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나에겐,
그 당연함이 언제부터인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소리는 들리는데,
말이 들리지 않는다.
단어는 퍼지듯 뭉개지고,
말끝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그 소리들 틈에서 나는
늘 눈치로 대화를 짓는다.
가장 어려운 건,
"다시 말해줄래?" 라는 한마디를 꺼내는 일이다.
몇 번이고 물어보다 보면,
상대의 표정이 미세하게 변한다.
불편함, 짜증, 혹은 안쓰러움.
그런 감정들을 마주치는 건
내 귀보다 내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
그래서 나는,
모른 척하고 넘어가는 법을 익혔다.
웃어야 할 때 웃고,
끄덕여야 할 때 끄덕인다.
하지만 그건 대화가 아니라
연기에 더 가까웠다.
**
어느 날, 가까운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나는 테이블 한쪽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모두가 웃는 자리에서,
나는 무표정으로 컵을 잡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으니,
따라 웃기도 어려웠다.
그 순간 누군가 말했다.
"요즘엔 왜 이렇게 말이 없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 말이 어딘가 어긋날까 봐,
또다시 묻고 되묻게 될까 봐
그저 조용히 웃었다.
그 침묵은 오히려
내 안에서 쌓여가는 울림이었다.
**
가족들과도 점점 멀어진다.
대화가 어려워질수록
나는 말수가 줄고,
그들은 그걸 오해한다.
‘지금은 말하기 싫은가 보다.’
‘기분이 나쁜가 보다.’
아니야, 나 그냥… 못 들었을 뿐인데.
**
보청기를 착용한다고
모든 소리를 되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더 예민해진 소리들 속에서
나는 늘 긴장하며 앉아 있어야 한다.
차라리 고요한 편이 나을 때도 있다.
고요는 아프지만,
때로는 사람들의 무심한 말보다 더 낫다.
**
말하지 못한 순간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생긴다.
그 순간들이 쌓이고,
마음은 점점 굳어간다.
그래도 나는 오늘도 살아간다.
말하지 못해도, 들리지 않아도
내 안엔 여전히 하고 싶은 말들이 많다.
그 말들을,
이 글 안에 담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