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가 만드는 예술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학교엔 김구를 닮은 미술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인연은 끊어지지 않고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께 전화가 온 날이 있습니다. 잘 지내냐는 안부와 후배가 을지로에 있다며 기회가 되면 찾아가 보라는 당부였습니다. 그렇게 손원영 작가님을 만났습니다. 대로변에서 좁은 계단을 따라 4층까지 오르면 합판으로 된 문을 마주합니다. 벽 같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예상치 못한 작업실이 있습니다. 오랜 시간 쌓였을 물감 방울들이 바닥을 메우고, 선반엔 물감들이 정갈한 열을 맞춰 있습니다. 한켠에서 보이는 작품을 통해 조각조각 쌓인 퍼즐이 만든 형상을 볼 수 있습니다. 수많은 조각이 쌓여 형상을 만드는 곳을 오랜만에 찾았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을지로에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예술가, 예술공간들을 연결해 보려는 시도들이 있어왔습니다. 눈에 띄지 않는 느슨한 연대는 그대로 놓아두고 점처럼 흩어진 것들이 모여 어떤 가치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과 시도였습니다. 2015년 대림상가 옥상에서 운동회가 열리기도 했고, 예술가들이 운영하는 공간에 게릴라 전시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함께 경험한 문화는 무의식에 자리 잡아 이후에 생길 일들의 초석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관계를 보여주고 그것이 예술이었음을 알려주는 손원영 작가님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목차
손원영 이야기
작업 이야기
공간 이야기
손원영이야기
자기소개를 하려 하니, 이곳에 온 이후의 시간이 스쳐 지나가네요. 나를 대변할 수 있는 수많은 이름 중에 뭐가 제일 좋았는가를 생각해 보니 ‘그림 그리는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소개할게요. 저는 관계에 관한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그것을 퍼즐을 모티브로 풀어왔습니다. 이제는 어떤 형식에 묶여 있지 않고 좀 더 자유롭게 풀어내고 싶은 생각을 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있지만, 어느 순간 작품 앞에서 머물렀을 때 그것에 대한 공감을 끌어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림 그리는 사람 외에 또 작가님을 부르는 호칭들이 있을까요? 애칭 같은 것들이요.
그 외 지인들은 ‘손내비’, ‘호천손원영’, ‘접착제’라고도 불렸었습니다. 예전에 길 찾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은 꼭 저에게 전화해서 길을 묻곤 했었어요. 그때마다 길을 잘 설명해 준다며 ‘손내비’라고 불리기도 하였고, 궁금한 것들은 참지 못하고 꼭 찔러본다며 '호기심천국'을 줄여 호처럼 ‘호천 손원영’이라 불리기도 했고, 사람들 간의 관계를 잘 이어준다며 ‘접착제’라고 불리기도 했어요.
애칭 모두가 상대적이고 상호적인 요소로 존재한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모두가 관계를 전제해서 존재하는 것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별명 중에서 '손내비'가 인상적으로 들리는데요. 지도에도 관심이 많으실까요?
지도 만들면 좋겠다는 상상을 많이 했어요. 어디를 가면 그 지역을 어떤 특성이 있고, 어떤 가게는 어떤 재료들을 팔고, 어딘 뭐가 맛있고. 여러 층위를 가지고 입체적인 지도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 관심사를 토대로 만들어진 것들이 ‘겨울 을지로 걷다’와 같은 예술공간 지도였어요. 뭔가를 찾아보고 궁금한 것들을 확인하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얽히고설킨 골목이 있고 파도 파도 이야기가 나오는 을지로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작업이야기
그림을 그려온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작업의 이미지라든지 이런 것들은 시기별로 관심과 표현 방식이 계속 달라져 왔어요. 예전에 피상적인 것들을 많이 그렸었어요. 그러다 내가 만나는 사람, 나에게 영감을 준 사람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작가일 수도 있고, 음악가일 수도 있고, 배우일 수도 있었어요.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퍼즐이 쌓여 사람의 형상을 만드는 작업을 해나갔어요.
