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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홍래 Jul 01. 2022

수녀님과 2년만의 만남


"저 함양에 왔어요 함 놀러 오세요"

예전에 내발로 걸어서 천주교를 처음 찾아왔을때 나에게 교리를 가르쳐 주신 수녀님이다. 수녀님을 통해서 천주교에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게 되었다. 세례 후 본당에서 만나면 말씀보다 항상 윗니를 드러내고 잘 웃으시는 모습이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수녀님이다. 수녀님들은 대체로 2~3년 주기로 발령을 받아서 이곳 성당에서 저쪽으로 다니시는 것 같다. 우리 성당에서 2년의 기간을 마치시고 구미로 내려 가셨다. 나도 예전에 젊은시절 군생활을 하여 1~2년 주기로 이쪽 저쪽으로 이사도 다니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살아 본 경험이 있다. 이제 정이 들만하고 적응이 될 즈음 이전해야 만 하는 상황이나 헤어짐이 얼마나 힘든지 그 무게를 알고 있다. 수녀님은 아무일 아니라는 듯, 많은 인연과 헤어짐이 익숙하다는 듯이 여행용 트렁크 가방을 하나만 들고 웃으시며 손을 흔들고 구미로 떠나 가셨다. 그후 수녀님은 구미에서 다시 함양으로 옮기신 모양이다.


세례를 받은 4년만에 구역장을 맡아 달라고 요청이 들어왔다.  나는 몇번이고 생각해도 천주교 생활도 짧고 개신교에서 깊이 들어갈수록 생긴 갈등으로 인해 천주교로 왔는데 또 다시 갈등이 생길까 우려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나의 마지막 종교로 갖고 싶었고 더 이상의 갈등은 싫었다.  전임 구역장집을 조용히 찾아가 "또 다시 갈등은 싫다"면서 정중히 단호하게 거절을 했다. 몇날이 지나도 구역장을 할 사람은 없었고 또 다시 많은사람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튀어다니든 공은 종전보다 더 강력하게 피할수 없게 나에게 날라왔다.


수녀님이 구미에 계실때 일부러 여행 코스를 그쪽으로 맞추고 찾아 뵌적이 있다. 그때가 2년 전인데 2년만에 다시 함양으로 옮기신 거다. "함양으로 함 놀러 오라" 는 말씀은 들었지만 거리가 너무멀어서 좀처럼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하고 주저주저 하면서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어쩔수 없이 은 구역장을 받아들한번도 들어 본적이 없는 코로나 시대가 시작되었다. 코로나는 개신교에 비해 천주교는 덜했지만 사람이 많이 모이는 종교 단체는 심각하게 영향을 받았다. 성당내 모든행사가 중지되고 사람들이 모이는 어떠한 집회도 허용 되지않았다. 처음에는 이런 통제된 환경이 한 몇개월이면 해결되겠지 싶었으나 그 기간은 구역장을 마치는 2년내내 지속 되었다. 구역내 어떠한 모임도 허용되지 않자 성당에서 구역장과 반장들이 방역에 도와 달라고 요청이 왔다. 미사전 열이 있는 성도가 있는지 검사를하고 미사가 끝난 뒤  본당내 의자및 물품을 소독 걸레로 일일이 닦는 일이다. 언론에서는 노령자에게 위험하다고 하는데 나도 육순이 넘었는데 혹여 내가 감염이 되면 주위에 가족과 회사직원들이 많은데  많은 우려가 있었지만 2주마다 한번씩 아무런 보호대책 없이 방역에 참여를 할수밖에 없었다.


"성당 봉사자들이 코로나로 인해 활동을 하지 못했으니 일년을 더 연장 해주세요" 2년이 지난 어느날 구역장을 내려놓을 시기에 갑자기 신부님이 미사시간에 선포를 하신다. 사전에 봉사자 누구에게도 협조와 양해도 없이 너무 일방적으로 선포를 하셨다. 선포를 하시는 상황이 너무 섭섭했다. 봉사자를 모이게 하여 양해를 구할 상황인데...일방적 선포에 그 동안 구역을 위한 노력이  물거품되는 것같아 당황하고 섭섭했다. 성당에 온지 6년이나 되어 하나둘 알게되면서 성당의 시스템은 컴퓨터 초기사양 286모델 같다. 사회는 엄청난 속도로 진보가 되어 가는데 여기는 세상을 잊고사는 칠순 넘은 노인이 브라운관 모니터 앞에서 집게손가락 두개만으로 똑딱거리는 모습이다.


언제부터 인가 나는 고집이 강해졌다. 내가 옳다고 생각이 들면 지구가 반쪽으로 깨어진다고 하여도 그 고집을 내 스스로가 꺽을수가 없다. 틀렸다고 하여도 스스로 많은 명분 만들어 나름의 성을 쌓고 있어서 그 고집을 쉽게 접을수가 없다. 신부님에 대한 섭섭함이 속에서  답답하게 한다. 소화제를 먹어도 소화가 되지 않아서 배를 감싸쥐고 있듯이 속안에서 뭔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꽉 막힌듯 답답하다. 갑자기 수녀님을 만나고 싶다. 수녀님을 만나면 소설 속의 도사들처럼 배 아픈 나에게 귀에 "쏙" 들어오는 처방을 주실 것만 같았다.


2년만에 수녀님을 만났다. 예전보다 10키로를 빼셨다고 하면서 이를 내보이면서 활짝 웃으시는데 내가 보기에는 무슨 병이라도 있나해서 몇번이고 "괜찮으시냐" 고 물어 보았다. 수녀님 세분이 한집에 각자의 방에서 사신다고 한다. 사목이나 봉사활동 없이 지구 환경보호를 위해서 실천하며 사신다고 했지만 내 생각은 은퇴를 앞둔 수녀님들이 모여 사시는 집 같았다. 제대로 된 그릇이 없어서 이곳, 저곳의 도움으로 장만을  하셨다 하고 따뜻한 남쪽지방 임에도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방에 텐트를 치고 사신다고 한다. 수녀님과 두분도 함께 식사를 모시려고 하는데 두분은 한사코 사양을 하신다. 어쩔수 없이 수녀님만 모시고 식사를 하고 식사를 마친후 숲길을 함께 걸었다. 수녀님과 숲길을 걸으며 답답한 제 사정을 다 말씀을 드렸으나 아무 말이 없으시다. "억울하다" 고 말씀을 드렸는데 웃기만 하신다. 내가 기대했던 만큼 귀에 "쏙"들어오는 명언 한마디가 없으시다. 나름 기대를 하고 먼길을 왔는데...그러나 수녀님과 친구 수녀님의 사시는 모습들을 보면서 인생을 비우고 내려놓는게 무엇인가를 새삼 느끼는 시간이 되었다. 서울로 올라오면서 내 문제의 답을 찾으려 갔는데 수녀님의 사시는 모습에서 "왜 이렇게 사시나" 하는 다른 의구심을 만들어 가지고 왔다.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채 남아 있을 것이다"   (요한20장22-23)


수녀님에게서 톡이 왔다. 아마 내가 걱정이 되어서 말씀을 보내주셨나 보다. 말씀을 핸드폰에 저장해놓고 몇번이나 보면서 예전에 많이 보았던 복음인데 수녀님을 만나고 온 오늘따라 갑자기 이 말씀이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고 여운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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