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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탁 진 May 28. 2022

[연재 동화]  산지니, 다시 하늘로... 최종회

갈대밭에는 여전히 바람이 불고...


                    < 20 >     


    새날이 밝았다. 전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갈대밭은 시원한 강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맑게 개인 하늘에는 흰구름이 두둥실 떠가고 있었다. 


  땅꼬마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입맛도 없다며 먹이도 잘 먹지 않았다. 온종일 제 깃털 속에다 머리를 처박고 잠만 잤다. 깨어있을 때는 몸을 덜덜 떨었다. 산지니는 그런 땅꼬마가 걱정되어 날개를 펴서 꼭 안아주었다. 


  "아무래도 난 죽으려나 봐. 사람들이 말하던 그 몹쓸 병에 걸린 거 같아... 너도 내 곁에 있지 말고 어서 다른 곳으로 가. 너도 죽을지 몰라..."

  땅꼬마는 힘없이 다리를 뻗고 축 늘어진 채로 말했다.   

  "아니야. 난 괜찮아. 혼자 내버려 둘 수는 없어..."


  땅꼬마는 누운 채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보았다. 하늘에 저렇게도 많은 별이 있는지 전에는 몰랐었다. 

  "별이 참 많구나. 정말 아름답다. 나는 내내 땅만 보고 살았어. 먹이를 찾으려고 말이야. 지금 보니 머리 위에 저렇게 예쁜 별들이 많은 줄 몰랐어..." 

  땅꼬마는 곁에 있는 산지니를 한번 돌아보고는 계속 말을 이었다.

  "처음 너를 봤을 때는 난 많이 무서웠어. 생긴 게 꼭 칼처럼 온통 날카롭게 느껴졌거든... 그런데, 막상 친해지고 나니 이렇게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다니... 역시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니까... 후후." 

  산지니도 땅꼬마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빛을 잃고 누더기 위에 쓰러져 있었을 때, 벌레를 잡아와 산지니 앞에 놓아주며 처음으로 말을 걸어오던 땅꼬마였다. 산지니를 데리고 산책도 나가 주고, 소년과 함께 강변으로 나가 다시 비행을 할 수 있었을 때 같이 기뻐해 주었던 키 작은 오리가 아무래도 죽을 거 같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반짝거리는 별들이 꼭 맛있는 콩알처럼 보이는구나... 저거 주워 먹으려면 어떻게 올라가지? 난 날지도 못하는데 말이야. 너도 봤잖아. 내 장식용 날개... 피이. 하느님은 쓰지도 못하는 날개를 왜 달아주었나 몰라. 우습지? 근데 말이야... 가창오리들은 우리와 같은 오리인데, 그들은 멀리까지 날아다니는 걸 보면 원래 우리도 날았을 거야. 자꾸만 사람들이 주는 먹이에 길들여져서 나는 법을 잊어버렸는지도 몰라... 다시 태어나면 가창오리로 태어나고 싶어 그래서 넓은 세상을 자유롭게 날아다녔으면 좋겠어..." 


  산지니도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절벽 위 둥지에서 암컷과 함께 알을 품으며 가끔 밤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별들이 강물 위로 쏟아져내렸다. 수많은 별 중에서 유난히도 눈에 띄는 별이 하나 있었다. 항상 그 자리를 지키는 별. 북쪽 하늘에 떠 있는 붙박이 별은 새벽이 올 때까지 산지니의 가슴에 내려앉았다. 사냥꾼의 총에 죽은 암컷이 그 별에 갔을 거라고 생각했다. 잃어버린 새끼들도 그 별에 있을지도 몰랐다.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을 가족을 생각하며 어둡기만 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휙' 하고 별똥별 하나가 떨어졌다. 땅꼬마는 그 별똥별을 보았다. 땅꼬마는 고개를 들고 있는 산지니를 보며 아쉬운 미소를 지었다. 

