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두 May 26. 2023

문녕준

작은 방에서 큰 세상을 꿈꾼 예술가

도심에 많은 예술가들이 오갑니다. 그중 작업실을 꾸리는 예술가들의 수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곳에 평생 머무르진 않습니다. 자연히 때가 되면 이곳을 떠납니다. 어디론가로 갑니다. 마치 날개를 가지게 된 나비같이.     

대림상가 2층은 양지바른 3층과 달리 볕이 들지 않습니다. 오락실 게임기가 적재되어 있는 복도는 더욱 좁기만 합니다. 작은 상점들이 늘어선 복도는 주로 적막합니다. 그곳에 2평짜리 예술가의 작업실이 있었습니다. 문녕준 작가의 공간 '이평'이었습니다.

문녕준 작가의 공간은 이제 그곳에 없습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여정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작업실 계약이 며칠 남지 않았던 4월의 어느 날, 문녕준 작가를 찾아갔습니다. 발랄하고 유쾌한 그의 이야기를 전달해 봅니다. 글이라는 매체로 전달되지만 최대한 그의 육성이 전달되도록. 



목차

문녕준 이야기

작업 이야기

공간 이야기






문녕준 이야기


유명 스타를 지인 찬스로 만난 그런 느낌입니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자기소개를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을 하다 보니 뭔가 안 하고 싶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자기소개를 안 하고 싶고, 잘하고 싶은데 준비를 안 하고 싶은 느낌 무슨 느낌인지 아시죠? 아직 뭔가 구체적인 거는 구체적으로 얘기하기 어려워요. 스스로를 공간이랑 조각과 관련해서 작업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요. 뭔가 거창하게 얘기하고 싶지는 않고.


작가님의 일상과 관점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나눠보고 싶어요. 최근 작가님 활동을 보면 논문이 보이거나 많은 공부를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평소에도 예술, 디자인 이론 공부를 많이 하시는 타입의 예술가이시구나 생각을 했었어요. 이론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예술가들도 많은데 작가님께서는 어떤 이유 때문에 이론에 관심이 많으시게 된 걸까요?


제가 저를 더 잘 설명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에요. 어떻게 보면 이론은 첫 번째 토대를 마련해 주는 것 같아요. 그냥 무작정 제가 좋아하는 걸 하는 것도 좋긴 하겠지만. 전엔 무작정 제가 좋아하는 것을 찾고 그걸 하고자 생각했던 적도 있어요. 근데 이론적으로 구축된 무언가가 있으면 더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더 잘할 수 있고 더 다양하게 표현을 할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도 점점 깊이를 더해 갈 수 있도록 해주어요.


스스로의 깊이가 정해져 있는데 다른 이론을 좀 적용을 하다 보면 깊이가 조금씩 조금씩 깊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이론을 공부하는 과정과 제게 적용하는 과정은 결국 내가 해나가는 작업의 깊이를 깊게 할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누군가 해준 이야기를 사색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를 만들어줘요.


제 개인적인 성향이 옛날부터 다른 사람이 했던 말들을 듣고 저 스스로 곱씹어 보면서 생각하는 걸 좋아했어요. 그런 이유에서 이론 공부하는 과정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것 같아요. 


요즘에는 내가 한번 연구를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최근에 제가 인류학 배우고 있거든요. 근데 인류학 관련해서 알려주신 교수님이 어촌 문화를 연구하고자 거기서 3년을 사셨대요. 3년을 살면서 그 연구 논문을 쓰신 거예요. 그 과정을 듣다 보니 뭔가 나도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몇 년 동안 경험을 해서 글로 한번 써보고 싶다. 요즘 그런 생각이 많이 드는 것 같아요.


그러면 이후 작업이야기를 나누며 더 깊이 있게 이야기하게 될 것 같은데, 작가님의 연구 대상이 ‘문녕준이라는 사람’이라면 ‘문녕준이라는 사람이 만들어낸 공간, 조각. 그 안에 존재하는 사람’에 대해서 내가 해석하고 바라보는 것들을 조금 더 깊이 있게 연구해 보고 싶다고 이해해도 될까요?


