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이 한마디에 아침부터 폭발해 버렸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 4일째다. 다행히 3월 첫 주는 삼일절 연휴까지 끼고 있어 개학 첫날을 포함해서 이틀 등교하고 나니 바로 주말이라 그런지 아이는 크게 힘들어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학교 두 번만 가면 바로 주말이잖아."라는 말로 개학 첫 주를 달래면서 보냈다.
둘째 주가 곧이어 시작되고 이제 일주일 내내 등교를 하게 되니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는 것부터 굉장히 힘들어한다. 월요일 아침에는 나름대로 긴장하고 일어나서인지 군말 없이 밥 먹고 챙겨서 잘 등교해 주었는데, 화요일 아침은 피곤함이 두 배가 되었는지 일어나기 더 힘들어한다. 잠에 취한 아이를 겨우 깨우고 어르고 달래서 반쯤 감긴 눈에 밥을 몇 숟가락 떠서 밀어 넣어본다. 아침에 약을 꼭 복용시켜야 하기에 아침밥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밥과 반찬으로 준비해서 먹인다. ad약을 복용하면 몇 시간은 식욕부진이 오기에 학교 급식도 거의 먹는 둥 마는 둥 할 걸 알기에, 학교에 있는 그 긴 시간 동안 배고플까 봐 아침밥만큼은 사명감을 가지고 먹이는 편이다.
밥 먹을 때는 항상 만화책을 끼고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천천히 밥을 먹는 녀석이기에, 마음은 급하지만 살살 비위 맞춰주며 몇 숟가락 겨우 떠 먹이고 숟가락 놓자마자 약을 아이의 입으로 쑥 집어넣는다. 밥 먹고 바로 씻어주면 좋으련만 스케치북을 꺼내더니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몇 분간은 참고 있다가, "이제 학교 가야 하니까 양치해야지." 한 마디 했더니 놀고 싶다면서 떼를 쓰기 시작한다. 한 손에는 연필, 다른 한 손에는 칫솔을 쥐어주고 "그럼 그림 그리면서 천천히 양치해." 하며 달랬다. 흔한 남매에서 본 재밌었던 장면을 한참 따라 그리면서 칫솔은 입에 문채 양치를 하는 건지 마는 건지 정신이 팔려있는 아이를 보면 답답하지만 참아야 한다.
등교하는 날에는 아침에 아이 기분을 망치지 말자는 나만의 신조가 있어서, 최대한 비위를 맞춰주고 기분 좋게 보내려고 한다. 웬만큼 내가 받아줄 만한 수위의 어거지나 떼씀은 인내하고 참아내면서 일단 지각하지 않고 사람 모습으로 갖춰진 용모로 등교시키는 게 최대 목표다.
세수를 하면서부터 오늘 무슨 요일이냐고 물어보더니 왜 아직 화요일밖에 되지 않았느냐고 화를 낸다. 자기는 오늘이 수요일인 줄 알았다면서, 이제 월요일 하루 보낸 주제에 이번주가 너무 길다면서 투정을 부린다.
이번주 토요일에 아이 생일이라 사촌형아 집에 가서 놀고 자기로 약속했는데,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라 그런지 더 이번주가 길게 느껴지나 보다. "네 밤만 더 자면 형아들 집에 갈 수 있어. 좀만 기다리자."라고 달래 보았지만 너무 오래 남았다면서 연신 불평을 해댔다.
또 한 번 참고 참으면서 얼굴에 로션을 바르게 하고, 밤새 자느라 붕 뜬 머리에 물을 묻혀서 최대한 가라앉히고 빗으로 정돈시키며 빗겨주었다. 아이가 입을 옷을 준비해 주고, 세탁기 끝난 소리가 들리기에 건조기에 넣은 뒤 외출복은 따로 빼서 널고 있는 중이었다. 옷 갈아입는 건 이제 스스로 잘하는 편이라 혼자 하도록 내버려 두는데 오늘따라 더 옷 입는 시간이 한없이 늘어지고만 있었다.
아직은 몇 분의 여유가 남아 있음을 확인하고 빨래를 널고 있었다.
"엄마, 나 이 파란색옷 마음에 안 들어. 입기 싫어."
"그냥 입어. 제발. 괜찮아 그 옷."
이때부터 나도 약간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평소에 잘 입던 옷을 괜히 불편하다면서 심통을 부리는 거다. 옷은 항상 그날 날씨를 확인한 후에 입기에 가장 적당한 것으로 골라 놓는데, 또 다른 옷을 입는다고 하니 참기 힘들었다.
빨래를 널고 거실로 와서 보니, 이제 겨우 팬티 하나 입고 바지를 반 정도 다리에 걸치고 앉아 있는 상태였다. 시간이 부족하면 그냥 다 입혀줄 텐데, 아직은 여유가 있어서 내버려 두었다.
근데 그 순간, 아이는 이 말을 내뱉었다.
"나는 학교 가서 공부하는데, 엄마는 왜 일하러 안 가는데?!"
"..."
아이의 이 말에 나는 순간 이성을 잃어버렸다. 말할 수 없이 화가 차올라서 주체하기 힘들었다.
아침 등교 때만은 화를 내지 않고 기분 좋게 등교시키자는 내 일상의 목표가 처참하게 깨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내 속마음을 여과 없이 쏟아내고 말았다.
"엄마가 지금 누구 때문에 출근을 못하는데? 엄마도 직장 나가서 일하고 싶은데, 왜 일 못하고 있는 줄 알아?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너 아침 챙겨주고 학교 일찍 끝나니까 오후에 너 챙겨주고 학원 데려다주고 밥 차려주고 간식 준비해 주느라고, 너 때문에 출근 못 하고 있는 거야. 근데 그런 엄마한테 왜 일하러 안 가냐고 물어봐? 나도 너 학교 보내고 일하러 가고 싶어. 일하고 싶고, 돈 벌고 싶어 죽겠어. 엄마도 이렇게 집에만 있는 거 너무 싫다고!!"
