각 기능이 없어서 그런지, 이미 자기에게서 나는 냄새에 익숙하여 다른 이에게 어떠한 피해를 주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다. 우리도 가끔은 우리 몸과 마음을 들여다보고, 혹여 향기가 아니라 냄새가 나지 않는지 킁킁거려볼 필요가 있지 않을는지... 나는 땀냄새나는 옷깃을 잡고 괜스레 킁킁거려본다. 후투투~ 으~ 


  새나 과일들 뿐만 아니라 식물이나 나무들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소위 토착화라는 걸 한다. 저 수많은 수목원 나무들도 원산지가 대부분 우리나라는 아닐 게다. 처음에는 낯선 땅, 낯선 기후에 아마도 힘들었을 게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서 적응이 되고, 익숙해져서 저렇게 싱싱하게 살아남은 것이다. 


  우리는 저들처럼 생명이 길지는 않다. 그러나, 그 길지 않은 시간 동안에도 늘 새로운 현실과 맞닥뜨려야 한다. 어제의 환경과 내일의 환경이 늘 다르게 다가오고 있다. 우리가 사는 이 환경이 변화하듯이 사회도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후투티 새가 남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의 계절에 적응하듯이 우리도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다... 아, 나이가 들어갈수록 따라잡기도 숨찬 거 같다... 


  정말 더운 날씨다. 후투투~  후투투~ 소낙비라도 내렸으면 좋겠는데... 내 옷이 다 젖어도 괜찮은데... 시원한 빗물을 품은 먹구름들은 다 어딜 갔는지, 빈 하늘만 쨍하니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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