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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탁 진 May 24. 2022

[연재 동화]  산지니, 다시 하늘로... 18편

죽음으로부터 탈출... 


                    < 18 >


  맑게 개인 하늘에 눈부신 해가 떠올랐다. 갈대밭에서 사는 새들은 동네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여기저기 모여 조잘대고 있었다. 

  "군인들이 닭과 오리들을 무자비하게 죽여 마대 자루에다 쑤셔 넣고 산에다 파묻었다고 하네. 불쌍해 죽겠네...."

  "아직 병이 든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잡아 죽인다니? 가만히 놔둬도 죽을 놈은 죽고, 살 놈은 살 텐데 말이야..."

  "사람들이 주는 밥 편하게 받아먹고살아서 좋을 줄 알았는데, 갇혀서 꼼짝 못 하고 죽어야 한다니... 하루 종일 먹이 구하러 다니느라 힘든 우리지만, 자유롭게 사는 우리가 더 좋아... 좀 배가 고프긴 하지만. 안 그래?"


  멀리 땅꼬마가 살던 동네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불이 났나 봐."

  "아냐, 저건 방역차가 소독하는 거야. 아까 아침에 앵앵거리며 차 소리가 들렸어."

  땅꼬마는 산지니와 함께 연기가 피어나는 동네를 바라보며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아마 나와 같이 살던 오리와 닭들이 다 죽었을 거야. 불쌍해서 어떡해..."

  산지니도 마음이 무거웠다. 처참하게 죽어갔을 목숨들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니 더 답답해 긴 한숨만 나왔다. 


  등 뒤에서 꼬꼬댁하는 닭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도 간신히 살아서 도망쳤다. 꼬꼬." 

  땅꼬마와 같이 살던 닭 두 마리가 피곤에 지친 얼굴로 걸어오며 말했다. 

  "다행이구나. 너희들이나마 살아남았으니..."  

  땅꼬마는 반가운 얼굴로 닭들에게 다가가서 꼭 안아주었다. 


  해가 저물어 강물 위에 긴 산 그림자가 갈대밭으로 다가왔다. 갈대들이 시원한 저녁 바람에 몸을 흔들며 사르르 사르르 춤을 추었다. 

  "가자!"

  갈대 다리 사이에 축 늘어져있던 땅꼬마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어머! 놀랬잖아. 가긴 어딜 가? 꼬꼬."

  꾸벅꾸벅 졸고 있던 닭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산지니도 땅꼬마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아직 동네 닭들이 다 죽지는 않았을 거야. 우리가 구출해 오자."

  "꼬꼬꼬... 우리가 어떻게? 무슨 힘이 있어서? 동네에 가자마자 잡혀 죽을 텐데... 겨우 죽어라 달려서 도망쳐 왔구먼..."

  "그래, 다시 죽으러 갈 수는 없어... 무서워... 난 싫어. 꼬꼬"

  산지니는 가만히 땅꼬마를 바라보았다. 

  "밤에는 군인들이 없을 거야. 사람들도 잠을 자야 하니까. 한밤중에 몰래 동네로 들어가 닭들을 구출해내면 될 거야. 너의 생각은 어때?"

  산지니는 오소리와 함께 땅꼬마의 집에 닭을 훔치러 갔던 일이 떠올라 괜스레 머쓱해졌다. 

  "우리가 할 수 있을까? 닭장에 어떻게 구멍을 내지?" 

  "너의 힘센 부리와 날카로운 발톱이라면 방법이 있을 거야. 일단 가보자." 

  땅꼬마는 산지니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나도 가겠어. 닭장의 구조라면 내가 제일 잘 알잖아. 꼬꼬댁."

  처음에 겁을 먹었던 닭이 말했다. 

  "그럼 어쩔 수없이 나도 가야겠네... 닭들을 진정시키고 길 안내도 해야 하고... 꼬꼬..."


