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호 가득한 소곤거림
산림동 철공소 마을엔 백색의 5층 건물이 있습니다. 회색 지붕의 단층건물 사이 돌출된 백색 단면엔 철근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유독 눈에 띄고,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을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건물입니다. 건물주 할머니는 건물터에서 나고 자라신지라 동네와 건물에 애틋한 애정을 가진 분이셨습니다. 공실인 3층에 예술가의 작업실이나 미술 전시장이 들어오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곤 하셨습니다.
비가 촉촉이 오던 어느 날 골목엔 이전에 보지 못한 밝은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올려다본 건물 3층엔 큰 창이 생겼습니다. 창 너머로 천장에 설치된 레일등이 보였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올라간 공간은 갤러리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소망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새롭게 자리 잡은 갤러리는 큰 창으로 안과 밖이 통하는 개방적인 곳이었습니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도시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전시장은 도시의 일상과 예술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얘기해 주는 듯했습니다. 이후 그곳에선 계속 전시가 열렸습니다. 사람들이 모여와 탐험을 시작하는 베이스캠프가 되었습니다.
개방된 공간 덕분에 익숙지 않은 걸음을 뗀 작가들은 작품은 선보일 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일상 속에 예술이 없던 사람들은 도시 곳곳에 있는 피어나고 있는 예술을 찾아 동행하기 시작했습니다. COSO는 그렇게 '예술'을 매개로 외롭지 않게 꿈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때론 치열하게, 때론 포근하게 같이 살아가는 길을 만들어가는 COSO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목차
COSO 이야기
기획이야기
공간이야기
내일이야기
인터뷰이 소개
신예영
신명철
COSO 이야기
명철 : COSO(코소)는 두 가지 이유로 짓게 되었어요. 첫 번째 의미는 스페인어로 ‘투우, 큰 대로변’이라는 뜻이 있어요. 작가와 작품의 관계가 투우사와 숫소의 치열함을 닮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전시 공간과 투우장이 닮게 느껴졌어요. 다른 하나는 일본어로 こそこそ(코소 코소)가 소곤소곤이라는 뜻이 있어요. 투우장이라 하면 웅장한 소리가 나는 공간을 떠올리게 되잖아요. 웅장한 소리가 작가와 작품 안에 내재된 소리라면, 전시장 분위기는 조용함을 담고 있다고 해서 코소라고 지었어요. 코소라는 단어가 제가 생각하는 전시장의 느낌을 중의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서 결정하게 되었어요. 게다가 여러 언어권을 사람들도 편하게 발음할 수 있다는 점도 한 몫 했답니다.
COSO라는 이름 안에 대조적인 두 의미가 함께 담겨 있네요. 그만큼 치열한 창작과 고요한 감상이 더 극적으로 느껴집니다. 공간을 만들고 운영해 오신 두 분의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명철 : 저는 전시 기획과 글을 쓰고 있는 신명철입니다. 예대에서 문예 창작, 시를 전공했어요. 시를 쓰다 보니 텍스트를 넘어서서 물리적인 공간으로 확장되는 기획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책이나 시집 안에서가 아니라 전시 공간에서 사람들과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어떤 반응이 있는지 보고 싶었어요.
시집 같은 경우는 개인이 혼자 읽으면서 사유하는 경우가 많아서, 낭독회가 아니고서는 수용자와 직접 소통하기 어려운 영역이에요. 이에 반해 전시의 경우는 수용자들이 어떤 것을 느끼는지 볼 수 있잖아요. 또한 오프닝이나 전시 모임을 통해서 여러 사람들과 같이 소통하고 관람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이제 다루는 매체가 글에서 전시로 옮겨졌다고 생각해요.
