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자살하기는 억울해 같이 죽을 사람을 찾아왔다"
얼마 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살인자가 한 말이다. 기사 속에 담긴 살인자의 문장을 읽으며 나는 물귀신을 떠올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 살인자와 악플러에게는 공통점이 있네?"
손 앞에 놓인 것이 흉기가 아닌 스마트폰이라는 것만 다를 뿐, 혼자 불행하기는 억울해 같이 불행할 사람을 찾는다는 점에서 살인자와 악플러는 꼭 닮았다.
끝도 없는 바닥을 향해 가라앉아가고 있을 때, 햇살이 빛나는 수면을 향해 힘차게 물질해 올라가 스스로에게 더 나은 세상을 보여주기보다는, 저 위에서 빛을 받으며 환하게 웃고 있는 사람들의 발목에 돌덩이 같은 고통의 짐을 지우고 함께 가라앉는 쪽을 선택하는 존재.
자기 자신도 타인도 소중하게 여기지 못하는 마음을 지니고, 저 혼자 깊고 어두운 심해로 가라앉는 삶이 싫어서, 그때그때 자신의 눈에 띄는 인간이 있으면 그림자처럼 다가가, 힘을 꽉 준 손으로 발목을 확 낚아채 깊고 어두운 세계로 끌고 들어가 버리는 존재.
나는 악플러가 그런 존재라고 생각해 왔다.
수영이 서툰 나에게는 얼굴도 보이지 않는 희미한 형체와 함께 진흙 바닥 속으로 끌려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
이번 물귀신은 오랜 세월에 걸쳐 작정하고 나를 진흙 바닥 속에 끌고 들어가려 했다. 그저 나를 파괴하는 것만이 목적인 물귀신이었다. 아. 아니다. 나의 여섯 살 난 아이와 배우자도 파괴하고 싶어 했다. 어쨌든 나와 관계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파괴하려 들었다.
나에게 자신의 진짜 얼굴을 들킨 물귀신은 이제 더는 감출 것이 없다는 듯 민낯을 번득였다. 보기 드물게 흉한 얼굴이었다. 그의 인생에 고난과 고통과 자괴감이 닥쳐올 때면 자신의 민낯을 알고 있는 나에게 토사물을 던지듯 곪은 내면을 배출했다.
지난여름. 물귀신이 쉬지 않고 손을 뻗어오는 와중에도 나는 오사카와 교토, 도쿄 취재를 다녔다. 작년 9월부터 시작해 1년 동안 진행 중인 다음 책 자료조사를 위해서였다.
물귀신과 나의 차이점은? 나는 스스로가 물귀신으로 전락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그저 온 힘을 다해 두 다리를 파닥이며 햇살 비치는 곳으로 움직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다른 누군가에게 고통을 준다고 해서 내 삶이 더 나아지지는 않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러니 나의 삶에 충실하려 할 뿐, 다른 누군가를 파괴하고자 하는 뜻을 품고 살아가지 않는다.
무거운 다리를 있는 힘껏 옮겨 교토의 한 이자카야로 향했다. 교토엔 다음 책에 등장하는 인물 중 유일하게 동시대를 살고 있는 포토그래퍼가 생존해 있는데, 그가 이자카야를 운영하고 있어서였다.
사실 그 이자카야는 '햇살'같은 밝은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아주 먼, 매우 먼 공간이다.
카운터도 테이블도 책 더미로 가득해 술잔 놓을 공간조차 없는 곳.
최소 만년 동안 화장실 청소 한번 하지 않은 것이 분명한 곳.
일본 사회에서 "나는 이 사회의 주류와는 다르구나"라고 생각하는 요상한 이들이나 찾을 법한 곳.
그렇기에 누구와도 금세 친구가 될 수 있고, 무슨 이야기든 할 수 있는 곳.
그리하여 자꾸만 찾게 되는 마성의 동굴 같은 곳.
하여튼 별 희한한 이자카야라고 할 수 있다.
