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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홍래 Feb 26. 2020

미국에서 온 손님

   

목사는 미국에 환상이 많은 것 같았다. 미국은 우리와 혈맹으로 맺어진 영원한 우방이고 미국의 아낌없는 경제 지원으로 오늘날 경제 강국의 대한민국이 됐다는 설교를 자주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미국을 배신하고 등을 돌리면 안 된다고도 설교했다. 목사가 말하는 미국에 한 번도 가 본 적은 없지만 어린 시절부터 형성한 미국에 대한 인상은 우리나라의 보호자 같은 것이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 주시듯이 미국이 우리 대한민국을 지켜줄 것만 같았고 키가 크고 얼굴이 하얀 미국인들은 하늘에서 우리에게 온 천사들 같았다.    


예배 시작할 때 전 성도가 일어서서 목사를 영접하면 장로들이 돌아가며 대표 기도를 한다. 이후 목사의 설교가 40~50분간 이어진다. 설교가 끝나고 헌금을 걷으면 마지막 목사의 축도만이 남는다. 이러면 예배의 순서는 대부분 끝난다. 축도 전에는 지난 일주일간 성도들의 생활과 변화, 교회 소식 및 알림사항을 전하는 광고 시간이 있다. 광고 시간을 통해 성도들의 소식을 알게 되기 때문에 만나면 서로 위로와 축하를 하곤 한다. 친교를 중요하게 여기는 교회의 특성을 고려해 보면, 광고 시간은 예배에서 나름 중요한 시간일 것이다.     


그런데 목사가 광고 시간에 소개하는 성도들의 이야기 중 소소한 것은 없었다. 목사는 유독 우리 성도들의 적당한 소식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입대, 출산, 취직, 대학 입학 등 성도들의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는 한 번도 소개하지 않았다.    

목사는 유독 미국에서 온 손님에게 관심이 많았다. 교회에 온 성도의 자녀나 외부 손님이 미국에서 공부하다 왔다고 하면 큰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광고 시간에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한 다음 미국에서 무엇을 하다가 무슨 일로 우리나라에 오셨다면서 성도들에게 상세히 소개한다. 성도의 사돈의 팔촌정도 될까 말까 한, 누군지 잘 알지 못하는 손님이라도 미국에서 왔다고 하면 목사는 그 손님을 자리에서 일어서게 한 후 미국 어느 대학에서 공부 중인 누구라면서 친절하게 소개한다. 소개가 끝나면 본인이 먼저 박수를 치면서 전 성도에게 박수를 유도한다.    

나는 미국에 가 본 적 없다. 여행하면서도 유럽은 두 번 다녀왔지만 미국은 아직 가 보지 않았다. 큰처형이 LA에 살고 있어서 한 번 다녀가라고 하신 적이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갈 수 있지만, 왜 그런지 미국에는 거부감이 있다. 


교회에는 젊은 시절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교우들이 꽤 있다. 그 교우들끼리 만나면 미국 어느 곳을 가 봤는지, 어느 주의 어떤 식당의 어떤 음식이 맛있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이 미국 이야기를 나누면 미국에 가 보지 못한 성도들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한 귀퉁이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앉아 있었다. 미국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에게 우리는 안중에 없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우리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그들을 보면 그들이 목사가 입이 마르도록 말하는, 미국에서 온 천사인가 싶었다.    


소개받고 축하받는 이와 가족들은 그 시간을 통해 영광스럽고 자랑스럽겠지만, 미국에서 공부하거나 일하는 것과 거리가 먼 성도들은 그 시간이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거나 자책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었다. 성도들의 소소한 삶의 이야기보다 유독 미국에 잠깐 한 번이라도 다녀온 손님 소개에 집착하는 목사는 ‘미국은 하늘나라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2000년 중반인가, 동네에서 친하게 지내는 부부를 교회로 인도했다. 우리 부부하고는 한 달에 한두 번씩 만나 함께 취미 활동을 하는 친구 같은 부부다. 그 부부는 평소 하나님에 대해서는 큰 불평 없이 이해하나 한국 교회의 비리를 보고서 교회에 나오는 것은 주저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우리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취미활동하는 모습을 생각하면서 그들을 인도하기 위해 몇 년 동안이나 공을 들였다. 교회의 새 신자 초청행사에 맞춰 그들을 초청했더니 그들은 우리 부부를 보면 건강한 교회인지 판단할 수 있다면서 흔쾌히 교회에 나오기를 약속했다. 그래서 함께 예배드린 후 그 부부가 새 신자 교육을 받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집에 오곤 했다.    


새 신자 교육은 5주간 진행된다. 교육이 끝나갈 때쯤, 부부는 갑자기 이 교회가 맞지 않는다고 했다. 왜 그러냐고 수차례에 걸쳐 물었지만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그러다 어렵게 말을 꺼내는데 목사가 미국에서 온 성공한 사람들 중심으로 자주 소개하는 게 마음 상했다고 했다. 그때 나도 생각이 났다. 그 집에는 애지중지하는 아들 하나가 있는데 공부를 잘하지 못해서 유명 대학에 못 가고 전문 대학을 나와 미용을 배우고 있었다. 목사가 미국 손님을 소개할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쪼그라드는 자존심 때문에 더 이상 교회를 나올 수 없다고 말했다.     


나와 아내는 아무 말도 못하고 더 이상 그들에게 교회 출석을 권유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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