예영 : 저는 원예를 전공했어요. 플로리스트로 10년 동안 일을 했어요. 살아있는 식물의 색감과 질감을 다루었어요. 계속해서 창작을 하며 연구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많은 매체를 접하게 되었어요. 꽃꽂이를 배우면서 꽃에 대한 전시도 많이 봤지만, 미술에 대한 전시도 많이 보게 되었어요. 미술 전시를 보면 작업에 대한 많은 영감을 얻게 되어 지속적으로 찾아보게 되었고 취미로 자리 잡았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전시를 기획하는 일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교수님들이 모두 화훼 작가님이셨어요. 미술 작가들과 작업 방식이 다르긴 하지만 작가님들 밑에서 어시스턴트를 했었어요. 국제대회를 따라 나가고, 간 김에 전시회를 하면서 저도 출품을 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한때 화훼 작가의 길을 갈까 고민한 시절이 있었어요. 계속 화훼 작가의 길을 걷다 느낀 것은 ‘제가 창작자가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겠다.’ 였어요. 한계에 부딪혔어요. 대학원에서 화훼 디자인을 전공하고 공부를 계속하면서 제 재능은 창작이 아닌, 다른 사람의 창작을 더 좋은 결과물로 만드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타인의 작품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키우는 것이 제 창작보다 훨씬 잘한다는 것을요. 제 재능을 알게 되니 기획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동생(명철)이 예대를 들어가게 되고, 글을 쓰게 되고, 주변에 자연스럽게 예술하는 친구들을 만났어요. 그러던 중 우리 둘이 취향도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같이 전시 공간을 운영해 보면 좋겠다 싶어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남매가 이렇게 전시공간을 운영한다고 하면 신기해하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신기하게 생각할 것 같아요. 가까운 사이이기에 마찰도 더 있지 않을까 싶고. 두 분이 싸우지는 않으셨나요? 남매가 함께 한다는 장단점이 있을 것 같아요.
예영 : 어렸을 때는 싸운 적이 별로 없었어요. 하지만 같이 일을 하게 되면서 자주 부딪치는 일이 생기더라구요. “너랑 안 해! 그만둬!” 라고 할 정도로 크게 싸운 적도 있었죠. 2017년에 시작 했으니 벌써 함께 한지 5, 6년이 지났어요. 남매나 형제라고 해서 다 알수는 없는 거잖아요. 일을 같이 하기 전엔 서로에 대해 너무 몰랐어요. 하지만 이제는 일을 하면서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게 되었어요.
명철 : 부딪히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그 중간 지점을 찾는 것 같아요. 모든 과정마다 정반합의 과정이었어요.
예영 : MBTI도 반대여서 그런지 많이 싸웠었어요. 남이었으면 싸우고 끝났을 수 있지만, 싸우다가도 금방 웃으면서 얘기하게 되더라고요. 서로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안정감이 있어요. 지금은 반대인 성향 덕분에 오히려 서로의 장점을 살려서 일하고 있어요. 서로에게 너무 필요한 존재가 되었어요. 이제는 자연스럽게 영역을 나눠서 전시기획, 서문 작성은 명철님이 맡아서 하게 되었고 저는 회계, 일정관리 등 갤러리 운영에 관한 일을 맡게 되었어요.
명철: 사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누나가 갤러리 운영할 때 제일 중요한 일들을 맡아주고 계세요. 그 외에 영상, 디자인 등등 해주고 계시고요.
예영 : 꽃 관련된 일을 할 당시 가게를 운영한 적이 있었어요. 그땐 모든 일을 혼자 다 했어야 했었어요. 사진도 찍어야 하고, 영상도 만들어야 해서 배우면서 했었어요. 그때 쌓은 실력을 포스터를 만들거나 영상을 만들거나 하면서 쓰고 있는 상황이에요. 하지만 수준급은 아니라 점점 전문가에게 일을 맡기는 형태로 나아갈 예정이에요.
사실, 두 분이 싸우는 모습이 전혀 상상이 되지 않지만 싸운 적이 있다고 말씀하시니 제 3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좋아 보입니다. 서로에게 너무 큰 힘이 되어줄 것 같아요. 저도 제 동생이 제가 못 가진 장점이 많아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서 더 공감하며 두 분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서로 다른 부분 때문에 뜨겁게 싸웠고, 그 지점을 넘어서 서로 보완이 되는 환경으로 넘어간 것 자체가 큰 경험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두 분에게 중력이 더 강해지고 뜻을 함께 하실 분들이 모여들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명철 : 아버지께서는 경제학과 나오셔서 회사를 다니시다 지금은 사업을 하고 계세요. 미술이나 예술에 관심이 많아지게 된 배경엔 어머니에게 받은 영향이 컸어요.
예영 : 어머니께서 어렸을 때 전시회에 잘 데려가셨어요. 예술을 많이 보여주려고 하셨어요. 그때 당시를 떠올려 보면 저는 작품을 보는 것에 별 관심이 없었어요. 어머니가 보러 가자 하시면 저는 말 잘 듣고 잘 따라다니는 애였어요. 그렇게 엄마랑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시도 많이 보게 되었어요.
어머니께 사진을 배웠었어요. 어머니께서 사진 작업을 오래 하셔서 집에 사진기가 많았었어요. 자연스럽게 사진을 접하고 배우게 되었어요. 명철 님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학교 사진부 선생님을 어머니께서 해주셔서 또래 친구들과 사진을 배웠었어요.
