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집을 찾은 여행자
온통 파란 방이 있습니다. 6평 남짓한 작은 방 안에서 어른들은 마음껏 자신을 발산합니다. 누구의 환영과 환호보다 자신의 환호가 중요해집니다. 자유롭게 못했던 말을 합니다. 자신에게 못했던 말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작았던 방은 자신의 마음에 따라 광활한 하늘만큼, 하늘은 품은 바다만큼 크고 푸르러 집니다.
예술을 담는 공간은 조연입니다.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뒤로 물러납니다. 미술관은 흰색이 되어 작품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관객에게 밀어주고, 공연장과 상영관은 검정이 되어 뒤로 빠짐으로 예술이 관객 앞에 설 수 있게 합니다. 하지만 이곳은 우린 파란 이야기 안에 어떤 이야기도 담겠다는 의도가 명확합니다. 명확한 의도만큼 파란 공간은 용광로가 되어 어떤 이야기든 다 삼켜줍니다. 혹은 지켜줍니다.
사람들과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 ‘남'이 너무 커졌습니다. 나의 취향과 지향은 ‘남’의 시선에 의해 어느 순간 바뀌었습니다. 바뀐 것을 인지하지 조차 못했을 시점에 바뀌었습니다. 이제 어디서부터 나였고, 어디서부터 남이었는지 알게 어려울 지경입니다. 그래서 도시에 사는 우리에게 태초에 생명을 담았던 푸른 하늘과 파란 바다가 필요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코로나가 창궐하고 우리 사회는 전환을 맞이합니다. 관계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불확실한 미래를 서로 의지해서 열어가야 했습니다. 그때 을지로 5층에 방 하나가 파랗게 바뀌었습니다. 계단을 오르며 찬 숨의 대가로 파란 방에 들어섭니다. 내가 나로서 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곳, 내가 나로서 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곳. 온통 파란색으로 시작한 두 여행자가 찾은 집, 아트룸 블루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목차
아트룸 블루 이야기
공간 이야기
기획 이야기
내일 이야기
인터뷰이
주민준 (민준)
김수빈 (수빈)
아트룸 블루 이야기
수빈 : 아트룸 블루는 어른이들의 놀이터로 시작되었고요. 유럽 여행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민준 : 때는 바야흐로 코로나가 시작되었을 때.
수빈 : 유럽여행을 가려고 준비를 했었어요. 하지만 펜데믹으로 해외여행이 어려워지자 대신 내가 하고 싶은 건 다 할 수 있는 여행지를 만들어보자 생각하고 공간을 만들게 되었어요.
여행을 못 가게 된 시점에 ‘알렉스룸’에서 개인전을 하고 있었고요. 그때 사장님이랑 결이 너무 잘 맞았어요. 예술 공간들이 숨어 있는 지역의 이면 같이 느껴지기도 했고, 저와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나랑 닮은 지역과 마주치는 사람들이 색깔별로 많이 닮아 있다고 느꼈어요. 그러던 중 알렉스룸 같은 작업실이 있으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비쌀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던 중 때마침 오빠(민준)가 ‘임대'라고 적혀 있는 걸 발견했어요. 가격을 보니 여행가려고 모아둔 비용이면 1년 정도 수익 없이 운영할 수 있겠더라고요. 모아둔 비용은 어차피 다녀오면 모두 사라지는데, 여행을 못가는 대신 그만큼 가치 있는데에 사용하자. 라고 생각했죠.
‘여기서 예술을 할 건데 뭐가 될지 모르지만 온통 파란색이야겠어.’하면서 시작하게 되었죠. 그렇게 나도 마음껏 놀 수 있고, 남도 마음껏 놀 수 있는 온통 파란 어른이들의 공간을 만나게 되었어요.
수빈 : 우리 둘은 커플이지만 성향, 취향이 완전 반대예요.
민준 : 가치관까지도.
수빈 : 그냥 맞는 게 단 하나도 없어요. 저는 도전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하고 싶은 것들, 일을 하면서 내가 재미있고 행복을 느끼는 것이 제일 중요한 사람이에요. 반면에 오빠는 더 현실적인 사람이고요. 본인이 생각하는 작업과 꿈이 오빠한테는 제일 중요한 사람이다 보니 성취감이 중요한 사람이에요.