  밤이 깊어 밤하늘에는 별들만 반짝이고 있었다. 마침 달은 보이지 않아 동네로 들어가는 길은 많이 어두컴컴했다. 

  땅꼬마가 제일 앞에서 걸어가고, 산지니가 뒤에서 걸어갔다. 닭 두 마리가 산지니를 놓칠세라 종종걸음으로 따라갔다. 그러나, 아무도 발걸음 소리를 내지 않았다. 

  "아! 저기 저 집에서 닭울음소리가 난다!"

  닭이 동네 어느 집 대문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쉿! 조용해...  다 깨갰어... 쉿..." 

  땅꼬마가 입에다 손가락을 대며 닭을 진정시켰다. 

  "그래, 들어가 보자. 모두 조용히 하고..." 

  땅꼬마와 산지니, 그리고 닭들이 몸을 잔뜩 낮추며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저기다 저기..." 

  닭이 제일 먼저 닭장 앞으로 갔다. 뒤이어 산지니와 땅꼬마가 닭장을 올려다보았다.  

  "얘들아. 모두들 자니?"

  닭장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간간히 훌쩍거리는 소리만 작게 들려왔다. 닭이 모이통 위에 올라서 안을 들여다보니 닭들이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내일이면 우리도 다른 집 닭들처럼 모두 죽을 텐데... 어쩌나... 훌쩍훌쩍." 

  "아직 게란도 제대로 낳아보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빨리 죽어야 되다니...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엉엉... 억울해서 못 죽겠네..." 

  닭 장안은 이미 초상집 분위기였다. 


  땅꼬마가 모이통 위로 올라와 안을 들여다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야, 그만들 울고 내 말 좀 들어 봐." 

  갑자기 나타난 오리와 닭을 보며 깜짝 놀란 닭들이 저승사자라도 본 듯이 고개를 파묻었다. 

  "누, 누구야!" 

  "우리가 너희들을 구해주러 왔다. 모두 조용히 해라. 주인이 깨면 안 되니까. 알았니?" 

  땅꼬마와 함께 간 닭이 닭장을 이리저리 훑어보며 탈출구를 찾아다니더니,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가 제일 약할 거야... 저기를 뜯으면 될 거야." 

  땅꼬마는 산지니를 데리고 닭이 가리킨 닭장의 귀퉁이 앞으로 갔다. 산지니는 뾰족한 부리로 쪼고, 힘센 발과 발톱을 이용해 닭장을 잡아 뜯었다. 용을 쓰느라 이마에서 땀방울이 흘러내렸지만, 저 닭장 안에 갇힌 목숨들을 구해야 된다는 생각에 힘을 내었다. 


  잠시 후, 닭장 귀퉁이에 닭이 빠져나올 정도로 작은 구멍이 뚫렸다. 땅꼬마가 구멍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자, 어서 이리로 나와... 모두 입 다물고 소리 내면 안 된다. 알았어?" 

  한 마리, 한 마리, 또 한 마리씩 닭들이 차례로 구멍을 통해 닭장 밖으로 폴짝 뛰어내렸다. 드디어 살았다는 생각에 닭장을 탈출한 닭들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다. 

  "자, 모두 나란히 한 줄로 서라... 입 다물고... 들키면 끝장이다... 어이, 너 말 안 들을 거면 다시 닭장 안으로 들어가는 게 어때? 꼬꼬." 

  산지니와 함께 간 닭이 앞에 서서 대장이라도 된 듯이 무게를 잡으며 질서유지를 하고 있었다. 

  "어서 빠져나가자. 모두 내 뒤를 따라와라." 

  땅꼬마와 산지니가 앞장을 서서 대문을 빠져나가고, 닭들이 줄을 지어 그 뒤를 따랐다. 


  어두운 한밤중, 마을길을 따라 긴 행열이 만들어졌다. 아무도 모르게 수십 마리의 닭들이 조용한 발걸음으로 갈대밭을 향해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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