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두 Jun 23. 2024

SPACE STATION TAN

#aa967a

산림동 1번지, 4층 난간에 기대어봅니다. 주변이 다 단층 건물이라 시야가 탁 트입니다. 푸른 산 아래로 펼쳐진 도시가 내려다 보입니다. 회색 천막으로 기워진 낡은 지붕 아랫사람들은 오늘도 부산합니다. 각자가 맡은 일에 몰두합니다. 누구는 뜨겁게 쇠를 갈아내고, 누군가는 바삐 물건을 옮깁니다. 복잡한 세상사가 켜켜이 쌓인 도시가 내려다 보이는 난간에 누군가의 모습을 닮은듯한 작품이 서있습니다. 상아 빛에 일부 그을린 작품은 손을 마주 잡고 있는 두 존재의 뒷모습을 닮았습니다.

 

4층은 지난 몇 년간 한 예술가의 작업실이었습니다. 1945년 1월 1일에 건물 사용이 등록된 건물은 마을의 1번지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녀갔을지 알 수 없고,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을지 알 수 없는 건물은 80년의 가까운 시간 동안 점차 낡았습니다. 이젠 마음껏 더럽혀짐이 허락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뚜벅뚜벅 계단 하나하나를 걸어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 작은 공간에 있었던 젊은 예술가는 이곳에서 어떤 세상을 보았을지 상상해 봅니다.


밤이 되면 작업실에 나와 누군가를 닮았을지 모를 형상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끊임없이 테이브를 감으며 살을 붙였고, 열로 녹여 층층이 쌓인 적층을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었습니다. 인적이 끊긴 거리로 나와 자신의 작품을 설치하곤 이내 철수했습니다. 버려진 물건들로 거대한 구를 만들어 비 오는 날 온몸이 젖어가며 골목에서 하염없이 굴렸습니다. 그렇게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고, 누가 알아주는지 알 수 없는 작업을 하나씩 쌓았습니다. 그렇게 남모를 시간을 보낸 이는 이제 공간과 이별합니다. 거대한 우주 속 작가에게 정거장이 되어 주었던 곳을 떠나기 전 마지막을 온전히 그 공간과 함께 나눕니다. 어떤 장면을 보게 했던 자리에 자신을 대신해 작품을 세우고, 자신이 하염없이 쌓았던 정성의 모습의 형상을 만들어 냅니다. 고요하고 시끄럽고 부질없는 처절함으로 보여줍니다. 


난간에 작품이 있습니다. 마치 손을 잡고 있는 모습 같아 보입니다. 지난 몇 년간 작가는 이곳에 서있었을 것입니다. 누군가와 함께 오랜 도시를 조망하기도 했을 것이고, 자신의 작품들과 함께 꿈꾸며 서 있었을 것입니다. 옆에 있던 어떤 사람 덕분에, 함께 태동하고 있던 작품 덕분에 작가가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한때 서로가 의지해 서있던 난간에서 발견한 '우주정거정황갈'을 소개합니다.






색상명 : 우주정거장 황갈 / SPACE STATION TAN

재료 : 혼합재료

위치 : 서울특별시 중구 산림동 60-1

날짜 : 2024.06.15

작가 : 장시재

오픈스튜디오 : HX9X+33의 궤도-이탈


이번 오픈 스튜디오에서 작가가 5년 동안 사용했던 환경을 전시하며 공간과의 마지막 기억을 공유하는 자리이다. HX9X+33은 작업실의 플로스 코드네임이다. 플로스 코드는 주소 대신 위도와 경도를 기준으로 표시되는 코드로, 이를 통해 바닥도 중력도 없는 우주 속에 떠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즉, 작가에게 작업실은 우주정거장과 같다.

"내가 없는 공간에 움직이고 소리 내는 작품이 나를 대신해서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 작업의 소리는 틈만 나면 들었던 외부 소음들과 내가 작업할 때 들리는 소리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무너진 다고 한다. 사람을 대신해 움직이는 작품이 작업실이 무너지는 것을 조금은 늦출 수 있을 것이다."

전시 서문 중 발췌


장시재 오픈스튜디오 ⟨HX9X+33의 궤도-이탈⟩ 4층 난간 Ⓒ작은도시이야기



장시재 오픈스튜디오 ⟨HX9X+33의 궤도-이탈⟩ 전경 Ⓒ작은도시이야기






장시재 오픈스튜디오 ⟨HX9X+33의 궤도-이탈⟩ 전시서문(좌), 포스터(중), 배치도(우)





도시 속 작은 도시의 예술이야기를 전하는〈작은도시이야기〉 뉴스레터 ► 구독하기

매거진의 이전글 PACKAGE DEAL LIGHT BLU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