히피 소굴 같은 이자카야로 들어가 용기 내어 말했다.
"안녕하세요. 아무 데나 앉아도 되나요? 오늘 처음이라서요. 사실 이 책을 읽고 왔거든요. 실은 저도 책을 준비하고 있어요. 무슨 내용이냐면요."
항암 수술로 병원생활을 하다 하루 전에 퇴원했다는 그 공간의 주인은 느린 몸짓과 말투로 반응을 해가며 내가 하는 모든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었다. 그렇게 몇십 분. 그는 내가 말하려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빠짐없이 간파한 듯했다. 그래. 그 이자카야의 미친 책 더미들은 장식용이 아니었다. 엄청난 독서가라던 나의 등장인물은 '척하면 착' 하고 내가 하는 모든 말을 정확히 이해했다.
그 후로 그가 한 마디 한 마디 입을 열 때마다 내 입은 쩍 벌어졌는데, 내가 쓰려고 했던 목차와 그 목차를 선택한 이유, 책에 나올 다른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줄줄이 맞혔기 때문이었다. 내 머릿속을 완전히 읽어내기라도 한 것처럼.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은 책을 이렇게 잘 이해하는 사람이 있을 수가!
내가 선택한 인물 중 유일하게 살아 있는 사람을 실제로 만난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그런 그의 입에서 내가 지난 10개월 동안 발굴한 목차가 줄줄줄 튀어나왔을 때.
"아. 내가 틀리지 않았구나. 이게 맞구나." 하는 안도와 함께 순도 100%의 기쁨이 차올랐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서 홀로 느리게 건져올린 것들이 보물이 맞는다는 사실을 확인받은 기쁨이었다.
실은 불안했다. 내가 보물이라 생각하고 고른 것들이 보물이 아닐까 봐. 진짜 보석이 바다 어딘가에서 반짝이고 있는데, 내가 그것을 알아볼만한 혜안을 갖지 못했을까 봐. 하지만 그날 그 순간 알게 되었다. 이것 이상의 보물은 있을 수 없다. 나는 모든 보물을 다 찾았다. 이제 그것을 다듬어 글을 쓰기만 하면 된다.
히피 소굴 같은 공간에서 다섯 시간을 보내고 "다음에 또 교토에 오겠습니다" 약속하며 돌아가는데, 이자카야의 주인이 말한다.
"민지상, 부디 좋은 책을 만들어 주세요."
내 책의 등장인물이 나한테 좋은 책을 만들어달래!!!!! 심장이 빨라지고 동공이 팽창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하늘로 둥실 떠오른 아톰이 되었다.
곧게 뻗은 팔을 치켜들고 날아오르는 아톰처럼 내 발뒤꿈치에서는 불꽃이 피어올랐고, 심장은 해수면을 박차고 하늘을 날아올랐다. 발목에 붙어있던 물귀신의 무게는 후드드드득 떨어져 나갔다. 그렇다. 물귀신은 물 밖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나는 물귀신이 발목을 잡고 늘어진다고 해서 심해 밑바닥으로 끌려갈 인간은 아니었던 것 같다. 힘없이 파닥이며 찾은 교토 이자카야에서 인생의 등장인물을 만났고, 그와의 대화를 통해 발뒤꿈치에 강력한 불꽃을 장착한 나는 창공을 날아 정상 궤도에 진입했다.
내 책의 등장인물이 나를 살렸다. 이 책을 왜 내가 해야만 하는지 알게 되었고, 그것을 잘 해내기 위해 더욱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들이 나오는 세계를 제대로 보여줘 보자!"
내 글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바로잡혔다.
스마트폰 화면 뒤에서 "죽어라, 너도, 너의 가족도, 너의 아이도, 죽어라" 울부짖던 물귀신의 목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는다. 나는 아톰이 되었으니까. 물귀신과 나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산다.
블로그, 브런치 악플이 3년 동안 이어져 형사 고소밖에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브런치 악플 고소를 고려하는 분들께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https://blog.naver.com/talatsao/223233067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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