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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탁 진 Sep 25. 2021

[동화] 붕어 한 마리

나의 창작동화


  김 씨는초등학교  정문이 바라다 보이는 골목시장 입구에 자리를 잡았다. 김 씨의 리어카에는 <붕어 한 마리 200원>이라는 작은 팻말이 하나 붙어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던 아이들이 100원 짜리 동전들을 주고 한 마리씩 사 먹기도 했고, 아주머니들이 시장을 보러 왔다가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 주려고  한 봉지씩 사 가기도 했다.      

  장사를 시작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손님이 그리 많지 않았다. 김 씨는 조금 있으면 아이들이 몰려 올 시간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열심히 붕어빵을 구웠다. 갓 구워진 붕어빵들은 철망소쿠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아이들이 하나 둘 교문을 나섰다. 학교 주변에 있는 학원에 가던 아이들은 김 씨의 붕어빵을 한 마리씩 사서 먹으며 들어갔다. 비만해 보이는 아이는 한 마리가 아니라 아예 다섯 마리나 사서 먹으며 태권도 도장으로 갔다.     

  재잘대며 붕어빵을 사 먹던 아이들이 한 차례 지나가자 조금 한가해진 김 씨는 아까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서 김 씨의 리어카를 바라보고 잇던 아이가 생각나 눈을 들어 쳐다 보았다. 아이는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김 씨는 그 아이가 어제도 그 자리에 서 있었다는 걸 기억해 냈다.      

  3, 4학년 정도로 보이는 아이는 주머니에  한 손을 넣고 무언가 만지작거리며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이는 김 씨와 눈이 마주치자 얼른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김 씨가 붕어빵을 굽기 위해 눈을 돌리자 다시 김 씨의 리어카를 쳐다 보았다.


  김 씨가 아주머니에게 붕어빵 한 봉지를 팔고 나자 철망소쿠리에는 붕어가 한 마리만 남아 있었다.     

  "저어, 아저씨..."     

  김 씨는 고개를 들어 손님을 쳐다 보았다. 아이가 리어카 앞에 서 있었다. 아까부터 김 씨의 리어카를 쳐다 보던 아이였다. 아이는 무언가 말을 하려고 우물쭈물하고 있었지만 쉽게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응? 붕어 사려고? 그래, 몇 마리 줄까?"     

  김 씨는 아이를 보며 말했다. 아이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들릴듯 말듯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어, 아저씨. 붕어 한 마리 200원이지요?"     

  아이는 한 손을 아까처럼 여전히 주머니속에 넣고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김 씨는 아이가  주머니 속에서 동전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아이는 돈을 꺼내지 않고 다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저씨,  저 붕어빵은 조금 탔는데 저 것도 200원이예요?"     

  아이는 눈으로 철망소쿠리에 담겨져 있는 붕어를 가리키며 물었다. 철망소쿠리에 남아 있는 붕어는 정말 약간 색이 짙어 아이의 말대로 조금 탄 것 같았다.      

  김 씨는 붕어를 쳐다보다 아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아이에게 말했다.     

  "꼬마야, 너 얼마 가지고 잇니?"     

  아이는 아까보다 조금 더 큰 소리로 대답했다.     

  "100원요."     

  김 씨는 붕어빵을 꺼내 아이에게 내밀었다.     

  "그래, 100원만 내고 가져가라. 하하, 그 녀석."     

  아이는 그 소리를 듣고 재빨리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100원 짜리 동전을 김 씨에게 주고 붕어빵을 받았다. 아이의 얼굴은 그제서야 밝아졌다. 김 씨도 붕어빵을 맛있게 먹으며 걸어가는 아이의 뒷 모습을 바라보며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다음날, 아이는 또 그 자리에 서서 리어카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김 씨는 붕어빵을 구우면서 아이의 옷차림을 살펴 보았다. 아이의 차림은 남루했다. 소매끝은 언제 옷을 빨았는지 때가 묻어 있었고, 바지의 무릎부분은 오래 입어서 그런지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아이는 오늘도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김 씨는 그 아이의 주머니 속에 100원이 들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른 아이들이 붕어빵을 사 먹어도 김 씨 리어카로 다가 오지 않고 있었다.      

  김 씨는 붕어빵을 굽다가 일부러 한 마리를 꺼내지 않고 조금 더 오래 구워서 꺼내 놓았다. 다른 붕어빵들은 노르스름하게 구워졌는데 그 붕어빵은 약간 탄 듯한 색깔을 내고 있었다. 그 약간 탄 붕어빵은 아이들이나 아주머니들이 집어가지 않았다.      