네 맞아요. 맞아요. 공간 관련한 것도 공간과 관련된 연구를 한번 해보고 싶어요. 그러니깐 나를 담금질하는 방식법론 중 하나가 이론에 대한 공부예요. 근데 요즘에 다른 아티스트 분들이랑 뭔가 얘기를 하다 보면 전혀 그런 게 없는 분이 많더라고요. 그냥 그런 이론적인 거 없이 그냥 바로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 방식이 내가 하기에 옳은 걸까 그런 생각도 많이 들더라고요.


수많은 이론 중 주 되게 관심을 가지시는 부분은 어떤 것들일까요?


가장 몇 년 동안 생각했던 첫 번째 이론이 ‘디자인 요소들’이라 해서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이론서가 있어요. 그 책엔 어떤 것이 아름다움이고 아름다움을 어떻게 표현을 해야 되는지에 관한 이론 개념서거든요. 그래서 그 책을 제가 정말 좋아해요. ‘게일 그리트 하나’가 쓴 책이에요. 뭔가 아름다움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그런 그런 이론도 저에게 좋았어요. 그게 결국에는 게슈탈트거든요.  그래서 제가 그 을지예술센터(2021)에서도 ‘을지로 게슈탈트’라는 주제로 전시를 했었는데 그때 모티브가 그 책이었어요. 


책을 기반으로 시작되었지만 창작 과정은 무조건 그걸 따라 하지는 않아요. 그 책을 읽고 이해가 되는 거를 저만의 방식으로 변형했었어요. 이론을 좋아하고 많이 공부하려 하지만 너무 이론서에만 함몰되는 게 아니라 이걸 가지고 생각의 방식을 학습하려 했었어요. 작업에 대해서 설명을 하거나 아니면 해석할 수 있는 도움이나 장치 조언의 도구로서 공부하고 너무 절대적으로 성경책처럼 이론을 대하고 싶지는 않아요.


이야기를 듣다 한 걸음씩 쌓아나가시는 느낌이 들어요.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10년 후에 문녕준은 어떤 모습일 것 같으세요?


제가 정말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10년 아예 외국에 있거나 아예 한국에 있거나 할 것 같아요. 그리고 그때는 조금 이론적 토대를 좀 다진 다음에 제대로 된 작업을 하나는 할 것 같아요. 당장에는 대학원도 가서 공부를 하고 싶어요. 외국으로 간다면 나라는 대략 정해졌어요. 네덜란드 아니면 영국 둘 중 하나일 것 같아요. 네덜란드가 너무 마음에 들긴 하는데 영국을 가야 되지 않을까 생각도 하고.


어디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실지 기대됩니다. 그때는 지금은 이론을 학습한다고 하시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문녕준의 이론이 나오겠죠? 어떤 이야기가 담길지 궁금해집니다.


맞아요. 글로 한번 좀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최근에는 에세이 써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보고 싶어요. 올해 써보고 싶어요. 지금은 저 스스로를 위한 연습 기간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쌓아가는 단계고 뭔가 제대로 막 완전한 상태는 아니니까 근데 그제야 좀 완성된 저의 세계관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어요.


나는 그 안에 작가님 손 그림으로 그린 삽화가 들어가 있는 거 너무 보고 싶어요.


문녕준 작가 작업실 벽에 걸려 있는 스케치 ⓒ고대


대학원 가서 하고 싶은 목표 중에 하나가 제 작품과 관련된 사진집을 제대로 만들어 보고 싶어요. 그리고 그것을 독립서점에 뿌리고 싶어요. 그래서 대학원에 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어요. 뭔가 “딱 하나 사진 내 작품 사진집을 제대로 만들어서 한국에 오자.” 하는 것도 지금은 “에세이를 딱 하나 잘 써보자.” 하는 것도. 그나저나 글을 써야 되는데 쉽지가 않아요.


많이 읽기도 하니까 쓰는 것도 잘할 것 같아요. 기대됩니다. 문녕준의 에세이와 사진첩이.







