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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홍래 Feb 24. 2020

죽은 이도 직분이 있다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오전까지도 멀쩡하셨는데 수영장에 가셨다가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잘 살아라. 이제 나는 간다”는 짧은 유언 한 마디 남기지 못하시고 먼 길을 떠나셨다.    

어머니는 그 교회에 약 40년 넘게 다니셨다. 그 교회는 부유한 동네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돈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성도들이 대부분이다. 우리 어머니는 교회 근처 조그마한 시장에서 생선 장사를 하시던 분이었다. 그 지역에서 평생 생선 장사를 하시다가 돌아가시기 십여 년 전에 장사를 그만 두시고 손주들을 보시다가 그렇게 떠나셨다. 평생 장돌뱅이로 사시면서 남에게 거친 소리 한 번 못하시고 소주 한 잔을 하시면 얼굴이 발그레해지시는 분이셨다. 교회 내에서는 누구에게도 말 한 마디 하지 않으시는 것을 숙명처럼 알고 사신 분이다.    

어머니는 예배 끝나고 목사에게 인사를 건네면 목사가 당신을 모른 체 한다며 서운해 하셨다. 목사가 다른 성도들과는 인사를 반갑게 나누지만 유독 당신에게는 차갑게 대한다고 늘 말씀하셨다. 성도들 사이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긴 했지만 설마 목사가 그랬겠나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날 예배 끝나고 교회 마당에서 목사를 우연히 봤는데, 십일조를 월 300만 원 이상 하는 어느 집사에게 목사가 달려가 안아주는 모습을 보고선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생선을 사러 오시는 손님들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그 교회를 알았다. 딸도 그 교회를 다니면서 어머니도 그 교회에 출석하게 됐다. 40년 넘게 한 교회만 다니시면서 교회에 정도 들었겠지만 무엇보다도 어머니는 하나님과 하늘나라를 굳게 믿으셨다. 그래서 장사를 하실 때는 꼬깃꼬깃한 생선 비린내가 나는 돈을 모아서 교회에 바치셨다. 장사를 그만 두신 다음에도 매달 받으시는 연금의 10분 1을 정확히 계산하셔서 십일조 헌금을 하셨다. 교회 입장에서 큰 돈은 아니겠지만 어머니에게는 유일한 수입의 1할을 교회에 바치는 큰 일을 하고 계셨던 것이다.    


교회 주관으로 병원에 장례식장이 마련됐다. 많은 손님들이 왔다 가셨고 목사도 두 번이나 장례식장에서 예배를 진행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돼 가고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이틀이 지나고 어머니께서 병원에서 화장터로 떠날 때 성도들이 모여서 어머니 마지막 가시는 길을 위해 찬양했다. 어머니는 목사의 마지막 기도와 함께 축복 속에서 떠나셨다. 세상에 오시어 한평생 고생만 하시다 가셨는데, 마지막 모습을 보고는 자식으로서 어머니께 다소 위안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화장터로 가는 버스에 가족들과 성도들이 탑승하는데 목사가 보이지 않았다. 차가 떠나야 해서 목사가 어디 있는지 이리저리 살피고 있는데, 부목사들이 버스에 탑승했다. 담임목사는 바빠서 자신들이 대신 장지까지 가서 장지 예배를 진행한다는 말을 했다. 서운했지만 그래도 부목사들이 오고 많은 성도들도 함께해 주어서 그 서운함은 금세 잊어버렸다. 그래도 가슴 속 무엇인가는 계속해서 나를 잡고 있었다.    

몇 년의 세월이 흘렀고 교회에서는 많은 어르신들이 세상을 떠나셨다. 그럴 때마다 목사는 장례식장에 와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으나 장지까지 가서 드리는 예배는 결코 참석하지 않았다.    


목사가 장지 예배에는 참석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성도들에게 인식되고 있을 즈음, 헌금도 많이 하고 자식들도 교회에서 여러 활동을 하는, 꽤나 유명한 집안의 원로 장로가 떠나셨다. 목사는 그 집 장례식장을 몇 번이고 들락거리더니 옆구리에 성경책을 끼고서는 그 멀고 먼 어느 지방에까지 가서 뽀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장로의 장지 예배를 주관하고 돌아왔다며 자랑했다.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 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누가;21장,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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