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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FCF를 아시나요

발달지연 아이를 위한 글루텐프리 카제인프리 식단 도전기

by 레이첼쌤


매일같이 느린맘카페를 들락거리는게 습관이었던 나는 우연히 GFCF라는 말을 접하게 되었다.

식단과 관련있는 말이었는데 궁금해서 검색을 좀 해보니 Gluten-Free, Casein-Free의 약자였다.


글루텐은 한마디로 밀가루에 함유된 단백질 혼합물로 외국에서는 셀리악병 때문에 많이 알려진 개념이다.

카세인은 우유나 치즈 같은 유제품에 함유된 단백질인데 이 글루텐과 카세인이 장 건강을 해쳐서 장 누수와 뇌 누수를 일으킬 수 있고 뇌쪽으로 가는 혈류량을 줄이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뇌 측두엽의 관류 저하는 자폐증의 특징인 사회적 상호작용 및 의사소통 장애와 관련이 있었다. 관류 저하의 원인은 식품 과민성일수 있는데 글루텐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고, 자폐증 아동의 75%가 뇌로 가는 혈류량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 내용은 <당신은 뇌를 고칠 수 있다>와 <우리아이 독특한 행동 특별한 뇌>라는 책을 읽고 알게된 것이다.


이걸 접하게 된게 아이가 7세 때였는데, 나는 머리가 한 방 맞은 것처럼 커다란 깨달음을 얻은 기분이었다.

아이가 먹는 음식 중에는 글루텐과 카세인이 범벅인 것들로 가득했다.

우선 아이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요구르트를 찾았고, 집에 요구르트가 한 번도 떨어지지 않도록 항상 구비해두는, 아이의 최애 음료수였다. 목 마를 때, 간식을 먹을 때, 그냥 출출할 때에도 항상 요구르트를 찾았고 하루에 5,6개는 기본으로 마셔댔다.


우유도 잘 먹는 편이었는데 돌 즈음에 한창 모유 수유를 끊고 이유식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즈음에 모유에서 얻지 못하는 영양성분을 우유로라도 채워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참 열심히도 먹였다. 그런데 아이가 우유를 너무 좋아해서 하루에 천미리도 넘게 먹고 있어서 너무 과한거 아닌가 조금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우유, 요구르트 뿐만 아니라 아기용 치즈도 꼭 먹여야 하는건줄 알고 간식용으로 열심히 사다 먹였다.


밀가루는 말할 것도 없었다. 잔치국수나 메밀면같은 면요리를 좋아했고, 열심히 포크질하며 먹는게 귀여워서 자주 만들어먹였다. 과자류도 어릴 때는 성분을 확인하고 되도록이면 유기농제품 위주로 먹이려고 했지만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급격하게 일반 과자류에 노출되었고 아이는 금세 빠져들었다. 그 중에서도 아이가 가장 사랑한 과자는 홈런볼이었다. 부드럽고 안에 초코가 들어있어 달달한 이 홈런볼을 집에 항상 구비해두지 않으면 안되었다. 잘 먹어서 예쁘다며 돌봄이모님도 자주 사다주셨고, 하루에 한 봉지만 먹이려고 신경쓰긴 했지만 아이가 너무 원하면 잘 안될때도 많았다.



그러다가 이 GFCF개념을 접하게 되니 적잖은 충격이었다.

나는 너무 이미 너무 많은 유제품과 밀가루를 아이에게 여과없이 노출시켰고 먹여온 것이다.

유제품과 밀가루가 이 아이의 발달지연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과학적 증거나 임상은 턱없이 부족한 편이지만 연구가 조금씩 진행중이라고 했고, 소아신경학회에서는 대체치료요법 정도로만 여기지 거의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하니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에 관해 알아보고 공부하면 할수록 어느정도 일리있는 논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한 번 시도해볼 가치는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이의 발달지연을 낫게 할 수만 있다면 뭐든 못해보겠는가 하는 심정이었다.

생각보다 우리 생활 속에는 밀가루와 유제품을 다량 함유한 식품들이 아주 많았고, 이미 아이에게는 일상이 되버린 상황이었다.