“작업이야기”


이제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아까 작가님께서 처음 소개를 열어 주실 때 공간과 조각에 관해서 작업을 하고 작업을 한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작가님 활동 안에서 사람이라는 키워드가 되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했었거든요. 사람이 빠져있더라고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그게 약간 삼각관계이긴 해요.


삼각관계라고 말씀하시니 ‘공간’, ‘조각’, ‘사람’이 중요한 축일 것 같아요. 사람은 내가 뭔가 만들거나 설정하는 건 아니지만 누군가가 자연스럽게 작용하는 어떤 외부적인 요소이기 때문일까요.


그것도 그런데 제게 사실 사람이 가장 중요하긴 하죠. 근데 이것까지 말하기가 너무 거창해지는 것 같아서.

제 작업이 예술 그 자체로 엄청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걸 만들겠다 보다 삶 속에서 혹은 공간 안에서 어떻게 작용할지에 대해서 사람의 영향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작품의 결과뿐 아니라 과정도 되게 중요하게 말씀해 주셨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특히 작업 과정에서 사람과의 관계가요. 철공소 사장님하고 어떻게 관계 맺는지, 사장님과 문작가님이 같은 철을 보고 다르게 느끼는 관점에 대해서 즐겁게 이야기해 주셨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처음에 얘기했던 질문하고도 같이 이어지는데 어떠한 공간에 조각이 있고 그걸 공간 안에서 발견하게 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그 안에 들어오는 과정이 되게 중요한 것 같다고 느껴져요. 이 세 가지 축이 작동되는 것을 관찰하거나 그 안에서 수행하면서 각 요소들은 어떤 관계를 가지게 되고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냈을 때 성취감을 느끼실까요?


일단 저는 제각 조각을 봤을 때는 우선은. 그냥 시각으로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자체가 저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적 요소라고 생각해요. 조각이라는 것이 상대적으로 보면 큰 공간이 될 수 있는 것이고, 조각 그 자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너무 이분법적으로 나눠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까 조각 안에 내가 뭔가 호응하듯이 쌓여져 있는데, 거기서 경험하는 나의 조각과 나의 관계를 보게 돼요. 뭔가 감정적이든 아니면 정말 이게 아예 이성적일 수도 있고.

이 입장으로 작품을 만들고, 그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환경을 관찰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 조각 안에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그 관람객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그냥 저는 그냥 조각과 조각 안에서의 사람 딱 그 자체를 보고 있는 것 같아요.

 

너무 거기에 뭔가 막 이야기 넣어놓는 것보다 그냥 조각이, 엄청 큰 조각이 있어도 굳이 뭔가 막 정확히 할 필요는 없어요.


조각이라는 게 미시적인 어떤 것일 수도 있고, 거대한 건축 혹은 공간일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공간과 조각과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한 꺼풀 넘겨 보면 공간과 사람, 조각과 사람 두 가지 축을 중심의 작업을 해오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네! 맞아요. 맞아요.

전 그 장면을 포착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 장면 그 자체가 그 공간에 사람이 어떤 관계를 맺는지 관찰하는 거. 말로 표현이야 어떻게 정리를 해야 될지 아직은 명확하지 않지만, 저는 전시장에 갔을 때 서로 상호작용하는 그 장면 자체가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작가님이 대하는 작품을 봤을 때 요소는 되게 디자인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갔다고 느껴지지만, 작품을 만든 사람은 디자이너가 아니라고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제 이유를 알 것 같아요. ‘목적을 가지고 설계하고, 사람의 행동을 설계해서 움직이게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든 공간과 사람이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를 관찰하고 각자가 가지고 간 이야기들이 어떤 형태가 됐든 나는 수용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리고 나 또한 그들을 바라보면서 어떤 해석을 할 여지가 있다.’라는 시선으로 바라보시는 것 같아요.


네, 열린 내용이에요.

그리고 저는 미술 작품을 봤을 목적성 없이 그냥 그 자체로 보거든요. 제가 조각을 좋아하는 이유도 조각에서 느껴지는 ‘美(미)’ 자체를 좋아해요. 사람들이 작품에 대해 사회적인 이야기나 자신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저는 그런 것들보다는 그냥 조각이라는 작품 자체와 사람이 마주한 그 장면에 아직 집중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이런 맥락에서 제가 조각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디자인적 요소가 있으면 기능이 있어야 하고, 무슨 방법론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들보다는 어떻게 보면 물체와 사람의 관계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요.


