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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살 아이가 겪는 ADHD 약물 부작용

그래도 안 먹일 수는 없으니까요

by 레이첼쌤

막상 아이가 ADHD 진단을 받고도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에만 몇 달이 걸렸고, 그리고 ADHD 치료에 그 무엇보다 가장 우선 된다는 약물복용도 수개월을 미뤘다. 오만하게도 내가 엄마로서 아이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면서 노력하면 굳이 향정신성의약품인 약물을 아이에게 먹이지 않아도 충분히 더 낫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내가 아무리 자료를 찾아보고 관련 서적을 읽어본들 소아정신과 전문의도 아니고, 수십 년간 미국의 선진 의료 체계하에서 연구되고 누적된 의학적 지식과 공인된 치료법을 능가할 수 있을 만큼을 해낼 수 있다는 건 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비록 몇 개월의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나는 약물 복용이 필요하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관련 전공인 남편조차 약물 복용을 내켜하지 않았지만 나는 꽤 단호한 태도로 일관했고, 즉시 약을 처방받아 먹이기 시작했다.


이제 약물 복용을 시작한 지 어언 일 년이라는 시간이 다 되어간다. 처음 몇 달간은 정말 말로만 듣던 부작용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라는 것을 몸소 겪으면서 아이도 나도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흔한 부작용이라 함은 아이가 감정조절을 힘들어한다거나, 예민해진다거나, 작고 사소한 일에 과민반응한다는 등 주로 감정에 관한 것이었고 조금 심각한 경우에는 틱 발생, 수면 방해, 키 성장 저하 등이 있었다. 감사하게도 아이는 약물 복용 중단을 일으킬 만큼 심각한 부작용은 겪지 않았지만 감정에 관한 부작용이 상당히 힘들었다.


약을 복용하고 효과가 가장 발휘되는 오전에 학교에 있을 시간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되려 담임선생님께서는 아이가 집중력이 좋은 편이고, 어떤 학습과제든 너무 빨리 해치워서 친구들에 비해 시간이 남아돌아 걱정일 정도라고 하셨다. 문제는 약 기운이 떨어지는 오후 3-4시쯤이었다. 학원에 가기를 거부하거나, 자기 뜻대로 안 되면 대성통곡하거나, 놀이터에서 함께 놀고 싶은 친구랑 원활하게 소통이 안되면 심하게 과민반응을 했다.


예민함이 커지고, 감정 조절이 어려워진다는 정도의 부작용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한 나의 큰 착각이었다. 8살 난 어린아이가 예민해지면 불안감도 같이 올라와서, 부모도 마찬가지지만 본인 스스로도 일상을 살아내기가 힘겨워질 때가 많아서 괴롭다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약물 부작용으로 인한 예민함은 내가 흔히 알고 있었던 "그 사람 성격 좀 예민해"라고 표현할 때 쓰는 그런 정도의 예민함이 아니었다. 작고 사소한 외부의 자극에 한없이 예민해진다는 건 아이의 평범한 일상과 삶을 힘겹게 만들고 어렵게 쌓아놓은 자존감도 뒤흔들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또 한 가지 약물 부작용 중 하나는 식욕부진이다. 아침밥을 꼭 먹이고 약을 복용시키는데, 이 약물 효과가 지속되는 6-7시간 동안은 아이가 아예 입맛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학교 급식도 한 두 입 정도 억지로 먹고 대부분 다 버리기 일쑤다. 그러다 오후 2-3시 정도가 되면 갑자기 배가 고프다고 밥을 달라고 성화고 저녁까지도 잘 먹는다. 식욕 부진이 성장 저하까지 일으키게 되면 심각한 문제인데, 다행히 늦은 오후부터 저녁밥은 잘 먹어서인지 키 성장이 지연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왜 입맛을 잃게 되는 건지, 약을 먹은 후에 어떤 느낌이 드는 건지 너무 궁금해서 한 번은 내가 먹어보았다. 나는 아이보다 훨씬 몸무게가 많이 나가기에 성인 용량으로는 턱없이 모자란 약 용량이지만 그래도 뭔가 느껴질 것 같아서 시도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약을 먹고 나니 입안이 굉장히 텁텁한 느낌이 들면서, 아무것도 먹고 싶지가 않았다. 물조차도 마시기 싫었다. 배고픔은 느껴지지만 입맛은 하나도 없어서 도저히 식욕이 생기지 않았다. 아이는 매일 이런 느낌을 받는구나 싶었다.


먹이는 문제 정도는 내가 충분히 아이 리듬에 맞춰서 해줄 수 있으니 크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또 한 가지 겪고 있는 부작용 중 하나는 바로 수면방해다. 아이는 잠드는 데에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고 힘겨워한다. 낮에 아무리 운동을 하고 활동량이 많았던 날에도 몸은 피곤하지만 정신이 날카로워져 있는 기분이 드는지 쉽사리 잠을 들지 못한다. 학교에 가야 하는 학기 중에는 그래도 일찍 일어나야 하니 최소한 11시 이전에는 재우려고 하는데 한참을 뒤척이다가 겨우 잠이 든다.


