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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홍래 Sep 14. 2016

 내 아내

나이가 들면 새벽잠이 없어진다 든가...

언제부터 인지 새벽잠이 없어져 5시만 되면

눈이 절로 떠진다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 5시에 눈을 뜨고는

한강 산책을 하기 위해 주섬 주섬 옷을 입다가

침대에 자고 있는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하얀 머리에 깊게 주름진 얼굴

세월이 지나간 흔적들을 아로새긴 채 누워 있다

30년 전 꽃같이 아름다운 사람이었는데...

눈이 시릴 정도로 너무나 아름다워

그렇게 많은 밤을 지새우며 속앓이를 했는데

이제 내 옆에서 허연 머리를 하고 누워 있다

함께 배를 타고 긴 항해를 하면서

태풍도 만나고,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날도

있었고, 또 맑고 고요한 날도 있었지만

이제 저쪽 선수 끝에 불이 밝혀진 돌아갈 항구를 바라보면서 긴 항해를 끝내고

귀항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 하여 오면서

항상 내 옆에서

장미꽃을 화려하게 하기 위하여

조합된 안개꽃처럼

나를 위하고, 아이들을 위하고, 가족을 위해서

묵묵히 한 구석에서 있어온 아내이다

생각해보면 내 주장, 가족 의견에 자기 빛깔을

잃어버리고 살아온 아내 

자신의 이름 없이  누구 엄마, 누구 부인

으로 만 살아온 아내이다

자고 있는 아내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코밑 주름에서 내가 악을 쓰던 소리가 들리고

눈밑의 계곡 속에서는 가족들의

두런 두런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와 가족들이 각자의 주장을 할 때마다 아내는

말없이 자기 얼굴에 주름을 하나씩

새기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나는 아무 말 못 하고 자고 있는 아내의 얼굴을

바라만 보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죽는다는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일 때부터 인가?

"먼저 죽겠다"

"내 옆에서 먼저 죽으면 행복할 것 같다" 하고는 이내 돌아 서서는

"남자는 혼자서 살기가 힘들어"

"당신 먼저 죽어"

"그러면 곧 따라갈게"

너무나 쉽게

마지막 행복마저 나에게 주려는 듯이

웃으며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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