명철 : 어머니께서는 어릴 적 예대를 가고 싶으셨으나 할아버지께서 반대를 많이 하셨다고 해요. 그래서 독어독문과를 전공하게 되셨는데 개인적으로 동양화와 사진을 배우셔서 많은 작업을 하셨어요. 10년 정도 주로 사진 작업을 하시고 믹스 미디어 작업도 섞어서 하셨던 걸로 기억해요. 연세가 드시면서 잠시 쉬셨는데 최근 2년 정도 동양화를 다시 하고 계세요. 어머니께서 그림 실력이 좋은 것을 알고 있어서 계속 작업을 하셨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곤 해요.
집에도 그림이 많이 있었을 것 같아요.
명철 : 어릴 적 집에서 보았던 어머니 그림이 지금도 생각나요. 거실 쇼파 위에 커다란 한강 저수지를 그린 동양화 작품이 있었어요. 그 작품이 너무 좋았어요. 그림을 보며 좋았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어요.
어머니께서 문화자본을 많이 물려주셨네요.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단순히 기술을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 피사체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시선과 사유, 결과를 만들어가는 과정과 기다림을 가르쳐 주신 것 같아요.
명철 : 돌아보면 어릴 적 사진을 배운 게 되게 큰 양분이 되었어요. 자연스럽게 구도와 비율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기고, 작품을 볼 때도 활용되는 것 같아요. 사진을 찍고 인화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이 항상 신비롭고 매력적이었어요. 그런 경험이 인상 깊어서 제가 글을 쓰게 되고 예술을 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그리고 갤러리를 운영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도 어머니의 은근한 지지가 있었던 것 같아요.
예영 : 어릴 적 입시 미술을 했었어요. 어머니께서는 저를 예술학교에 진학시키고 싶어 하셨어요. 하지만 아버지께서 반대하셨어요. 아버지께서는 예술을 좋아하실 계기가 별로 없으셨던 것 같아요. 예술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접하실 기회가 없었기에 더 걱정이 많으셨던 것 같아요. 표상적으로 예술은 많은 고생을 수반하고 그에 비해 돈이 안되니 회의적이셨어요. 하지만 너무 하고 싶어 하는 마음에 결국 손을 드셨어요. 이렇게 결국 저희는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네요.
해야 할 일은 하게 되나 봐요. 두 분을 뵐 때면 항상 풍성함이 느껴져서 항상 궁금했었어요. 부모님 이야기를 들으니 제가 느꼈던 풍성함 안에 따뜻한 지지와 뜨거운 열정이 채워져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머니께서 따뜻함으로 길러 주시고, 아버지께서 냉정하게 마음과 뜻을 흔들어 주신 게 두 분께서 더 단단하게 지금 서사를 쌓아가시는 거름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저희 어머니,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납니다.
명철 : 교수님께서 제게 “문학 평론이나 예술 평론 쪽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말씀을 해주셨었어요. 작가의 글이나 작품을 보고 철학과 개념이 작품 속에 어떻게 엮여 있는지를 보는 눈이 있다면서, 평론의 길을 추천해주셨는데 그 당시에 솔직히 마음이 상했었어요. 그때 만 해도 저는 시인이 되고 싶은데, 평론가가 되라는 말씀 같이 들려서 인 것 같아요. 이 얘기를 받아들이는데 꽤 오래 걸렸는데, 이제는 전시를 기획하고 작가의 작업의 이야기를 관객에게 친절하게 다가가도록 글로 풀어내고 있다는 것이 즐겁다고 느껴져요. 오히려 그때 먼저 재능을 봐주신 교수님 덕분에 적성에 맞는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누나도 화훼디자인을 하면서 상도 많이 타고 능력을 인정받았었어요.
예영 : 꽃꽂이를 하면서 저는 화훼 작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창작은 마르면 안 돼요. 저는 그게 너무 힘들더라고요. 예술가 분들은 대단하신 것 같아요.
명철 : 그래서 그런 가치를 아니까 스스로를 갈아서 만들어가는 예술가를 도울 수 있는 걸 해보자 생각하게 되었어요. 스스로를 연료로 쓰는 사람들이니 자기의 마음 심리, 정신 상태를 더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지칠 때 회복 할 수 있도록 지지해 주고 채워주는 일을 하려고 해요. 저도 누나도 더 전문성을 갖춰 나가려고 공부 중이에요.
