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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탁 진 Jun 07. 2022

[동화]  매미

더운 여름 한나절...

                      매미



   햇볕이 내리쬐는 한여름 오후의 버드나무 가로수들은 더위에 지쳐 축 늘어져 있었다. 바람 한 줄기 불지 않았다. 등줄기를 타고 땀이 줄줄 흘러내릴 지경이었다. 나와 동생은 동네 아ㅣ들과 매미채를 들고 매미를 잡으러, 얼굴이 새까맣게 타는 줄도 모르고 돌아다녔다.


  대부분의 매미들은 나의 매미채 길이보다 높은 곳에서 울고 있었다. 손으로 햇빛을 가리며 높은 나뭇가지를 올려다보며 매미를 찾아보았다. 분명 머리 위에서는 맴맴 거리며 울고 있었지만, 매미들을 쉽게 발견할 수 없었다. 


  힘들게 한 마리 찾았으나 매미는 너무 높은 곳에서, "나 잡아봐라~ 맴맴~"하며 나의 매미채를 조롱하듯이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나보다 짧은 매미채를 가지고도 높은 곳의 있는 매미를 잘도 잡았다.


  그 아이들은 마치 원숭이라도 된 듯이 나무를 곧잘 탔다. 나무둥치를 끌어안고 팔과 다리를 교대로 움직여 어렵지 않게 나무 위로 올라갔다. 


 나는 나무를 잘 타지 못했다. 나도 한번 해보려고 했지만 땅에서 1미터도 못 올라가고 버둥버둥거릴 뿐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서너 마리씩 잡을 동안 나는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동생은 다른 아이들이 잡은 매미를 바라보며 부러워했다. 한 마리 얻어 보려 했지만 어렵게 잡았는데 왜 주냐고, 너도 나무에 올라가 잡으면 될 거 아니냐고 말했다. 


  나는 동생을 데리고 다른 나무로 갔다. 그러나, 매미들은 항상 나의 매미채 보다 높은 곳에만 앉아있었다. 낮은 곳에서 울고 있는 멍청한 매미는 찾을 수 없었다. 또 다른 나무로 옮겨갔지만, 역시 매미는 너무나 높은 곳에서 울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나의 뒤를 따라다니던 동생이 갑자기 외쳤다.

  "형아, 저기 저 매미가 있다."

  나는 동생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올려다보았다. 늘어진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매미를 발견했다. 날아가다가 가지에 걸렸는지 매미 한 마리가 버들잎에 매달려 있었다. 잘하면 나의 매미채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조심조심 매미채를 가져갔다. 매미는 꼬물꼬물 다시 날아 보려고 몸의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동생은 매미를 올려다보고 침을 꼴깍 삼키며 주먹을 꼭 쥐었다. 잡아라... 간절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제발 이번에는 놓치지 말고 조금만 더, 조금만..." 


  매미는 채가 자기의 등 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장대를 잡은 나의 손이 약간씩 떨려왔다. 나도 긴장하고 있었다. 이쯤이다 싶을 때, 매미채를 잽싸게 덮쳤다. 


  그 순간, 매미는 푸다닥 거리며 나의 매미채 속으로 날아들어갔다. 자기가 잡히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매미는 동네가 떠나갈 듯이 자지러지게 울어대었다.  

  "매앰~ 맴맴~~" 

  "야~~ 잡았다. 잡았어."

  동생은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매미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조심스럽게 매미채를 내렸다. 다른 나무에서 매미를 잡던 아이들이 동생의 신나는 고함소리에 우르르 몰려왔다. 


  나는 매미채에서 매미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동생은 우리도 드디어 한 마리 잡았다는 기쁨에 젖어 어쩔 줄 몰라했다.

  "야아~ 그거 울지도 않네. 하하하!"

  아이들 중 하나가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나는 매미를 살펴보았다. 정말 매미는 울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매미의 배를 살살 긁어보았지만 매미는 여전히 여섯 개의 발만 버둥거리며 울기는커녕,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입을 꾹 다물고만 있었다. 


