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탁 진 Dec 31. 2021

임인년,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

해넘이와 해돋이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



  우리 네 삶에 있어 늘 시작과 끝은 반복적으로 존재한다. 그런 면에서 오늘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소의 발걸음처럼 느리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지나고 견뎌온 1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잠수함처럼 가라앉아 있었던 순간들이 다시 부양을 위한 기다림이었다고 위안해본다...


  연말연시를 맞아서 해넘이니 해맞이를 하기엔 여전히 코로나19의 상황이 좋지 않아 어디론가 나선다는 건 힘들어졌으니... 


  코로나 이전, 마지막으로 해넘이를 한 것이 2019년 연말이었으니 두 해 전이었다. 


  해마다 해돋이를 보러 가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우리는 평소 한 시간쯤 걸리는 동해였으나 감히 새해를 보러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전날 밤부터 동해를 향해 가는 새해맞이 차량행렬에 끼어 꼬박 날밤을 새어야만, 아니, 어쩌면 해가 바다 위로 두둥실 떠오른 한참 뒤에나 도착할지도 모른다는 핑계를 대며, 그냥 새해 아침에 아파트 옥상에서 도시 위로 떠오르는 새해를 보며 "올해도 우리 가족 건강하게 해 주소서..."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찬 공기를 뒤로 하고 집으로 쏙 들어오는 게 다였다.


  동탄에 사는 아들이 제부도에 해돋이 보러 가자며 연말에 올라오라고 연락이 왔다. 펜션을 예약해두었다며 서울에 사는 딸아이도 불렀단다. 올해는 꼭 해넘이와 해돋이를 할 거라며... 


  제부도는 서해에 있는 섬이다. 해가 서쪽으로 지니 해넘이는 되는데, 해돋이가 될는지... 잠깐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하긴 서쪽이라고 해가 뜨지 않을 리는 없으니, 해돋이도 가능하겠구먼... 


  아내와 나는 SRT를 타고 마지막 날 동탄으로 올라갔다. 확실히 내가 사는 남쪽보다는 훨씬 추웠다. 그래도 우리는 거위털이니 오리털이니 두툼한 파카로 중무장을 해서 춥지는 않았다. 먼저 도착한 딸아이와 함께 지금 서쪽 하늘에 걸려있는 저 마지막 해가 바닷속으로 떨어지기 전에 서둘러 서해안으로 출발했다. 


  당시 중국 우한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고, 전염되고 있었으나,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심각하지는 않았던 거 같다. 이렇게나 사태가 악화될지는 아무도 몰랐던 게 아닐까...  그때는 아무도 알지 못했었다. 


  제부도는 섬이었지만, 차로 갈 수 있는 섬이었다. 서해안의 바닷물이 빠지면, 섬으로 이어진 도로가 드러났다. 그래서 때를 맞춰서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서서히 석양에 물드는 섬을 향해, 양쪽에서 바닷물이 찰랑대는 길을 따라서 지는 해를 따라갔다.


  한 해 동안 매일같이 우리 머리 위에서 뜨고 졌던 해였건만, 평소에는 별 관심도 없이 지내다가 꼭 마지막 날의 해에게만 의미를 두고, 마치 떠나고 나면 다시는 보지 못 할 것같이 아쉬움과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후회, 반성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니... 


  예약된 펜션에 짐을 풀고 우리는 곧장 해가 지는 해변으로 나갔다. 길게 늘어선 모래밭은 물이 빠져 있었다. 멀리 바다 수평선 위에서 느릿느릿 내려앉는 해를 바라보며 천천히 걸었다. 아이들이 나를 바닷가에 세워놓고 여러 가지 포즈를 주문하며 사진을 찍었다. 나는 대부분 어딜 가나 모델이 되었다. 이제는 한물 간, 퇴역 예비군 같은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굳이 사진 찍기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아이들 폰 속에서 오랫동안 나는 웃고 서 있을 거라고 믿기에... 


  어두워져 가는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한 해 동안 열심히 우리를 비춰준 해는 한겨울 찬바람 속에서 시나브로 바다로 빠지고 있었다. 하늘을 나는 갈매기들만 끼룩끼룩 울고 있었다. 


