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아이 키우기
학기초에는 등굣길에 교문 앞까지 함께 가서 데려다주었는데, 몇 달 지나니 등교는 혼자 하고 싶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집과 학교는 100미터 거리도 채 되지 않을 만큼 정말 가까워서 초1이라도 충분히 혼자 다닐만하다. 바쁜 아침에 아이 챙겨주기도 바쁜데 나도 같이 나가려면 사람 꼴은 갖춰야 하니 더 정신없었기에 잘된 일이었다. 현관문 앞에서 인사하고 나면 나는 아이가 아파트 입구를 나서서 놀이터를 지나 교문 앞 신호등까지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본다.
혼자 걸어가는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왠지 뭉클하고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아이는 여럿이 뭉쳐서 다니는 고학년 형아들이나 누나들이 주변에 있으면 무서운지 눈에 띄게 그들을 피해서 한껏 돌아서 더 먼 길로 걸어간다. 같은 반 여자 친구들이 앞에 걸어가고 있으면 이름을 불러서 인사하면 좋으련만 자신의 걸음걸이를 늦춰서 최대한 그 아이들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지 못하게 하도록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걸어갔다. 같은 반 아이들, 같은 학원 다니는 친구들, 같은 유치원 나온 친구들 등 우리 아파트 단지에 아는 친구들은 참 많지만 엄마의 개입이 없는 이상 스스로의 힘으로 친해져 본 적이 없다. 아직 그럴만한 사회성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언어발달지연 진단을 받고, 아이에게 말을 이끌어내고 상호작용을 할 수 있도록 치료를 받고 나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던 시기에 느꼈던 특이한 점 중 하나는 아이는 먼저 다른 사람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길에서 친구를 만나거나 아는 어른을 만났을 때 상대방이 먼저 적극적으로 인사를 하면 그제야 소심하게 한 손을 들고 힘없이 흔드는 둥 마는 둥 하고 말았다. 유치원 다닐 때 담임 선생님에게는 교육을 받아서 인사를 하긴 했겠지만 그 외 다른 일상생활에서 아이가 아는 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하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다.
또 하나 이상한 점은, 다른 친구의 이름을 먼저 부르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아이 스스로 자신이 다른 사람과 편하게 대화를 하고 상호작용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서인지 느린 언어발달이 자존감 하락, 사회성 부족은 물론이고 성격까지도 소심하고 극도로 소극적인 아이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말이 좀 서툴고 답답해도 성격이 매우 밝고 활달하다면 적어도 유치원생 남자아이들과는 그런대로 몸놀이와 장난을 치면서 놀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조차도 굉장히 어려웠다.
인사를 잘한다는 것은 굉장히 큰 미덕이다.
친정엄마는 상대방이 받든 말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동네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큰 목소리로 밝게 인사하고 한 두 마디 안부 대화도 이어간다. 항상 나에게 먼저 인사할 줄 모른다면서 애가 그렇게 뻣뻣하고 대대 하면 안 된다고 나에게 잔소리를 했지만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내가 얼굴도 잘 모르는 이웃들에게 먼저 큰 목소리로 인사를 한다는 건 왠지 부끄럽기도 했고, 상대방이 받아주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두려움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아무런 대가도 없는 행동이라고 느껴졌다. 인사 잘한다고 떡 하나 더 받아먹는 것도 아닌데 엄마는 왜 저렇게 호들갑인가 싶었다.
그러나 누군가 나에게 먼저 밝게 인사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나라는 인간의 모순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특히 학교에서 근무할 때 학생들이 복도에서 지나가다도 "선생님, 안녕하세요!" 하면서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면 너무 그 아이가 대견하고 예뻐 보이고 뭐라도 손에 하나 쥐어주고 싶은 기분이 든다. 심지어 내가 가르치는 반 학생이 아닌데도 단지 이 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이라는 이유만으로 인사를 해주는 아이들도 있다. 교무실에서 동료 선생님들도 하나같이 "공부는 못해도 인사 하나 잘하는 아이들"은 더없이 예쁘서 잘해주고 싶고, 또 나중에 뭐가 돼도 잘 될 아이라는데에 이견이 없었다.
나는 이렇게 누군가에게 인사를 받으면 기분이 좋으면서 왜 나는 다른 사람에게 먼저 밝게 인사하려는 노력을 해보지 않았을까.