2013년부터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고 2014년에 레지던시에 들어가면서 사람 얼굴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어요. 당시 작업실은 을지로였고, 주말에 레지던시에 가서 3일 내내 작업만 하다 올라오는 루틴으로 살았어요. 을지로에서 도시를 산책하고 길을 따라 여행을 다니기 시작하다 보니 공간과 사람의 관계에 관해 관심이 커지게 되었어요. 그렇게 풍경을 그리게 되었어요. 같이 레지던시를 하던 작가들과 골목골목을 여행하듯 다니는 재미가 쏠쏠했던 시기이기도 해요.
환경은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을지로로 작업실을 옮기고 나서, 지리산 자락으로 레지던시를 가고 나서 저를 둘러싼 환경이 달라질 때마다 보는 것도 달라지고,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도 달라졌어요. 그렇게 그림이 담고 있는 이야기들이 달라졌고. 저는 하고 싶은 프로젝트들이 점점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예술가들의 공간을 다녀보니, 사람들이 을지로의 공간을 방문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이곳에 그림을 걸어놓으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벽이 아까운데 직접 찾아가야만 볼 수 있는 미술관이 아니라 편하게 놀러 왔을 때도 그림이 걸려 있어서 접근을 쉽게 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러다 우연히 중구청에서 지역 문화예술 활성화에 대한 공고가 난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 공고를 보고 이렇게 미술의 문턱을 낮출 수 있는 그런 계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갑자기 하게 되었어요.
‘십 분의 일’이나 ‘작은물’, ‘물결’ 같이 동네에 처음 생기기 시작한 소소한 공간들과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마음을 다해 주인장들을 설득하러 다녔어요. 물론 거절하신 공간들도 있었고요. 그럼에도 흔쾌히 허락해 주신 공간들도 있었고, 적은 예산이지만 함께 해주신 작가님들도 계셨어요. 결과적으로 네 장소에서 각기 다른 작품으로 다른 기간에 게릴라식 전시를 열게 되었어요. 그때 진행한 전시의 이름이 ‘walk & work’였어요. 제가 공간들을 걸어서 돌아다녀 봤기 때문에 비로소 완성했던 경험을 녹여내고 싶었어요.
이후의 ‘예술기능공간’, ‘을지서비스센터’ 같은 행사는 기간을 정해놓고 그 안에서 전시가 다 같이 열리는 형식으로 진행되었지만, 당시 ‘walk & work’는 순차적으로 공간들에서 전시가 열리는 방식을 택했어요. 예상치 못한 공간에서 예술품을 맞닥뜨렸을 때 사람들의 반응도 궁금했어요. 참여해 주신 작가님, 공간 운영자들이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작가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당시엔 많은 공간을 소개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walk & work’가 열릴 당시에는 예술가가 운영하는 특이한 공간이 예상치 못하게 도심 한가운데 있고, 그곳에서 예술을 마주하는 경험을 선사하고자 했고, 모두 가볼 필요 없이 한 곳 한 곳에서 천천히 공간에서 예술을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찾아오신 분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 같아요. 그 시간들이 쌓여 을지로에 예술이 더 모일 수 있는 중력을 만들어주고, 그들이 모이는 것이 더 설득력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줬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가님을 뵈면 내향적인 성향이신 것 같은데 이와 반대로 많은 사람과 접촉면이 넓으신 것 같아요. 사람들과 함께 진행했던 프로젝트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2015년에 ‘청계추계체육대회’라는 프로젝트를 서울문화재단에서 지원받아한 적이 있어요. 당시 글을 써주신 선생님께서 저 보고 사람들 간에 접착제 역할을 한다며 ‘본드’라고 불러주신 적도 있어요. 서로 필요한 사람을 연결하는 일이 되게 재밌어요.
‘청계추계체육대회’ 이야기를 더 해보면, 당시 제가 지리산 자락에 있는 레지던시에 참여하고 있었어요. 그때 만난 작가님을 통해 들어보니 "어떤 작가들이 을지로에 있다더라." 하는 소문이 들리는 거예요. 혹은 "누가 을지로에 있었다더라." 하는 이야기들도 많더라고요. 그때 을지로에 내가 모르는 이들이 많이 있겠구나 싶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당시 레지던시에 참여하는 작가님들과 작업 외에도 공부하면서 건설적인 것들을 해보자며 스터디를 많이 했었어요. 그때 교통이 좋은 을지로 제 작업실에 모였어요. 그러다 옥상에서 ‘을지로 하와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었어요. 그냥 놀기만 하면 의미 없으니 예술 행위를 뭐든 엮어보기로 했었죠. 낯선 동네에 굴러들어 왔고, 박힌 돌들과 어떤 상호작용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게 많을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체육대회’를 생각하게 되었어요.