작가님 말씀하셨던 것 중에 ‘미’라는 단어를 쓰셨잖아요. ‘미’ 그 자체는 어떤 목적이나 메시지의 명확성과 무관한 말인 것 같아요. 어떤 대상을 봤을 때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것. 그것이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그걸 통칭해서 ‘미’라고 얘기할 수 있을 텐데 오늘날 우리가 미를 지향하는 예술이라는 게 사실 정의하기도 힘들고 너무 다채로워진 것 같아요. 

각자 예술가들에 따라 정의하는 ‘미’가 다를 거예요. 각 예술가가 정의한 ‘미’에 따라 각자만의 예술의 등급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작가님께서 지향하시는 정말 좋은 예술이라는 게 어떤 걸까요. 예를 들어 ‘이 예술이 되게 좋은 예술이야. 나는 그곳까지 닿고 싶어.’라고 얘기할 수 있는 예술이요.


그 생각 되게 많이 했었는데, 제 기준에 정말 좋은 예술은 남들이 다 아는 ‘뒤샹’이거든요. 

‘뒤샹’ 이후로 예술의 패러다임이 없다고 생각을 해요. 동시대 미술에서 미술의 패러다임이 언제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바뀔 수 있을까도 싶기도 해요. 가장 가까운 시점에 패러다임을 바꿔 낸 사람이 ‘뒤샹’이라고 생각해요. 그 이후에 나오는 미술 작품들은 어떻게 보면 답습이 아닐까 싶어요. 저 역시도 그렇구요.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오는 것이 정말 좋은 예술이 아닐까 싶어요. 그 말인즉슨 옛날에는 좋은 예술작품이 나오면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이론이 나왔어요. 그 이전에 나왔던 이론들로 설명이 될 수 없었던 것이 나타난 거예요. 그것이 최근에 나온 것이 ‘뒤샹’의 작품을 설명하기 위해서 정말 다양한 비평가들이 이론을 만들었다고 했고 그중에 하나가 다다이즘이라든지 이런 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렇듯이 뭔가 작품은 딱 하나로 수많은 비평이 생길 수 있는 그런 게 정말 좋은 예술 작품인 것 같아요. 


거기까지 가고 싶으신가요.


가고 싶은데 너무 쉽지 않죠. 그리고 지금은 그런 사회는 아닌 것 같아요. 동시대는 그런 느낌은 아닌 것 같아요. 이거는 물론 과거에서만 요즘 그래서 저는 요즘 미술에서의 패러다임이 또 생길 수가 있을까 되게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고요.


새로운 패러다임이 생길 수 없다면, 안 해도 되지 않을까요? 목표가 있는데, 거기까지 못 갈 것 같아. 그러면 안 가는 것도 방법이잖아요.


안 가는 것도 방법이긴 하죠. 그래서 그냥 저도 막 거창하게 “나도 뭔가 내 작품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거야” 이건 아니고 그냥 제가 하고 싶은 작업 하다 보면 ‘뒤샹’까지는 절대로 바라지도 않아요. 아마 그런 사람이 없을 것 같아요. 동신대 미술에서는. 그냥 제 작업하는 걸로. 제가 할 수 있는 작업하는 걸로.


얘기를 ‘뒷샹’에서부터 들어 봤지만, 제가 작가님의 이야기를 듣고 해석되는 것은 어쨌든 문영준이라는 작가는 예술과 사람을 되게 좋아하는 사람이고, 그 사이 관계에 크게 개입하지 않지만 그들 관계를 지켜보는 것도 즐겁고, 어떠한 시점이 됐을 때 내가 했던 일들이 관객들에게 작품에게 예술에게 혹은 관객에게 혹은 대중에게 어떠한 거창하지 않더라도 변화의 지점을 열어줄 수 있는 그런 정점을 찍어보고 싶다고 느껴져요.


