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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지 Jul 14. 2022

인플루언서 시대의 육아

무엇이 아이와 나에게 '인플루언스' 하도록 허락할 것인가

네이버는 나에게 여러 가지 광고를 보여 준다. 성별과 연령을 섬세하게 고려해 가면서.

주로 뜨는 광고는 반려동물용품이나 기능성 화장품, 아니면 아이 양육에 꼭 필요하다는 교육 상품이다.


우리 아이 키 성적은?
키 클 수 있는 라스트 찬스

4-17세 부모님 주목
또래 친구들보다 훌쩍 큰 비결

5~6세, 한글 떼기 골든타임
공부 능력을 결정짓는 기적의 시간 6~9세



광고 문구를 볼 때마다 '진짜로 이런 카피를 쓴다고?' 싶어서 흠칫 놀란다. 전공이 신문방송학이고, 일본에 오기 전에는 한 회사와 그 회사의 제품을 홍보하기 위한 글을 써왔는데도 그렇다.

이렇게까지 놀랄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이런 광고를 볼 때마다 "이대로 괜찮은걸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걸까? 광고의 어떤 요소가 내 마음을 자극하고, 불편하게 하는지를 차근차근 생각해 봤다.


일단, '키 성적'이라는 단어는 아이들 개인의 신체적 특징이자 개성일 뿐인 키를 이유 없이 서열화한다. 개개인의 차이이자 특징인 키가 뭣이라고 성적을 매기는 건지. 애초부터 우위를 나누지 않는다면 좋고 나쁨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문제 아닌가?


'한글 떼기 골든타임'이라는 표현은 어떤가? 골든타임의 사전적 정의는 '환자의 생사를 결정지을 수 있는, 사고 발생 후 수술과 같은 치료가 이루어져야 하는 최소한의 시간'이다. 이 정의를 바탕으로 카피 문구를 읽으면, 광고가 규정한 시기에 문자를 학습하지 않으면 적정 시기를 영영 놓칠 것만 같은 위기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정말 한국 나이 5-6세(만 3~5세)가 문자 학습의 골든타임인가? 정말 그러하다면 아동의 권리를 철저히 보장하는 나라일수록 이 연령에 맞게 맹렬하고 철저한 문자 학습을 시켜야만 맞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는 나라일수록 이 시기 아동을 학습 경쟁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어른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어느 사회이든 최대한 빠른 시기에 학습력을 길러주어야 한다고 믿는 교육자나 보호자가 있고, 그런 이들을 위한 교육시장이 조성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교육 시장의 규모가 사회 전체를 장악할 만큼 영역을 무한 확장하지는 않는다.






지난 12월. 서울의 한 호텔에서 시뽀와 TV를 볼 때는 이런 광고가 나왔다.


AI 격차가 공부 격차


AI를 이용한 학습기기를 판매하는 회사가 '공부 격차'라는 표현을 이용한 광고를 하고 있었다.


코로나로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어려운 시기가 길었고, 이로 인한 학습 격차가 커졌다는 사실은 사회 전체가 우려하던 것이었다. 아이들의 '공부 격차'는 어른이자 시민으로서 너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풀어가야 할 우리 모두의 과제다. 모든 아이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양질의 교육을 받고, 자립 가능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성장과도 관련이 있는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이 광고는 '공부 격차'를 바라보는 시야를 한껏 좁힌다. 광고를 보는 보호자들의 마음은 어떨까? "어? AI 학습 여부가 공부 격차를 만들 수도 있다는데, 우리 집엔 AI 학습기기가 없네. 요즘은 다 저런 걸로 공부하나? 하나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가졌던 미래세대에 대한 우려는 옅어지고, 시각을 '학습 격차 속에서 내 아이의 위치는 어디쯤인가'에 고정하게 한다. 그리하여 '구매력이 있는', 혹은 '어딘지 불안한' 사람들의 지갑을 연다. 그렇게 되면, 큰 관점에서의 공부 격차라는 사회현상은 얼마나 해결될까? 이 광고는 공부 격차를 줄이기 위한 광고가 맞을까?