서로 다른 스타일을 가지다 보니 모든 게 부딪혀요. 처음 아트룸 블루를 시작할 땐 오롯이 저를 위한, 저에 의한 공간이었어요. 사실, 우리가 할 거라고 생각조차 안 했었어요.
민준 : 애초에 수빈이가 마음대로 놀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 보자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나는 아무것도 터치 않을 테니.
코로나가 큰 변곡점을 가져다줬네요.
수빈 :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할 필요가 없었어요. 우리 연극을 할 수 없었고, 여행을 떠날 수 없었어요. 오빠에게 무대는 연극무대였고, 저에게 무대는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장소였어요. 그런 무대가 모두 사라졌었어요.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아트룸 블루는 존재하지 않았을 거에요.
이 공간이 숨구멍이 되어준 것이군요.
수빈 : 처음 우리 만났을 때는 애들이랑 다 같이 즉흥여행을 갔던 게 첫 만남이었어요. 순천 쪽으로 갔던 것 같아요. 방학 때 본가로 가지 않는 친구들 몇 명이 모여서 차를 빌려 여행을 떠나려던 찰나에 친구랑 편의점 앞에 있다가 갑작스럽게 같이 떠나게 되었어요. 차에 타보니 처음 보는 얼굴이 저 뒤에 있는데 밤톨이 같았어요. 제가 맨 앞에, 오빠가 맨 뒤에 앉게 되었어요. 이후로 친한 친구들과 같이 어울리며 친하게 지냈어요. 하지만 이성으로 좋아할 구석이 단 한 가지도 없었어요.
민준 : 제가 당시 수빈이가 싫어할 만한 요소를 다 가지고 있었어요. 술도 많이 마시고, 담배도 많이 피웠어요. 지금과는 많이 달랐어요.
수빈 : 을지로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 오빠가 그러는 게 상상이 안된다고 하는데, 그때 친구들이 지금의 오빠를 보면 더 상상이 안된다고 해요. 180도 달라졌어요.
민준 : 179도?
수빈: 오빠는 항상 아침까지 술 먹고 학교 오는데 그럼에도 학교에서 해야 할 것들 다 잘하고, 교수님들에게도 이쁨 받고 남녀노소 미워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핵인싸'였고 학교 안팎에 많은 모임들을 추진했었어요. 연기도 잘하니 다 같이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어요. 저는 반대로 자발적 ‘아싸’였었어요.
졸업 후 같은 극단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극단을 차리는 대표를 맡은 오빠가 사람을 모을 때 제 연기를 좋게 봐줘서 불러주었어요. 이후 민준 오빠를 섭외했어요. 무대 감독도 하고, 디자인도 하고, 연기도 하니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죠. 하지만 저는 오빠가 합류하는 게 싫었어요. 역시나 첫 회의 때 민준 오빠가 “야 수빈아 너 오랜만이다. 잘 지냈냐. 한잔해야지!”였어요.
민준 : 그땐 인사가 “한잔해야지!” 였어요.
수빈 : 마초 같은 스타일이었어요. 이렇게 다정하게 웃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저는 많이 듣는 얘기가 동물들도 그렇고 사람들도 그렇고 저랑 열흘이상 붙여 놓으면 다 이렇게 온순해진다는 얘기를 들어요.
야수를 부드럽게 만드는 수빈님의 영향력이 있나 봐요.
민준 : 거의 불 같았던 사람인데. 수빈이가 물로 정화해 주는 에너지가 많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수빈 : 연기할 때도 연출들이 악녀 캐릭터를 네가 연기하면 그래도 되는 캐릭터가 되는 매력이 있다는 평을 해주기도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극단 생활을 같이 하며 깊이 있는 대화를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오빠는 속 이야기를 하지 않는 거에요. 그래서 계속 저는 더 물었어요. 오빠는 어떤지, 어렸을 때는 어땠는지 물어가다 보니 오빠는 자기 얘기를 해본 적이 없었던 거예요. 그런 이야기를 나눈 날, 오빠가 울었어요.
