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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두 Apr 27. 2023

판타지아, 을지로 #05

2022. 도시열섬과 을지로판타지아

들어가며.

언제부터인가 쇠를 갈아내던 소리가 가득했던 을지로 뒷골목에서 음악이 들리고 거리는 빛으로 물들었습니다. 을지로에서 활동하는 기획자, 예술가들이 「을지로 판타지아」라는 이름으로 벌인 일들이었습니다. 600년간 그곳에 있었던 길은 하룻밤 전혀 다른 곳으로 변했습니다.

2023년 4월 29일 토요일 저녁 『을지로판타지아열섬 : Brain Dance』가 열립니다. 올해는 미디어 작품과, 사운드 아트가 길에 입혀질 예정입니다. 이를 기념하며 2019년 시작되어 을지로 골목을 예술로 물들이고 많은 영감을 주었던 『을지로판타지아』의 일대기를 돌아보고자 합니다. 5부작의 마지막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을지로^판타지아 euljiro【이탈리아어】fantasia

명사

1. 서울시 중구 을지로 4가(산림동) 일대 골목에서 벌어지는 다원예술 축제.

2. 2019년 R3028, aplent의 주최 주관하고 중구문화재단의 후원으로 첫 행사가 이루어졌음.

3. 도시열섬 등 공공과 민간의 을지로 거리예술에 모티브가 되어주었음.



도시열섬


골목에 안개가 피어났습니다. 주홍빛 조명이 물방울을 타고 골목을 물들였습니다. 붉은빛이 스며든 공장 안에서는 DJ들의 음악이 전파를 타고 퍼져 나갔고, 헤드폰을 낀 관객들은 무희처럼 몸은 흔들었습니다. 「도시열섬」은 그렇게 그날 골목에 있었습니다.


을지로라는 도시는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예술 잠재성이 풍부한 지역이다. 

을지로의 예술가들은 개인 창작은 물론 공공과 함께 협업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경험이 있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가능성을 도심에 심고 있다. 

쌓여온 가능성을 기반으로 도시에 예술이 피어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도시에 예술이 피어나는 과정과 결과가 '공공예술'이 될 것이다.


을지예술센터의 PD들과 중구문화재단 도심예술팀이 공감한 대목이었습니다. 이를 근간으로 『도시, 을지로+2°C』라는 이름의 '공공예술프로젝트'를 운영하게 됩니다. 프로젝트는 총 5개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습니다.「움직이는 도시」,「노래하는 도시」,「가까이 보는 을지로」,「멀리 보는 을지로」, 「도시열섬」이 그것이었습니다. 연극, 음악, 미술, 예술교육이 어우러진 입체적인 프로젝트였습니다.


그중 「도시열섬」은 「을지로판타지아」를 모체로 삼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을지예술센터에게도 고대웅 PD에게도 3년간의 사업을 정리해 나가는 과정에 중요한 축이 되어준 프로젝트였습니다.  「도시열섬」을 통해  을지로의 예술가들과 교집합을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뜨겁게 축적된 도시의 에너지를 예술을 통해 보여주었습니다.


APLANET에게 새로운 변화의 계기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을지예술센터의 박지인 PD는 박대현대표에게 "거리 전체를 대상지로 삼는 설치 미술로 참여해줬으면 한다."는 제안을 하였습니다. APLANET 소속 작가 림은 항상 대지미술을 꿈꿔 왔습니다. 자신이 자라온 한적한 평화로움을 주는 들판을 추억하며 이상적인 공간을 실현할 작업을 구상해 왔습니다. 디지털 공간을 통해 설계했던 상상이 산림동 골목에서 펼쳐지는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APLANET이 예술행사를 만드는 공간연출에서 예술 작품을 창작하는 예술가의 영역에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제목: 도시열섬

거리 전시 감독: 고대웅

DJ 감독 : 이현종

큐레이터 : 문규림

행정지원 : 이솔잎

일정 : 2022. 03. 26 - 27

장소 : 을지로 4가 일대

참여작가 : 강재원, 밈미우, 박대선, 손석기, 안태원, 여인혁, 유형주, 장시재, 착

참여DJ : 모스피란, 미스틱무드, 아드레날린쿠팡서비스, 알랑제옹, 펀킨캣, 하세가와요헤이, Daniel S. Lee, Hotpot, DJ yesyes, Yeong Die



도시열섬 전경, 2022 ⓒ중구문화재단



·공공예술프로젝트《도시,을지로+2˚C》:  https://youtu.be/IqhnIeXmXUQ?t=318






이질의 접합

공공의 중력으로 을지예술센터와 강하게 붙었던 「을지로판타지아」(이하 판타지아)는 점점 자신의 궤도를 찾아가는 과정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기획단은 공공과 상호협력하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코로나19도 안심할 단계는 아니었지만 점점 상황이 호전되고 있었습니다.

