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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나에게 사치이자 두려움

하나만 낳아 잘 키우는 것도 아닙니다만

by 레이첼쌤

나는 결혼 전부터 강경하게 아이 하나만 낳아서 키우겠다는 입장이었다.

연애를 할 때건 하지 않을 때건 이런 생각을 줄곧 가지고 있었다.


이런 내 가치관이 어떻게 해서 생겨난 건지는 모르겠는데, 결혼은 꼭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현실감이 떨어지는 편은 아니었기에 남편감으로 백마 탄 왕자를 꿈꾸지는 않았지만, 나보다는 조금 더 잘난 그런 남자를 만나 아이를 하나 낳고 잘 키우며 살게 될 미래를 어렴풋이 그리곤 했다.


R=VD를 정말 인생에서 실현하게 된 건지는 확실치 않지만 어찌 됐건 나는 내가 계획했던 나이대에 3년 사귄 남자친구와 결혼을 해서 아이를 한 명 낳아 키우며 살고 있다.


예전부터 나는 아이를 두 명 이상을 낳아 키운다는 건 상상해보지 못했다.

이유인즉슨, 나란 인간 자체가 굉장히 이기적이고 나밖에 생각할 줄 몰라서, 엄마라는 종족에게 요구되는 희생과 헌신을 기꺼이 실천하며 살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 한 명은 예전 우리 엄마들 세대가 그러했듯, 내 인생의 대부분을 헌납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어설픈 계산 속에서 나온 자신감이 있었다.


한 마디로 나는 두 명의 인간을 내 배 속에서 낳아 올바른 인성과 능력을 갖춘 제대로 된 인간으로 키워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남편은 생각이 조금 달랐다. 기왕 아이를 낳아서 키울 거면 두 명은 낳아서 서로 형제애를 다지고 함께 자랄 수 있게 해 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 문제로 신혼 초에 살짝 다투기도 했는데 나는 강경 외동파였고 남편은 기왕 낳을 거면 둘은 되야한다파였다.


강경 외동파인 나였어도 만약에 생각지 못한 둘째라는 새 새명이 나에게 찾아왔다면 두 말없이 받아들였을 것 같다. 첫 애를 임신하고 극초기에 계류유산이 의심된다고 했을 때 나는 나에게 찾아온 생명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아서 며칠을 걱정하고 불안에 떨면서 울며불며 지냈다. 나에게 그렇게까지 생명에 대한 강한 애착이 있는 줄은 미처 잘 몰랐다.


첫 애를 낳아 기르는 과정이 행복하고 즐거운 경험이었고 가족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둘째를 고려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결혼하고 아이를 한 명 낳아 기르며 산 지 10년째가 되는 지금, 이제는 남편도 현실적으로 둘째를 갖기가 어렵다는 것을 인정해 가는 모양새다. 하필 아이를 출산하고 밤중 수유를 하고 24시간 아이에게 붙어있어야만 하는 그 시기에 남편은 자기 업장을 새로 시작해서 자리 잡기 위해서 일 년 내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해야만 했다. 시댁, 친정도 멀어서 나는 독박육아라는 것에 적응해야만 했고, 육아 문제로 우리는 자주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에는 "왜 남편과 같이 낳은 아이를 나 혼자만 맡아서 의무와 책임을 다해 키워야만 하는가"가 나의 화두였다. 남편은 나름대로 경제적 책임을 지고 있었지만, 출산과 육아로 삶의 질이 아예 달라져버린 그때의 나에게 그 부분은 크게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다.


1년, 2년이 지나면 아이를 키우는 일이 쉬워질 것 같았지만, 어릴 적부터 특히나 예민하고 까다로웠던 아이에게 그런 순간은 쉬이 찾아오지 않았고 아이의 발달에 대해 이상하다고 여겼던 초보 엄마의 어설픈 의심을 5세에 결국 병원에서 확인받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때부터 아이의 발달 지연을 어떻게든 따라잡는 게 내 인생의 목표가 되었고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아이의 특성에 적응해서 살고 있지만 여전히 쉽지는 않다.


얼마 전에 남편과 대화를 하다가 이 사람이 아직 둘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기는 일하느라 살림과 육아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95퍼센트 이상을 내가 맡아서 하고 있는데, 그리고 그게 당연시되어가고 있다는 게 지금도 가끔 나를 욱하게 만드는데, 이 상황에서 둘째를 갖자니? 도와주지도 못할 거면서 어쩜 저렇게 무책임한 소리를 하는 건지 화가 났다.