민준 : 울음이란 걸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그날 터진 거에요.
수빈 : 자기도 모르게, ‘엉엉’이 아니라 ‘끽끽’ 울었어요.
민준 : 울음을 막고 막고 막았어요.
수빈 : 그렇게 한참이 지나서 물어봤어요. 왜 그때 울었는지. 자기한테 그렇게 물어봐 준 사람도 없었고, 그 부분은 전혀 생각을 안 해보고 살아왔고 묻어두고 지내왔는데 돌이켜보게 되었다고 했어요. 막혀 있던 것이 그때 딱 터지게 되면서 오빠가 저를 따라다니기 시작했어요.
민준 : 수빈이를 자주 보니깐 그룹 내에서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나누게 되었어요. 다른 사람들과도 나눌 수 있는 이야기였지만, 수빈이와 이야기할 때면 완전 다른 이야기가 되었어요. 마치 다른 직업군의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요. 그렇게 속 얘기도 할 수 있게 디고, 삶에 대한 얘기도 하게 되다 보니 ‘연인을 만난다면 이런 사람을 만나야겠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인생 살면서 후회해 보지 않을 만한 것을 도전해 보자는 생각으로 수빈이에게 고백했어요. 저는 일을 되게 중요시 생각하는 사람이어서 같이 극단을 운영하는 친구에게 고백했다가 차이기라도 하면 개인 간의 관계는 물론, 일에 지장이 있을 것이여서 절대 안 할 짓이었어요. 하지만 수빈이 같은 사람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어서 고백을 거절 당해 까이고, 극단이 빠그라지더라도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싶어서 고백을 했어요. 그런데 당시 수빈이는 고백인지 몰라.
수빈 : 얘가 날 좋아하는 건 알아. 눈치는 빨라가지고. 귀여워해 주고 예뻐라 해주는 동생으로 생각하고 좋아해 주는 건 아는데 딱히 내가 좋아할 만한 요소가 없기도 했고, 그리고 속 터놓고 얘기하는 베프 중에 한 명이었으니 사람을 잃고 싶지도 않고. 그래서 피해 다니다가 오빠가 어느 순간부터 각성한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 그렇게 2년을 한결같이 대해줬어요.
연애라는게 보통 시소 같아요. 한 사람이 좋아하면 한 사람이 처지고, 다른 한 사람이 더 좋아하면 다른 한 사람이 다시 처지고. 그런 사랑 말고 서로 좋아해서 ‘좋아, 좋아’가 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작은 것들에서도 표현을 많이 해주는 나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어요. 그러던 중 저 스스로도 사람을 만나면서 대화의 기술이 조금씩 늘었고, 오빠의 마음이 맞물리게 되면서 서로 많이 달라졌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었어요. 그게 우리의 시작이었어요.
아트룸 블루를 시작할 당시도 우리가 커플이라고 관계를 명확히 대외적으로 표할 때는 아니었어요. 서서히 만들어진 관계라 특정한 기념일도 없어요. 그래서 오빠가 처음으로 고백했던 날을 기념일로 생각해요. 아트룸 블루를 만들 때 제가 완전히 멘탈이 바스러졌었어요. 그랬기 때문에 더더욱 오빠와 연인 관계가 되는 것에 대한 걱정이 많기도 했었어요. 가족 보다도 더 내가 무너진 것을 유일하게 보고 옆에 있어준 사람이예요.
서로에게 너무 소중한 존재네요. 삶의 큰 의미가 되었겠어요.
수빈 : 코로나로 가지 못했던 유럽 여행을 최근에 다녀왔어요. 언약식을 하고 돌아오면서 제가 했던 이야기가 있어요. “나는 오빠가 이제 내 집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라고 이야기하니 오빠도 “나도 그걸 느꼈어."라고 답을 했어요. 왜냐면 사람을 믿지 못했는데, 오빠는 처음으로 안정감을 느끼게 해 준 사람이었어요. 그때 떠올랐던 것이 ‘집'이었어요.
