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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탁 진 May 26. 2022

[연재 동화]  산지니, 다시 하늘로... 19편

갈대밭을 적시는 눈물...

                    < 19 >


  다음날, 동네에서는 마을 사람들과 방역작업을 하러 온 군인들이 사라진 닭들을 찾느라 소동이 벌어졌다. 

  "밤새 그 많은 닭들이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닭장에 구멍이 뚫려있는 걸 보면 분명 오소리 같은 짐승이 잡아갔을 텐데... 그런데, 한 마리도 아니고 어떻게 모두 다 없어졌는지 모르겠네."

  방역 책임자는 닭들이 사라진 닭장을 들여다보며 머리를 갸웃거렸다.  군인들이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찾아보았지만, 어디에도 사라진 닭은 없었다. 혹여라도 닭들이 다른 동네로 달아났다면 큰일이었다. 조류독감이 전국으로 퍼지는 것은 시간문제였으니, 한시라도 빨리 그들을 찾아 병이 옮기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했다. 


  "여기다! 여기 발자국들이 찍혀 있다!"

  사라진 닭들의 행방을 찾던 군인의 외침이 들려왔다. 사람들이 우르르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어디야, 어디?"

  군인이 가리키는 담벼락 밑에는 길게 닭들이 지나간 흔적이 남아있었다. 사람들이 닭 발자국의 방향을 따라 고개를 들어 보니, 그것은 강변으로 가는 길이었다. 

  "닭들이 강가로 갔나 보다." 

  "강으로 갔다면 거기에는 갈대밭이 있는데... 갈대밭에 숨었다면 쉽게 찾기도 힘들 텐데..." 

  마을 사람들의 말에 방역 책임자는 서둘러 군인들을 데리고 강으로 달려갔다.


  "꼬끼오~~ 아, 아침 해가 떴구나." 

  밤새 갈대밭에서 웅크리고 잤던 닭들이 하나, 둘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닭장이 아니라 사방이 탁 트인 갈대밭에서 닭들은 혹여라도 오소리 같은 짐승들이 공격해올까 겁을 잔뜩 집어먹었으나, 그래도 무서운 매가 주위를 돌아다니며 자기들을 지켜주었기 때문에 무사히 잠을 잘 수 있었다.

  "꼬꼬꼬... 아, 배고파. 먹이통은 어디 있는 거야?" 

  "여긴 집이 아니야. 먹이도 없어...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긴, 각자 알아서 먹이를 찾아 먹어!" 

  서너 마리씩 모여 아침 식사를 걱정하는 닭들을 바라보며 땅꼬마가 소리쳤다. 닭들은 그제야 지금 자기들이 처한 상황을 깨달았는지 갈대들 사이로 돌아다니며 벌레를 찾아 나섰다. 


  "아, 왜 이렇게 시끄러운 거야? 저것들은 또 뭐야?" 

  강변에 사는 새들이 갑작스럽게 나타난 닭들을 보고 놀라 갈대밭 위를 날아다녔다. 

  "아니, 저것들은 집에서 사는 닭들인데, 여긴 어떻게 온 거야? 동네 오리와 닭은 아마 다 죽었을 텐데... 군인들이 다 잡아서 땅에 파묻었다고 하던데... 아, 시끄러워 죽겠네." 

  "에그머니, 우리가 먹을 먹이를 다 주워 먹는 건 아닌가 몰라... 빨리 갈대밭에서 쫓아내야 하는데..." 

  열심히 머리를 처박고 발바닥으로 땅을 파헤치며 벌레를 잡아먹는 닭들을 내려다보고 새들은 애가 탔다. 

  "야! 너희들 갈대밭에서 나가라! 여긴 우리 구역이야. 너희가 살 곳이 아니야!" 

  그러나, 닭들은 머리 위에서 새들이 떠들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먹이를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닐 뿐이었다. 갈대밭에서는 꼬꼬댁 꼬꼬 하는 닭 울음소리만 가득 찼다. 


  멀리 마을 쪽에서 '삐웅삐웅--'하고 방역차 소리가 들려왔다. 산지니와 땅꼬마는 아무래도 군인들이 도망쳐 나온 닭들을 찾아올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해졌다. 더 멀리 달아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모두 모여라~ 꽥꽥!" 