남편은 그야말로 순수한 이유로 둘째를 갖고 싶은 거였다. 아이에게 동생을 만들어주고 형제가 생기면 외롭지 않고 더 좋지 않겠냐고, 그리고 가족이 많아지면 서로에게 더 의지할 수 있고 나중에 커서도 좋을 거니까 그런 거라고. 나도 이 의견에는 백 퍼센트, 아니 만 퍼센트 동의하는 바이다. 나라고 왜 아이에게 동생을 만들어주고 싶지 않겠는가.


내가 가장 두려운 건 첫 애를 임신했을 때처럼 임신 기간에 자궁에 문제가 생겨서 출산 과정에서 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산부인과 의사는 나에게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자궁 환경이 태아에게 영양분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는 환경이라 아이가 막달에 아예 성장을 멈췄다고 했고, 둘째를 가지게 되어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했다. 아이는 배 속에서 8개월 때부터 키와 몸무게 성장을 거의 멈췄는데, 내 생각에는 아마 그 시기에 뇌발달도 더뎌져서 지금 이렇게 어려움을 겪는 것 같기도 하다.


만약 둘째를 갖게 되었을 때에 또 건강하지 못한 아이를 출산하게 될까 봐 불안하고 두렵다. 그래서 아예 나에게 있어 둘째는 함부로 꿈꿔서도, 다가가서도 안 되는 미지의 영역이다.


주변에 둘 또는 셋 이상의 자녀를 낳아서 키우는 엄마들을 보면 그저 존경할 따름이다. 형제라고 해서 성향이 비슷한 것도 아니고 하나 키워 봤다고 해서 둘 키우는 게 더 수월한 것 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가끔 남편이 둘째 얘기를 꺼내면 나는 부잣집 사모님들처럼 입주 이모님이라도 붙여줘서 내가 신생아를 키울 때 수면욕과 식욕을 박탈당하지 않게 해 주면 생각해 보겠노라 으름장을 놓으면 남편은 질세라 그리 해주마고 응수했다.






그런데 이번에 부산 여행을 다녀오면서 본 두 개의 상황이 있었는데, 그걸 본 남편도 둘째에 대한 미련을 거의 접은 듯했다.


우리 가족은 오랜만의 호캉스에 들뜬 마음으로 체크인을 하고 으리으리한 호텔 내부와 인테리어에 감탄하면서 밥 먹으러 나가기 위해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던 순간 다른 쪽에서 한 가족이 타려고 급하게 오는 모습이 보여서 열림 버튼을 누르고 기다려주었다. 그 가족은 엄마, 아빠와 큰 딸, 그리고 이제 4,5개월 정도 돼 보이는 말랑말랑한 아가가 유모차에 있었다.


그런데 유모차에 있는 아가가 뭐가 불만인지 엘리베이터에 있는 내내 목청껏 울었다. 조용한 공간에서 아기가 너무 크게 우니 엄마, 아빠는 어쩔 줄 몰라했고 아빠는 엄마에게 아이를 안으라는 눈치를 주었다. 엄마에게 안겨서도 쉽사리 울음이 그치지는 않았다.


엄마, 아빠 어떻게든 아가를 진정시켜 보려고 진땀을 빼는 모습이었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다행히 아가의 울음이 그쳤다. 아빠는 큰 딸 손을 잡고 먼저 식당으로 들어가 버렸고 엄마 혼자 아이를 안고 이리저리 걸어 다니며 진정시키고 있었다. 나중에 밥 먹을 때 보니 바통 터치를 했는지 아빠가 아가를 아기띠에 매고 안고 있었고 엄마는 그런 가족들을 위해 뷔페 음식을 실어 나르느라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또 한 장면은 호텔 내부에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던 때였다. 스마트폰 게임을 하고 싶어 하는 아들과 실랑이를 벌이며 음식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우리 테이블 옆에 한 4인가족이 들어와서 자리를 잡았다. 이 가족도 역시 큰 애는 4,5살 정도로 보였고 둘째 아이는 이제 갓 돌 정도 돼 보였다. 아기의자를 달라고 요청해서 아이를 유모차에서 힘겹게 빼내서 아기 의자에 앉히고 있던 순간이었다. 왜 그랬는지 아이가 손에 뻗으면 닿을만한 거리에 레스토랑에서 비치된 물통이 놓여 있었고 아이는 가볍게 그걸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버렸다. 가까운 곳에 새로운 물건이 있으니 순수한 호기심으로 만져본 어린아이가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 물통이 스테인리스인지 유리병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식당 내에 있던 사람들의 모든 이목이 집중되었고, 엄마는 이내 뛰어오는 직원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수십 번 했다. 옆에 있던 아빠는 직원들에게 사과하는 엄마를 향해 왜 애 앞에다가 물통을 뒀냐고 화를 냈다.