  "매일같이 심심한 날들이었는데, 너를 만나고 나서 달라진 것 같아... 그동안 나만 생각하고 살았는데, 남을 위해 나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 아, 그리고 네 덕분에 하늘도 날아보았잖아... 네가 나를 군인들로부터 구해줄 때, 사실 좀 무섭기도 했지만, 하늘 높이  날아가면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정말 세상이 넓다는 걸 알게 되었어... 너를 만난 게 내게는 행운이었어... 고마워, 날아볼 수 있게 해 줘서..." 

  땅꼬마의 슬픈 눈망울이 흐려지더니 무거운 눈까풀이 스르르 내려왔다. 깊은 잠이 든 땅꼬마의 얼굴에 별빛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땅꼬마도 떠났다. 자기를 도와주던 이들이 하나 둘 곁을 떠나가니 마음이 아팠다. 다시 혼자가 된 산지니는 막막했다. 가만히 하늘을 날며 생각에 잠겼다. 앞으로 또 어떻게 살 것인가? 


  "꼬꼬댁 꼬꼬! 야! 이리 내려와라!" 

  갈대밭 아래에서 웬 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산지니는 지난번 갈대밭 참사 때 닭들이 다 죽었는 줄 알았는데, 어떻게 된 건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소리가 나는 곳으로 내려앉았다. 

  "누구야? 너는 어디서 왔어?" 

  "아, 지난번에 네가 닭장에서 탈출시켜준 닭이야. 꼬꼬. 하마터면 나도 잡혀 죽을 뻔했어." 

  "그런데, 어떻게 살아남은 거야? 그날 아마 다 죽었을 텐데..." 

  "군인들을 피해 도망가다가 하수구를 발견했지. 그곳에 숨어서 살 수 있었어. 꼬꼬." 

  산지니는 자기 앞에 있는 닭을 쳐다보다가 갑자기 뱃속에서 꼬르륵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고 보니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지니는 자기도 모르게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계속 여기서 살 수 있겠니?" 

  닭은 심각한 얼굴로 산지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혼자 갈대밭에서 살 수 있을는지..." 

  산지니는 자기 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닭의 움직임을 느끼며 어느새 발가락에 힘이 들어가고, 금세라도 날개를 펼쳐 달려들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야생의 본능이 꿈틀거리는 것 같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왜 그래? 얼굴이 빨개졌어. 꼬꼬." 


  "쉬익!" 

  분명 바람을 가르는 소리였다. 산지니는 그것이 산지니 같은 맹금류들이 먹이를 낚아챌 때 빠르게 나는 소리란 걸 알았다. 

  "조심해!" 

  그러나, 이미 늦었다. 순식간에 뭔가가 날아와 산지니의 앞에 있던 닭을 채갔다. 산지니는 재빨리 그 뒤를 따라 날아올랐다. 

  "누구야! 거기 서라!" 

  바람 속에서 날갯짓하는 소리를 들으며 날아갔지만, 금세 소리는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산지니는 할 수없이 갈대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하나 남았던 닭마저 잡혀가다니... 자신이 구해준 닭을 잠깐이나마 잡아먹으려 했던 것에 닭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누굴까? 먹이를 채 가는 방법이나 날아가는 움직임으로 보아 아무래도 산지니와 같은 매처럼 여겨졌다. 강변에 다른 매가 살고 있는 걸까? 예전에는 없었는데... 누가 이곳에 새로운 둥지를 튼 것은 아닐까? 산지니는 몺씨 궁금해졌다. 


  한낮의 햇볕을 피해 하수구 그늘에 누어 굶주린 배를 달래며 쉬고 있던 산지니는 뭔가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에 고개를 쳐들었다. 머리 위 하늘에서 날개를 파닥거리며 누군가 울고 있었다.    

  "꺼어억 꺼어억!" 