아이는 적잖이 놀라면서 울기 시작했다. 학교 가기 싫어서 아무 생각 없이 던진 투정이었는데, 엄마가 너무 격한 반응을 보이니 놀란 듯했다. 눈이 빨개져서 울기 시작하는데도 나는 아이를 달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아서 더 모진 말을 분출해 내기 시작했다. 평소 같으면 한 두 마디로 끝나고 말 것을 그날 따라 더 주체하지 못하고 아이에게 상처가 될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아이는 그 상태로 얼음.
"엄마, 실수로 한 말인데 엄마가 너무 화내서 나 슬퍼. 엉엉."
맞다. 아이의 말이 옳다. 학교 가기 싫어서 그냥 해본 소리인데, 나는 그 말에 죽자고 아이에게 달려들고 있는 것이다.
나도 내가 왜 이렇게까지 화를 내고 있는지 모르겠는 기분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입학하면서 1년의 휴직을 했다. 이건 예전부터 고려하고 있었던 거고, 아이가 초1일 때는 아무래도 엄마손이 유치원 때보다 가장 많이 가는 시기이기에 휴직은 당연한 거라고 여겼다. 게다가 센터치료에 약물 처방에 보통 아이들보다 더 신경 써줘야 할 부분들이 있기에 아이는 나를 필요로 했다.
하지만 1년 휴직 기간을 보내고 나니 슬슬 복직하고 싶어졌다. 출근하면서 워킹맘으로 지내면 체력적으로 힘들고 스트레스받는 부분도 더 많을 수 있지만, 그래도 일에서 오는 보람과 뿌듯함도 느낄 수 있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 일해서 돈을 번다는 경제적 자립감이 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집에서 아이만 케어하는 일상이 처음엔 좋았지만 만 1년을 주부로 보내고 나니 이제 주변 친구들처럼 나도 일을 하고 싶었다. 등교시키고 나서 오전에 집안일을 하면서 보내고 나면 왠지 모를 허무함이 나를 감싸고도는데 괜히 울적해지기도 했다.
아이가 2학년이 되면서 나는 휴직을 연장해야 하나 한참 고민했다. 남편은 고민도 없이 무조건 연장하라고 했다. 시댁, 친정 양가 모두 멀리 살아 도움받을 처지도 못되는데, 내가 집에 있으면서 전적으로 아이를 케어하고 집안 살림까지 신경 안 쓰게 하니 본인은 일에만 더 편하게 집중할 수 있어서 여러 모로 내가 휴직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듯했다. 유치원 때처럼 이모님을 쓸 수도 있지만, 초등학생이 되니 학교에 있는 시간이 짧아져서 이모님이 집에 와야 하는 시간이 훨씬 더 길어져서 계산해 보면 내 월급의 3분의 2를 지출해야 할 것 같았다. 초2까지는 내가 휴직하는 게 여러 면에서 더 나아 보였다. 그래도 가슴 한편에는 미련이 계속 남았다.
막상 출근해서 정신없이 일하면 힘들다고 불평하고 투정 부릴 거면서, 지금 이 생활이 얼마나 편한지 모르고 한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웬만하면 그런 티를 내지 않고 묵묵히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해내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아들이 나의 그런 마음을 정확히 저격해서 자극한 것이다.
엄마가 일 안 하고 싶어서 지금 이렇게 집에 있는 게 아닌데.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고 있는 것도 아닌데 자기를 위해서 이렇게 희생하고 헌신하는 건데, 너무 쉽게 말하는 아이가 한없이 밉고 원망스러웠다.
나의 폭발에 당황해서 우는 아이를 다시 어르고 달래서 겨우 옷을 입히고 챙겨서 나왔다. 학교 앞으로 가니 지각인 듯했다. 이미 모두 등교를 마쳤는지 학교 앞은 썰렁했다.
"엄마가 사랑해. 많이."
아이를 한 번 안아주고 보내긴 했는데, 아직 기분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새 학기 증후군이라 몸도 마음도 아직 피곤한데, 아침에 그냥 한 소리에 엄마가 불같이 화까지 냈으니 기분이 좋을 리 만무하다.
많이 안쓰럽고 미안하다.
아이를 위해서 희생한다는 생각. 하지 말기로 하자.
아이는 내가 원해서 낳은 거지, 누가 낳으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다.
아이를 낳았으면 잘 클 수 있도록 양육하고 케어하는 건 부모의 의무다.
난 그냥 그 의무를 해내는 거지 딱히 엄청난 희생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아이가 그걸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서도 안된다.
아직 어린아이이기에, 치료도 필요한 아이이기에 누군가 자신을 돌봐주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근데 그런 걸로 아침부터 생색을 내다니.
자꾸 내가 휴직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계산하고 일정기간 포기해야만 하는 내 커리어와 사회로부터 뒤쳐진다는 그 느낌에 매여있는 듯하다. 이렇게 도태되어서 나는 결국 쓸모없는 인간이 돼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이 시기를 잘 견디고 열심히 지내면, 나중에 다시 직장에 돌아가서도 그만큼의 내공이 쌓일 거라고 믿자.
자기 자식 제대로 잘 키워낸 사람은 어딜 가서 든 어떤 일이든 잘 해낼 수 있다고 믿자.
세상 그 무엇보다 육아가 가장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이걸 잘 해내면 몇 년간 손 놓았던 일을 다시 하게 되더라도 금방 적응해 낼 거라고. 그렇게 믿고 이 시기를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