명철 : 제가 순수 예술을 전공하고, 학교도 순수 예술을 지향하는 학교이다 보니 친구들이 상업적인 것과 거리가 멀었어요. 그런 친구들이 설자리가 많이 없는 모습을 옆에서 보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누나와 함께 전시장을 만들게 되었어요.
순수 예술이 좀 일반인들과 가까워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서 많은 시도를 했었어요. 작가들이 전시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음악 하는 친구들에게도 공연하는 자리를 만들고자 해서 전시 오픈 때마다 공연도 하기도 하고, 기획공연을 하기도 했었어요.
기획 이야기
명철 : 저희는 작가를 선정할 때 제일 중요하게 보는 것은 조형언어예요. 작가의 주제의식이나 스테이트먼트 토대로 표현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를 우선 살피고, 작품을 통해 의미가 잘 전달되는지 호소력 있고 설득력 있는지를 봐요. 조형언어는 그 두 가지가 잘 구현되었을 때 드러나는 것이기에 결국 제일 중요하다 생각해요. 관객은 그렇게 만들어진 언어를 통해 이해하고 수용하게 되니까요.
전시를 기획하는 입장에서는 작품을 통해 작가가 왜, 뭘 얘기하고 싶은 건지, 그것이 소통될 정도로 잘 표현되는지 이해하는 게 제일 중요한 지점이라 생각해요.
조형 언어가 좋은 것과 작품이 판매되는 것이 비례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작품 판매가 작가의 성장과 다른 얘기일 수 있어서 갤러리로서의 고민도 많이 있으실 것 같아요.
명철 : 삼청동에서부터 많이 느낀 지점이에요. 저희는 신진 작가분들께 최대한 많은 자리를 만들겠다는 모토를 가지고 있어요. 때문에 항상 블라인드로 뽑아요. 학력, 경력과 무관하게 작품성으로만 봐요. 때문에 항상 균일하게 작품이 판매되는 상황이 발생하기는 어려워요. 간혹 신진작가임에도 콜렉터들을 끌고 오시는 분들이 계실 때가 있어요. 그런 경우는 작품 판매로 연결되는 경우가 높았어요. 팬층의 수요가 있는 분, 다음으로 인테리어에서 사무실이나 집에 걸렸을 때 돋보이는 그림들이 수요가 많았어요.
작가가 미술 시장에서 가지는 위치보다 신진작가 중심으로 아직은 알려지지 않았더라도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그것이 조형적으로 잘 이야기되는지를 중점으로 두다 보니 전시에 수익이 비례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 것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우리도 좀 타협해서 그렇게 가야 되지 않을까. 그래도 결국 저희 고집이 있어서 저희 지향에 벗어나는 일은 안되더라고요.
예영 : 갤러리는 자신의 색이 뚜렷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색은 전시의 형태로 묻어나요. 저희가 그것을 버리고 대관만 하는 갤러리가 되거나, 저희 기준이 사라진 전시하는 갤러리가 되는 것은 무서워요. 저희 스스로도 고집을 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저희 둘이 좋아하는 취향이 정해져 있고 또 비슷해요. 취향이 그렇다 보니 그것을 놓칠 수 없고, 그렇다고 돈을 좇자고 저희의 지향에 맞지 않은 전시를 만들면 COSO의 색이 없어지는 것 같고. 결국 돈과 타협하는 것이 너무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돈은 다른 걸로 벌고 갤러리는 저희의 색이 묻어날 수 있는 곳으로 계속 유지해나가려 해요.
다른 것으로 돈을 번다고 말씀하신 것은 작가의 성장이 지속 가능한 형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겠다는 말씀으로 들려요. 사람의 성향에 따라 판매를 통해 수익을 얻는 일이 익숙한 사람이 있어 그분들에겐 그게 자연스럽지만, 그렇지 않은 성향을 가지 사람들에겐 부자연스럽고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예영 :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갤러리에서 돈을 벌 수 있는 건 크게 없어 보여요.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올해는 그냥 너무 돈 벌 생각은 하지 말자, 하고 싶은 거 해나가며 그것을 통해 돈을 벌어보자고 마음을 굳혀가고 있어요.
예술의 가치를 아끼고, 예술가를 아껴주시는 게 느껴져요. 많은 작가들이 코소에서 전시를 해왔고, 앞으로도 할 텐데 전시한 작가와의 관계는 어떻게 가져가시는지 궁금해요.