  잠시 후, 김 씨의 리어카가 조금 조용해졌을 때 아이가 천천히 김 씨 리어카로 다가 왔다.     

  "아저씨, 그 탄 붕어빵은 사람들이 안 가져 가네요..."     

  김 씨도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100원 내고 너 가져 갈래?"     

  아이도 김 씨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주머니에서 100원 짜리 동전을 꺼내 놓고 붕어빵을 집어갔다. 김 씨는 다 식어빠진 붕어빵을 맛잇게 먹으며 가는 아이의 뒷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이는 붕어빵 한 마리를 조금씩 조금씩 아껴 먹고 있었다. 김 씨는 붕어 한 마리에 행복해 하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기분이 뿌듯해 옴을 느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김 씨는 아이가 리어카 가까이에  와서 서 있으면 으레히 붕어 한 마리를 일부러 약간 태운 듯 하게 구워 놓았다. 그러면 아이는 당당히 100원을 내고 다른 아이들처럼 그 붕어빵을 집어가곤 했다.      

  그 날도 김 씨는 리어카로 다가 오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고 붕어 한 마리를 일부러 약간 타도록 해서 꺼내 놓았다. 김 씨는 곁눈질로 아이가 탄 붕어빵을 보고 아이가 다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아이는 잠시 서서 자기를 위해 구운 붕어빵을 바라만 보다가 힘없는 모습으로 터벅터벅 가 버렸다. 김 씨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마도 오늘은 아이에게 100원조차도 없었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김 씨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 다음날도 아이는 김 씨가 준비해 놓은 붕어빵을 사지 않고 그냥 서서 바라보며 침만 꼴깍꼴깍 삼키고 있었다. 김 씨의 입 안에서도 침이 꼴깍꼴깍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아이는 결국 신발로 땅을 툭툭 차며 그냥 가 버렸다. 김 씨는 저 만치 걸어가는 아이의 등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 쉬었다.      

  김 씨는 그 날 장사하는 내내 한 가지 생각에 빠져 붕어빵을 굽는 둥 마는 둥, 장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장사를 마치고 집에 가서도 내내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방법을 하나 찾아냈다.     

  다음날, 리어카에는 또 하나의 팻말이 붙어 있었다. 팻말에는 <착한 일

한 가지에 붕어 한 마리>라고 적혀 있었다. 붕어빵을 사 먹으러 왔던 아이들은 그 팻말을 보고 무슨 뜻인지 물었다.  김 씨는 아까부터 리어카를 바라보고 서 있던 아이에게까지 들리도록 큰 소리로 말했다.       

  "너희들, 착한 일 한 가지씩 하고 와서 내게 이야기 해주면 붕어 한 마리 그냥 준다. 알았니? 그러니 착한 일 많이 해라!"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저 마다 착한 일 해야지 하며 떠들석하게 갓다. 김 씨의 말소리를 듣고 잇던 아이도 눈을 빛내면서 어디론가 가 버렸다. 김 씨는 미소를 지으며 열심히 붕어빵을 구웠다.      

  해가 저물어 갈 무렵, 아이가 김 씨의 리어카로 뛰듯이 걸어왔다. 아이는 김 씨 앞에서 숨을 고르면서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아저씨, 저 거 정말이예요?"     

  아이는 손가락으로 새로 단 팻말을 가리키며 물었다. 김 씨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 저 오늘 착한 일 햇거든요."     

  "그래? 어떤 일을 햇는데?"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학교 운동장에서요, 쓰레기를 주웠어요."     

  아이는 자랑스런 얼굴로 말했다.      

  "그래? 정말 착한 일 했구나... 여기 붕어 한 마리 있다. 맛있게 먹어라. 그리고 내일도 착한 일 한 가지 해라. 그럼 아저씨가 또 한 마리 줄께."     

  그런데, 김 씨가 준 붕어빵을 받아든 아이는 집에 가지 않고 매일같이 서 잇던 곳에가서 서 있었다. 김 씨는 아이가 왜 가지 않고 잇는지 궁금했지만 다시 붕어빵을 굽느라 잊어 버렸다. 

  한참동안  붕어빵을 굽던 김 씨가 고개를 들어 보니 아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리어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는 김 씨가 준 붕어빵을 먹지 않고 손에 그냥 들고 있었다.  김 씨는 왜 아이가 가질 않고 서 잇는 걸까 생각하다 그만 붕어빵을 태우고 말았다.      

  김 씨는 타 버린 붕어빵을 철망소쿠리의 한 쪽에다 놓았다. 그 때, 아이가 김 씨에게로 다가 왔다.     

  "아저씨, 그 거 많이 탔네요... 100원 주고 가져가면 안 되나요?"     