유럽 여행을 하면서 서로가 서로의 집처럼 느껴졌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살기 시작한 신혼집은 제가 아기 때부터 살았던 집이에요. 그 집으로 들어가니 ‘집'이라는 키워드가 운명처럼 흘러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전까지는 ‘아트룸 블루'가 그런 슈필라움과 같은 공간이 되어 주었었고. 내가 무너진 모습을 다 보았던 사람이 이제는 ‘집’이 되었어요.
서로의 ‘집’이 되어가는 서사를 듣다 보니 최근 두 분의 달라진 분위기가 이해가 되어요.
두 분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사랑스러워요. 이쁜 사람들 의지하고 서로에게 숨구멍이 되어주는 그 관계가 계속 주변 분위기를 물들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옆에서 보는 저도 마음이 같이 이제 동화되는 부분들이 그런 것들이 생기고요.
이제 ‘숨구멍’을 넘어 ‘집’이라고 얘기하는 것도 이렇게 완전 다른 관계로 이제 들어선 느낌이 들면서 ‘아트룸 블루’라는 이 공간이 일정 부분 자기 역할을 다 했고 역할을 좀 내려놓을 때가 됐구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공간이야기
수빈 : 저는 그때 이미 계획이 다 있었어요. 여행을 할 때 관광지를 찾아다니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아무 데나 앉아서 그림 그리거고, 예술가들과 대화 나누면서 뭔가 일을 만들어내는 스타일의 여행을 좋아했어요. 그런 여행을 대신해서 공간을 가지게 된 것이라면 그 이상의 가치 있는 장소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렇지 못한다면 차라리 돈을 묶어 놓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이었을 거에요. 내가 여기서 채울 수 있는 것, 내가 비울 수 있는 것, 누군가와 나눌 수 있는 것을 다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여행 같은 시작이었어요.
어릴 적 생각했던 ‘있는 그대로 존재하고 싶은 청소년 수빈이가 원했던 공간’이 있었어요. 그 공간을 떠올렸어요. 이렇게 시작하려 하니 이런 공간을 만든다는 것이 너무 무모했어요. 공간을 운영하겠다는 꿈이 있었던 것은 아닌데, 작업실도 없던 사람이 갑자기 공개된 공간을 만든다는 것이 무모하고 쌩뚱 맞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막 털어놓을 수 있지만 나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는 공간이 너무 필요했어요.
누구나 와서 얘기하고 터놓을 수 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너는 누구인지 묻지 않고 혼자 쏟아내고 해소할 수 있는 그런 공간 있잖아요? 어릴 적 상담소를 가는 것도 부담이었고, 정보도 없었어요. 그만큼 그런 공간을 원하는 마음이 커졌어요. 청소년 우울증에 대해서 선생님들도 정보가 없다보니 잘못된 방법과 대화 방식으로 저를 대하셨고, 점점 말을 닫았어요. 입을 닫아버리니 고등학교땐 저희 학년에 담임을 맡은 모든 선생님들이 면담신청해서 앉혀놓고 얘기를 해보라고 하셨는데 오히려 더 안으로 들어가게 되더라고요.
잊고 있었던 무의식 속의 어떤 공간이 그때 탁 터지며 올라왔어요. 알렉스룸에서 전시를 하고 임대 중인 공간을 발견했을 때 너무 아늑했어요. 이렇게 좋은 곳이 없다며 어차피 우리 여행하면 없어지는 돈인데 해보자고 설득해서 공간을 만들게 되었어요.
내가 필요했던 공간이 누군가에게도 필요한 공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아트룸 블루’의 역할과 영역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수빈 : 멀지 않은 곳에 두 번째 공간을 만든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어요. 첫째로 타인을 위한 이유는 블루 전시 축제를 정기적으로 하던 시점이었기 때문에 더 넓은 곳에서 친구들과 뛰어놀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어요. 왜냐면 여기에서 지지고 볶고 오순도순 야작도 같이 해가면서 이 바닥에 앉아, 시장바닥 처럼 하는 모습이 가장 아트룸 블루스럽고 예뻐 보이는 순간이었어요. 책임감과 친구들에 대한 애정이 점점 커지면서 친구들이 더 넓은 곳에서 놀고 싶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두 번째로 저희를 위해서는 연극을 하고 싶어서였어요. 더 공연장의 형태를 띨 수 있는 천고도 높고 깊고 긴 곳을 찾게 되었어요. 어쨌든 우리는 무대를 제일 좋아하는 사람들이니까 그걸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좋겠다 싶었어요. 충무로에 위치한 공간이 딱 좋았어요.