체육대회와 예술이 상관없을 수 있으나, 체육의 행위를 예술과 연관 지어, 어떻게 보여줄지를 고민했고 광장처럼 넓은 대림상가 6층 옥상에서 우리가 원했던 축제를 열게 되었어요. 레지던시에 참여했던 작가 3분과 기획을 같이하고 ‘을지로 하와이’라는 이름으로 파티했던 작가들, 공모를 통해 모집해서 만들게 되었어요.
당시 지역이 가지고 있는 무드와 이야기, 그리고 우리가 그리는 미래를 주제로 토론하고 공부하고 세미나를 열고, 작업으로 결과물을 만들어 축제의 형태를 선보였어요. 오랜 도시를 찍는 작가님, 건축 박사님, 인류학자가 함께 했었어요. 그 덕분의 을지로에 관해서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고 애착이 깊어지는 계기가 되었어요. 그때 했던 을지로에 대한 상상들을 엮어서 책으로 만들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각기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상상을 담아 ‘을지로 -것들’이라는 신문 형태의 인쇄물도 만들었어요.
레지던시에 참여하면서, 을지로에서 프로젝트를 하면서 "누가 을지로 어디에 있다."는 소문을 계속 듣게 되었어요. 개인을 작업실도 있고, 대인을 위한 갤러리와 영리 공간들도 하나씩 생겨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을지로에 있는 전시장을 가면 다른 곳에 전시장이 있는 것을 알게 되고, 또 다른 곳을 알게 되고. 너무 서로 모르지만 존재하는 점조직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2019년에 그 점들을 연결한 ‘겨울 을지로 걷다.’를 하게 되었어요. 점들을 연결하는 지도를 만들었어요. 지금 보면 많이 촌스럽지만, 일일이 손으로 그리면서 만들었어요. 지도에 안 나오는 길들 하나하나 그렸죠. 지금은 없어진 곳들도 있고, 새로 생긴 곳들도 있고.
작가님께서 이렇게 지역에서 있을 수 있는 예술의 가능성을 하나하나 쌓아주신 덕분에 후배들도 점점 더 좋은 환경에서 지역에 자리 잡을 수 있고 그 마음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하나둘씩 생겨났던 건 아닐까 싶습니다. 그들이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시도를 계속 될 수 있고 공간과 공간이 연결되는데 마음이 더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어요.
처음 이 공간에 왔을 때 4층 전체를 다 사용했었어요. 지금 Space Unit4 자리는 국보공예라는 사업체가 들어오면서 못쓰게 되었던 공간이었어요. 어느 날 저 공간이 다시 임대에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여건이 된다면 저 공간을 작가들이 마음껏 사용할 수 있고, 놀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발리랑 제주를 같이 갔던 적이 있었어요. 그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아티스트런스페이스를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어요. ‘한 달 동안 너 줄 테니 마음껏 써봐!’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니 같이 계신 선생님들이 함께 하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그중엔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도 계셨고, 기획하고 글 쓰시는 선생님도 계셨어요. 제가 바람을 넣었죠.
이후론 공간이 저희에게 넘어오는 날만 기다렸어요. 그렇게 Space Unit4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관심 있던 작가들에게 인스타로 연락하기도 했고, 공간이 필요한 작가들을 위해 공모를 하기도 했어요. 인스타로 연락을 드린 분들은 흔쾌히 참여하셨고, 공간이 필요한 작가들도 많이 모였어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참 운이 좋았어요. 이곳을 찾은 작가님들이 너무 좋았어요. 그런 분들과 많은 일들을 만들 수 있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었어요.
운영하시는 과정 중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었을까요?