  매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아직은 어린 듯한 목소리긴 해도 힘이 있었다. 산지니는 소리가 난 곳으로 갔다. 뭔가 동물의 살점에서 나는 비린내가 풍겨왔다. 산지니는 발을 더듬어 보았다. 발 끝에 속을 파헤쳐놓은 닭이 만져졌다. 그것은 아까 산지니 앞에서 누군가에게 잡혀갔던 닭의 몸뚱이였다. 

  "꺼어억 꺼어억~" 

  하늘 위에서 매가 크게 한번 울고는 멀리 날아가버렸다. 산지니는 생각했다. 아마 자기가 먹다 남은 닭을 산지니에게 먹으라고 갔다 주었을 거라고...


  산지니는 죽은 닭에게 미안했지만, 배도 고프기도 하여 천천히 닭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그동안 자기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괜스레 기분이 이상해졌다. 누굴까? 혹시 둥지에서 사라졌던 새끼는 아닐까? 살아있다면 지금쯤 날아다닐 정도는 되었을 텐데... 다시 눈을 떠 새끼를 보면 알아볼 수는 있을까? 산지니는 묵묵히 닭의 내장을 씹으며 생각에 잠겼다. 


  "깽깨갱 깽깽~ 깽깽깽~" 

  늦은 오후, 갈대밭에서 꽹과리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갈대들도 놀라 몸이 휘청거리고 날아다니던 새들도 화들짝 놀라 바닥으로 떨어졌다. 

  "저건 또 무슨 소리야! 하마터면 간 떨어질 뻔했잖아..." 

  소년이 강변 모래톱에서 힘차게 꽹과리를 치고 있었다. 소년은 꽹과리를 치면서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소년의 곁에는 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소리가 시끄러운 듯이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있었다. 

  "올 때가 되었는데... 혹시 다른 곳으로 간 것은 아닐까?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어서 와라." 

  소년은 열심히 꽹과리를 두들겨대고 있었다.

  "정말 눈이 보이지 않는 매가 있다는 거야? 그렇게 해서 아직 살아있을 수 있겠니?" 

  "아! 저기 와요! 저길 보세요." 

  소년이 가리킨 쪽을 보니 정말 매 한 마리가 소년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산지니는 갑자기 온 강변에 울려 퍼지는 꽹과리 소리에 가슴이 뛰었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소리인가! 저 소리는 소년이 자기를 위해 쳐 주던 꽹과리 소리였다. 소년이 돌아온 걸까? 산지니는 서둘러 소리를 향해 날아갔다. 


  산지니는 소년이 있는 모래톱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소년이 달려와 산지니를 품에 앉고 반가운 얼굴로 말했다. 

  "살아있었구나. 정말 다행이야. 어떻게 지냈니?" 

  산지니도 오랜만에 만난 소년의 품에서 기쁜 눈물을 흘렸다. 

  "대단하구나. 눈도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날아다닐 수가 있는 거지? 나름대로 적응을 잘하며 살았구나... 어디 한번 보자." 

  소년의 곁에 있던 남자가 산지니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야생동물 보호소로 데려가서 치료를 해보자꾸나. 잘만 하면 눈을 뜨게 할 수도 있을 것 같구나..." 

  소년은 얼굴이 환해지며 산지니를 꼭 끌어안아주었다. 산지니도 소년의 품에서 피곤하고 지친 몸과 마음을 편안히 내맡겼다. 



                   < 에필로그 >


  가을이 무르익어갔다. 누렇게 갈대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쏴아~'하고 파도소리를 냈다. 멀리 하늘 저편에서 한 무리의 새 떼가 날아오고 있었다. 그들은 까맣게 하늘을 뒤덮더니 강물에, 갈대밭에 무리를 지어 내려앉았다. 봄에 북쪽으로 떠났던 가창오리들이었다. 


  갈대밭에서는 들고양이 한 마리가 강물에 내려앉는 가창오리들을 쳐다보며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어서 뭍으로 올라와 둥지를 만들어라. 야옹~" 

  들고양이는 모래톱을 기어가는 들쥐를 발견하고 잽싸게 달려갔다. 

