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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탁 진 May 22. 2022

[연재 동화]  산지니, 다시 하늘로... 17편

마을에 닥친 불행...


                    < 17 >



  어느새 산과 들에는 가을이 찾아와 노랗게 물들었다. 산지니가 사는 갈대밭에도 키 큰 갈대들이 바람에 휩쓸리며 이리저리 춤을 추었다.  


  "삐웅삐웅- 삐웅삐웅-"

  마을 쪽에서 요란스럽게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 생겼나 궁금했지만, 오소리를 쏘아 죽인 사냥꾼이 생각나 반대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군인들이 동네에서 키우는 닭과 오리들을 마구 잡아서 땅에 파묻는대."

  "세상에! 도대체 무슨 일이래?" 

  발아래 갈대밭에서 들새 두 마리가 동네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산지니는 다시 방향을 바꾸어 갈대밭으로 내려갔다. 

  "마을에서 무슨 일이 있는 거니?"

  갑자기 나타난 산지니를 보고 새들이 깜짝 놀라서 파닥파닥 날갯짓을 했다. 

  "걱정 마라. 해치지 않을 테니." 

  들새들도 이미 산지니가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의 무시무시한 부리와 발톱 앞에서는 저도 모르게 오줌을 찔끔거릴 만큼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 아, 예. 이웃 동네에서 닭들이 조류독감인지 뭔지 하는 전염병에 걸려 죽었다고 하네요. 다른 곳으로 병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살아있는 닭과 오리들을 죽여 땅에 파묻는다고 하는 걸 들었어요." 

  "군인들이 살아있는 오리를 산 채로 마대자루에 쑤셔 넣는 것도 봤어요. 꽥꽥거리며 울부짖는 모습이 정말 불쌍해서 차마 눈 뜨고 못 보겠어요."


  산지니는 할아버지 집에서 살던 땅꼬마가 생각나 마을로 날아갔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직 병에 걸리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은 왜 살아있는 닭과 오리를 죽이는지 알 수가 없었다. 조용했던 동네는 붕붕거리는 차 소리, 사람들 떠드는 소리, 목이 터져라 울부짖는 닭과 오리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꼬꼬댁! 꼬꼬! 살려 줘! 왜 날 잡아가는 거냐?"

  "꽥꽥! 너희들이 뭔데 우리를 죽이는 거야? 난 아직 죽을 때가 안 됐어. 꽥꽥꽥!" 

  여기저기에서 피비린내가 났다. 마을 사람들은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한숨만 내쉬었다. 할아버지도 할머니와 함께 마당에 서서 작업을 하는 군인들을 침통한 얼굴로 지켜보았다. 시뻘건 고무장갑을 낀 군인들은 닭장 문을 열고 발버둥 치는 닭을 잡아 마대자루에 집어넣었다. 오리들도 같은 신세였다.

  "영감. 그래도 나라에서 보상을 해준다니 다행이지 뭐유. 멀쩡히 살아있는 저것들을 죽여야 하니 마음은 아프지만... 에고, 불쌍한 것들."


  오리 한 마리가 후다닥 마당으로 뛰어나가더니 열린 대문 밖으로 쏜살같이 달아났다. 

  "잡아라! 저놈 잡아! 놓치면 안 된다. 한 마리라도 살려두면 안 돼!"

  군인들이 달아난 오리를 뒤따라 달려갔다. 정신없이 달아난 건 땅꼬마였다. 땅꼬마는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잡히면 죽는다는 걸 잘 알기에 젖 먹던 힘까지 내어 뛰고 또 뛰었다. 군인들이 쿵쿵 군화 발소리를 내며 뒤에서 따라왔다. 


  땅꼬마는 하늘에서 빙빙 돌고 있는 산지니를 발견했다. 자기도 새처럼 훨훨 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날개를 펴고 퍼덕거려보았다. 하지만, 땅꼬마의 뚱뚱한 엉덩이를 들어 올리지는 못했다. 날개가 있다 한들 위급한 이 순간에는 아무 소용없는 장식품에 불과했다. 

  "살려줘! 꽥꽥! 야! 어서 내려와서 나를 데려가!" 

  산지니는 다급하게 자기를 부르는 오리의 목소리를 들었다. 땅꼬마였다. 군인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꽥꽥거리는 목소리와 군인들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방향을 잡고 아래로 내려갔다. 산지니가 자기를 향해 내려오는 걸 본 땅꼬마는 더욱 목청을 돋워 외쳤다. 

  "여기야! 꽥꽥! 헉헉, 에구 숨 차 죽겠네. 빨리 내려와!"

  군인들이 땅꼬마를 바싹 뒤따라오고 있었다. 얼마 가지 않아 잡힐 것만 같았다. 


  산지니는 온 신경을 기울여 땅꼬마의 위치를 찾았다. 땅꼬마도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려 쉬지 않고 쉰 목소리로 꽥꽥거렸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소리는 점점 커졌다. 산지니는 땅꼬마가 달아나는 방향으로 내려가며 날았다. 속도를 줄이며 날개를 크게 휘저었다. 바람이 일었다. 군인들이 갑자기 등 뒤에서 나타난 매의 날갯짓에 놀라 뛰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갑자기 시커먼 매가 머리 위에서 내려오더니 앞서 달리는 오리의 몸뚱이를 낚아채 하늘로 솟구쳤다. 군인들은 자기들이 쫓던 오리를 훔쳐간 매를 올려다보며 씩씩거렸다. 

  "저놈이 죽으려고 작정했나? 오리를 살려두면 안 될 텐데..." 


  산지니는 사람이 잘 오지 않는 갈대밭 깊은 곳에다 땅꼬마를 내려놓았다. 급하게 움켜잡았던 몸에 상처가 생겼으나 그리 크지는 않았다. 

  "후유... 살았다. 고마워. 너 아니었으면 아마 지금쯤 차가운 땅 속에 묻혔을 거야." 

  "고맙기는. 너도 날 도와줬잖아. 하마터면 죽을 뻔했구나. 이제 괜찮아. 여긴 사람들이 잘 오지 않아." 

  땅꼬마는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멀쩡히 살아있는 우리를 죽이는 거야?"

  땅꼬마는 무자비하게 죽어간 친구들이 불쌍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새들이 죽는 전염병이 생겼다네. 다른 동네로 퍼지지 않도록 미리 다 없애버린다고 하더라. 아마 군인들이 다른 동네의 닭과 오리들도 모두 잡아 죽일 거야." 

  땅꼬마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산지니는 아직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땅꼬마를 가만히 감싸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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