명철 : 저희는 좀 느슨하게 가요. 전속작가의 개념은 없어요. COSO를 만들 때 신진작가와 갤러리가 같이 커가는 모델을 생각했었어요. 작가가 처음 데뷔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팔로업 하면서 계속 굵직한 흐름을 따라가는 형태를 가지고 있어요. 5년 전에 처음 전시했던 분들, 처음 데뷔했던 분들이 어느 정도 자리 잡고 다시 개인전을 초대하는 형태가 잡혀가고 있어요. 아울러 새로운 작가를 계속 발굴하고 있어요. 마찬가지로 그 작가가 연차가 되면 또 모셔서 전시를 하는 구조 안으로 들어오고 있고요.
항상 작가님들께 “처음 데뷔(전시)하고 나서 또 저희와 편하게 전시할 수 있다.”라고 말씀드리고 있어요. 작가님께서 작업을 해나가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고, 전시는 하고 싶은데 막상 전시 공간이 없을 수 있잖아요. 공모에 당선되는 것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으니 필요할 때 편한 마음으로 저희를 찾아 달라고 말씀드려요. 그러면 그간의 작가님의 서사를 알고 있는 저희가 지금 상황에 맞는 전시를 기획할 수 있고, 그동안 변화하고 성장한 작가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으니 저희로서도 기쁜 일이에요. 저희는 지금 그렇게 느슨하지만 함께 성장해 나가는 방향으로으로 나아가고 있어요.
작가들의 입장에서는 많이 든든할 것 같고, 5년 만에 전시를 다시 열 때는 뿌듯함이 있으실 것 같아요.
예영 : 많이 뿌듯하더라고요. 예전에 저희 공간에서 아트 페어형식으로 전시했던 작가님들이 이제는 개인전을 하시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 당시 작업이 많이 쌓여 있지 않았던 학생이었는데 지금은 작가로 활동하시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남달라요. 작가님들이 예전 얘기 하시며 그땐 학생이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많이 작업한다고 말씀해 주실 때 신기하고요.
앞으로 이 자리에 처음 들어올 때 10년 더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건물주 할머니께도 10년 정도 사용하겠다고 말씀드렸었어요. 그렇게 되면 좋겠어요.
예영 : 코소모임은 삼청동에 있을 때 시작을 했어요. 당시 저희가 있던 위치는 현재 한미사진미술관이 있는 곳 인근이었어요. 워낙 안쪽이었고, 갤러리가 밀집한 지역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어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이곳까지 오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코소모임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제가 여행을 다닐 때 ‘전시'를 테마로 다니고 있어요. 그래서 관객들이 전시 관람을 여행처럼 느끼게 하고 싶은 생각에 프로그램을 만들게 되었어요. 초반엔 저희 공간을 홍보하는 효과와 더불어 삼청동의 갤러리를 투어 하는 코스로 기획을 했었어요. 이후로는 다른 지역으로 확대했어요. 다 같이 버스 타고 청주도 가고, 뮤지엄산도 다녀왔어요.
당시 기획했던 다른 프로그램 보다 코소모임에 사람이 많이 왔어요. 사람들이 전시를 같이 관람하는 것에 대한 열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진행하면서 단골도 생기고 관계가 연결이 되는 과정을 보면서 꾸준히 계속해야 되겠다는 생각하게 되었어요. 참여해 주신 분들 덕분에 마음에서도 위로가 되었고, 자주 와주시는 분들 덕분에 더 재밌게 진행할 수 있었어요.
2018년쯤이었을까요. 을지로를 온 적도 있었어요. 당시 갤러리가 많지 않았을 때였어요. 지역의 전시도 사람들과 관람하고, 작가와 공간 운영자들도 만나게 되었어요. 그때의 경험이 을지로로 옮겨오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어요.
코소모임에 참여하신 분들이 어떤 반응을 주실지 궁금해요.
명철 : 참여자 분들 중 예술을 전공한 예술인도 있지만 주로 업으로 삼지 않은 비 예술인 분들이 많으세요. 그분들은 일반적으로 대형 미술관을 방문하시거나 대규모 비주얼 아트를 보신 경험은 많으시지만, 이런 소형 갤러리에서 전시가 있다는 걸 모르시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예영 : 너무 좋아하세요. 신기해하세요. 왜 전시가 공짜인지 물어보시는 분들도 있어요. 돈을 들이지 않고도 문화를 향유하실 수 있으니 자주 놀러 오시라고 말씀드리곤 해요. 아직은 작은 공간들에 관람객이 늘어나고, 전시 보는 문화가 일상으로 스며들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명철 : 모임은 참여자들이 서로 감각하신 것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형태로 진행해요. 스스로 발제하고 그것에 대한 질문을 돌아가면서 제비 뽑기로 뽑아서 얘기 나눠요. 가끔 전문적인 이야기를 원하시거나 질문을 하시면 저희가 개입할 때가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각자가 느낀 감상과 비평을 중심으로 이야기 나눠요. 각자가 보는 것이 정답이고, 그것을 가져가면 된다고 말씀드려요.