육아서에서도 하나같이 인사를 잘하는 아이가 사랑받는다고 말하고 있었다. 특히 인사를 잘하는 아이로 만들려면 부모인 우리가 모범을 보여야 한다. 아이들은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을 보고 들으면서 자신의 모습을 형성해 나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많이 웃고 더 쾌활하게 인사하면서 긍정적인 기운을 주변과 나누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나도 얼마 전부터 인사 잘하기를 실천해보기로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이웃들, 특히 아파트 단지에서 자주 만나는 경비아저씨와 청소 직원분들께 인사를 했는데 옆에 아이가 있을 때는 조금 더 의식하면서 평소보다 더 큰 목소리로 하려고 했다. 한참을 그렇게 해도 아이는 쉽사리 내 행동을 모방하지 않았다. 여전히 친구들에게 먼저 인사하는 모습도, 이름을 다정하게 먼저 불러주지도 못했다.
눈에 띄는 변화라고 하면, 같은 반에서 매일 보는 친구를 우연히 놀이터에서 만났을 때 아주 조심스럽게 그 아이에게 다가가 모기 같은 목소리로 먼저 인사한 날이다. 그 모습에도 나는 아이가 너무 대견해서 남편과 이야기하면서 기뻐했다.
<운을 읽는 변호사>라는 책에서도 평소에 인덕을 쌓아야 운이 좋아지는데, 그 방법으로 인사만 밝게 잘해도 훌륭한 인덕을 쌓을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출근할 때 아이를 돌봐주신 이모님도 정말 밝은 에너지에 좋은 기운이 넘치시는 분이시다. 이모님의 아들도 엄마를 닮아 밝고 예의 바른 청년이었던지, 처음에 계약직으로 입사한 회사에서 적응 기간에 회사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에게 크게 인사를 하고 다녔다. 그 모습을 인상 깊게 본 한 인사팀 직원이 마침 정직원 모집 한 자리가 비어 있었는데 그 이모님 아들에게 기회를 주어서 운 좋게 정직원이 되었다고 한다. 그 짧은 기간 동안 성과를 내지도 않았고, 업무 능력을 발휘할만한 시간도 없었는데 참 운이 좋았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 운이라는 건 결국 본인이 평소 보여준 말과 행동으로 끌어당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도 아이의 등교하는 뒷모습을 찬찬히 지켜보고 있었다. 마침 경비아저씨께서 단지 화단에서 낙엽을 청소하고 계셨다. 갑자기 멀리서 아이의 밝고 경쾌한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처음이었다. 아이가 "먼저" 지나가는 어른에게 큰 목소리로 인사를 하는 모습을 처음으로 봤다.
경비아저씨는 아주 기특하다는 듯이 기분 좋게 화답해주셨다.
경비아저씨께 인사를 하고 걸어가는 아이 앞으로 같은 유치원을 나온 남자 친구가 엄마와 함께 걸어오는 게 보였다. 아이는 그 친구 이름을 부르면서 "하이"라고 짧게 말했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안녕보다 하이를 더 많이 쓰는 것 같다) 그 후에 함께 걸어가면서 별다른 대화를 나눈 것 같지는 않았다. 상대방이 먼저 물꼬를 트지 않는 이상 아이는 아직 또래와 뭔가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하고 이어가는 것은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괜찮다. 그저 친구의 이름을 부르고 인사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인사로 시작해서 말을 주고받는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이 이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아주 작은 발전이지만 뜻깊은 발걸음을 하나 내디뎠다고 믿는다.
당장 남편에게 카톡을 보내서 자랑했다. 아이가 먼저 경비아저씨께 인사를 했다고. 내가 그동안 했던 노력이 헛된 게 아닌 것 같다고 말이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배달하는 아저씨에게도 인사를 하는 나를 보고 남편은 짐짓 놀랬다. 아파트 입주민도 아닌데 인사를 하는 게 평소 내 모습 같지 않았나 보다.
"다 아이 보라고 내가 솔선수범하는 거야."라고 대답했다. 사실 내 의도는 단순히 자식 교육을 위해서, 좀 더 인사성 바른 사람이 되라고 하는 다분히 내 가족을 위한 행동인데, 이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나 스스로도 조금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 같다. 비록 아이 잘 되라고 하는 거지만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면 대부분은 밝게 받아주시니 나도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가 있다.
앞으로도 만나는 이웃들과 사람들에게 열심히 인사를 해야겠다.
옆에 아이가 있건 없건 상관하지 말고, 나부터 인사 잘하는 사람이 되자. 긍정의 기운은 나눌수록 배가 된다는 진리를 상기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