맞아요. 


작가님께서 그 방향이 가고 있다고 저는 느껴져요. 제가 본 것들 중에서 제일 가깝게 간 모습은 노들섬에서 했었던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게슈탈트의 조형 언어를 가져와 배열해 보고 의자를 만들고. 이후로는 노들섬에 철로 된 벽도 만드셨잖아요. 제가 기억하는 작가님의 작업 스케일이 계속 조금씩 커졌어요.

처음 작가님 작품을 봤을 땐 “난 이 얘기를 하고 싶어!”가 적지 않은 게 있었다고 느껴져요. 항상 작업을 했을 때. 그러다 그게 점점 흐려지면서 더 많은 얘기를 오히려 할 수 있는 환경을 열어가는 것 같아요. 


중간에 조금 사람들의 행동을 조금 제어해 보거나 제약하는 요소들이 있었으나 그게 이제 의자 작업들 밴딩 된 의자나 그리고 작은 물 오마주 하는 의사들 모여 늦게 만 있었지만 그다음에 어 그걸 건너뛰어버리는 어느 지점에 가 있는 것 같아요. 그 작가님이 말씀하시는 방점을 찍는 지점이 어디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전과 이후가 많이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미 노들섬에서 설치하신 작품을 보면서 느꼈던 부분은 그 과정에서 일정 부분 작가님이 생각하는 어느 지점에 닿기에 성공하기 시작했구나 싶습니다.


을지로 게슈탈트 2020 (좌), 구부림 2021(중), 틈 2022 (우)


작가님께서 어떤 방점을 찍어가는 과정에 위치해 있는데, 지금까지 해오신 작업 중에 문녕준을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대중적으로 많이 소비되는 작품이 아니더라도 문녕준을 대표할 수 있는 작업이 궁금해요. 선보이지 않았던 것이라도 좋습니다.


근데 뭐랄까 아직 쌓고 있는 단계잖아요. 솔직히 쌓은 것도 이만큼(손가락 두 마디) 쌓았잖아요. 대표될 만한 게 있을까 고민도 많이 했었어요. 지금까지 해온 작업들도 모두 다 어떤 시점의 저를 대표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작업의 맥락에 있어서 미래를 대표할 수 있는 작업이 노들섬 작업인 것 같아요. 내가 미래에 이런 작업을 하겠다라고 표현이 조금 됐던 것을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노들섬에서 했었던 작업이 그것에 해당하는 것 같아요. 노들섬 작업이 뭔가 제가 미래에 할 것들을 작게라도 보여주는 작업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전시가 끝나고 철거 중인 '틈' 전경, 노들섬, 2022 ⓒ문녕준


지금은 쌓여온 시간 윗단에 서 있기 때문에 최근에 했었던 그걸 통해서 앞으로 뭘 해나 갈지에 대한 상상과 설계도 할 수 있겠어요. 작업이 점점 더 커질까요?


일단 그거는 큰 걸 해봐야 알 것 같아요. 근데 저는 하긴 할 거예요. 할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엄청 큰 걸 한다고 해서 저는 일단 뭔가 환경적으로도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저는 좀 큰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환경적인 걱정이라는 것은 지구 환경에 대한 걱정일까요? 아니면 내가 작업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한 걱정일까요?


지구에 대한 환경이에요. 정말 크게 작업을 해보고 싶은데, 예를 들면 대지 미술 하시는 분 들 보면 천을 엄청 많이 쓰시잖아요. 근데 그 정도의 그 정도의 작업을 하면 뭔가 환경이 자꾸 생각나더라고요. 그래서 작업을 큰 걸로 하되 좀 더 생각을 해보자 하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정말 큰 작업을 하고 싶어요.


그 이후로 작은 작업을 할 수 있게 하겠지만, 일단 해보는 게 저의 도전이 될 것 같아요. 뭐랄까, 시험을 해보고 싶은 거예요. 그 정도 한번 가보고 싶은 거예요. 왜냐하면 크기가 커졌을 때 정말 통제를 통제할 요소들이 너무 많아지고 이게 작게 만들면 저의 손만이 가잖아요. 근데 스케일이 커지는 순간 이해관계들이 엄청 많아지더라고요.