전 사회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러한 메시지를 담은 광고가 오히려 사회 전체의 '공부 격차'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 수 있다. '선행학습'을 통해 없던 공부 격차도 만들어내는 상황이니 왜 안 그렇겠는가.


이러한 광고는 크게 두 가지 감정에 소구한다.

1) 우월감

2) 불안감

광고는 우월에 대한 욕망. 그리고 열등에 대한 불안을 부추기고 자극한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우월도 열등도 실제의 우리가 그러하다는 것을 뜻하지 않음을. 우월과 열등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된다. 실제로 키 큰 작은 사람이 키 큰 사람보다 결코 우월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먹고살기 위해 물건을 파는 것도 중요하고, 이윤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광고 기획자 입장에서는 "공익광고도 아닌데 뭐가 문제냐?", "착한 광고는 안 팔린다"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요즘 어떻게 사냐는 친구의 말에 그랜저로 답했습니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 같은 광고가 송출되는 것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선한 영향력'이 중요한 가치이자 화두인 지금. 광고의 본질이 인간 심리를 자극하는 것이라 해도, 아이들에게까지 이런 메시지를 스며들게 해도 괜찮은 걸까?






이런 메시지는 광고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유튜브든 인스타든 블로그든 누구나 개인 채널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시대. 많은 인플루언서의 계정에서도 동일한 상품, 동일한 메시지가 반복된다. 협찬이나 원고료를 받고 재생산하는 모든 콘텐츠가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온라인 콘텐츠 생산자에게도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는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자녀 양육에 대한 불안과 우월을 자극하는 콘텐츠가 바이럴 대행사에 의해 기획되고 대량으로 생산되어 보호자의 SNS까지 파고드는 현상이 기쁜 일은 아니다. 우리가 주고받는 메시지가 광고에 의해 획일화되고, 정말로 해야 하는 이야기들은 뒷전으로 밀려 나기 때문이다. 

획일화에 응하지 않는 양육자는 불안해진다. 우왕좌왕하다 때를 놓치면 아이를 망칠 것 같아서다. 때문에 그 메시지에 우리들 자신과 아이를 맞추게 되고, 메시지는 백만 대군이라도 얻은 양 더욱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편다.


오해는 금물. 이런 글을 쓴다고 해서 내가 대단히 줏대 있다거나 중심을 잘 잡는 보호자는 아니다. 어떤 태도로 아이를 양육해야 하는지, 아이를 키우는 세대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수많은 메시지의 홍수 속에서.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아는 것이 있다.

양육을 하는 과정에서 그 어떤 광고나 인플루언서, 혹은 옆집 엄마가 그 무엇을 '인플루언스' 하든

"어떤 메시지가 나에게 영향을 주도록 허락할 것인가?"

"어떤 메시지가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할 것인가"는 내가 결정한다는 것.

그리고 나 역시 '행여 내가 타인에게 영향을 주게 된다면 그것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가며 글을 써야겠다는 것이다.


나는

- 내 아이이든 다른 아이이든, 개인의 고유한 특징인 '키'가 성적표가 되는 사회는 싫다. 수많은 다양성의 요소 중 하나일 뿐인 '키'가 벼슬인 사회를 굳이 만들 필요가 무엇인가?

- 교육 '시장'이 정한 시기에 문자를 학습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 아이가 살면서 해나갈 공부의 골든타임이 끝났다고 단정하고 싶지 않다.

- AI는 인간의 격차를 생산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아니다. 그것이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한 방향으로 쓰이도록 유도하고 감시하는 것이 어른들의 진정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태도로 아이를 대하고, 어떤 방법으로 성장을 도와야 하는지에 대한 육아 고민.

같은 생각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것이다. 그런 분들의 마음과 생각을 더 많이 듣고 교류하며 중심을 잡아 나가고 싶다. 없던 불안도 만들어내는 광고와, 그 광고를 복사 붙여넣기 하는 메시지 말고.

2022년의 육아 자화상


2022년 1월

새로운 개인주의 사용설명서

<이럴 거면 혼자 살라고 말하는 당신에게>를 출간했습니다

배우자, 자녀, 원가족, 이웃, 친구, 동료.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나'라는 개인을 지키면서도, '너'라는 개인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개인주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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