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두 Apr 18. 2023

판타지아, 을지로 #02

2019. 환상곡의 시작

들어가며.

언제부터인가 쇠를 갈아내던 소리가 가득했던 을지로 뒷골목에서 음악이 들리고 거리는 빛으로 물들었습니다. 을지로에서 활동하는 기획자, 예술가들이 「을지로 판타지아」라는 이름으로 벌인 일들이었습니다. 600년간 그곳에 있었던 길은 하룻밤 전혀 다른 곳으로 변했습니다.

2023년 4월 29일 토요일 저녁 『을지로판타지아열섬 : Brain Dance』가 열립니다. 올해는 미디어 작품과, 사운드 아트가 길에 입혀질 예정입니다. 이를 기념하며 2019년 시작되어 을지로 골목을 예술로 물들이고 많은 영감을 주었던 『을지로판타지아』의 일대기를 돌아보고자 합니다.




을지로^판타지아 euljiro【이탈리아어】fantasia

명사

1. 서울시 중구 을지로 4가(산림동) 일대 골목에서 벌어지는 다원예술 축제.

2. 2019년 R3028, aplent의 주최 주관하고 중구문화재단의 후원으로 첫 행사가 이루어졌음.

3. 도시열섬 등 공공과 민간의 을지로 거리예술에 모티브가 되어주었음.



2019

환상곡의 시작




환상곡을 위한 연대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시도로 '을지로 판타지아'를 만들기로 한 R3028과 APLANET은 각자의 캐비닛에서 예산과 사업들을 꺼내 보았습니다. 예술인 파견사업, 주민공모사업 등 결합해서 가용가능한 지점들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공간 구성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욕망과 현실 사이 어느 영역까지 가능할지에 대한 그림을 그려봤지만 도로 통제, 홍보, 운영인력 등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결국 공공의 도움을 청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게 페이퍼 한 장을 들고 중구문화재단을 찾아갔습니다.


2018년까지 중구문화재단의 중심 사업은 '충무아트센터'운영이었습니다. 덕분에 양질의 뮤지컬 극장으로 자리 잡이 올 수 있었습니다. 2019년 윤진호 사장 취임 이후 '중구문화재단'의 활동 영역이 넓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충무아트센터 운영과 더불어 지역문화(충무로 영화, 을지로 미술, 생활문화 전반)까지 재단의 역할이 확대된 상황이었습니다. 지역을 기반으로 성숙한 민주주의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있어 예술의 역할이 중요함을 알고 있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기반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충무아트센터 6층 로비에서 문화협력팀 팀장과 만났습니다. '을지로 판타지아'에 대한 구상을 건네니 중구문화재단에서도 을지로에서 문화행사를 만들기 위해 비슷한 구상을 하고 있었다며 지역의 기획자, 예술가들과 함께 만들어 보자는 답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도심에서 민간과 공공의 연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진창에서 핀 환상곡


아름다운 예술도 언제나 진창에서 시작됩니다. '을지로 판타지아'를 만드는 과정 또한 그랬습니다. 특히 2019년 10월 12일 토요일이 그랬습니다. 행사 시작 시간은 오후 6시. 오후 3시경부터 철공소가 문을 닫기 시작하기에 반에 반나절이 설치 가능한 시간의 전부였습니다. 급박한 설치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전선을 깔고 작품을 설치하고 장비를 설치하는 분주한 시간이었습니다. 여느 미대 입시 현장이 이랬을까요. 퇴근길에 나선 사장님들은 일과시간보다 오히려 분주해진 골목의 풍경이 생경하고 재미나셨는지 무슨 일이 있는지 물으시고 관망하셨습니다.


그렇게 오후 6시. 설치는 완료되지 못했고 현장은 여전히 수선했습니다. 복잡하고 이해관계가 많았던 골목은 항상 우리의 계획에 순응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설치 속도는 예상에 미치지 못했지만 현장에 있는 이들이 지역 구조에 대한 이해가 높았기에 큰 사고는 없었습니다.


을지로 골목에서 벌어지는 예술 현상에 관심이 많았던 서양호 중구청장이 소수의 직원들과 함께 현장을 방문했지만 바삐 준비 중인 모습만을 보고 돌아가야 했습니다. 오픈 이후 모습을 사진으로 보내달라는 말만 남기고 떠나야만 했습니다.

※2018년 10월 박원순 서울시장과 지자체장이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빌바오를 방문하여 도시재생·사회적 경재 등 현장 답사 및 협약 진행했습니다. 후 스페인의 도시재생을 운영하는 전문가가 서양호 중구청장과 을지로에 방문하였습니다. 그는 을지로의 문화 현상이 도시재생에서 가지는 의미가 크며, 향후 발전에 대한 기대감을 표했었습니다. 이후 서양호 중구청장의 을지로 예술에 대한 관심은 자연히 높아질 수 있었습니다.