노들섬에서 그런 경험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서울시 관련해서도 하고 대통령까지 얘기가 나왔었어요. 이게 조그만 커져도 정말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을 해야 하고 그런 과정이 또 재미있을 것 같아요.

*문녕준 작가는 2022년 노들섬 공공예술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당선 당시 섬의 동편에 설치하려고 했던 작품이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대통령 헬기 이착륙 지역으로 활용되게 되어 장소 이동이 불가피해졌다.


예산과 행정과 행정과 법적 문제들, 인력 동원 등 총체적인 어려움을 마주하고 싶으신 거군요.


그걸 한번 겪어보고 싶어요. 그걸 해야 만족이 되는 건 아니고, 그것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과 연결 지어 보면 작가님의 주요 연구의 대상은 문녕준 인 것 같아요. 그중 한 챕터가 ‘도대체 문녕준은 어디까지 소화할 수 있는가.’ 인 것 같아요. 그 점에서 비춰보면 을지로에서 작업실을 빼는 게 되게 자연스러운 순서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을지로를 통해 철(鐵)이라는 소재가 되게 익숙하고 잘 다룰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은 잘할 수 있는 거고 그걸 내가 굳이 고집해서 못 놔줄 이유가 없다.


을지로였기 때문에 철 작업을 하게 된 거지 제가 철 작업을 하고 싶어서 을지로 온 것도 아니었어요.  자연스럽게 을지로에 있으니까 철 작업이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철 작업을 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도 있어요. 재료가 이게 아니라 정말 다양한 걸 사용하고 싶은데 그리고 이 재료 특성상 제한이 있더라고요. 재료의 한계를 저는 느꼈어요.


작가님께서 다른 곳에 작업실을 꾸리셨다면 작업이 많이 달라졌겠어요. 조끔만 옆으로 가서 방산시장에 작업실이 생겼다면 부드러운 소재가 많이 사용되었겠다 싶구요. 을지로가 많은 영향을 줬네요. 사람들도 많은 영향을 줬을 것 같은데 어떤 사람들이 영향을 많은 영향을 줬을까요?


맞아요. 맞아요.

정말 너무 많긴 한데 잠깐 얘기하자면 철공소 사장님들 일단 첫 번째 고요. 그리고 두 번째는 을지예술센터예요. 이런 분들이 있었기에 제가 작업을 다양하게 해 볼 수 있어요.




을지로입구99번출구, 배달의 민족, 2021 /  콜렉트브컬렉션, 작은물가, 2021 / 프로젝트을, 을지로게슈탈트, 2021



세운상가 사장님들이 제가 작업실을 뺀다고 하니까 엄청 서운해하셔서 제가 말로 못 하고 있었어요. 근데 오늘도 경비 씨 아저씨가 오시더니 “자리 뺐다며” 이러시는 거예요. 그렇게” 맞아요. 빼게 됐어요.”라고 이야기했어요.


이렇게 좋은 마무리가!








“공간 이야기”


작업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게요. 작업실이 크지 않아요. 평수도 2평, 이름도 이평이고, 그 안에서 뭔가를 많이 하기는 충분치 않은 공간임이 확실한데, 어땠어요? 2평 공간을 쓰는 과정이.


저는 일단 오히려 2평이라는 공간에서, 거기서는 엄청 큰 걸 만들지 못하잖아요.

하지만 그 작은 공간에 앉아 있으면서 머릿속에서는 되게 큰 걸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그게 오히려 되게 재밌었던 것 같아요. 뭔가 저 멀리서 카메라로 찍었을 때, 2평 이렇게 조그마한 공간에서 혼자 머릿속에서 뭔가 되게 엄청 큰 작업들을 상상하고 그랬어요.


그리고 물리적으로는 작았지만 오히려 크게 생각할 수 있게끔 해줬어요. 뭔가 작업실이 작으면 사람은 작은 작품들을 만들 것 같다고 생각을 하는데, 저는 오히려 작업실이 작아서 뭔가 엄청 큰 생각을 했었던 것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뭐지,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보면 장롱 속에 새로운 세상이 있잖아요. 약간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2평 들어가면 물론 작기는 작지만 미래엔 광활한 곳을 만들어 준다고 생각을 했어요.


