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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홍래 Feb 21. 2020

전도대회

    

‘근자열 원자래(近者說遠者來)’라는 말이 있다. ‘이곳에 살고 있는 백성들이 기쁨에 넘쳐서 행복하게 잘 살면 도망가는 자도 없고 이웃 나라 백성들도 소문을 듣고 제 발로 찾아온다’는 뜻이다. 공자가 한 말이다. 초나라 섭현의 백성들은 많은 세금과 부역에 시달리고 있었다. 견디다 못해 옆 나라로 도망쳤다. 섭현의 인구가 자꾸 줄어들자 섭현을 다스리던 태수 ‘섭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국경에 높은 울타리를 세우는 것이 맞겠습니까, 도망자를 잡아서 본보기로 처형을 하는 것이 맞겠습니까?” 그러자 공자는 빙그레 웃었다.    


교회 마당에는 큰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몇 년 된 나무인지 정확하게는 모른다. 크기와 굵기를 보고 짐작하건대 약 70년 정도 교회와 함께 산 나무인 것으로 보인다. 그 나무는 여름에는 마당 전체에 그늘을 만들어 줬다. 겨울에는 앙상하지만 힘 있는 모습이었다. 교회를 지켜 주는 수문장 같았다. 은행나무는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걸 알려 주기도 했다. 푸른 잎 색깔이 변해가는 것은 여름이 끝난다는 신호였다. 그 즈음이 되면 교회는 항상 소란스러워진다. ‘전도 대회’라는, 겨울 맞이를 위한 준비 때문이다.    


교회는 매년 늦여름에 전도 대회를 한다. 전도 대회의 본래 목적은 새 신자를 교회로 인도하는 것이나 이 교회는 그렇지 않았다. 다른 교회를 다니는 성도들을 전도 대회 당일에만 빌려오는 방식으로 전도 대회를 치른다. 대회 직후 잠깐 동안에는 성도 수십 명이 늘었다고 실적을 발표한다. 그러나 빌려온 성도들은 다시 자신이 다니는 교회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그러면 교회 성도 수는 항상 다니는 인원 수 그대로다. 그럼에도 교회는 매년 여름이 끝나가는 시기가 되면 “전도는 하나님의 지상 명령이다”라고 이야기하며 성도들에게 전도를 강요한다. 목사가 전도에 대해 설교하고 명령을 선포하면 전 성도가 길거리, 아파트 단지 등을 찾아다녀야만 한다. 매년 교회 내 지배층이 성도들에게 전도하라고 강요를 하니 성도들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교회 지배층도 이런 방식의 전도 대회가 석연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아는 듯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다. 서로가 말하지 못했을 뿐이다.    


전도 대회를 매년 하다 보니 전도에 대한 설교도 매년 같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언제나 변하는데 목사는 변화가 없었다. 같은 원고로 전도 대회 때마다 같은 내용으로 설교했다. 성도들 모두 작년, 재작년과 설교 내용이 같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목사의 권위 앞에서 “작년과 설교 내용이 같습니다”라고 누구도 말할 수 없었다. 목사는 전도 대회 시기가 돌아오면 손날로 허공을 찌르며 마치 처음 설교하는 것처럼 비장하게 설교했다. 성도들은 목사의 복사 설교를 들으면 ‘아, 전도 대회가 돌아오는구나’하고 짐작했다.    


그 해의 전도 대회는 다른 해와 달리 유난히 요란스러웠다. 이렇게 가다가는 성도가 줄어서 교회 문을 닫을 수도 있겠다는 위기 의식을 교회도 느낀 듯했다. 그래서 전도 대회를 강렬하게라도 펼쳐야 새 성도들이 교회로 많이 유입되고 위기도 넘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강렬한’ 전도 대회의 첫 일정은 구호를 만드는 것이었다. 교회는 각 선교부에게 전 성도가 함께 부르짖을 수 있는 구호를 만들도록 했다. 선교부들이 아이디어를 제출했고 교회가 그 중 하나를 채택했다. 매 예배가 끝나면 전도를 주관했던 장로가 연단에 올라가 최종 채택된 구호를 외쳤다. 그러면 전 성도들이 따라 외쳤다. 흡사 노동자들의 파업 현장을 방불케 했다. 붉은 머리띠를 두르거나 조끼를 맞춰 입지는 않았지만 이 광경을 처음 보는 성도들은 파업 현장이라 생각했을 것 같다.     


구호를 외치고 난 후 성도들은 길거리로 나갔다. 전도 대회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다. 목사, 장로 등 교회 내 지배층은 길거리로 나가지 않았다. 다른 일정이 있다는 둥 이런저런 이유를 댔다. 길거리 전도는 마치 교회 지배층이 성도들을 시켜 길거리 구걸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아파트 단지 전도는 길거리 전도와 조금 달랐다. 예배가 끝난 후 구호를 외치고 교회를 나온 성도들은 아파트 단지에 특공대처럼 숨어 들어서 우편함에 전도지를 넣고 단지를 빠져 나왔다.     


여성 성도들은 길거리 전도를 하다 위험에 노출되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아내도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있다. 아내는 한 골목길에서 교회 전단지를 들고 길거리 전도를 하고 있었다. 어떤 노인이 아내에게 다가왔다. 아내는 교회에서 교육받은 대로 노인에게 교회 전단지를 드리며 정성껏 설명을 해 드렸다. 개인 전화번호까지 알려 준 듯하다. 그 노인은 성경에 대해 물어볼게 있다며 아내에게 거듭 전화했다. 늦은 밤에도 아내 전화기가 울리는 날이 많았다. 예삿일이 아니란 것을 느낀 나는 아내 대신 전화를 받아 모르는 것이 있으면 교회에 나와서 물어보라고 말했다. 그 후 그 노인은 교회에 나오지 않았다. 이처럼 길거리 전도를 하다 보면 여성 성도는 위험을 감수해야 할 일도 생긴다.     


전도 대회가 시작된 지 일주일 정도가 지난 어느 날이었다. 성도들이 가장 잘 모이는 장소인 교회 앞 마당 벽면에 ‘전도 대회 실적표’가 붙어 있었다. 실적표 하단에는 성도들 개개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성도가 전도해 온 새 성도의 머릿수에 따라 성도들의 이름 위로 빨간 실적 그래프가 그려져 있었다. 보험 회사에 가면 보험설계사들을 관리하기 위해 벽면에 실적표를 걸어놓기도 한다. 누군가 실적을 많이 쌓으면 박수도 쳐 준다. 전도 대회 실적표는 그 모습과 유사했다.     


전도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다. 그러나 교회는 영혼 구원과 상관없이 머릿수를 채우는 것을 전도라 여겼고, 그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성도들을 길거리와 아파트 단지로 내보냈다. 머릿수를 채우도록 협조하는 연료가 되는 것은 성도들의 선하고 순한 마음이다. 교회를 향한 충성심, 이렇게 하면 신의 큰 사랑을 받을 것이라는 마음들 말이다. 나 역시 당시 안수집사로서 실적을 내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멀리 사는 친척과 회사 직원에게 밥을 사 주면서 하루만 교회에 나와 달라고 사정을 했다.    


공자는 섭공에게 “근자열 원자래”라고 말하면서 섭현의 백성들이 행복하게 살면 멀리 이웃 나라에서도 사람들이 섭현으로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 해 늦여름은 지루했고 습도 때문에 꿉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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