다만 우리가 다 투잡이다 보니 하고 싶은 것들을 충분히 시간을 보내지 못한 부분이 아쉬워요. 또 한 가지, 조금 더 작가들의 손에 막 사용되는 공간으로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와서 작업도 하고, 프로젝트도 벌리는 곳으로도 기능하길 바랐지만 전시 공간으로 사용된 비중이 높았던 부분이 아쉬운 지점으로 남아요.
결국 예전의 작업실 자리를 되찾고, 그곳을 다른 작가들이 마음껏 활용하고 실험할 공간으로 열어주고자 하셨다는 것이 참 인상적인 대목입니다. 아마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네 분이 상상하셨던 재미난 일들이 더 있었으리라 추측해 봅니다. 이후 어디라도 이런 역할을 하는 공간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지게 되기도 하고요.
공간이야기
2008년? 2009년? 쯤 을지로에 왔던 것 같아요. 한 14년, 15년 되고 있네요. 그전에 사용했던 작업실보다 더 길게 있었어요. 전엔 잠원동, 집에서 5분~10분 거리에 작업실이 있었어요. 집에서 밥 먹고 작업실 가서 작업했었죠.
작업실로의 출퇴근길이 많이 달라지셨을 것 같아요. 보게 되는 풍경, 거리, 사람의 밀도. 불편함은 없으셨어요?
전 작업실은 집에서 걸어서 5분~10분 내외였고, 을지로는 지하철 타고 15분 내외였으니 사실 시간상 큰 차이는 아니었어요. 이곳으로 작업실을 옮긴 이후 강북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이 상당히 좁아졌어요.
지금이야 을지로 지하도의 신한카드에서 작품도 설치해놓고 했지만, 당시엔 그 길이 많이 무서웠어요. 작업실을 옮겨오기 전에 그 길을 갔을 땐 왜 이런 곳에서 만나자고 했냐며 투덜투덜했던 적도 있었죠. 그런데 불과 1년? 2년 뒤에 이렇게 을지로에 작업실을 만들게 될 줄은 몰랐어요.
작업실을 옮긴 초기엔 라푼젤처럼 4층에 올라와서 내려갈 생각을 안 했었죠. 작업하다 옥상에 올라가 제가 만든 맥주를 마시면서 노을을 보곤 했었어요. 작은 의자, 작은 테이블이 여유와 낭만을 선물해 줬고, 그렇게 을지로를 사랑하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어줬어요. 거리는 회색빛의 공장지대고, 사람도 잘 안 다니는 곳이었지만 옥상은 산과 노을과 풍경이 함께 있었어요.
작가님께서 인터뷰 초반의 이곳에 온 이후의 시간들이 스쳐 간다고 말씀해 주신 것처럼, 을지로와 작업실이라는 공간이 중요한 곳이라고 느껴져요. 처음 을지로에 오셨을 땐 작가들이나 예술공간들이 많이 없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오게 되셨을까요?
을지로가 어떤 곳인지 처음엔 전혀 인지하지 못했었어요. 제가 살아온 동네도 아니었어요. 오히려 골뱅이를 먹으러 왔다가 지하도에서 무서워했던 기억이 있었던 곳이었어요. 어느 날 친한 후배가 제가 마당발이니 자기가 잠깐 썼던 공간인데 혹시 관심 가질만한 사람을 소개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곳인지 보러 왔었어요. 삐뚤삐뚤한 좁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채광이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더군다나 옥상으로 올라가니 탁 트여 있는 경관에 감탄했어요.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있는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남산, 북한산, 안산이 다 보이고 심지어 동대문까지 보였어요. 그런 풍경을 보고 있으니 여긴 내 공간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몇백 년 전에 살았던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첫인상이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이 공간은 내가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 2층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공간이 큰 만큼 임대료를 혼자 부담하긴 어려웠어요. 그래서 작가 5명과 의기투합해서 쓰기 시작했어요. 이후 세월이 지나고 각자의 상황이 달라지면서 입주하고 이사하는 일이 반복되었었죠. 어느 순간 작업실 메이트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아 졌고, 공간 일부를 화랑으로 쓰고 싶다는 분이 계셔서 그분한테 제가 먼저 제의를 했어요. 그래서 공간을 나눠 쓰게 되었어요.