우선 유치원에 전화해서 매일 오전 간식으로 나오는 우유급식을 중단해 달라고 말했다. 유제품은 꼭 발달치유목적이 아니더라도 아이는 장이 약한 편이라 장염에 쉽게 걸리고 변의 상태도 매일 일정한 편은 아니었다. 예전처럼 우유 안 마시면 키 안 큰다는 시절도 아니고 유제품 아니고서라도 대체할 수 있는 영양분을 가진 음식은 쉽게 구할수 있으니 끊어볼만한 가치가 있었다. 집에 습관처럼 사두던 우유도 더이상 사지 않았다. 나도 남편도 매운 음식을 먹거나 입이 심심하면 우유를 한번씩 마시곤 했는데 냉장고에 없으니 마실 일도 줄었다. 우유는 괜찮았는데 요구르트는 워낙 좋아하는 아이라 없으니 자주 찾았다. 가당음료수는 되도록 끊고 아예 안 먹이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유기농 과일 쥬스로 대체해주었다.



유제품보다 밀가루를 안 먹이기가 더 어려웠다. 모든 면요리는 밀가루로 만들어져있다. 메밀면조차 백퍼센트 순수하게 메밀로 만들어진건 없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가 토마토스파게티였고, 7살 정도 되니 평소엔 안 먹더라도 여행 가면 한번씩 끓여주는 라면도 정말 좋아했다. 심지어 된장, 고추장에도 밀가루가 함유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우리가 먹는 식품에는 밀가루가 없는걸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 같았다. 된장은 쌀가루로 만든걸로 대체해서 된장국을 끓였다. 야채 싫어하는 아이에게 그나마 야채를 충분히 섭취하게 할 수 있는 음식이 카레였는데 카레마져 글루텐이 함유되어 있었다. 만두에도, 동그랑땡에도, 떡갈비에도아이가 즐겨먹는 모든 음식에 순수 글루텐프리는 없었다. 다행히 자연드림에는 글루텐을 줄인 카레나 냉동식품을 판매해서 당장 조합원에 가입하고 이용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마른 체형의 아이에게 좋아하는 음식을 먹이지 못하고 오로지 글루텐프리만 먹이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걸 금방 깨달았다.


서너살 정도의 나이였다면 식단을 실천하기 조금 더 용이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7살은 이미 세상에 나온 온갖 맛있는 것들에 어느 정도 노출되버린 나이였다. 마트에 가서도 자기가 먹고 싶은 걸 골라 사달라고 요구하는 나이였고, 유치원 급식이나 간식에도 이미 밀가루가 함유된 음식이 많았다. 빵 종류나 파이, 핫도그, 호떡같은 맛있는 간식이 나오는데 다른 친구들은 다 둘러앉아 먹는 음식을 내 아이만 못 먹게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또 하나의 난관은 또래와의 소통이 거의 전무하다시피하던 아이가 매일같이 퇴근후에 놀이터에 데리고 나가 순한 성향의 여자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도록 하니 아주 조금씩 같이 어울리기 시작했다. 적극적이지도 않았고 상호작용이 원활하지도 않았지만 단순한 잡기 놀이에는 대화가 딱히 필요 없었고 아이도 구체적인 룰이 있는 간단한 놀이 정도에는 참여할 수는 있었다. 그래서 비오는 날만 아니면 정말 매일 데리고 나가려고 노력했는데, 문제는 놀이터에서 놀다보면 자연스럽게 과자나 음료수, 아이스크림 같은 간식들을 나눠먹는 문화였다. 엄마들은 아이들 먹으라고 핫도그나 붕어빵을 사오기도 하고, 요구르트나 뽀로로 음료수 같은걸 사서 나눠주었다. 그나마도 또래에서 소외될까봐 걱정인데, 먹을거 나눠먹는 시간에 아이 혼자만 못 먹게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아이는 내가 과자를 준비해간 날에는 더 기세등등해져서 자기가 친구들에게 과자를 나눠주겠다고 했다. 사회성 떨어지는 아이가 친구들에게 과자 나눠주며 함께 먹는 기쁨이라도 누리게 해주고 싶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결국 나는 백퍼센트 순결무구한 글루텐프리, 카제인프리 식단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아무리 신경을 써서 그것들로부터 벗어나려고해도 이미 벗어나기에는 우리 생활속에 깊숙이 들어와있었고, 그런 것들을 안 먹이자면 어디 멀리 외딴 시골에 들어가 산다면 가능할 일이었다. 밥과 나물 반찬만 먹이고 간식은 감자, 옥수수같은 것만 먹일 수 있는 환경이라면 실천해봄직했다.

