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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Mar 02. 2023

미라클모닝을 때려쳤다

미국변호사가 될 것도 아니니까요

나는 자기 계발서를 좋아하는 편이다. 자주 찾아 읽지는 않지만, 가끔 자기 계발서를 읽게 되면 저자의 엄청난 행동력과 실행력, 삶에 대한 강한 의지력에 등에 반해서 나도 변화해 봐야겠다는 자극을 받고 한 가지 정도는 실천하는 편이다.


큰 시험을 앞둔 사람에게는 특히나 이런 자기 계발서가 도움이 되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더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면 저자처럼 뭔가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다는 희망과 설렘의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나처럼 귀가 얇고 쉽게 감동받는 타입의 사람에게 더욱 해당되는 말이다.


몇 년 전 한 미국변호사가 쓴 책을 읽고 굉장히 영감을 받아서 나도 미라클모닝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그분의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부지런하게 삶을 살아가는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나는 여태 뭐 하고 살았나 자책감까지 들었다. 저자처럼 새벽 4시경에 일어나서 진짜 미라클 모닝을 했다가는 평소에도 잠이 많은 나 같은 사람은 하루종일 피곤에 쩔어있을게 분명하다는 걸 알았기에 30분 정도 일찍 일어나 보았다.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하거나 다이어리를 써보았다. 조금씩 일어나는 시간을 더 당겨서 결국 5시 30분에 일어나는걸 최종 목표로 삼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미라클모닝 루틴이 시작되었다. 일어나서 잠깐의 영어공부, 다이어리에 감사 일기 쓰기, 스트레칭, 명상 등 여러 가지를 해냈다. 아침에 한 시간 이상의 여유 시간이 생기니 할 수 있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작년에는 급기야 밖에 나가서 달리기까지 시작했으니, 평생 런닝이라는 과격한(?) 운동은 나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경험까지 하게 된 것이다.


미라클 모닝을 하는 사람들 영상을 보다 보니 유튜브에서도 정말 그와 연관된 영상들만 추천으로 뜨기 시작했다. 어느새 나는 아침 5시 30분에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지 못하면 패배자가 될 것 같다는 두려움과 강박관념에 휩싸이기 시작했고 알람만 울리면 기계처럼 일어나서 할 일을 하나씩 해냈다.


그런데 문제는 수면 시간이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본래 하루에 7시간 정도는 자야 일상을 편하게 영위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면 5시 30분에 일어나자면 최소한 밤 10시 30분에 자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10시에 불을 끄고 누워도 수면 장애가 있는 아들 덕분에 재우다가 늦게 지쳐서 곯아떨어지는 경우가 많고, 이제 나이가 먹어서인지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새벽에 잠을 깨는 것도 여러 번이다. 피로를 풀 만큼 충분한 수면을 이루지 못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모닝 루틴을 실천하니 오후에는 갑작스럽게 나도 모르게 무거운 피곤함이 몰려왔다.


출근할 때는 오후에 점심만 먹고 나면 잠이 쏟아져서 책상에 엎드리고 앉아 불편한 자세로 10분 이상 졸았다. 졸고 나면 더 나른해져서 오후 업무를 소화하는 게 힘이 부쳤다. 그냥 정신력으로 버티곤 했다. 주로 집에 있는 요즘은 오후에 일정 시간만 되면 이제 마음먹고 소파에 드러누워 3-40분씩 잠을 자버린다. 아이를 봐야 하는데 혼자 놀게 두고는 내 몸의 피곤함에 굴복해서 자버리는 것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니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했다. 내 몸은 새벽에 채우지 못하는 잠을 어떻게 해서든지 채워야만 제 기능을 하는 소위, 저질체력이었다.


체력을 늘려본답시고 하루에 30분 이상씩 천변을 뛰어보기도 했지만 몇 년간 괜찮았던 혈관염이 도져서 강행할 수가 없었다. 아이의 겨울 방학이 2달째 이어지다 보니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몸도 많이 피곤했는지 더 이상 아침 5시 30분에 눈 뜨는 게 너무 힘겨웠다. 몇 년간 이 시간에 어떻게 일어났는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몸이 말을 듣지 않았고 아이와 함께 7시, 8시까지도 속절없이 자버리는 날들이 이어졌다.


나는 점점 죄책감에 휩싸였다. 영어공부도 해야 하고, 다이어리도 써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못하고 이렇게 게으르게 살면 나 망하는 거 아닐까. 이대로 내 인생 성장도 제대로 못해보고 정체된 삶만 살다가 끝나는 거 아닌가. 두려워졌다. 나도 그 미국변호사처럼, 김미경 강사처럼, 켈리최처럼 새벽에 일어나서 시간을 확보해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조금이라도 더 성취할 수 있을 텐데 이걸 어쩌나 하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그 와중에 신사임당 표절 사건이 터졌다. 주식, 부동산 재테크에 관심은 있으나 제대로 아는 게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추천 영상으로 워낙 자주 보이니 한 번씩 그의 영상을 보곤 했다. 유튜브에서 성공신화를 쓴 사람이 아닌가. 그분이 하는 말은 다 절대적인 것 같았고, 당장 배워 마땅한 것처럼 느껴졌다. 적극적으로 추종한 건 아니지만 한 번씩 볼 기회가 생기면 배울 점이 참 많은 사람이 구나하며 감탄하곤 했는데 어느 날 표절 사건이 터져버린 것이다. 아직 시시비비가 제대로 가려진 건 아니라고는 하지만 실망스러운 부분이 큰 건 사실이다. 아무리 성공한 유튜버라고 해도, 그 사람이 하는 모든 말이 옳은 것도 아니고 절대적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닌데 내가 너무 내 판단력은 제쳐두고 여과 없이 그 사람이 하는 말들은 다 맞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싶었다.