지금 코소모임 같이 전시를 보게 하고, 공간에 방문하게 해 주시는 것들이 사회에 문화 양분을 두텁게 만드는 과정인 것 같아요. 한국 공교육에서 행해졌던 미술 교육이 계속 정답을 요했던 것이어서 미술관에 들어가는 사람을 경직시키는데, 그 과정을 다시 부드럽게 마사지해주시는 것 같아요.
예영 : 예술을 접하는 시간은 생각을 가다듬고 다시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는 ‘쉴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줘요. 제가 안식을 느끼고 삶에 자극을 받다 보니 제가 받은 수혜를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것 같아요. 깊이가 깊어지면 치유와 회복도 될 수 있도록요. 이런 이유 때문에 예술가를 위한 기획만 하는 것이 아니라 비 예술인 대상으로도 모임을 기획하는 것으로 연결되어요. 예술을 지식으로 접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있는 것 같아요.
명철 : 문학, 미학, 철학,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느낀 것은 결국 돌고 돌아 제일 마지막에 위치한 것이 예술이 아닐까 싶어요. 삶에서 중요한 가치를 말하자면,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인간다워지는 것이에요. 인간이 인간다워질 수 있게 하는 것은 예술을 향유할 때라고 생각해요 . 예술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사유를 비롯해서, 때로는 감정의 동요를 불러오고 다양한 경험도 할 수 있게 하니까요. 태초에 모든 인간들이 하나의 언어만을 사용했다는 바벨의 이야기처럼, 모든 전세계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가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점들이 인간이 걸어가는 마지막쯤에 예술이 있지 않을까라는 개인적인 생각이 들어요. 지금 예술이 돈이 되지 않더라도, 계속 사람들에게 알리려 하고 작가들이 멈추지 않았으면 하는 이유는 모두가 예술을 가까이 했으면 하는 마음 때문 같아요. 죽었을 때 뭐가 행복하고 뭐가 인간다웠을까를 돌아본다면, 각자만의 소소한 예술일 것 같아요. 그래서 계속 가는 것 같아요.
예영 : 외국에 가서도 작품을 봤을 때 그 작품에 대한 해설이 없이도 느껴지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 나라의 언어를 넘어서서 작품으로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어요. 언어를 넘어서는 소통을 가능함을 느껴요.
명철 : ‘숭고’라는 단어를 아끼는데, 예술은 ‘숭고’와 어울려요. 철학도 아니고, 심리학도 아니고, 예술을 접했을 때 사람들이 숭고함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이것을 느끼고 이것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을 전시를 통해 다른 사람들도 알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두 분이 생각하시는 예술에 대해 들어보니, 예술은 어쩌면 종교를 초월한 종교가 아닐까 싶어요. ‘도’라는 것에 가까이 있는 것 같아요. 혹은 가까워질 수 있도록 인도하는, 현대 사회에 종교를 초월한 종교라는 생각이 들어요. 숭고함을 느낄 수 있고, 인간이 더 인간다워짐으로 갈 수 있는 길을 보여주는 영역으로 역할을 해주고 있네요.
공간 이야기
예영 : 작은물에서 진행했던 여인혁작가님의 워크숍을 참여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작가님을 통해 을지로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게 무척 재밌었어요. 그렇게 을지로에 관심이 커질 때 친구를 통해 을지로OF의 오웅진 대표를 만나게 되었어요. 얘기를 나누다 어느 공간이 좋은지, 어느 전시가 재미있는지를 추천해 주셨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을지로를 알게 되었고, 너무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 스타일을 가진 지역이라는 걸 알게 되어 이사해 오는데 큰 영향이 되었어요.
참, 인연이라는 게 신기합니다. 삼청동에서 COSO가 이사 오고, 을지로OF도 3가에서 바로 앞으로 이사와 이제는 이웃이 되어 있고.
예영 : 우선, 삼청동이라는 장소가 미술계에서 중요한 장소 중 하나잖아요. 자본력이 강한 대형 갤러리들이 많고, 국립현대미술관도 있고요. 갤러리들 중엔 대를 이어 내려오는 역사 깊은 곳도 많아요. 그래서 분위기가 을지로와는 너무 달라요. 조금 더 정형화되어 있기도 했고, 운영자들의 연령대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에요. 저희 또래가 있다면 대를 이어 운영하고 계신 2세나 3세였어요. 그런 환경에서 저희는 좀 다른 성향을 가진 갤러리였어요.
