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을 읽고서...
모멘트,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화인
살면서 그때 그렇게 하지 않고 다른 선택을 했었다면 지금 내 인생이 달라졌을까? 그때 그 길이 아니고 다른 길로 갔더라면 어떤 인연을 만났을까? 지금 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을까? 아니면, 더 나쁜 현실 속에 살고 있을까?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처럼 사람은 누구나 미련을 가지고 살 수밖에 없다. 우리는 매사에 선택을 하면서 살고 있으니. 오늘 점심은 비빔밥을 먹을 것인가, 짜장면을 먹을
것인가? 버스를 타고 갈까, 지하철을 타고 갈까, 아니면 걸어서 갈까?
단순한 선택도 있지만, 좀 더 인생을 좌우할 만한 선택도 있다. 학교나 학과든지, 회사에 취직할 건지, 지금 내 앞에 앉아있는 저 사람과 데이트를 할 건지 아니면 그냥 나갈 건지...
순간순간의 선택을 하는 게 인생이라고 해도 될 만큼 우리는 순간의 연속선을 이어가면서 살고 있다. 지인의 권유로 더글라스 케네디의 '모멘트'를 읽었다. 오랜만에 집중해서 읽었던
소설이다.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이루지 못한 사랑을 다룬 애정소설이기도 하고, 동서독의 이념과 갈등 속에서 그의 희생양이 된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여행작가인 토마스와 동독에서 탈출한 페트라의 운명적 만남... 정말 그런 만남이 있을까? 첫눈에 반해버린다는 말을 이 소설에서는 운명이란 단어로 사랑이 시작되었다.
통일 이전의 독일 베를린 장벽 너머에 두고 온 아들을 위해 간첩활동을 해야 하는 페트라는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 토마스의 방송원고마저 카메라로 찍어 동독 비밀경찰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자식과 연인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녀. 사랑을 위해서 자식을 포기하려던 페트라는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던 중, 미국 CIA의 그물망에 걸려 결국 체포되어 동독으로 포로교환이 되고 만다.
체포 현장에서 그녀의 사랑에 대한 배신감을 느낀 토마스는 CIA에 잡혀가면서 해명하겠다는 그녀를 외면하고 만다. 아주 짧은 순간의 선택이었다. 토마스는 동독을 위해 간첩활동을 한
페트라가 자기의 사랑을 이용했다는 생각에 그녀의 말을, 그녀의 해명을 들어보려 하지 않았다.
물론 페트라의 간첩활동은 모두 사실이었다. 20여 년이 지난 후 그녀의 아들이 보내온 페트라의 일기에서 어쩔 수 없었던 그녀의 마음을 확인한 토마스는 당시 그녀의 해명을 들어주지
못했던 것에 대한 후회와 자괴감에 빠지고 만다.
그 순간의 선택이 토마스의 가슴 한 구석에 안타까움으로 남아있었고, 비록 자신을 속인 페트라였지만,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그녀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사랑 없이 결혼한 현재의 아내와는 이혼을 하게 된다. 함께 산다는 것이 꼭 사랑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사랑하면서도 운명적인 힘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이 있다는 걸 이 소설은 말해주는 것 같다.
지금 그대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가?
사랑을 지키지 못한 토마스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순간의 사랑이 소중하다고, 순간의 선택이 먼 훗날 우리도 그들처럼 가슴속에 안타까움으로, 애절함으로, 그리움으로, 후회로 남지 않도록 한번 더 생각하고, 한번 더 돌아보고, 한번 더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라고...
동독과 서독의 분단을 상징하는 베를린 장벽은 이제 허물어지고 없다. 토마스와 페트라는 이념이 쌓아놓은 장벽 앞에서 서로의 현실과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헤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작가는 통일 독일의 현재에 와서야 두 사람의 사랑을 하나로 통일시켜 사랑의 승리로 이끌어내었다. 사랑은 지금 이루지 못한다 해도 사랑이 아닌 게 아니다. 사랑은 국경을 넘어,
이념을 넘어, 인종을 넘어, 종교를 넘어, 현실을 넘어서 사랑 그대로의 사랑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가슴속에 사랑이 있다면 힘들고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한한 에너지가 되지 않을는지... 순간순간 불태우는 불꽃은 우리 삶의 원동력이 또한 될 게다. 매 순간 우리 앞에 다가오는 선택의 연속, 우리는 좀 더 생각하고 후회 없는 선택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어떠한 선택이든 그것은 우리의 운명적 선택일 수밖에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