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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노출과 발달장애

스마트폰시대에 느린 아이 키우기

by 레이첼쌤


아이에게 스마트폰 유튜브 영상을 보여주기 시작한건 두 돌이 채 안 된 시점이었던 것 같다.

이유식을 졸업하고 식당 유아용 의자에 앉아 밥을 먹을 정도의 개월수가 되었을 때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외식을 했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식당에서 여유롭게 밥을 먹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음식이 나오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을 참지 못해서 소란을 피우거나 테이블 위에 있는 수저, 젓가락을 던지면서 놀거나 물컵을 엎지르거나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일부러 수저를 바닥에 떨어트려서 나는 소리가 재미있는지 주워주면 계속 반복해서 바닥에 떨어트리고는 순수한 얼굴로 함박웃음을 짓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깟 외식, 그냥 안하고 말았으면 속 편했을텐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맛집이나 제대로된 식당에 가서 남이 해주는 바깥음식을 먹어보고 싶었고 한창 SNS에 올라오는 맛집이나 카페를 검색하고 찾아가보는 일이 트렌드인것 처럼 느껴지던 때였다.


오히려 나이를 먹은 요즘은 여기 저기 찾아다녀봐도 다 거기서 거기라는 인식이 생겨서 굳이 맛집을 찾아가서 줄서서 먹기도 귀찮아졌다. 자주 가는 식당이나 동네에 유아놀이터가 구비된 식당에 가서 좀 덜 맛있더라도 편하게 먹는게 좋다. 그 때는 나도 남편도 좀 젊고 어려서 맛집을 찾아다닐 열정이 있었던건지도 모르겠다.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먹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스마트폰이었다.

아이에게 뽀로로나 타요같은 영상을 틀어주면 마법처럼 조용해지고 화면에만 집중해주어서 우리는 그 시간만큼은 사람답게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습관처럼 아이는 식당에 가면 스마트폰을 찾곤 했다. 그래도 일상 생활속에서는 차라리 TV를 보여줬으면 보여줬지 스마트폰을 무분별하게 손에 쥐어주지는 않았다. 외식을 하거나 볼 일이 있는데 도저히 아이가 통제가 안 되는 순간에는 요긴하게 아이를 붙들어주는 무기가 되었다.



스마트폰에 아이가 과하게 집착하기 시작한 때는 아마 내가 직장에 복직한 시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복직하면서 어쩔 수 없이 친정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겨우 적응해서 다니고 있던 우리아파트 단지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친정집 근처 어린이집으로 옮길 수 밖에 없었다. 초반에 적응이 힘들긴 했지만 3세에 1년정도 어린이집에 다녀보고 4세가 되었으니 새로운 어린이집에서도 어렵지 않게 적응할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철저한 착각이었다.

새로운 어린이집에 들어간 첫 날부터 아이는 문제 행동을 보이고, 소리를 지르고, 선생님과 친구들을 적대시하는 모습을 보이고 밥과 간식도 아예 먹지 않았다고 했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아이의 행동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면서 적응이 어려울 것 같다고 하셨고, 이런 식이면 계속 다니는 것도 힘들수도 있음을 암시하셨다. 친정엄마는 어린이집에서 짤리는것 아니냐고 엄청나게 걱정하셨다. 혹시라도 퇴소 조치되면 나는 직장에 출근해야만 하고 아이는 하루 종일 오롯이 친정엄마가 봐주셔야하는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적응시켜야만 했다. 등하원을 시켜주고 하원 후에 몇시간 돌봐주시는 것만으로도 친정엄마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이는 첫 일주일 동안 거의 밥을 먹지 않았다. 아마도 새로운 환경에 자신이 온 것이 납득이 가지 않았기에 일종의 반항의 신호였던 것 같다. 집에서도 기관에서도 밥을 안 먹어서 배가 홀쭉 들어갔고, 먹는거라곤 요구르트 몇 개 였다.