 내가 잡은 매미는 암놈이었던 것이다. 다른 매미들 보다 덩치가 약간 더 커 보였다. 아이들은 다른 매미를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실망하고 말았다. 힘들게 한 마리 잡았는데 울지 않는 매미라니... 매미가 울어야 매미지... 그러나 동생은 좋아하고 있었다. 나에게 건네받은 매미를 들여다보며 여전히 얼굴에 싱글벙글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다른 아이들의 매미는 맴맴 잘도 울고 있는데, 우리의 매미는 그저 발만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나는 다시 다른 나무를 찾아갔다. 꼭 우는 매미를 잡으리라 입을 앙 다물었다.  


  해는 점점 기울어 나무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었다.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나는 나무 밑에서 매미를 찾기 위해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았다.  다시 한 마리를 발견했다. 분명 그 매미는 울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매미채보다 그놈도 더 높은 곳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결국 나무를 타고 올라가야 매미를 잡을 수가 있었다. 나는 나무둥치를 보았다. 중간중간 발을 디딜 만한 턱이 있었다. 겁은 좀 나긴 했지만 한번 올라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매미를 잡으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매미채를 동생에게 주고 손바닥에 침을 퉤퉤 뱉고  나무둥치에 달라붙었다. 땀을 뻘뻘 흘려가며 안간힘을 썼다. 다행히 둥치에 약간 튀어나온 부분을 밟고 나무 위로 조금씩 조금씩 올라갔다. 나무가 두 갈래로 갈라지는 부분까지 겨우 올라서 밑을 내려다보니 동생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떨어지지 않게 자세를 잡고  동생에게 매미채를 건네받았다. 매미채를 조심조심 끌어올리다가 나는 문득 맞은편 가지에서 꿈틀꿈틀  기어가는 벌레를 보았다. 송충이었다. 송충이가 아닌지도 몰랐지만, 아무튼 송충이처럼 징그럽게 생긴 벌레가 움직이고 있었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군데군데 몸에 털이 부슬부슬 흉측하게 생긴 송충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무서움에 떨며 빨리 잡고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울고 있는 매미를 바라보았다. 작은 가지 위에 매달려 매미는 더운 여름날의  하루가 다 가는 것이 안타까운지, 17년 동안 오직 한번 힘차게 울어 보려고 땅 속에서 굼벵이가 되어 살아왔던 지난날이 억울해서 그런지 마구마구 울기만 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동생이 아주 작게 보였다. 내가 이렇게 높이 올라오다니... 꼭 떨어질 것만 같아 몸이 으슬으슬 떨려왔다.

  동생은 매미를 잡는 것보다 높이 올라가 있는 내가 더 걱정되는 목소리로  말했다.

  "형아, 조심해라..." 


  나는 송충이들을 보지 않으려 애를 쓰며 매미채를 천천히 가져갔다. 충분한 거리였다. 매미는 자기에게 다가오는 위협을 느꼈는지 울음을 뚝 멈추었다.

  나는 긴장했다. 저 놈이 눈치를 챈 걸까. 나는 접근시키던 매미채를 허공에서 멈추었다. 주위는 고요했다. 다른 나무에서 울고 있는 매미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온 세상이 조용해졌다.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려 눈 안으로 들어왔지만 나는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나의 매미채와 목표물의 거리는  이제 50센티 정도밖에 남아 있질 않았다. 떨리고 있는 나의 손으로부터 진동이 전달되었는지 매미채가 약간 흔들렸다. 매미는 다시 "매애애애 매맴" 하고 울기 시작했다. 


  나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다시 매미채를 접근시켜 갔다. 다 왔다... 매미의 등 뒤에서 나는 매미채를 재빨리  덮쳤다. 매미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어리둥절했는지 가만히 나뭇가지에 그냥 붙어 있는 게 아닌가! 울음은 그쳤다. 그놈이 날아야 나의 매미채

안으로 들어올 텐데... 