 

방역이 일상화되고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는 대체로 완화되었습니다. 그간 눌러왔던 욕망이 분출되어야 하는 때를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엔 판타지아라는 이름으로 그간 하고 싶지만 실현할 수 없어 지역을 떠돌던 기획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간 막혀왔던 숨통을 틔우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셔터아트

2016년 R3028은 다붓다붓(미술봉사단체)과 함께 아이들의 그림으로 셔터를 채웠습니다. 도시재생, 예술교육이 결합된 을지로에서 첫 시도였습니다. 중구청은 아이들의 재료비를 제공하였고, 담당 주무관은 사비를 털어 아이들의 간식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아이들에게 그림을 선물 받은 공장의 사장님들은 고마움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였고 끼니마다 음식을 배달하는 백반집의 아주머니들은 골목이 너무 아름다워졌다며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하셨습니다. 이후 철공소 사장님들, 중구청, 을지로동 주민센터 등 공공의 기관들은 지속으로 셔터아트가 그려지길 희망했습니다. 


2017년 늦가을 중구보건소가 중구청을 통해 셔터아트를 진행할 예산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당시 중구청은 사업 시행을 R3028에 제안하였지만, 입정동(을지로 3가)과 산림동(을지로 4가) 골목에 공공예술·커뮤니티아트의 일환으로 지역을 기념하는 녹지를 만들고 있었기에 물리적인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에 을지천체의 이원경 작가는 자신의 취향과 일치된 셔터아트사업을 용역 받아 충실히 수행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후 주민참여 예산등을 통해 셔터아트 사업의 예산은 지속적으로 마련될 수 있었고, 이원경 작가는 그 예산을 통해 골목을 채워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둘씩 늘어나던 그림은 갑작스럽게 2016년 아이들이 그렸던 그림 위에까지 그려졌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아이들과 어르신들이 추억할 시작의 역사가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때가 자신의 기획한 사업들로만 셔터아트 길을 만든 원년이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2017년부터 시작되어 2022년까지 지속된 셔터아트 사업을 축하하고 돌아보는 전시 「도시전경展」과 관련 포럼이 골목에서 열렸습니다. 지난 사업의 과정을 해설하고 참여한 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자리였지만, 때맞춰 도로를 정비하는 공사가 진행되어 다소 어려움이 많은 상황 속에서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생활문화

2019년 첫 「을지로판타지아」를 마치며 못내 아쉬웠던 지점은 현장에 을지로라는 공간은 있었지만 낮 동안 그곳을 채웠던 이들이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지역을 공유하는 분들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어떤 지점을 우리는 열어 볼 수 있을까. 함께하지만 따로 하는 시간을 만들어야 할까 많은 고민을 했었습니다. 이에 대한 고민을 APLANET이 생활문화 팀과 함께 실험하는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APLANET은 오랜 시간 생활문화가 중구 전역에서 활성화되는데 많은 역할을 해왔습니다. 예술을 전공하지 않은 이들이 예술을 통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혹은 예술을 전공하였지만 삶을 살아오며 삶 뒤켠에 내려놓았던 이들이 자신을 찾아갈 수 있도록 지역의 여러 주체들과 함께 길을 열어왔습니다. 팬데믹을 겪어가는 기간 동안 모이기 어려웠고, 선보이기 어려웠을 생활문화 인들이 옛사람들이 그랬듯 청계천 인근에 모여 서로의 일상 속 예술을 공유하는 장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들은 을지로 일대를 구성하는 축은 아니었습니다. 을지로 외부 중구 전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었습니다. 골목이라는 공간이 그들에게 익숙하지 않았고, 그들의 예술을 보여주기 적합한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서로 결이 다른 지향과 성향으로 판타지아가 이뤄지는 구간을 공유하지 않고 골목 밖 공터에서 그들의 장을 만들었습니다. 



철공소 노동요

팬데믹 기간 동안 예술가가 예술가로 일을 할 수 있는 자리는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R3028의 대표 김재강은 이웃 예술가들과 오히려 가까워지는 계기로 만들었습니다. 유유자적하는 법을 배우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은 인건비를 만들고 창작을 지원하였습니다.  공공에서 해야 할 영역 중 일부를 도맡아서 수행했습니다. 서로를 지지해 주고 함께 견디는 지혜를 얻는 과정에서 김재강 대표는 이웃해 살아가고 있는 예술가 관계의 중요한 축에 위치하게 되었습니다.


팬데믹 속에서도 을지로 곳곳에서 재개발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파트와 오피스텔이 지어졌습니다. 2021년 서울시장에 당선된 오세훈은 지난 서울시장 재임 당시 정책으로 삼았던 세운상가일대 전면 재개발을 다시 공약을 내세웠습니다. 수조 원 개발이익의 극대화를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도시재정비사업은 막을 수 없는 시대의 흐름으로 압박해 왔습니다. 600년 역사를 가진 골목,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제조단지, 서로 연결되고 의지해서 벌어지는 예술 모두에 '철거예정'이라는 붉은 락카가 칠해졌습니다.