단 몇 입이라도 어떻게든 먹여야겠다 싶어서 생각해낸게 스마트폰이었다. 영상을 보여주면 거기에 집중해서 푹 빠져있느라 입에 밥이 들어오든 뭐가 들어오든 개의치 않고 오물오물 씹어먹는 것이었다. 친정엄마는 애부터 살려야되지 않겠냐면서 일단 폰 좀 보여주고 밥이라도 먹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시작된 습관이 아이에게는 고치지 못할 습관이 되어서 거의 일 년이 다 되도록 핸드폰을 보면서 밥을 먹었다. 그래도 밥 먹이는 시간이 수십분 되는 것도 아니고 15분 내외이니 하루에 그 정도는 노출시켜도 괜찮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시각적 자극에 취약한 내 아이에게는 그 짧은 노출도 독이 되었다. 영상을 보지 않을 때조차 제대로된 상호작용은 커녕 자꾸만 영상에서 본 말들을 따라했다. 게다가 아이가 보는 영상은 대화가 주를 이루는 만화도 아니고 이상한 입체도형들이 굴러다니고 하면서 화려하고 현란한 모습을 보여주는 별 의미없는 것들이었다. 영어도 아니고 러시아어같은 아예 생소한 언어로 만들어진 영상도 많았다. 아이는 자기가 본 영상에 나오는 말들을 행복한 얼굴로 반향어처럼 똑같이 따라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별 의미없이 받아들인것 같다. 그 해에 나는 기나긴 육아휴직 끝에 복직해서 일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롯데월드에 다녀온 이후로 아이의 문제의 심각함을 인지하고 검사를 받게 된 이후로 결심했다. 언어 발달에 대한 책 몇권만 읽어도 36개월 이전에는 최대한 영상 노출을 자제시켜야한다고 나와 있었다. 나는 독하게 마음 먹고 미디어노출은 아예 차단시키기로 마음 먹었다. 집에서 별 생각없이 틀어두던 TV 뉴스나 예능프로그램조차 아예 포기하고 나부터 보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 앞에서 최대한 스마트폰을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외식도 아예 않하던지 아니면 식당에 책이나 장난감을 잔뜩 챙겨가서 대신 갖고 놀게 하면서 밥을 먹었다.


안 그래도 시각 자극 추구가 심한 아이인데 잠깐의 영상 노출조차 이 아이에게는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걸 알게 되었다. 미디어노출은 뇌발달을 불균형하게 만들고 부모와의 상호작용과 애착에 흥미가 줄어들고 전두엽의 발달을 방해해 자기조절능력, 집중력, 작업 기억력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내가 본 정상발달의 아이들은 하루에 한두시간 정도 미디어노출이 되었다고 해서 문제가 생기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야말로 하루의 대부분을 미디어와 보내고, 그것도 부모와의 적절한 애착 형성이나 적절한 언어 자극이 없는 환경이 없었다면 정상 발달의 아이에게도 발달상의 어려움이 생길수는 있지만 그건 단기간의 치료와 도움으로 극복될 수 있는 케이스다.

내 아이같은 경우는안 그래도 뇌 발달 자체가 불균형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시기였고 긴 시간이 아닌 미디어노출이었지만 그것조차 치명적이었던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해 본적이 있다.

이 아이가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 하다못해 TV라고는 접할수도 없는 외딴 시골마을에 태어나서 가족들은 농사를 짓고 장난감이나 교구도 없는 환경에 유아 기관은 커녕 유치원도 없어서 매일 형제들과 뒤엉켜서 자연에서 뛰놀고 다녔다면 어땠을까. 그런 환경이었다면 이 아이도 정상발달을 할 수 있었을까. 미디어 시대에 태어난 바람에 안 그래도 예민한 시각이 더 자극을 받아 뇌발달에 더 기름을 부어 악영향을 미친건 아닐까.


요즘 부모님들은 보통 아이들과도 스마트폰과의 전쟁을 하느라 힘들다. 스마트폰을 한 번 붙들면 도무지 자제가 되지 않고 밤늦게까지 손에서 놓지를 못하니 학업에도 당연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중학생들도 스마트폰이나 게임을 하느라 잠을 못자서 아침에 몹시 피곤한 상태로 등교하고 수업시간에 조는 아이들이 부지기수다. 학부모 상담때면 다들 한 목소리로 핸드폰 중독이 심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꼭 나온다. 일반적인 아이들도 성장하는 시기에 스마트폰에 과하게 노출될 경우에 시각적인 영상에만 자극을 받아서 책도 읽기 어렵고, 문해력도 떨어지는 등 그 악영향이 작지 않다.


