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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탁 진 Dec 20. 2021

라면과 감잣국

맛의 비결은...


                 라면과 감잣국



  낮에 혼자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간혹 혼자 있는 날, 한 끼를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음식이 라면이 아닐까.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궁핍했을 때, 저렴한 비용으로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던 라면이, 지금은 세계적으로도 인기 있는 간편 조리식이 되었다. 요즘같이 밖에서 먹기 힘든 코로나19 시대에 집에서 간편하게 식사를 대용할 수 있어서, 우리나라 라면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이 더 높아졌다고 한다. 누구라도 냄비에 물을 넣고 끓여서 라면과 스프만 넣으면 간단히, 아주 빠른 시간 내에 만들어지는, 그리고 맛도 있는 게 바로 라면이다. 


  우리는 자라면서 처음으로 스스로 음식이라고 시도해보는 것이 라면이 아닐는지... 꼬불꼬불한 면발과 시원하고 얼큰한 국물 맛에 반해 내 어릴 적에는 많이도 먹었던, 지금도 자주 즐겨 먹는 라면...  아내는 몸에 별로 좋지도 않은 걸 뭐 그리 많이 먹느냐고 가끔 잔소리도 하지만, 그래도 나는 한 번씩 생각나면 냄비를 찾고, 물을 받아 가스레인지 위에 올리곤 한다. 


   예전에 어느 신문 기사에서 본 적이 있다. 평생 라면만 먹고 살아왔다는 사람이 있다고... 그래서 라면 회사에서 그에게 죽을 ‹e까지 라면을 무료로 공급하겠다고... 그런 걸 보면, 라면만 먹고살아도 금세 죽지는 않는가 보다...^^


  누구나 다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을 게다. 조리법이 아무리 간단하다고 해도 라면을 맛있게 끓인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닐 게다... 


  내가 대충 몇 살 때부터 라면을 직접 끓여먹었는지 기억은 거의 나질 않지만, 아들이 끓인 라면을 언제 먹어 보았는지는 오래전에 남겨진 내 글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아빠, 조금만 기다리세요. 다 되어가요."


  이것은 주방에서 울려 나오는 아들의 목소리다. 초등학교 4학년인데 일요일 점심으로 라면을 끓이고 있는 중이다. 


  우리 집 요리사는 어디 갔느냐고? 대학 동창들을 만나기 위해 아침부터 딸아이를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들과 나는 늦잠을 자고 일어나  대충 차려진 식탁의 반찬을 보다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너 라면 먹을래?"


  특히 라면 먹기를 좋아하는 아들은 얼굴에 웃음을 띄우면서 말했다.


  "오늘은 내가 라면을 한번 끓여 볼 게요. 아빠는 텔레비전 보면서 기다리세요."

  "너 라면 끓일 줄 아니?"

  "아빠가 끓여주는 라면은 너무 불어서 맛이 없어요."


  나는 속으로, '아니 이놈이 내가 끓여주는 라면이 맛이 없다고? 오냐! 니가 한번 끓여봐라...' 생각하면서 소파로 가 텔레비전 리모컨을 찾아 앉았다. 


  달그락 거리는 냄비 뚜껑 소리, 쏴아 하는 수돗물이 쏟아지는 소리, 탁탁 거리는 가스레인지 스위치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아들이 이제는 많이 자랐구나...


  나의 아버지도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내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여 자취를 하고 있었을 때, 아들을 보러 오시던 아버지는 오실 때마다 당신이 직접 찬거리를 사 와서 밥상을 차리곤 했었다. 


  동태찌개, 미역국, 콩나물 무침,... 아버지는 당신이 어릴 때부터 자취생활을 많이 했던 탓인지 웬만한 반찬은 손수 만들 줄 아셨다. 이미 장성한 아들의 음식 솜씨를 믿지 못하셨는지, 아직 당신의 눈에는 여전히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철부지 어린 아들로 보이셨는지, 당신의 음식 솜씨를 아들에게 보이고자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와 내가 있을 때는 항상 요리사는 아버지셨다. 


  특히 얼큰한 맛을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국이든 찌게든 벌건 고춧가루를 확 풀어놓아 나의 입안에 불을 질러 놓기가 일쑤였다. 


  한 번은 아버지에게 내가 밥상을 준비할 테니 들어가 텔레비전이나 보고 계시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니가 뭘 할 줄 아노? 내가 할게 니는 들어가 책이나 보거라" 


  그러나, 나는 이번만큼은 내가 한번 해보리라는 마음을 굳게 먹은 탓인지라 억지를 부려 결국 아버지를 방안으로 밀어 넣고 말았다.


  나는 감자를 깎고, 파도 씻어 적당히 칼로 자르고, 두부도 썰어 넣고, 국물 맛을 내기 위해 멸치도 몇 마리 넣고 물을 부어 석유곤로 위에 올려놓았다. 조그만 찬장을 뒤져 있는 것 없는 것, 양념이라 생각되는 것들은 조금씩 다 넣었다. 그런데 이게 국인지 찌게인지 탕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나는 냄비 채로 밥상에 올려 밥을 차려 방 안으로 들고 들어갔다. 아버지는 들어오는 나를 보고는 피우시던 담배를 끄고 미소를 지으시며 내가 끓여온 국에다 숟가락을 가져갔다. 국물 맛을 본 아버지는 그냥 허허하고 웃기만 했다. 나는 괜스레 쑥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싱겁나요? 간장 더 가져올까요?"

"아니다. 간장 말고 소금 있으면 가져와라.  니가 이제는 다 컸구나. 허허 "


  그날, 아버지는 그 맛없던 감잣국을 다 잡수셨다. 그때 웃으시던 아버지의 얼굴에 생겼던 세월의 흐름을 알리는 주름이 지금 내 얼굴에도 생기지나 않은지 모르겠다.


  "아빠, 다 되었어요. 식사하러 오세요."


  식탁 위에 냄비 채로 올려져 있는 라면을 보니 물을 적게 부었는지 퉁퉁 불어 있었다.


  아들의 옷소매는 물을 받을 때 젖었는지 축축한 물기가 배어있고, 가스레인지 주위에는 양파 조각들이 서너 개 널브러져 있었다.


  "이야! 맛있겠다. 더 퍼지기 전에 빨리 먹자."


  마주 앉은 아들의  얼굴이 빨개지면서 중얼거렸다.


  "물이 너무 적었나 봐요..."


  그러나, 나도 예전의 나의 아버지처럼 웃으며 그 불어 터진 라면을 아주 맛있게 다 먹어 치웠다.   


  아마도 나의 감잣국과 아들의 라면에는 사랑이라는 공통의 양념이 들어 있어서 그랬던 게 아닐는지... 


  요즘 마트에 가면, 라면 종류도 너무 많아서 어느 것이 맛있는지 고르기가 쉽지 않다. 남들이 맛있다고, 라면값이 좀 더 비싸면 맛이 더 있을까 싶어 먹어보면... 


  하지만, 대부분 예의 그 맛있던 라면에 비할 바가 못 되는 것은 내 입맛이 변해서일까? 이것저것 고급지고 맛있는 것에 길들여져서일까?


  아마도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정성과 마음이 그때와는 달라서 그런 게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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