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하루가 흐른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하겠지.
하지만 나에겐,
그날도 작은 전쟁이었다.
보청기를 빼는 순간,
세상은 거대한 침묵 속으로 사라진다.
바람 소리도,
누군가 부르는 소리도,
심지어 내 마음조차도 멀어지는 것 같아
갑자기 깊은 바다 속에 있는 듯
귀가 멍해지고, 숨이 막힌다.
폭설이 내린 뒤의 적막처럼
온 세상이 멈춘 것 같은 그 고요함.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고,
나는 몇 번이고 "뭐라고요?"를 되묻다
결국은 그냥 웃는다.
웃으며 넘기는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어쩌면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에게도 그렇게 말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괜찮아. 괜찮은 거야."
하지만 마음 한쪽에서는
자꾸만 작아지는 내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지금, 무너지고 있다.’
**
가족들과의 식사 시간.
남편과 아이는 내가 못 알아듣는 걸 안다.
그래서 아이에게 말한다.
"아빠가 엄마한테 좀 전해줘."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데,
바로 옆에 있는데,
대화는 나를 비껴간다.
아이도 가끔은 짜증 섞인 표정을 짓는다.
"엄마 또 못 들었어?"
그 말 한 마디에
하루치 용기가 쪼그라든다.
**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나는 매일 누군가의 불편함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조용히,
말을 줄이고,
표정을 짓고,
고개를 끄덕이며 넘긴다.
그저 무던한 사람으로 보이길 바란다.
그래야 덜 미안하니까.
그래야 이 질병이
덜 설명되길 바라지 않으니까.
**
그래도 나는 오늘도 살아냈다.
비틀거렸고,
들리지 않았고,
마음은 수없이 흔들렸지만—
하루를 끝까지 걸어왔다.
아무도 모르게,
그리고 나도 모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