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가족이 때로 가장 먼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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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안 들린다며, 왜 자꾸 물어봐?”
남편이 툭 내뱉은 말이었다.
그 말은 날 향한 짜증이었고,
내가 반복해서 물어보는 걸 향한 피로였다.
그리고 소통이 안되고 이해하지 못한다는 불만 이었다.
순간, 입술이 붙잡힌 것처럼 말을 잃었다.
나는 단지 들리지 않았을 뿐인데,
왜 그 말은
내 존재를 부정하는 것처럼 아프게 박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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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는 줄어들었고
그 틈은 자꾸만 벌어졌다.
처음엔 나를 지나 남편에게로,
이젠 남편을 지나 아이에게로
말들이 흘러갔다.
아이조차도 내게 답답하다는 듯
시선을 피하거나
간단한 말조차 반복해주기를 꺼려할 때가 있었다.
“엄마, 됐어. 그냥 넘어가.”
그 말이 내 마음을 지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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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점점
가족의 ‘외곽’으로 밀려났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같은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는 건
얼마나 큰 고립인지
그들은 알지 못했다.
내가 울고 싶을 때
기댈 어깨가 옆에 있는데도
그 어깨에 다가갈 수 없는 일.
그게,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일어나는
거리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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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설명해도,
메니에르라는 병은
그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불편함일 뿐이었다.
보이지 않는 병.
들리지 않는 증상.
보청기를 끼고도 소리를 못 듣는 사람에게
그들은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랐고,
나는 어떻게 다가서야 할지 더더욱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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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포기했다.
소통을, 기대를, 바람을, 이해를.
나와 함께 살아주는 것으로
감사하자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하지만
고요한 방 안에서 혼자 앉아 있으면
그렇게 삼켰던 말들이
다시 떠오른다.
“그 한마디만이라도 물어봐줬으면.”
“그날 나를 안아줬더라면.”
“내가 아프다는 걸, 조금만 이해해줬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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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가장 깊은 위로이자
가장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중간에서
나는 오늘도 버티고 있다.
들리지 않아도,
느껴지지 않아도,
‘함께’라는 말을 믿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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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진 거리 사이로
나는 다시 다가서려고 한다.
느리더라도, 서툴더라도,
이 병을 앓고 있는 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들에게 언젠가는 닿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