당시 저희 공간엔 카페도 운영하고 있어서 수익 구조도 다른 갤러리들과는 차이가 있었어요. 공간이 가진 성향이 달라서 잘 어우러지지 못했거든요. 그런 점이 아쉬웠어요. 다른 갤러리들과 재미있는 것들도 많이 하고 싶어서 지도도 만들고 책도 만드는 활동을 했었는데 돌아오는 반응은 싸늘했었어요. 어쩌면 기존에 계셨던 분들은 그런 것들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미 추가적인 홍보 채널이 필요하지 않았고, 컬렉터와 방문층이 이미 갖춰진 상황이셨을 거에요. 그 간극이 주는 힘듦이 있었어요. 더 젊은 기획자들, 공간 운영자들이 있는 공간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명철 : 당시 을지로OF에서 작가들이 모이고 송년회 하는 것을 보고, 공간들이 연합해서 뭔가를 다양하게 하는 것을 보고 예영님도 저도 많이 부러웠었어요. SCOPE나 을지예술센터에서 하는 것들이 저희가 시도해보고 싶었던 것들이었어요. 삼청동에선 저희 끼리 해보려니 너무 힘들었는데 여기서는 이미 탄탄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그 분위기에 동승하고 싶어서 오게 된 것도 있어요.
참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을지로에 적재적소에 커뮤니티를 형성하거나 연대를 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분들이 계셔 주셨던 것 같아요. 그분들이 다른 지역에서 보기 힘든 다양성과 유연함을 만들어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주신것 같아요.
예영 : ARTxSHIFT(아트쉬프트)의 전아영작가님께서 그 얘기를 해주셨던 적이 있어요. 미국에 계실 때 그 지역의 갤러리들이 오프닝 날짜를 맞추었다고 해요. 고정적으로 OO달 O번째주에 전시 오픈을 하는 것을 갤러리들끼리 맞추고 전시를 그날에 시작했다고 해요. 동네 전역에 파티가 열려 있으니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지역에 방문해 갤러리 투어를 다니는 거예요. 그러면서 여기 가서도 술을 마시고, 저기 가서도 술을 마시고, 서로 친해지고. 그런 문화가 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너무 하고 싶지만 운영자들 마다 스케줄이 있어서 쉽진 않겠지만, 프리즈가 있을 때 저희끼리라도 을지로 나잇을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리끼리 하는 거죠.
명철 : 1년 중 중 축제하기 좋은 봄, 가을 정도만 그렇게 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작은도시이야기에서 계속 공간들, 예술가들을 만나니 함께 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운영자들끼리 자발적으로 같이 연대해서 축제를 만드는 건 무척 의미 있는 일이 될 것 같아요. 각자가 쌓아온 문화자본과 공공 영역에서 민간과 함께 노력해 온 시간이 공동의 경험으로 쌓인 서사가 있어서 이제는 충분히 가능해 보여요. 저도 같이 힘을 보태볼게요. 2025년엔 가능할 것 같아요.
내일 이야기
예영 : 인력 보충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고, 공간을 늘리는 방향도 고민하고 있어요. 전시 공간을 하나 더 늘리는 방안과 워크숍 공간을 만드는 방안을 놓고 고민하고 있어요.
전시 공간을 늘린다면 어느 지역에 생각 중이신가요?
예영 : 좀 이르긴 한데, 서울이 아닌 지역이면 어떨까 생각해보고 있어요. 저 혼자만의 이야기인데 삼청동에서 이사를 가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서울을 벗어나 어디에 갤러리를 열면 좋을까?’라는 고민을 해서 광역시마다 돌아다녔었어요. 자연도 좋지만 그래도 사람이 모이는 도시에 위치해야겠다는 고민을 계속하고 있어요.
서울이라는 곳이 너무 치열하기도 하고 갤러리도 너무 많고 나도 모르게 경쟁 구도로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어차피 큰 수익을 낼 수 없다면 더 편하고 유유자적하면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이번에 도쿄에서 한 달 동안 머물면서 갤러리를 돌아다니다 보니 언젠가 도쿄에 2호점을 내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꼭 한국이 아니라 해외에 거점을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고. 먼 얘기고 뜬구름 잡는 얘기일 수 있지만 한 곳을 더 늘려나가고 싶어요.