  "거기 섰거라! 야옹~" 

  들고양이가 막 들쥐를 덮치려고 할 순간, '파악!'하고 바람이 지나가더니 들쥐가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들고양이는 놀라 고개를 쳐들었다. 멀리 하늘로 날아가는 매의 발에 자기가 노리던 들쥐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아니, 저것이! 내 먹이를 훔쳐가다니... 야옹야옹~ 분해라." 

  아직은 어려 보이는 매 한 마리가 산등성이 너머로 날아가고 있었다.  


  가창오리 한 마리가 홀로 강변을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그는 노랑  부리였다. 노랑 부리는 누군가를 찾는지 산으로 절벽으로 날아다니고 있었다. 갈대밭 위를 몇 번이고 날아다녔다. 

  "엄마. 어딜 그렇게 혼자 다녀요? 누굴 찾는데요?" 

  역시 부리가 노란빛을 띤 어린 가창오리 한 마리가 그 뒤를 따라다니며 물었다. 

  "죽었을까? 아무도 돌봐주지 않아서 굶어 죽었는지 알 수가 없구나.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네..." 

  "누구 말인데요?" 

  이곳에 매가 살고 있었단다. 나를 구해준 착한 매였는데, 눈을 다쳐서 그만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지. 여기에 머무는 동안 내가 그의 눈이 되어주었는데. 어디로 간 걸까?"

  노랑 부리는 사라진 산지니를 떠올리며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에 가려있던 해가 환한 얼굴을 드러냈다. 


  흑갈색 깃털이 빛을 받아 반짝이고, 부리부리한 눈매, 한번 쪼이면 금방 숨이 끊어질 듯한 부리, 활짝 펼치면 하늘을 뒤덮을 만큼 거대한 날개, 아무리 단단한 돌멩이라도 움켜쥐면 부수어버릴 수 있는 발, 칼날보다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산지니는 정말 멋있는 친구였다. 그의 모습이 아른거리며 떠올랐다. 노랑 부리의 두 눈에 작은 물방울이 맺혔다. 

  "엄마. 이제 돌아가요." 

  노랑 부리는 새끼를 데리고 가창오리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파란 하늘에는 가을 햇살이 따스하게 그들을 비추고 있었다. 


  석양에 물든 강물이 황금빛 물 비늘을 만들며 유유히 흘러갔다. 갈대밭을 날아다니던 새들도 저마다 둥지를 찾아갔다. 들쥐들도 줄줄이 집으로 돌아갔다. 해가 지는 강변에 개구리들이 개골개골 집 떠난 가족들 모두 모두 집으로 오라며 울어댔다...... (끝)



  ** 연재를 마치면서... 


  전체적인 줄거리는 잡고 시작한 연재였지만, 가능하면 이틀 간의 시간을 지키려 애를 썼다. 작은 나와의 약속이지만, 다행스럽게도 마지막까지 오게 되어 기분이 좋다.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무언가 하나를 완성했다는 것에 스스로 마음이 뿌듯한 거 같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누구나 상처는 가지고 산다. 그것이 크든 작든, 몸이든 마음이든,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절대적이든 상대적이든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쯤은 삶에서 느끼는 약점이 있을 게다. 


  아동문학 공부를 하고, 동화를 쓰면서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어른이 동화를 쓴다는 것... 아이들이 이런 동화를 읽기나 할까? 오랜 시간 동화를 쓰면서 한 가지 작게 깨달은 게 있다면, 독자의 마음에 동심의 씨를 뿌리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글을 쓰면서 나 자신의 마음밭을 개간하고, 씨를 뿌리고, 그름을 주며 동심이라는 열매를 가꾸어온 것 같다... 

     

  동            심을 지니고 사는 어른... 내가 살고 싶은 삶이다... 


  여기까지 산지니와 함께 오신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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