  땅꼬마가 갈대밭에서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먹이를 찾는 닭들을 향해 소리쳤다. 

  "왜 갑자기 모이라는 거야? 아직 배도 덜 채웠구먼..." 

  "재는 뭔데 우리 보고 오라 가라 하는 거야? 우리 대장이라도 되는 거야? 꼬꼬." 

  산지니도 땅꼬마를 거들어 목소리에 힘을 실어 소리쳤다. 

  "빨리 모여라! 죽기 싫으면 우리가 하는 말 잘 들어야 해~" 

  산지니의 저승사자 같은 목소리에 닭들은 기가 죽어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모여들었다. 

  "왜 모이라는 거야? 아침밥 먹기도 바쁜데 말이ㅑ...꼬꼬댁!" 

  여기저기에서 불만에 쌓인 닭들이 군지렁거렸다. 

  "어서 더 멀리 달아나야 해. 여기에 있다간 군인들에게 잡힐 거야. 마을로 군인들이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어. 빨리 이곳을 벗어나자. 꽥꽥." 

  땅꼬마의 말에 닭들은 겁을 집어먹었는지 이내 조용해졌다. 머리를 맞대고 수군거리던 닭 한 마리가 말했다. 

  "하지만, 여기도 안전할 것 같은데... 갈대들 사이에 숨어있으면 어떻게 우리를 찾아낼 수 있겠어? 넓은 갈대밭에서 숨바꼭질이라도 한다면 군인들이 우리를 찾을 수는 없을 거야. 안 그래? 꼬꼬." 

  "꼬꼬댁! 그래, 맞다. 우리를 쉽게 잡을 순 없을 거야. 도망간다면 어디로 갈 건지... 멀리 걸으면 다리도 아픈데 그냥 여기에 숨어 있는 게 나아..." 

  닭들은 그 말에 수근이 가는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쳤다. 


  땅꼬마와 산지니는 난감해졌다. 

  "그렇지 않아! 여기는 안전한 곳이 못 돼! 빨리 도망가야 해! 꽥꽥." 

  "야! 우리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너희들이나 도망가라! 꼬꼬댁!" 

  "우리도 생각이란 게 있어. 우리를 바보로 아는 거야 뭐야? 꼬꼬. 어서 모이나 찾으러 가자." 

  닭들은 땅꼬마와 산지니를 두고 모두 갈대밭으로 흩어져버렸다. 땅꼬마는 산지니를 쳐다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멀리 서쪽 하늘에서는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정말 도망친 닭들이 모두 갈대밭에 들어가 있구나. 이 넓은 갈대밭을 포위하려면 더 많은 병력이 필요하겠네. 이봐! 어서 지원 요청을 해!" 

  갈대밭에 도착한 방역 책임자가 상황을 파악하고 부하직원에게 지시했다. 

  "모두 갈대밭으로 들어가 닥들을 잡아라! 한 마리도 놓치면 안 된다. 어서 서둘러라! 하늘을 보니 비가 올 것 같아... 자! 빨리 시작해!" 

  군인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늘어서서 갈대밭으로 들어갔다. 군인들을 보고 놀란 닭들이 꽁지를 빼며 갈대 다리 사이로 정신없이 숨어들었다.  

  "꼬꼬댁 꼬꼬! 날 살려라! 아, 살려 줘!" 

  여기저기에서 군인들에게 잡혀가는 닭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갈대밭에서는 닭과 군인들의 쫓고 쫓기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촘촘히 자라 있는 갈대들을 헤치고 닭을 쫓는 게 쉽지는 않았다. 이를 지켜보던 방역 책임자가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아, 여기 갈대밭인데, 아무래도 저 놈들을 갈대밭에서 끄집어내려면 최루 차가 필요할 거 같아. 어서 출동해 줘!"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 마크를 단 차가 갈대밭에 도착했다. 얼굴에 방독면을 쓴 군인들이 갈대밭을 돌아다니며 희뿌연 가스를 뿜기 시작했다. 온 갈대밭이 연기가 피어나듯이 하얗게 덮였다.

  "콜록콜록! 에고, 눈 따가워 죽겠네... 꼬꼬댁!" 