또 하나의 난관은 나도 남편도 면요리를 엄청나게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파스타, 남편은 칼국수나 라면을 좋아했고 외식을 하게 되더라도 면요리가 없는 레스토랑이나 식당 찾기도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래도 왠만하면 고기집이나 떡갈비, 백반집을 자주 찾아 다니긴 했지만. 아이의 식단을 바꾸자면 부모의 식단도 그것에 맞춰야하고 함께 변화해야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를 변화시키려면 부모의 변화도 필연적이다. 나도 좋아하는 치즈와 유제품, 라면, 파스타, 빵을 끊고 아이와 함께 밥과 반찬 위주로 먹는 식사를 해야지 나는 실컷 먹어대면서 아이에게만 못 먹게 하는건 고문과 같은 일이었다.



GFCF에 대한 집착과 미련에서 조금씩 나와 내 아이를 놓아주기로 했다.

그 대신 최대한 자제시키고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전법을 쓰기로 했다.

어쩔 수 없이 노출되는 상황에서는 그냥 즐겁게 먹으라고 놔두고, 집에서 내가 해먹이는 식사에는 최대한 줄일 것, 유제품은 아예 사두지 않을 것, 라면은 여행 갔을때만 야식으로 먹게할 것, 빵도 정말 땡길 때 말고는 사먹지 말것 등 몇 가지 기준을 세우고 이 정도 선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에게 건강한 음식을 먹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아프지 않고 병원에 최대한 자주 가지 않기 위해서 몸에 안 좋은 음식은 먹고 싶어도 참고 자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자주 말해주었다. 엄마, 아빠도 먹고 싶지만 참을 때도 많다고. 그래야 장염도 덜 걸리고 약을 먹을 필요도 없으며 감기에 걸려도 금방 나을 수 있다고.


마트에 가면 몸에 별로 좋지도 않은 온갖 가공식품과 냉동식품을 무분별하게 판매하고 있는데 이렇게 맛있는 음식과 식품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세상에서 내 아이의 입맛을 건강을 지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은 자극에 약하기 때문에 입에 맛있고 달면 계속 먹고 싶고, 자제하기 어려운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식품회사에서 나와 내 가족의 건강을 책임져주는 것도 아니고 그들의 목적은 이윤을 남기는게 우선이다. 식품들의 성분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가 알지도 못하도 화학제품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일반 마트에서 판매하는 식품에 비해 유기농 매장에서 판매하는 식품의 성분표가 훨씬 간단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비록 감칠맛은 확실히 떨어지긴 하지만.


GFCF가 발달지연을 치유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자폐나 지적장애, ADHD, 틱장애를 앓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식이요법임은 맞는것 같다. 꼭 신경정신과적 질환이 아니더라도 밀가루를 제한하고 무분별한 유제품 섭취를 줄이는건 전반적인 아이의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내 아이는 한 번씩 손과 발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알러지들이 올라와서 피부과 약을 매번 처방받아서 장기간 먹어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유제품을 끊고 식단에 신경쓰기 시작하면서 이 증상이 사라졌다.


물론 지금도 하루에 한 번 씩은 초코과자를 찾고, 가장 좋아하는 반찬은 돈까스이고, 오렌지쥬스를 즐겨 마시지만 양을 최대한 제한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아이에게 치아에도 안 좋고 몸에도 안 좋지만 너가 너무 먹고 싶어하니까 한,두개만 주는거라고 꼭 말해준다.


금쪽같은 내새끼에서 뇌전증을 앓고 있는 아이를 위해 식단요법을 하는 에피소드가 생각이 난다. 아이는 학교 급식도 먹으면 안되기에 점심시간에 따로 나와서 엄마 차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 엄마는 정말 철저하게 아이의 식단을 조절했는데 정말 그 노력과 헌신이 존경스럽고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식단을 제한해야하는 아이의 고통과 스트레스는 얼마나 클지 연민도 느꼈다.


완벽한 GFCF를 실천하기기란 나와 내 아이에게는 어려운 일이라 판단하고 어느 정도는 내려놓고, 자제하는 쪽으로만 방향을 맞췄지만 완전무결하게 식단을 실천할 수 있다면 아이가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부족하고 완벽하지 못한 엄마라서 현실과 타협해버린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한다.


하지만 발달 장애 아이를 양육하는건 길게 가야하는 장기전이다.

엄마도, 아이도 초반에 너무 지치면 순간 무너질 수도 있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조율하면서 밸런스를 맞춰나가는게 필요하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내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건 그냥 노력이 부족한 엄마의 합리화일 뿐이야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무조건 반사!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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