워크숍 공간은 어떤 공간으로 사용될까요?
예영 : 심리상담센터 혹은 예술 워크숍을 하는 공간이 될 것 같아요. 그렇더라도 한편에 꼭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려 해요.
서울에서 좀 더 기반을 다지고 내려가야 될 것 같아서 올해는 심리상담, 예술 상담 쪽으로 무게를 더 실어서 움직여보려 해요. 올해는 시범 운영을 해보고 여기서 더 갖춰지면 장기적으로 시스템을 갖춰 나가려 해요.
원예치료 같은 경우엔 식물의 생태에 관해서 이야기를 시작해서 참여자들이 자신의 감정, 상황을 이입해서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많아요. 진행한 결과를 전시로도 풀어볼 수 있고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프로그램이에요.
명철 : 프로그램 중엔 예술가를 대상으로 하는 것들도 많이 설계할 예정이에요. 저도 지금 심리치료에 관한 논문을 쓰고 있어요. 공부하며 전문성을 갖춰가고 있는 중이에요. 예술가들이 치열하게 작업을 해나가는 과정에 스스로 많이 소진되고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보게 되어요. 저희가 전시를 기획해 작품을 선보이는 역할을 하는 것 외에도 예술가들의 정서적인 치유와 안정을 계속 지켜나갈 수 있는 역할을 해나갈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예정이에요.
지난 시간 COSO가 신진 작가들이 성장할 문을 열어가셨다면 앞으로 열어갈 길은 같이 건강히 살아가는 길일 것 같아요. 지방에 코소의 지점이 생긴다면 그 지역에도 큰 자산이 되어주실 것 같아요. 최근에 지방 소멸 등의 사회 문제 때문에 청년층을 모여들게 하는 게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기도 하고.
예영 : 서울을 떠나 보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거라 아직 예산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었어요. 서울에만 몰려 있고 막상 지방에 가면 갈 곳이 많이 없더라고요. 여행을 갈 때 지역의 전시장들을 우선 찾아 거점으로 삼고 주변의 먹거리들을 찾는 식으로 움직여요. 최근 청주에 국립현대미술관이 생긴 이후로 그 지역엔 전시 공간들이 많이 생겼더라고요. 국공립미술관 같은 거점이 있지 않으면 소규모 민간 잘 생기지 않아 아쉬워요.
COSO가 여러 곳이 생기면 같이 코소 모임을 해오신 것처럼 유람하고 전시를 관람하는 투어 프로그램이 생겨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영 : 그런 것을 열어 나가고 싶어요. 세토우치 국제예술제를 방문 했을 때 너무 좋았어요. 그때 섬들을 다 돌았어요. 우리나라에도 이런 프로젝트가 있으면 좋겠다 하면서 부럽고 아쉬었었어요. 이후 통영국제트리엔날레를 시작했을 때 다녀왔어요. 첫회라 많은 것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너무 좋았어요. 그전까지는 통영에 가려고 생각도 하지 않았었어요. 미술이 지역에 방문할 기회를 만들어 줬고, 그때 우리나라가 아름답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여러 섬을 그때 처음 가보게 되었어요.
그런 일들을 해나가고 싶지만,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기에 우선은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는 걸로. 코소모임을 계속해나가겠습니다.
환호 가득한 소곤거림
현실에서 겪는 여러 어려움이 있기에 예술이 주는 위로가 더 빛나는 것 같습니다. 때론 예술이 자신의 영역을 넘어 일상으로 다가와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길을 열어나가고 넓혀나가는 역할을 해주시는 두 분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을 느낍니다.
누군가 나의 치열한 삶의 과정을 이해해 주고 보듬어 준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될지, 여러 어려움이 있는 일상에서 벗어나 가까이서 속삭일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활력이 되어줄지 짐작해 봅니다. 짐작 이후에 은은한 온기를 느낍니다.
COSO를 운영하는 두 분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왠지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채광이 드는 갤러리 안엔 가족에서 시작된 온기가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따뜻함으로 앞으로 두 분이 열어나갈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예술의 역할을 확장하고, 길을 넓혀간 그 결과가 어떤 형상으로 나타나게 될지 기대됩니다. 그날을 기대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시간내주시고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COSO의 갤러리
COSO의 이동
홈페이지 : cosocoso.kr/
블로그 : coso_seoul
인스타그램 : @coso_seoul
코소모임 인스타그램 : @cosomoim
※ 도시 속, 작은 도시 을지로의 예술 이야기를 전하는 '작은도시이야기' 뉴스레터 ▷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