작가님께서 지나오신 서사를 보면 지역에 대한 애정이 매우 깊으신 것 같아요. 지역을 공유하는 예술가들에 대한 애정도 깊으신 것 같고요. 어떻게 마음이 깊이 빠지게 되셨을까요?
출, 퇴근길 외엔 거리를 돌아다녀 볼 생각을 하지 못했었어요. 시간이 쌓이다 보니 약간은 무섭고 불편했던 느낌이 서서히 호기심과 편안함으로 변해갔어요. 그렇게 동네를 돌아다니기 시작했죠. 돌아다니다 보니 뭐 이런 데가 다 있었구나 싶었고, 손으로 쓰인 간판들도 너무 신기하고 재밌었어요. 그래서 나중에는 매일매일, 고양이가 서서히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듯 저의 산책 영역도 넓어지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도시의 공간’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커졌어요. 을지로에 오면서 변화한 가장 큰 부분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느끼지 못했는데 어느 순간 변해 있더라고요.
그렇게 거리를 다니면서 '발견'하게 되었어요. 새로운 공간들이 조금씩 조금씩 생겼어요. 처음엔 아주 천천히 변화했어요. 도시가 주는 느린 변화들이 제가 을지로에 애정을 가지게 만든 요소였고, 조금씩 조금씩 젊은 예술가들이 운영하는 새로운 곳들이 생기면서 ‘예술가의 공간’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탐방하기 시작했어요. 예술공간들이 생기는 것이 동지들이 생기는 느낌이었어요. 재밌는 공간이 많아지면서 근처에서 영도 LED를 운영하는 선배와, 혹은 친구들이 작업실에 방문하면 다 같이 놀러 가보기도 했어요. 굉장히 행복했던 기억들이에요.
지난 15년을 뒤로하고 공간 사용이 종료된다고 들었어요. 지난 시간이 애틋하고 앞으로 남은 시간이 더 소중하실 거라고 생각 들어요. 앞으로 남은 계획이 있으시다면 궁금합니다.
오랜 시간 있었던 공간인 만큼 여러 생각과 마음이 듭니다.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할까부터 아쉬운 마음도 있고요. 최근에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저 스스로 관계가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또 그림을 계속 그려나가고 싶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어디로 가든 또 관계를 소중히 생각하며 계속 작업을 해나가리라 생각해요.
12월 이곳에서 마지막을 정리하는 행사가 있을 예정이에요. Space Unit4의 행사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이곳에서 공간에서 작업하시고 전시 한 작가님들을 모두 모시고 작품도 선보이고 교류하는 장을 만들 예정입니다. 그렇게 모두 함께 마지막을 맺으려 합니다.
점이 선이 될 때 만들어진 아름다움을 맞추는 사람
그러고 보니, 작가님께서 작은 퍼즐들을 모아 전체를 그려내는 모습과 지역과 사람들을 보고 지도의 만들고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모습이 매우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을지로가 다양한 미술현상을 볼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는 것, 서로 느슨하지만 의지하고 연대하면서 각자의 색을 피우고 있는 모습을 보니 어쩌면 각 꽃들 사이를 열심히 날아다니며 관계를 연결했던 벌과 나비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작가님께서 이곳에 오셔서 그림을 그리고, 사람을 만난 모든 시간이 관계가 예술이 되는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관계는 작게는 캔버스, 넓게는 을지로 전체가 아니었을까요. 한걸음 뒤에서 그 뜻을 함께 했던 입장에서 감사드립니다. 12월 마지막 행사 때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손원영의 작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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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영 : @artist.wonyoungson
SPACE UNIT4 : @spaceunit4
을지로 하와이 : @euljirohawaii
손원영의 PLAY LIST
CREDIT
작업실을 함께 사용한 작가들
이상희
오선영
강승희
김지영
청계추계체육대회 참여작가
구수현
김용현
김채린
김현지
박천욱
손원영
유화수
이상원
조문기
을지로 -것들 참여자
문화육종연구소
여인혁
유목연
양길호
루크슈레더
허인
이상원
양찬제
임진우
강석호
김용현
최윤석
을지로하와이
이태훈
유화수
김찬우
김혜수
walk & walk 참여작가, 공간
오용석
이문호
이상원
윤정미
손원영
작은물
물결
십 분의 일
상업화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