오후 7시가 되었을 때 해는 저물었고 골목엔 형형색색의 빛이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골목은 이제 제법 '판타지아틱'해 졌습니다. 여전히 작품을 설치하고 있는 작가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명 덕분이었을까요. 거리의 분위기 때문이었을까요. 의도된 퍼포먼스를 하는 것처럼 읽혔습니다. 골목을 따라 인디밴드의 음악이 퍼져나갔고, APLANET이 설치한 조명과 작가들의 작품이 골목에 자리 잡아갔습니다. 한쪽에서는 한숨 돌리며 고기를 굽기도, 한쪽에서는 공연을 즐기기도, 한쪽에서는 작품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골목을 감각했습니다.



전환된 골목

2019년 10월 12일 토요일 오후 3시 이후 분주함은 이전에 그 길에 없었던 분주함이었습니다. 7시 이후 길을 걸어 들어가며 느낄 수 있었던 감각은 이젠에 그 길에서 느낄 수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만든 이, 보는 이가 함께 만든 에너지는 고스란히 골목에 쌓였습니다. 이제 그곳은 이전과 같아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있어 왔지만, 이후로는 다른 곳이 될 길목이 탄생했습니다.


낮에만 살아 있는 거리, 해가 지면 적막감이 공기를 타고 무겁게를 더하는 거리, 산업으로 살아 있는 마을. 은은히 퍼지는 쇠 냄새의 골목은 하룻밤 새 옷을 입을 수 있었습니다. 거친 건물 외벽 위를 덮은 빛은 공간을 다르게 감각하게 만들었고, 공기를 타고 흐르는 음악은 사람들이 모여들게 하였습니다. 짧은 6시간 남짓 모습을 바꾸었던 거리는 공간에 있던 이들에게 장소가 되었습니다.  기억은 전환되어 그 공간에 있었던 모든 이들에게 추억이 되었습니다.



환상곡의 막이 내리고


각자의 위치에서 활동하던 지역의 주체들이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모이는 경험이 시작되었습니다. 본 행사를 지속한다면 함께 풀어나가야 할 과제 또한 남았습니다. 설치 및 운영에 대한 노하우는 2회가 되면 더 능숙하게 풀어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영역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행사의 운영을 설계하는 것은 경험의 축적으로만 해결되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을지로의 골목은 있었지만, 을지로의 사람은 부재했습니다. 지역을 구성하는 중추 중 하나인 소공인은 소수만 함께 해주실 뿐이었습니다. 그들과 어떻게 환상곡을 협연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첫 '을지로 판티지아'를 마치고 여운의 빈 구멍을 응시해야만 하는 시기로 기획단은 접어들었습니다.


 



을지로 판타지아 개요(좌), 을지로 판타지아 서문(중), 을지로 판타지아 포스터(우), 2019




설치 현장 ⓒR3028


을지로 판타지아, 2019 ⓒR3028
을지로 판타지아, cannon400D, 2019 ⓒ고대웅




제목 : 을지로판타지아

일시 : 2019.10.12.18:00-24:00

장소 : 산림동 일대

기획 : R3028, APLANET

협력 : VORI STUDIO, 을지천체

후원 : 중구문화재단

참여예술가 :

고대웅@chngdoo_studio

박대선@p_deasun

배현종

이강준

이원경@wonnieye

엄기순@kisoon.eom

우혜지 @hyejiwoo

황선종

허선영@heo.sunyoung

OFF-E@off.e_official

FAVST@favst_official

루아멜@luamel_official



연동된 행사

이웃집관종들, 아티스트 토크, 도파민최&박현철, 산림방, R3028

을지놀놀, 예술가 네트워킹 파티, 세운교, 중구문화예술거버넌스

을지로체, n/a갤러리, 배달의 민족





참고자료


언론

(재)중구문화재단 윤진호 신임 사장 선임, cnb journal, 김근영, 2019

박원순, 스페인서 광역행정청·팹시티 방문…혁신정책 아이디어 모색, newsis, 배민욱, 2018

"이번 주말 을지로에 인싸들 다 모인다" 로오나, 아티스트 토크 '이웃집 관종들'개최, 위키트리, 임솔, 2019

배달의민족, 한글날 맞아 여얿 번째 무료 서체 '을지로체'출시, 아시아투데이, 오세은, 2019

서울 중구, 12일 '을지놀놀&판타지아' 축제 개최, 시민일보, 여영준, 2019


인터넷

박원순 서울시장 스페인(바르셀로나, 빌바오) 방문, 주 스페인 대사관, 2018

[지역문화축제]을지로 즐기는 날!, 충무아트센터 블로그, 2019


사진

을지로 판타지아 전경, 산림동 일대, 고대웅 & 류지영, 2019

매거진의 이전글 판타지아, 을지로 #0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