두 번째 여행지를 종료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도 두 가지가 있어요. 한 가지는 당시 공간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모두 했다고 느껴졌어요. 두 번째는 제 에너지가 소진되었기 때문이었어요. 비우고 채우고 나누는 순환 구조를 지향하는데 당시는 채워진 것을 나누면서 비워져 갔었어요. 마음의 여유가 있고, 숨구멍을 통해 채워져야 나눌 수 있는 것인데, 당시는 사람들한테 나눠주는 행위가 나한테도 비워지는 행위라고 생각을 했었어요. 착각을 했던 거죠.
기획이야기
수빈 : 두 번째 여행지를 만들고 운영하면서 책임감이 점점 커지면서 아이디어가 있어도 그것을 해보고 싶어 하는 예술가가 있으면 뒤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했어요. 그땐 오히려 내가 나를 돌보거나 내가 나를 다시 뒤돌아서 어떤 길을 왔었지 볼 여유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계속 나누기만 했기 때문이에요. 마음에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예술을 이 공간에서 충분히 즐기면서 내가 하고 싶은 걸 같이 하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했어요. 그렇게 투명처럼 있는 것을 내가 원했던 건 아닌데. 그래서 ‘비우고, 채우고, 나누고’의 순서를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거 아닐까라는 것을 얼마 전에 오빠랑 얘기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그때 전 막 방을 돌아다니고 있었고 오빠는 설거지하고 있었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맞아, 나 이게 문제였네.’
해온 일들의 과정을 계속 복귀하고 들여다보는 거잖아요. 문제에 대한 원인을 계속 찾아보고 내가 그 상황에서 왜 이럴까를 돌아보는 것이 굉장히 성숙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을 함께할 친구가 있고, 서로의 작용이 오가는 과정에 계속 두 분을 성장하게 하는 것 같아요.
민준 : 지금도 늘 가지고 있어요. 핑계일 수 있지만 언제든 상황이 변하면 다시 난 배우를 할 거야라는 마음이에요.
수빈 : 그건 저도 똑같아요. 우리 둘 다 궁극적인 피는 배우예요.
민준 : 저는 항상 이력서 쓸 때도 배우라고 쓰거든요. 무조건!
수빈 : 근데 우리는 우리가 기획한 콘텐츠나 전시도 형태는 다르지만 배우로서 한다고 생각하고 해 왔어요. 첫 전시도 아예 대사를 한 바퀴 딱 돌면 공연 본 것 같이 대사로 전시를 해놨던 게 첫 시작이었어요. 그래서 항상 정체성은 배우로서. 뭐든지 전시를 하더라도 배우가 전시를 들려주는 느낌으로 하고 있어요.
작년에 12월에 그래도 우리 연극 또 한 번 했어요. 조용히 너무 오랜만이라 홍보 안 하고 조용히 했거든요. 낭독극도 하고 오빠는 목소리 극도 하고 목소리가 좋으니까 그런 것도 하고 우리는 계속 지금은 같이 방향을 같이 가는데 약간의 조금씩은 서로의 것도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려고도 하고 있어요. 교집합이 조금 더 넓은 이런 형태 그래서 누구랑 얘기할 때 그때 한번 우리 사랑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친구가 나타나가지고 우리 사랑이 너무 신기하다며. 앞으로도 계속 이럴 것 같고 만약에 그게 안 되더라도 우리는 우리가 설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서라도 연기는 계속할 생각 갖고 있어요.
아트룸 블루를 운영하면서, 기획을 해나가면서 생긴 변화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요?