  "아니, 이게 뭐야? 에취! 아, 눈물이 절로 흐르네... 콜록콜록... 사람 살려~ 아니, 닭 살려라!" 

  갈대밭에서 도망치던 닭들은 매운 최루가스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디로 도망가야 할지를 몰라 우왕좌왕하다가 군인들에게 덥석 잡혀 마대 자루 속으로 들어갔다. 최루가스를 견디지 못한 닭들은 갈대밭에서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기다리고 있던 군인들은 손쉽게 비틀거리는 닭들을 주워 들었다. 


  "어서 이리로 와! 빨리 강으로 도망쳐! 꽥꽥꽥!" 

  땅꼬마가 어디로 도망갈지를 몰라 헤매는 닭들에게 소리쳤다. 땅꼬마도 눈이 매워 눈물이 줄줄 흘리고 있었다. 산지니도 눈이 맵고 코가 따가웠다. 

  "어서 도망가자! 강으로 가면 군인들이 따라오지 못할 거야." 

  정신을 차린 닭들이 땅꼬마의 뒤를 따라 후다닥 달렸다. 산지니도 날개를 펴 하늘로 날아올랐다. 등 뒤에서 군인들의 발자국 소리가 따라왔지만, 하늘로 날아간 산지니를 잡을 수는 없었다. 

  "빨리 잡아라! 한 놈이라도 놓치면 안 된다.  


  강가로 달려온 땅꼬마가 물로 뛰어들었다. 뒤이어 따라온 닭들은 강물 앞에서 주춤 걸음을 멈추었다. 

  "왜 그래? 빨리 들어와라! 군인들이 따라오잖아. 어서어서!" 

  하지만, 강물 앞에서 닭들은 움직일 수 없었다. 시퍼런 강물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떻게 물에 들어가지? 우린 한 번도 물에 들어간 적이 없는데... 꼬꼬."

  "그래 말이야. 우린 닭장 속에서만 살았는데, 물이라곤 주인이 주는 물통의 물만 먹고살았는데... 꼬꼬. 이걸 어떡하나... 군인들이 달려오고 있잖아. 아!" 

  땅꼬마가 또다시 소리쳤다. 

  "괜찮아, 너흰 수영을 할 수 있어! 나처럼 똑같이 생겼잖아. 어서 물에 뛰어들어라! 안 그러면 군인들에게 잡혀 죽어! 꽥꽥!" 

  강물 앞에서 우물쭈물하던 닭들이 마대 자루를 들고 다가오는 군인들을 보고 놀라 어쩔 수없이 강물로 뛰어들었다. 

  "어푸어푸~ 아, 수영이라는 건 어떻게 하는 거야? 꼬르륵 닭 살려라~" 

  막상 물에 뛰어든 닭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거리다가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태어나 물에서 한 번도 놀아본 적이 없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눈앞에서 강물에 빠져 죽어가는 친구들을 본 닭들은 온몸이 굳어버린 듯 꼼짝도 못 하고 주저앉아 있었다. 그들은 이내 달려온 군인들에게 모두 잡히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꼬꼬댁! 아! 살려줘!" 

  온 갈대밭에 닭들의 비명 소리로 가득 찼다. 산과 들에 사는 새와 동물들은 그런 광경에 눈살을 찌푸리며 안타까워했다. 세상에 억지로 죽어야 하는 목숨이 어디 있으랴... 모든 생명은 저마다 태어난 이유가 있을진대, 사람들은 왜 자기들이 남의 목숨을 함부로 한단 말인가...


  강물 위에 동동거리며 떠있던 땅꼬마는 도망도 못 치고 잡혀 죽어가는 닭들을 슬프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강물 위를 나는 산지니의 눈에서도, 강물에 떠 있는 땅꼬마의 눈에서도 눈물만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날 밤, 갈대밭에서는 우르르 쾅쾅 천둥이 치고 많은 비가 내렸다. 낮에 군인들에게 짓밟혀 쓰러졌던 갈대들도 쏟아지는 빗물에 매운 최루가스를 씻어내었다. 비는 밤새 내렸다. 낮에 갈대밭에서 일어났던, 처참하게 죽어간 닭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듯 하늘은 밤새도록 굵은 눈물 줄기를 쏟아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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