요즘처럼 방학이라 아침에 늦잠을 자는 날이면 아침밥도 늦게 먹이게 되고, 그러면 약 복용시간이 오전 10시 정도가 되는 날도 있다. 이렇게 아침 약 복용 시간이 늦은 날 저녁에는 더 잠을 못 이루고 힘들어한다. 처음에는 나도 못 자고 있는 아이를 달래주고 안아주고 애써보지만 나도 피곤함에 못 이겨 잠들고 싶은 날이면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잠 좀 자라고 짜증을 내고 만다. 아이가 일부러 못 자는 것도 아닌데, 그걸 알면서도 순간의 짜증 나는 감정에, 나의 수면 욕구가 우선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 모든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약물 복용을 끊을 수는 없다.

적지 않은 부작용을 겪고 있지만, 그것에 대응할 정도만큼의 효과는 있기 때문이다. 언어 발달 지연이었던 아이는 주의력이 많이 좋아져서 남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되었고, 부모를 포함한 가까운 어른들과는 편하게 소통이 되는 편이다. 또래와의 소통은 아직 원활하다 할 수는 없으나, 함께 사회성 그룹 치료를 받는 친구들과는 더 마음이 편한지 잘 어울리게 되었다.


나는 어려서 도통 말이 잘 터지지 않는 아이를 보면서, 이 아이는 애초에 언어학자 촘스키가 모든 인간은 언어습득장치를 타고난다고 했던 이론에서 벗어나버린 예외적인 인간인가 싶었다. 어떻게 특별히 방치되는 육아 환경도 아니었는데, 말이 이토록 제대로 터지지 않을 수 있는지 궁금했고, 언어 자극이 부족해서 그런 건가 싶어서 나의 육아 방식에 대해 반성하고 후회하고 참회하며 눈물의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하지만 ADHD 약을 먹여보니 언어가 늦어질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좀 알게 된 기분이었다. 주의력이 떨어지기에 엄마를 포함한 가족들이 아무리 말을 걸고, 이야기를 하면서 언어 자극을 주어도 애초에 귀 기울일 의지도 능력도 없었던 것이다. 언어 습득의 기초가 되는 듣기, 즉 리스닝이 제대로 되지를 않으니 말하기가 되지 않는 건 당연지사였다. 이렇게 말로 하는 언어 자극에 흥미도 관심도 없으니, 그저 눈에 보이는 시각적 자극에만 매료돼서 비정상적으로 한글과 숫자를 빨리 익혀서 읽어대는 통에 또다시 엄마를 착각의 늪으로 빠뜨려서 치료가 늦어졌는지도 모르겠다.


도움은 받고 있지만, 이 약을 언제까지 먹여야 할지, 끝은 있는 건지 늘 궁금하긴 하다. 내 욕심 같아서는 2-3년 복용하고 많이 좋아져서 중단시켜도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없을 만큼 좋아지기를 바라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처음 약을 먹이던 며칠간은 우울하고 복잡 미묘한 감정에 사로잡혀서 많이 힘들었다. 약물 부작용에 대해서 끝없이 검색하고 또 검색하면서 끝 모를 걱정만 하면서 지냈다. 아직 너무나 어린아이에게 식욕 부진과 수면 장애까지 일으킬 수 있는 정신과 약을 먹인다는 게 다 내 탓인 것만 같아서, 내가 좀 더 열심히 헌신해서 아이를 키웠다면 이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 같아서, 죄스러운 마음만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감정도 무뎌지는 법, 몇 개월 지나면서 아침마다 약을 먹이는 일은 우리 집의 하나의 일과가 되었고 그렇게 기계적이고 의무적인 자세로 매일 부지런히 복용시키는 중이다.


웬만하면 매일 빼먹지 않고 먹여야 하는 게 기본인데, 가끔 일요일에 아주 늦잠을 자거나 여행 갈 일이 있으면 한 번씩 빠뜨리고 안 먹이는 날도 있다.


약을 먹인 날보다 안 먹인 날에 아이의 모습을 보면, 나는 더 속상하고 안타깝다.

평소에 겪는 그 모든 부작용이 깔끔하게 사라진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식욕 부진 없이 점심시간이 되면 배고프다고 밥 달라고 하고, 사소한 일에 예민해지지도 않는다. 그리고 가장 눈에 띄는 건 밤에 잠을 잘 잔다. 보통 아이들처럼 불 끄고 누우면 5분도 채 안돼서 곯아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약만 안 먹으면 먹는 것도, 자는 것도 다 이렇게 평안할 수 있는데 그놈의 약이 뭐라고 꾸역꾸역 먹여야만 하는 건지 괜스레 더 속이 상한다.


사람이 식욕, 수면욕과 같은 기본적 욕구가 채워져야 사는 것도 편해지고 특히나 성장기에 있는 어린이들은 잘 클 수 있는 건데 그런 기본적인 것들을 방해하고 저해하는 약을 먹여야 한다는 게 서럽고 안쓰럽다.


대치동에 교육에 극성인 엄마들은 아이 학습을 위해서 ADHD도 아닌데 집중력 높여준다고 약을 먹인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ADHD라서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먹여야만 하는 부모 입장에서 그런 글을 보니 할 말을 잃게 되었다. 제발 그러지 않아 주었으면 좋겠다. 어쩌자고 이 독한 약을 공부 좀 더 시켜보겠다고 건강하게 자라는 제 자식에게 먹이는 건지.


오늘 아침에는 여느 때처럼 약을 먹였다. 오늘 밤에는 약을 먹지 않은 어젯밤처럼 편히 잘 수 없겠지.

언젠가 약물 없이도 스스로의 힘으로 일상을 영위할 날이 오기를 바라고 또 기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물 치료라도 할 수 있어서, 치료법이 있는 질환이라서 다행이고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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