‘이평’이라는 작업실이 되게 얇은 벽으로 공간을 구분 짓기 위해 서있는 최소한의 벽으로 존재하는데, 요소들이 오히려 최대한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 되어주었네요. 오늘 작가님을 뵈러 오면서 작업실 정리하는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궁금했는데 이제 다 설명된 것 같아요.


맞아요. 

안 놔줄 이유도 없어요. 그 시간 충분히 고마웠고. 감사해요.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할 건 다 했다.”


아직 어디로 작업 공간이 이동할지는 모르겠네요. 집에 있는 방이 될 수도 있겠어요.


당장에는요. 

아예 그냥 바로 외국으로 가서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2평에서 작업을 해서 오히려 외국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2평이 있다 보니 정말 제가 못 봤던 큰 세상들이 더 궁금해지더라고요. 대한민국의 다인 줄 알았는데 그 너머의 무언가가 더 있다는 거를 뭔가 2평 때 더 실감을 한 거예요. 그래서 그런 더 큰 생활을 해보고 싶어 졌어요. 큰 곳에서 작업을 해보자 해서 이제 ‘이평’을 빼게 된 것도 있었어요.


최근에 하신 세계 일주도 그런 맥락에 있었을까요?


네, 그런데 뭐 얼마 안 다녀왔어요.

‘뉴욕’ 갔다가 ‘런던’ 갔다가 ‘파리’ 갔다가 ‘도쿄’ 갔어요. 원래 ‘도쿄’를 안 갔으면 세계일주는 아닌데 약간 아시아에서 출발해서 아시아까지 오면서 한 바퀴를 돌았으니 세계 일주가 되었어요. 돈이 없으니까 한 달 있다가 왔지, 돈이 있었으면 오래 있고 싶었어요.


혼자 다니면서 무섭지는 않으셨나요?


진짜 무섭긴 했거든요. 

미국에서는 진짜 너무 무서웠는데 좀 적응이 되더라고요 런던도 그렇고 적응이 됐어요. 혼자 다니는 거 너무 좋아해서.


작은 방이 오히려 큰 세상으로 가도록 안내했군요. 이제 을지로는 이런저런 일로 종종 오시겠지만 이곳에서의 생활은 막을 내리게 되었어요. 마지막으로 을지로에서 애정하는 공간을 듣고 싶어요. 어디인가요.


저는 꾸왁 칼국수. 작업을 엄청 하다가 너무 힘들었을 때 거기 가서 진짜 김치볶음밥 먹는 게 제일 루틴이었어요.


크. 나중에 을지로에서 만나 같이 가요.








작은 방에서 은하수를 찾은 예술가


반투명한 유리벽, 아크릴 샷시로 만들어진 작은 방에서 작가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 올 날들이 머릿속에 뭉개 뭉개 그려집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잘하고 싶어 앞서간 사람들이 남겨놓은 단서를 찾아내고, 공간과 사람이 어떤 관계를 만들어 나가며 그 안에서 자신은 어떤 장치가 될지 고민하고, 이후에 올 사람들에게 이정표가 되어주기 위해 나아가는 예술가의 여정의 한 순간을 함께 하였다는 것이 기쁩니다.

이제 2평 남짓 작은 방은 큰 세상으로 나아갈 예술가를 키워낸 역할을 다 한 것 같습니다. 문녕준에 대한 연구, 에세이, 사진첩, 그리고 유학. 작가님께서 앞으로 걸어 나갈 길이 오늘처럼 씩씩하길 응원하겠습니다. 그때마다 이평에서의 시간이 함께하길 바라며, 인터뷰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시간내주시고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작품 '틈'을 통해 바라본 여의도, 노들섬, 2022 ⓒ문녕준






문녕준의 을지로 작업실






문녕준 작가 더 보기

INSTAGRAM : @nyoung_jun


문녕준의 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