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는 우울하고 블로그는 해맑다

저 그렇게 음울한 사람 아니에요

by 레이첼쌤

본격적으로 기록을 남겨보아야겠다고 결심하고 시작한 플랫폼은 네이버 블로그였다. 인스타그램이 대세이고 가장 활성화되어 있는 SNS였지만, 화려하고 예쁜 일상이 아니면 업데이트할 만한 게 별로 없는 내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상은 인스타그램과는 별로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인스타그램은 그저 지인들과 안부 공유 정도의 창구로만 이용했고, 블로그에서 뭔가 의미 있는 기록 해 남겨보자고 결심했다.


막상 블로그에도 글을 쓰려고 하니 뭘 써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매일 하는 영어공부 내용을 복습느낌으로 적어 놓기도 하고, 직접 준비하고 만들어서 했던 수업 자료를 업데이트했다. 그중에서도 주로 집중한건 책을 읽고 나서 독후기록을 남긴 것이다. 책을 읽고 그냥 아무런 기록도 남겨두지 않으면, 그 기억이 금세 증발돼서 남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게 되고 나서는 힘들더라도 1권의 책을 읽고 나면 무조건 그에 대한 감상을 포스팅하기로 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열심히 시간을 쪼개가며 책을 읽고 리뷰를 남겼고, 그때는 호기롭게도 이러다 도서인플루언서가 되는 건 아닌가 기대도 품었다. 그러나 진짜 도서인플루언서들의 블로그를 방문해 보니 나 정도의 수준으로 책리뷰를 남기는 걸로는 그 수준에 근접하기도 어렵다는 걸 이내 깨달았다.


휴직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블로그에 집중하기로 하고, adhd로 어려움을 겪는 아이에 대한 기록을 추가해서 포스팅하기 시작했다. 블로그에는 분야를 선택하게 되어있는데 나는 한참 고민하다가 도서 쪽보다는 육아 쪽이 더 맞는 것 같아 힘겨운 고심 끝에 육아, 결혼 분야로 설정해 두었다.


하지만 블로그는 기본적으로 정보와 경험 전달의 의미가 강한 플랫폼이었다. 나만 해도 블로그를 가장 많이 검색하게 될 때가 처음 가본 동네 맛집이라든가, 여행 기록인걸 보면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책을 많이 읽는 편도 아니고 꽂히는 책이 있으면 바로 사서 읽지 세심하게 책리뷰를 검색까지 해가며 찾아보는 경우가 많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기본적으로 내 블로그는 사람들이 많이 검색할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맛집, 쇼핑기록 같은 정보성 포스팅보다는 책과 육아, 일상에서 속상했던 일들이 주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작년 늦가을, 우연히 브런치 앱을 깔게 되고 적극적으로 글을 찾아 읽게 되면서 나에게 맞는 플랫폼은 브런치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느끼는 어려움과 절망, 좌절과 같은 경험을 어딘가에 기록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블로그에 그런 걸 일일이 남기기는 뭔가 어색하고 민망한 구석이 있었다. 브런치는 남에게 편하게 털어놓을 수 없는 내 속 깊은 이야기도 술술 털어놔도 될 것 같은, 그렇다고 일기장에 혼자 남몰래 쓰기보다는 공유해서 함께 마음을 나누고 싶은 내 욕구를 자극하기에 아주 적절한 곳처럼 느껴졌다.


감사하게도 브런치 작가 심사에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 있었고, 틈이 날 때마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가끔 다음 메인에 올라가면 엄청난 조회수가 나오는 것도 신기했고 감사했다. 블로그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내 포스팅이 메인에 노출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왜냐하면 나는 인플루언서도 아니고, 사람들이 보기 좋게 적절히 디자인 포인트가 들어간 포스팅을 쓰지도 않기 때문이다. 꾸준히 하다 보니 검색 노출 결과 상위에 올라간 포스팅도 몇 있긴 한데, 대부분 쇼핑기록이나 아이와 여행 간 후기들 위주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사실에 기반한 양질의 정보를 제공할만한 포스팅을 할 생각이 없었다. 더군다나 휴직 중이어도 공무원 신분이기에 애드포스트가 딸리게 되면 공식적으로 겸직 허가까지 기관장에 에 받아야 하는데. 인플루언서 수준이 아닌 이상 해봐야 한 달에 아메리카노 한 잔 값도 나오기 힘든 애드포스트 수익을 벌겠다고 겸직 신청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블로그로 수익을 얻어서 돈을 벌 생각도 없다.


그래도 이웃수는 계속 늘고 있기에 열심히 블로그에 매진 중인 이웃들의 글을 찬찬히 살펴볼 때가 많은데, 내가 느끼는 건 블로그는 대체적으로 건강하고, 밝고, 매상에 긍정적이다.