어려운 현실을 함께 극복해 나간 을지로의 뮤지션들은 다시 한번 고난이 예상되는 을지로를 위해 함께 할 장을 판타지아에 펼치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게 '철공소 노동요'가 R3028에 의해 기획되었습니다.


기획 : R3028

참여 예술가 : 안도, 시봉새, 한받, 모스피란, UMAN, YETSUBY, SEESEA, JAEHO



낯선 시선

APANET은 외부 예술가들이 을지로에서 창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곤 했습니다. 2022년 5명의 예술가가 그들의 지원으로 을지로에 찾아들었습니다. 그들도 다른 일반적인 서울의 예술가처럼 한 번쯤 을지로를 방문해 재료를 구매하고, 작품제작을 했던 경험이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혹자는 을지로에 작업실을 가지고 있던 적도 있었습니다. 다시 찾아온 을지로에서, 외부인의 시선을 담아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그 결과가 교차적으로 보여지게 됩니다.


기획 : APLANET

지원 : 을지예술센터

참여 예술가 : 김태균, 백승서, 손지민, 안소희, 전민혁



메타버스

APLANET은 2021년 이후 메타버스 공간으로 「을지로판타지아」를 옮겨오거나 디지털 공간에 맞춰 새롭게 해석하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2022년은 그래픽다자이너 박준우와 함께 진행하였습니다. 원년이 되어준 2021년이 디지털 공간으로 판타지아를 옮겨오는 시도의 시작이었다면, 현장에서 이루어진 것들을 기반으로 메타버스 안에서 즐길 수 있는 거리를 확대하는데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기획 : APLANET

지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참여 예술가 : 박준우

링크 : https://vrchat.com/home/world/wrld_3e4c9469-64e9-4c11-84fe-cf1cf6e9c070







도심전경


「을지로판타지아」를 중심으로 팬데믹 동안 지역을 떠돌던 기획들이 모였습니다. 그 안엔 자신의 영역을 만들기 위해 개인의 욕망을 욱여넣은 것도 있었고, 주민과 예술을 매개로 지역을 연결 짓는 접점을 만들기 위한 실험도 있었고, 우리가 함께 기억하고 연대하기 위한 예술도 있었습니다. 그것들 중 2019년 이후 지속적으로 다져가며 발전해 온 형태가 무엇인지 살펴본다면 APLANET의 '열섬'과 R3028의 '철공소 노동요'가 그 뼈대를 이어주고 있었습니다.


'열섬'과 '철공소 노동요'는 '도심전경展'이라는 이름으로 2022년「을지로판타지아」 주축이 되어주었습니다. 해가 진 골목엔 거대한 태양이 떴고 해무리가 골목에 퍼져나갔습니다. 재개발로 생업의 터전을 잃은 철공소가 이주할 수 있도록 지어지고 있는 '산림동 상생지식산업센터' 공사장 한편에 DJ테이블이 자리 잡았습니다. 성벽 같은 공사장 가림막 중 오직 건물의 입구가 될 곳만 그물로 출입만을 통제한 채 열려 있었습니다. 가림막 사이로 보이는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는 옛것이 새로움의 옷을 입고 변태를 준비하는 고치 같았습니다.


자리를 잡은 DJ들은 자신의 시간 동안 음악으로 골목의 관객들과 소통하였고, 한받은 오늘도 수레를 끌며 도시와 욕망,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사람들과 행진하였습니다. 그 안에 작은 도시에 애정을 가진 예술가, 노포의 사장님들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룻밤, 다시 골목은 환상곡을 입었습니다.






·도시전경 스케치 영상 : https://youtu.be/g_zCA9qNmTg?t=2127



제목 : 을지로판타지아 생산기지

일시 : 2022.10.21 - 22 19:00 - 22:00

장소 : 을지예술센터 일대

후원 : 서울특별시, 서울 중구청, 중구문화재단




참고자료



언론

세운상가 일대에 지식산업센터 조성된다, SISA NEWSPEOPLE, 곽기호, 2020.04.08


인터넷

[공공예술프로젝트]〈도시, 을지로+2˚C〉를 소개합니다. 충무아트센터, 2022

을지로 야외전시 <<도시열섬>>(3/26~27)을지로 4가 일대 공공예술프로젝트, 아영우, 2022

서울산림 지식산업센터 설립승인(산림동 82-3 외 1필지), 서울특별시 서울정보소통광장, 2021

예술이 마을에 미칠 수 있는 긍정의 에너지 - R3028, 아는동네, 2016


영상

공공예술프로젝트《도시,을지로+2˚C》, 센터TV, YOUTUBE, 2022

20221022 을지로판타지아 : 생산기지 도시전경 아카이빙, AKP, YOUTUBE, 2022


사진

도시열섬 아카이브, 중구문화재단, 2022

2022 을지로판타지아 포스터 도시전경, 을지천체, 2022

2022 을지로판타지아 포스터 철공소 노동요, R3028 & ACS, 2022

2022 을지로판타지아 생산기지 포스터, APLANET, 2022

2022 을지로판타지아 전경, R3028, 류지영,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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