  김 씨는 아이가 주머니에서 100원 짜리 동전을 꺼내 놓는 것을 보고는 아이에게 탄 붕어빵을 건네 주었다. 아이는 양 손에 붕어빵을 한 마리씩 쥐고는 골목안으로 사라졌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아이는 착한 일을 한 가지씩 해 와서는 잘 구워진 붕어빵 한 마리와 김 씨가 일부러 태워준 붕어빵 한 마리를 사서 집으로 돌아갔다.     

  붕어빵  리어카는 전 보다 더 바빠졌다. 착한 일을 한 아이들에게 붕어빵을 공짜로 나누어 준다는 소문이 동네에 퍼져 더 많은 사람들이 붕어빵을 사 먹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착한 일을 하기 위해 학교 운동장이며, 주변의 골목에 나뒹굴던 쓰레기들을 주었고, 길을 묻는 사람들에게도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 주었다. 그렇게 하다보니 동네가 깨끗해졌고, 동네 사람들도 아이들이 착한 일을 많이 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소문을 듣고 교장 선생님까지 김 씨에게 와서 붕어빵을 사 가기도 했다.      

  김 씨의 붕어빵 장사는 날이 갈수록 잘 되었고, 아이들도 착한 일을 많이 해서 공짜로 붕어빵을 먹었다.     

  가을비가 부슬부슬 오던 날, 김 씨는 붕어빵을 굽다가 맞은 편 가게의 처마 밑에 움크리고 앉아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아이는 비를 좀 맞았는지 머리가 축축해 보였다.      

  김 씨는 며칠 전부터 아이가 착한 일을 했다며 붕어빵을 얻으러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김 씨는 손짓으로 아이를 불렀다.     

  "너, 요즘 왜 착한 일 안 하니?"     

  아이는 시무룩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저씨, 요즘은 착한 일 할 게 없어요. 다른 아이들이 저보다 먼저 착한 일을 하거든요. 착한 일을 하려고 아무리 찾아 보아도 이젠 착한 일이 없어요."     

  김 씨는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 잇는 아이를 쳐다 보았다. 그리고는 붕어빵을 하나 꺼내 아이에게 내밀었다.     

  "아저씨, 저는 오늘 착한 일을 하지 못했어요."     

  김 씨는 고개를 젓는 아이의 손에 붕어빵을 쥐어 주며 말했다.     

  "착한 일이란 일부러 찾아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란다. 이거 먹고 다음에 착한 일 할 게 생기면 하면 된단다. 자, 어서 먹어라."     

  아이는 그래도 김 씨가 주는 붕어빵을 받지 않고 말했다.     

  "우리 할머니가 공짜로 받으면 거지라고 했어요."     

  아이에게 붕어빵을 건네주던 김 씨의 손이 멈칫 했다. 김 씨는 어찌해야 좋을지 생각하며 말했다.     

  "너희 할머니가 계시니?"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할머니랑 살아요. 제가 착한 일을 하지 못해서 어제도 할머니에게 붕어빵을 갖다 드리지 못했어요."     

  아이는 어두운 얼굴로 돌아서 갔다. 김 씨는 힘없이 걸어가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김 씨의 어깨도 힘이 쭉 빠지는 것 같았다.      

  김 씨는 아이의 뒷 모습을 바라보다 큰 소리로 아이에게 외쳤다.     

  "꼬마야, 이리 좀 와 봐라!"     

  아이는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다 보았다. 김 씨는 아이에게 손짓을 하여 불렀다.      

  "내가 너에게 착한 일 하나 할 수 잇도록 해 주겠다. 그러면 내가 주는 붕어빵 두 마리를 받을 수 잇지?"     

  아이는 착한 일을 할 수 잇게 해 주겠다는 김 씨의 말에 얼굴이 밝아져 달려왔다.     

   "오늘 비도 오고, 집에 가서 할 일이 있어 일찍 들어가야겠다. 그러니 네가 이 리어카를 좀 밀어 주겠니? 비가 오는 날은 길이 미끄러워 힘이 들거든. "     

  이렇게 말하고는 한 쪽손으로 리어카의 손잡이를 잡고 끌기 시작했다. 김 씨의 다른 한 손은 그냥 늘어 뜨린채 움직이지 않고 잇다는 것을 아이는 그제서야 알았다.      

  아이는 재빨리 리어카의 뒤로 가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리어카를 힘 껏 밀었다. 그 덕분에 김 씨의 리어카는 언덕길도 어렵지 않게 올라갈 수 있었다. 앞에서 끌고 가는 김 씨의 얼굴에도, 뒤에서 밀어주는 아이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 2005년 월간 문학공간 신인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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