예전의 우리 세대들은 부모님들이 대부분 먹고 살기 바빠서 아이들이야 먹이고 입히고 기본적인 것들만 해주면 스스로 잘 자란다는 분위기였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특히 스마트기기 사용에 관련해서는 부모의 철저한 관리와 통제가 필요한데, 이것 또한 처음 해보는 일이니 요즘 부모님들 세대도 당황스럽다. 우리 스스로도 스마트폰을 쉴새없이 들여다보게 되는게 일상인데 아이들만 통제시키려고 하니 억울해할것 같기도 하고, 육아서같은 책에서는 온 가족이 폰을 다같이 끄고 대화를 하거나 식사 시간을 가져야한다고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일까.


보통 아이들도 이러할진대 하물며 유아기에 발달상 어려움을 지닌 아이가 스마트폰에 무분별하게 노출될시에는 어떨까. 부모는 어떻게 해서라도 최대한 노출을 자제시켜야하는데, 유치원생만 되도 자기 폰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도 생겨나는 마당에 내 아이만 막무가내로 못 보게 하는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 반에도 스마트폰이 있는 아이들이 절반을 훌쩍 넘는다. 나에게 자기는 언제 핸드폰을 사줄거냐고 날마다 성화다. 이미 집에서 노트북도 하고 아이패드도 하고 있으니 충분하다고 설득해보지만 자기 두 손에 들고 다니면서 언제든지 접할 수 있는 스마트기기를 가질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여행을 가거나 명절 같은 연휴에는 나도 통제를 좀 느슨하게 하고 한 두시간 정도는 사촌형들과 하도록 내버려두는편인데 작년 추석쯤에 시댁에 갔는데 TV화면에서 유튜브를 볼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된 아이가 끝도 없이 할아버지에게 틀어달라고 요구했다. 아버님은 손주가 애틋한 얼굴로 애원하면서 틀어달라고 하니 마음이 약해지셨는지 요구를 들어주셨다. 시간이 꽤 지나자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내가 나섰다. 약간 정색하면서 이제 그만 다 티비 끄라고 아이를 향해 강하게 말했지만 이제 그만 꺼주십사 하는 아버님에 대한 메시지이기도 했다.


내가 집에 돌아오고 나서 아버님은 내가 너무 애를 잡는 것 같다고 하셨다고 한다. 요즘 애들은 유튜브도 보고 해야 유행하는 게임도 알고 서로 관심사도 공유할 수 있는데 무조건 안 좋다고 못 보게만 하는것도 안 좋다고 하셨다고. 게임 좀 한다고 큰 일나는 것도 아닌데 내가 좀 예민하게 군다고 하신 모양이었다.

그건 정상 발달의 아이들에게나 해당되는 소리지, 상호작용도 원활하게 안 되는 애가 유행하는 것들을 알아봤자 무슨 소용이냐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소용없는 일이고 굳이 그렇게 할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아이의 주양육자는 나이니 내가 아이에 대해 제대로 알고 생활 습관을 잡아주면 그만이었다.


요즘은 아이에게 유튜브보다는 차라리 TV를 틀고 보라고 사정할 정도다. 끝없이 관련 추천 영상이 떠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아이가 빠져들어서 보게되는 유튜브보다는 티비 채널이 더 안전하게 느껴진다.


스마트폰 시대라서 육아가 더 힘들어진 것 같다. 아이의 뇌를 스마트폰으로부터 보호해야하는 또 다른 의무가 부모의 과업이 되버렸기 때문이다. 시각 영상이 아이 발달에 더 치명적일 수 있는 내 아이 같은 경우에는 더더욱 스마트폰으로부터 아이를 지켜야해서 매일 매일이 전쟁이고 쉽지 않은 현실에 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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