민준 : 여기서 그런 영향을 참 많이 받은 것 같아요. 배우로만 있다가 여기 오니까 사업을 하거나 기획자이거나 접하기 쉽지 않았던 사람들을 보니 내가 되게 작은 사람 같고 아직 학생 같은 게 느껴졌어요. 그러면서 제가 점점 조금조금씩 수빈이 등에 업혀가지고 기획이라는 얘기도 조금씩 해보고 사람 만나서 뭔가 해보고 을지예술센터라는 일에 들어가서 기획팀이라는 것도 들어가서 그런 일도 해보고 이런 걸 해보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지게 되었어요.
수빈 : 저는 조금 시각이 달라요. 우리가 기획서를 잘 쓰고, 예산을 만들어나가는 역량이 부족해요. 때문에 많이 배우는 점도 있고 성장하고 있어요. 그리고 우리는 그런 것을 잘하는 사람들이 할 수 없는것, 하지 않는 것들을 하게 되어요. 한쪽에서는 부족한 걸 배우면서 성장을 하되 여전히 나는 그런 학생 같은 마인드 철없는 마인드는 잃고 싶지 않아요.
그게 블루의 특장점이라 생각해요. 순수함으로 틀을 깨고 영역을 만들어가는 모습.
수빈 : 맞아요. 저는 뭐 갖고 있는 것도 없으면 맨날 주려고 해요. 왜냐면 제가 없었을 때 그것을 받았다면 좀 숨통이 트였을 것 같은데 그러지 못했어요. 어릴 때 그냥 말 예쁜 다정한 말이라든지 아니면 제가 해소할 수 있는 공간의 정보라든지 뭔가를 나한테 줬으면 좋겠는데 그런 손 내밀어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부모님께서도 내가 우울증 있는 거 아직도 몰라요. 얘기하는 성격이 아예 안 되거든요. 저는 어른들로부터 그런 손길을 바랐지만 받지 못했으니 나와 같은 사람들한텐 내가 먼저 주어야겠다라고 느꼈던 것 같아요.
어디 가서도 그 얘기를 들었어요. 나누는 거에 대해서 생각 많이 하는 사람들이 모임이 있었어요. 예술가들 위해서 그런 자살 방지 수업 들으러 간 거였거든요. 예술가들 살리겠다고 모인 사람들 다 똑같아 힘든 우울증 갖고 있더라고요. 자신도 아픈 분들이 누구 살리고 싶다고 왔어요. 자기를 먼저 살려야 되는데 나눈다고 그러면서 또 그 생각도 들었죠. 나는 항상 나는 나를 살리기 위해서는 내가 움직였어야 됐으니까. 근데 나도 누군가가 나를 살려주길 바라는 것도 있을 거 아니에요. 사람이니까. 근데 그런 존재가 없었었어요. 저와 같은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은 분명히 더 있을 거고, 그런 사람들한테는 내가 바랬던 그런 존재가 되어줘야지라는 생각이 엄청 많았던 것 같아요.
어릴 적 연기도 그래서 하게 되었어요. 연기하는 걸 보면서 관객들이 위로를 받아가니까. 우리 극단에서 했던 공연들도 대부분 치유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었거든요. 그래서 잘 맞았던 것도 있고요. 이후 아트룸 블루는 제가 필요로 했던 도움을 주는 장소가 되었어요.
민준 : 늘 느끼는 건데 ‘왜 항상 저 사람은 나누기만 할까.’가 저는 제일 불만이었어요. 왜 맨날 본인 거는 안 채울까? 저는 스타일이 ‘저부터 살자.’거든요. 내가 살아야 누구를 살려주지 위급한 상황에서도 불이 나더라도 내가 먼저 호흡기를 채워야 이 사람을 살릴 수 있고. 군대에서도 그렇게 배우고. 동지를 살리겠다고 내가 총 맞을 수는 없으니까 내가 살아야 누구를 살리는데, 이 사람은 자기가 살기 위해 누군가를 살리는 걸 수도 있겠지만 옆에서 보기에 스스로는 죽고 있는 것 같은데 왜 자꾸 나누기만 하고 저 사람을 위한 것만 하지 마더 테레사 같이 막 다 퍼주고 나눠주고 그래놓고 돌아와서 힘들어하고 있고 무언가 속에 멍이 남아 있는 것 같은 걸 볼 때 왜 이 아이는 그러지라는 생각이 항상 들어가지고 재작년 초인가 한번 얘기를 했어요.