  해변 저 멀리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가설무대에서 무명 가수가 가는 해를 달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무대 앞 모래밭에는 모닥불이 활활 불타고 있었다. 해넘이를 하러 온 사람들이 불 가에서 손을 내밀며 따뜻한 온기를 나누고 있었다. 모두들 저마다의 마음속에는 무언가 저릿하고 뜨거운 것이 퍼져나가고 있지 않을까... 타닥타닥 모닥불은 불티를 날리며 해가 진 어두운 해변을 밝히고 있었다. 한참을 불 가에서 얼은 몸을 녹이다가 우리는 저녁 먹으러 식당을 찾아 나섰다. 


  아들이 맛집 검색을 하더니 가까운 조개구이 식당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2층 바다가 내다보이는 창가에 앉아 서해의 맛있는 조개를 배불리 먹었다. 뜨거운 숲 불 위에서 하얗게 김을 피워 올리며 입을 쩍쩍 벌리는 조개들을 보니, 한 해 동안 열심히 살아온 우리에게 수고했다며 상이라도 주는 것 같았다. 


  그래, 다들 잘 살았다... 내년에도 건강하게 열심히 잘 살아보자꾸나... 위하여~~ 쨘!! 


  맛있는 저녁을 먹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해가 바뀌는 자정을 기다렸다. 아까의 그 가설무대에서 새해맞이 행사를 한다고 했다.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카페는 한산했다. 푹신한 소파에 기대앉아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지나온 한 해를 가만히 돌이켜보는 시간을 가졌다.


  자정이 가까워지자 흩어졌던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아까  보다  더 거칠고 차가웠다. 우리는 모자를 뒤집어쓰고 잔뜩 몸을 움츠리며 어서 해가 바뀌기를 기다렸다. 발을 동동거리고 있는데 진행요원이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10, 9, 8, 7, 6, 5, 4, 3, 2, 1... 와아~~~~ 짝짝짝!!! 


  이렇게 2020년이 시작되었다... 


  대망의 2020년!  그래, 대망이었다. 희망의 2020년이 아니라, 크게 망해버린 2020년이 될 줄은 아무도 모르고서 환호의 박수와 기대에 부푼 설렘을 가슴에 품었던 순간이었다...


  다음날 이른 새벽, 새해가 뜨기 전에 부스스 일어나 눈곱도 떼지 않은 채 일출을 보러 나섰다. 잔뜩 흐린 하늘에서는 진눈깨비가 날리고 있었다. 해돋이 행사를 하는 바닷가에는 어느새 많은 인파들로 붐비고 있었다. 우리도 가까스로 차를 세워 놓고 사람들 무리에 섞여 발을 종종거리며 어서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여전히 가는 눈발이 휘날리고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새해를 보기가 어려울 거 같았다. 그래도 사람들은 해가 떠오를 동쪽 하늘을 바라보며 저마다 웃고 떠들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결국, 행사장 마이크에서 흘러나오는 카운트다운에 맞춰 해는 동쪽 하늘에서가 아니라 우리들 마음속에서 사뿐히 떠오르고 말았다. 아, 진짜 해는 떠올랐겠지만, 구름에 가려 보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찬란하고 밝은 2020년의 새해는 흐린 구름에 가려 빛을 잃고 만 것이었으니... 모처럼 가족과 함께 간 해돋이에서 해를 보지 못하였으니... 아쉬운 마음이 없진 않았으나, 그래도 가족과 함께 새해를 맞이했다는 생각에 기분은 뿌듯하고 좋았다. 


  그리고, 두 해가 지나도록 여전히 흐린 하늘은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여전히 우리를 위협하고 있고, 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주고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모두들 조심하려 애를 쓰지만, 기나 긴 시간을 지나면서 지치고 힘이 빠지는 것 같다. 언제쯤 인류가 처한 이 위기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는지... 각자 늘 조심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정해진 규칙을 준수해야겠지...


  내일은 하늘이 맑아서 새해가 뜬다고 한다. 그날 제부도에서 보지 못했던 해를 다시 보고 싶다. 붉게 빛나는 해가 세상을 환히 비추어 코로나 바이러스를 몰살시켜주었으면 좋으련만... 그런 새해가 2022년 임인년 호랑이가 되어 우렁찬 포효를 내지르며 우리를 지켜주었으면 좋겠다... 


   2022년에는 모든 이들이 코로나 걱정 없이 건강하고 행복한 해가 되기를 바래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모멘트,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화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