  입술이 바싹바싹 말라왔다. 목도 마르는 것 같았다. 매미는 영리하게도 꼼짝을 하질 않았다. 오히려 당황스러운 것은 나였다. 매미는 조금씩 조금씩 몸을 틀고 있었다. 그대로 놓아두었다가는 나뭇가지의 반대쪽으로 돌아가 매미채의 포위망을 뚫고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매미채를 나뭇가지에 붙인 채로 긁어 내렸다. 그제야 매미는 "맴맴~ 나 죽네~~맴맴"하고 울부짖으며 매미채 안으로 날아 들어갔다. 

  "야~ 잡았다!" 

  동생이 소리를 질렀다. 나는 휴우 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매미는 나의 매미채 안에서 시끄럽게 버둥거리고 있었다. 비로소 나의 얼굴에 해냈다는 성취감에 웃음이 묻어났다.


  매미채를 내려 동생에게 넘겨주었다. 동생은 울고 있는 매미를 꺼내 들어 보이며 즐거워했다. 양손에 한 마리씩 잡고, 하나는 수놈 나머지 하나는 암놈. 하나는 우는 매미 나머지 하나는 울지 않는 매미... 


  그런데, 기쁨도 잠시 뿐이었다.  문제가 생겼다. 매미도 잡았고, 이제 내려가야 하는데 도무지 내려갈 수가 없었다.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야 깨닫게 된 것이다. 


  우물쭈물 자세를 고쳐 내려가려고 시도를 해 보았지만 쉽지가 않았다. 자꾸만 내가 있는 나무 위가 더 높아만 가는 것 같았다. 한번 느낀 공포는 더 많은 공포를 몰고 왔다. 내가 내려오지 못하고 당황해한다는 것을 안 동생은 얼굴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동생의 표정에 나는 더욱 겁이 났다. 그냥 뛰어내리기에는 너무 높은 높이였다.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는지 날은 서서히 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다른 나무에서 매미를 잡던 아이들도 집으로 돌아갔는지 보이질 않았다. 날이 어두워져 간다는 사실은 나를 더욱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해는 져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지만 나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가고 있었다. 


  동생은 울상이 되어 나를 올려다보고만 있었다. 해가 진 서쪽 하늘에 별 하나가 반짝이며 떠 있었다. 여름 서쪽 하늘, 해가 지고 나면 오롯이  혼자 반짝이는 별. 과학시간에  배워서 나는 그것이 금성이라는 것을 알았다. 개밥바라기 별이라고도 했다. 개가 저녁밥을 먹을 시간이었다. 마당에 있는 복돌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외롭게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바라보며 눈에서 눈물이 고이는 것 같았다. 나는 얼마나 시간이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나무둥치를 끌어안고 있었다. 


  동생은 울기 시작했다. 훌쩍이는 동생을 바라보다가 나는 다시 한번 용기를 내 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올라올 때의 옹이들은 어딜 갔는지 도무지 발끝에 닿지 않았다. 손에 힘도 떨어져 갔다. 버둥거리다 어느 순간 나는 나무둥치를 끌어안고 주르르 미끄러져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아픈 줄도 몰랐다. 


  손을 털고 일어서 보니, 팔뚝은 나무에 긁혀 피부가 벌겋게 벗겨져 있었다. 피가 조금씩 배어 나오고 있었다. 쓰리고 아픈 통증이 느껴졌다. 그러나 참을 수 있었다.

  "형아, 안 아프나?"

  동생은 팔뚝에 난 상처를 보며 울상을 지으며 물었다.

  "괜찮아, 어서 집에 가자. 엄마가 기다리실라..."

  동생의 두 손에 잡혀 있는 매미들을  보니 아픈 것도 잊어버리고 절로  웃음이 났다. 동생도 자기 손에 잡혀 있는 매미를 들어 보이며 좋아하고 있었다. 매미들은 다시 맴맴 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우리는 버드나무 가로수 거리를 걸어 집으로  갔다. 서쪽 하늘에 빛나는 별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그 별은 내가 나무 위에서 떨고 있을 때 보았던 외로운 별이 아니었다. 반짝반짝 아주 즐겁고 신나는 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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