나는 이제 네가 누군가를 빛내주는 사람이 아니라 네가 좀 빛이 났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배우 하던 사람이기도 하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네가 배우로서 무대에서 빛나는 걸 보고 싶지 누군가를 무대에 올려주고 있는 너를 보고 싶지 않다. 네가 그렇게 빛났을 때 난 그게 제일 아름답다고 생각이 든다 그런 얘기를 하면서 그때도 많이 수빈이 생각이 좀 달라졌을 거예요.
그 아이가 잘 컸다는 생각이 들어요. 많이 힘들었을 텐데 그 상황을 잘 승화시킨 것 같아요. 연기를 해서 그게 가능하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결핍이 있는 경우, 남이 그것을 가지고 있을 때 못 견디는 사람도 있잖아요. 반면에 자신의 결핍을 더 받아들이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함께 할 방법을 찾아가는 역할을 해나가려 하고 계시고. 그런 역할을 해나가는 만큼 수빈님에게 공백이 생기고 그것을 또 채워줘야 할 때가 있잖아요. 그 영역까지 같이 감당하고 계시리라 생각해요. 그 이야기가 쌓여갈 수 있도록 민준님이 옆에서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주신 것 같아요. 앞으로 두 분이 만들어갈 이야기들은 더 단단하고 새로운 활력이 채워져 있을 것 같아요.
내일이야기
수빈 : 우리가 세계관을 좀 넓혀서 정리를 하려 해요. ‘블루타운’을 만들 예정이에요. 세계관이죠. 진짜 마을이라는 게 아니고 ‘블루타운’은 블루와 함께하는 사람들이예요. 서로가 서로의 집이 되어주어요. 이 마을 안에 공간으로 ‘아트룸 블루’가 있고, 그림과 출판을 하는 ‘아이블루유’가 있고, 치유를 위해 싱잉불이나 테라피를 다루는 ‘블루샤워’가 있어요. 이를 위해 인스타그램 계정도 분화할 예정이에요.
결국은 사람이 서로, 사람 사람 사람이 모이면 마을이 되는 느낌이에요. 그 사람 한 명 한 명이 집이 되는 것이고 있는 그대로 존재할 수 있는 집으로 있을 거예요. 이곳에서는 아마 제일 크게 하는 프로젝트가 생긴다면 ‘블루타운’에서 공연을 만들거나 즉흥 컨택으로 움직임 같은 퍼포먼스가 될거예요. 공간이 주가 되지 않는 사람과 사람이 연결을 이루는 형태로 블루타운에서 이루어질 거예요.
민준 : 이사한 집이 안정감이 들면서 너무 무기력해졌어요. 이제 움직일 겁니다. 움직여야 된다.
푸른 집을 찾은 여행자
온통 파란 공간이 변화를 거쳐 또 다른 형태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허물을 벗는 푸른빛의 새우처럼, 단단한 껍질을 이겨내며 성장하는 시간은 많은 압력과 치열함을 담고 있습니다. 여행길로 시작된 여정에 많은 이들이 공간과 시간을 나눴습니다. 그중엔 위로를 받은 이들도 있었고, 응원과 지지를 받아 마음속에 용기에 불을 지핀 이들도 있었습니다. 각자 가는 삶의 길은 궤적은 모두 달랐을 것입니다. 그 궤적 한 지점에 파란 집이 있었겠죠.
푸른빛의 가지가 허공을 향해 뻗어 나갔습니다. 그 가지 끝에 열매가 열리고, 낙엽이 졌다 또 새로운 가지가 뻗갑니다. 그 어느 한 시점을 보고 왔습니다. 파란 방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이제 마을을 만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블루타운이 열어갈 다음장이 기대됩니다. 그 마을을 찾은 이들의 이야기가 마을이 될 것이고, 아마 뜨겁고 푸르게 빛나겠죠. 서로의 집이 된 두 사람의 여정에 다음장을 응원하며, 그간 작은 방에 펼쳐놓았던 마음에 감사함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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