여행지 숙박, 교통 정보들과 맛집 후기들 또는 요즘 대세인 부동산 투자 경험 포스팅들을 보고 있자면 모두 인생에서 남는 경험을 공유하고 있거나 더 나은 삶을 지향하고 있는 것 같다.


나만해도 블로그에는 일상 이야기도 꾸준히 올리는 편인데, 브런치에서처럼 마음속 깊은 이야기 따위는 별로 하지 않는다. 그저 찍어둔 사진들 위주로 간단히 겪었던 일이나 느꼈던 점을 기록할 뿐이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마지막 마무리는 항상 이번주도 잘 지내보자, 다음 달도 파이팅, 잘되겠지, 이런 식으로 긍정적인 멘트로 끝낸다.


그런데 브런치에 들어오면 다르다. 내가 지금까지 쓴 글들은 대략 80개가 넘어가는데 내가 봐도 하나같이 다 음울하고 스산하고 부정적이다. 브런치 글들만 두고 보면 나는 곧 약 처방을 앞두고 있는 우울증 환자 같다.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내 감정과 어려움들이 내 일상에 주를 이루기는 하지만, 평소에 나는 실없이 잘 웃기도 하고 내 안에 외향성을 최대한 발휘해서 사람들과 수다 떨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아한다. 너무 자주 웃어서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해져서 보톡스가 심히 요구되는 시점이라는 생각도 강하게 든다.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과 어울릴 때는 더 바보처럼 웃고 떠드는 일이 많았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너는 뭐가 그렇게 항상 즐겁냐는 말도 곧잘 듣기도 했다. 20대까지는 큰 걱정 없이, 그래서 당연히 인생에 대한 별 깊은 고찰 없이 그렇게 잘 웃고 즐기면서 살았던 것 같다. 30대가 되자마자 내 인생에 다시없을 화려하고 눈부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한 남자의 아내로, 아이의 엄마로, 며느리로, 딸로 살면서 예상치 못한 인생의 풍파를 겪다 보니 나는 어쩌다 우울한 사람이 돼버린 걸까.


요즘 나와 함께 시간을 자주 보내는 지인들에게 물어본다면 내 성향이 어떻다고 말해줄지 궁금하다. 항상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할지, 브런치에서의 내 이미지처럼 어딘가 수심이 가득하고 걱정이 많은 사람처럼 보인다고 할지 말이다.


특별히 나만의 개성이 강한 사람도 못 되어서 그런지, 나는 항상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못하고 가운데에서 우왕좌왕하면서 줄타기하는듯한 삶을 산적이 많다. MBTI검사에서도 할 때마다 어떨 때는 외향형 E가 나오기도 하고, 또 몇 년 만에 다시 해보면 내향형 I가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검사 결과는 어느 한쪽에도 제대로 치우친 게 아닌 모든 영역이 가운데 쪽에 몰려있는 걸 보면 나에게 주어진 상황과 환경에 따라서 성향도 바뀌는 개성 없는 어중간한 인간인가 싶다.


이와 비슷하게 나는 요즘 블로그와 브런치 중 딱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고 어설프게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책을 손에서 놓지 않기 위해 나름 열심히 틈날 때마다 독서 중인데 그 기록을 남기거나, 일상의 소소한 일들을 사진으로 남겨놓는 건 블로그에 하게 된다. 그게 블로그에 더 어울리는 것 같아서다. 하지만 아이에 관한 내 마음속 깊은 고민과 불안감이나 가족(주로 남편)과의 갈등 같은 이야기는 브런치에 쓰게 된다.


브런치와 블로그.

무 썰듯 둘 중에 하나 딱 골라서 올인해도 모자랄 판에 두 플랫폼에서 갈팡질팡 하고 있는 게 어설프게 느껴져서 싫은데, 아직 딱히 한 곳에만 몰두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만큼 플랫폼 내에서의 성장과 확장 측면에서는 더디고 느리고 갈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각자 플랫폼에 어울리는 콘텐츠가 있는 것 같고, 그냥 거기에 맞춰서 하나씩 기록해 나가는 게 나에게 더 맞는 방식인 것 같아서 당장 어느 하나만 선택하고 싶지 않다.


다만 브런치에는 평소 내 성격 중 발랄하고 명랑한 면이 거의 드러나지 않아 글을 읽는 분들이 조금 오해하실 것 같다는 노파심이 들어서하는 말이다. 이렇게 글로 쓰고 보니 나는 참 별 쓸데없는 걱정을 다 하고 있는 것 같다.



p.s. 애정하는 구독자님들, 저 인간적으로 실제 만나면 그렇게 부정적이고 우울한 사람은 아니랍니다. 부디 오해말아주세요.. 근데 브런치에는 자꾸 제 걱정과 한탄만 늘어놓게 되네요. 흑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