안타까웠다. 엄마가 일부러 그 물통을 근거리에 둔 것도 아닐 텐데, 아빠는 자기도 조금 민망했는지 아내에게 그 당황스러움을 풀어내는 것 같았다. 물을 거의 다 쏟았기에 직원들은 한참 뒷청소를 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런 상황에서도 이곳이 호텔이라 직원들이 친절하다는 것. 만약 아기 손님들에게 별로 호의적이지 않은 일반 식당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상상했다.


그 장면을 본 남편은 별 말없이 최대한 신경 쓰지 않는 척하는 게 그 테이블에 대한 배려라고 여겼는지 우리 먹는 것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중에 돌아오면서 "애 둘 키우는 거. 정말 힘들 거 같아. 우리 하나라도 잘 키우자"라고 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말했고, 상황만 허락한다면 둘째를 가지기를 은근히 바랬던 남편의 태도가 180도 달라진 것이다.

막상 두 명의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고군분투하는 동년배 엄마, 아빠의 모습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니 깨닫는 게 있었나 보다.


그나마 그 가족은 아빠라도 한 자리에 있었기 망정이지, 주로 독박육아를 해야만 하는 나였다면 그 장면에 아빠는 없이 나 혼자 아이 둘을 케어하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그런 당황스러운 상황이 펼쳐질 때 아이로 인한 부끄러움과 빨개진 얼굴을 감당할 수 있는 동지가 나 말고 한 명 더 있다는 건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아직 어려서 감당하기 힘든 아이 둘을 키운다면 아예 공공장소에 데리고 가지 않거나 외식을 자제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는 있겠다. 조금 불편한 거 감수하면 모두가 더 편해질 수 있으니 말이다.


양가부모님도 아이 어렸을 때는 한 번씩 둘째 얘기를 꺼내셨지만, 지금 내가 아이 한 명만 키우는 것도 힘들어서 이렇게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시면서 이야기가 쏙 들어가긴 했다. 아주 가끔 아쉬운 내색을 하시긴 하지만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다.


나는 여러 면에서 봤을 때 평균에 가까운 보통 사람이다.

평균의 가정에서 자라 평균의 교육을 받고 특별하지 않은 평균의 월급을 받는 일을 하는 사람.

각 잡고 따지고 보면 평균 이하의 측면도 있고 평균 이상인 부분도 있겠지만 그런 세부적인 영역도 내 인생 전체를 따지고 봤을 때 평균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평균은 허상이라는 말도 있듯이 모두가 이 평균적이고 일반적인 평범한 삶을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는 걸 불혹의 나이가 되어서야 알아가는 중이다.


4인 가족이 평균은 아니다. 4인 가족만이 완벽한 가족의 형태도 아니다.

그 평균에 들기 위해 애쓸 필요는 없다. 저출산이 이렇게 심각해지는 시대에 아이 한 명 낳아 기르는 것도 요즘의 신혼부부에게는 벅찰 수 있다. 몇 십 년 후에는 외동을 둔 3인가족이 가장 흔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나라 대통령도 무자식이고, 속사정은 모르지만 딩크족인 것 같다.

결혼을 했다고 해서 꼭 아이를 낳아야 하는 것도, 첫째를 낳았다고 해서 꼭 둘째를 낳아서 4인 가족이라는 퍼즐을 완성할 필요는 없다. 결혼이든 출산이든 각자 개인의 선택이고 개개인이 삶에서 중시하는 가치관에 맞춰서 살면 된다.


가끔 아이가 동생을 갖고 싶다고, 형제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할 때가 있다.

나는 솔직히 말해준다. "미안해. 엄마가 이제 나이 들고 늙어서 아기집에 아가가 잘 안생긴대. 외동으로 자라게 해서 미안해."


외동으로 사는 삶이 아이에게 장기적으로 득이 될지 실이 될지, 형제가 있어야만 더 풍성하고 행복한 삶이 될지 알 수 없다. 결국 아이는 나이 들면 부모 형제 품을 떠나 독립을 해야할 것이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형태에 어떤 식으로든 적응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만 내가 확신할 수 있는 사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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