적절히 가지치기해서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쳐낼 건 쳐내야 하는데 귀 얇은 나에게는 그게 가장 어렵다.


블로그에서도 꽤 유명한 자칭 대치동 큐레이터라는 사람을 즐겨 보고 있었다. 대치동에 직접 거주하면서 두 아이를 키우고 있고, 학군과 부동산에 대한 자신만의 인사이트를 담은 글들이 꽤 흥미로웠고 내 눈길을 끌었다. 강의 사이트에서 대치동 학군에 관한 강의도 하고, 일대일 컨설팅도 하는 건 알았지만 나는 사는 지역도 아예 다르고 아이가 너무 어리니 크게 필요하지 않기에 신청해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꾸준히 블로그는 눈팅을 하곤 했는데 우연히 그분의 상식선을 벗어난 컨설팅 비용에 대한 비난의 글을 보게 되었고,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아무런 의심 없이 그 블로거는 선하고, 양심 있으며, 자신의 이익보다는 타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대치동 로컬 큐레이터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람도 말과 글재주로 이익을 챙기는구나."라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했었다면 나는 그 정도로 충격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컨설팅 비용을 내고 신청한 것도 아니고, 경제적 손실을 입은 것도 아니었지만 무작정 신뢰하고만 있던 내 얕은 판단력에 놀랐을 뿐이다.


관련된 글을 찾아보니 예전에 한창 국민 육아 멘토로 활동했던 사람도 범법행위만 하지 않았지, 거품과 사기성을 띈 그럴듯한 말솜씨로 평범한 엄마들을 현혹시켜 돈을 챙겼고, 그런 부류들이 꽤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문득 정신 똑바로 차리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야말로 합법적인 행위로 사람을 가스라이팅 하는 게 아닐까. 중요한 건 억지로 비용을 내게 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의 강의나 컨설팅에 참여하고 싶어서 스스로 비용을 지불하고 속알맹이 없는 그럴싸한 제목과 말발에 적지 않은 돈을 낭비하게 사례들이 심심치 않게 있는 것이다.


SNS에서 성공해서 잘 나가던 사람들이 사소한 일에 무너지는 일들을 보면서 사람을 너무 과신하면 안 되겠다는 다짐을 속으로 했다. 그러다가 내가 죽자 사자 실천했던 미라클모닝도 내가 혹시 숱한 자기계발서와 성장 마인드셋만 외치는 사회 분위기에 가스라이팅 당한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되었다.


<아침형 인간>이라는 책은 한 때 대기업 CEO들이 직접 대량으로 구매해서 전 직원들에게 나눠주고 읽게 했다고 한다. 그 말인즉슨, 너희 직원들은 이런 자기 계발서를 읽고 더 스스로를 옥죄고 부지런하게 단련시켜서 회사에 열정을 다 바쳐라라는 오너의 뜻이 아니었을까. 소름이 돋았다.


<시크릿> 같은 책도 논거는 비약하고 취약하지만, 꿈꾸고 바라면 무조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근거 없는 희망의 메시지만 가득하지 않은가. 나 스스로도 시크릿에서 말한 시각화를 적용하면서 시험 준비를 할 때에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지만, 사실 인생 전반에 걸쳐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아무리 내가 미친 듯이 시각화를 한다고 해서 아이돌 비주얼의 가수가 될 수도 없고, 하루아침에 재벌 수준의 부자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시각화도 어느 정도의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야 효과가 있다.


나는 큰 마음먹고 미라클 모닝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기로 했다. 피곤하면 잘 수 있는 만큼 내 몸에게 잠을 허락하고, 충분한 수면 후에 개운한 상태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운동이나 독서를 조금씩 하면 되는 것이다.


모닝 루틴을 실천하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내 인생이 망하지 않는다. 독서든 운동이든 잠깐을 하더라도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해서 최선의 컨디션으로 임하는 것이 최대의 효율을 낼 수 있고 그러려면 적당한 식사와 체력, 그리고 충분한 수면을 확보해주어야 한다.



내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몸을 돌보는 것이다.
잘 먹고, 잘 웃고, 잘 운동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잘 자는 것이다.
Long Sleeper의 대표적인 인물이 아인슈타인이다. 그는 10시간도 넘게 자는 대단한 롱슬리퍼였지만 한국 어린이들이 읽는 아인슈타인 전기에는 그런 내용을 찾아보기 어렵다.
나의 행복과 성장을 위해 나의 적정 수면 시간을 알아내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적정한 삶, 김경일>



이제 나는 미라클모닝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잘 먹고, 잘 자면서 내 몸을 돌보는 것을 가장 우선시하면서 행복과 성장을 이뤄내고 싶다.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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