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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Nov 22. 2022

조카들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어

ADHD 아이 키우기

우리는 조카네 가족과 여행을 자주 가는 편이다. 여기서 말하는 "여행"이라는 것은 주말을 이용해서 1박 2일간 그리 멀지 않은 근교에 있는 펜션, 휴양림을 잡고 노는 것이다.


아이가 언어발달지연에 이어 자연스레 사회성까지 부족해지면서 최대한 다른 아이들과 함께 어울릴 기회를 많이 노출해주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외동이라는 악조건과 동네 놀이터에서 만나는 또래들과는 항상 아이가 힘들어했기에 어울리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 와중에 나에게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으니 아이와 2살, 4살 차이 나는 내 조카들이다. 내 아이보다 나이가 많은 형아들이기에 조금 더 성숙하기도 했고 조카들은 하나밖에 없는 동생 예뻐해줘야 한다, 는 교육을 온 가족에게 철저히 받아서인지 우리 아이만 만나면 잘해주고 같이 어울리려고 노력해준다. 조카들도 어찌 보면 아직 어린 초등생인데 동생에게 마음 써주는 걸 보면 정말 고맙기 그지없다.



7세 유치원 시절에 아이는 유치원에서 담임선생님을 제외하고는 또래 친구들과의 대화나 상호작용이 전무한 상태였는데 그래서인지 주말만 되면 "형아 보러 가자"라고 사정하며 떼를 썼다. 자기 이야기를 잘 받아주고 잘 들어주는 어른들이랑은 최소한의 소통은 되기에 큰 아쉬움이 없었지만 그 시기 아이에게 필요한 건 또래들과 웃고 떠들고 장난치며 함께 노는 즐거움을 느끼는 일이었을 것이다. 


당장 또래들과는 뜻대로 되지 않고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하는지, 다가가야 하는지도 잘 몰랐지만 사촌 형아들만큼은 어눌한 자기 말도 잘 들어주고 적당히 양보하면서 공놀이, 몸놀이도 해주니 소통이 되고 교감한다는 기분이 들어서 계속 만나고 싶어 한 것 같다. 그러나 거리가 아주 가까운 것도 아니고, 조카들도 주말이어도 학원 보강도 있고 나름 스케줄이 바쁜 초등생들인데 매 주말마다 만나러 갈 수도 없었다. 새언니도 우리 아이의 어려운 점을 많이 이해하고 도와주려고 늘 애쓰고 나를 위로할 말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나에게 오빠라는 형제가 없었다면, 그래서 조카들이 없었다면 어떠했을까 상상해보았다. 생각하기도 싫다. 끔찍하다. 아이의 장애와 발달의 어려움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공유하고 내 치부를 드러낼 사람은 솔직히 가족 말고는 없다. 나는 특히 오빠네 가족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다.


아이의 진단과 상태에 대해서 양가 부모님께 이야기를 제대로 속 깊이 할 수도 없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모두 다 쏟아내고 이야기했는데 손주의 진짜 상태를 "인정"하기 힘들어하는 게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 않느냐며 나에게 반문하시기 하고 이야기가 길어지면 회피하시기도 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 부모님들께는 아이에 관한 사소한 일들이나 일상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어려움에 관해서는 일일이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게 나에게도 부모님들의 정신 건강에도 더 낫다는 걸 깨달았기에.



어렸을 때는 맨날 나를 괴롭히기나 하고 자기 인생 즐기며 사느라 바쁜 오빠라는 존재가 무가치하고 차라리 외동이었다면 행복했으리라 생각하며 살았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도 한동안은 각자의 삶에 바빠서 자주 만나지 못했는데, 내 아이가 진단을 받게 되고 특별한 어려움을 가진 걸 알게 되면서 만남의 횟수를 늘리기 시작했다.


이유는 단 하나. 내 아이의 사회성 증진을 위해서. 조카들과 함께 마음 편히 놀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최대한 늘려주기 위해서 말이다.


부모와의 상호작용도 중요하지만 비슷한 또래들과 어울리며 노는 시간이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에게는 꼭 필요하다. 외동인 내 아이가 그럴 기회를 가질 대상은 조카들이 최적화되어 있다. 동네에서 친해진 엄마들 아이들도 있고, 친구 아이도 또래인 친구가 있긴 하지만 같이 놀게 했을 때 아이가 잘 어울리지 못하거나 소통이 안돼서 울거나 떼를 쓰는 상황이 잦아지면 나도 그 사람들도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럴 때마다 나는 민망하고 아이 대신 사과를 하기도 하고 아이의 상태에 대해 최대한 오해를 덜 살만한 표현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내서 아이를 대변하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 있으면 이 모든 걸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아이가 어떤 실수를 하고 아기 같은 행동을 해도 다 알고 있기에 받아주고 이해하려고 애써준다. 정확히 설명해주지는 않았지만 어린 조카들도 동생의 어려움을 대충은 이해하는 것 같고, 그리고 일단 자기들보다 어린 동생이기에 그럴 수 있다고 관대한 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조카들은 2살 차이 나는 남자 형제들이기에 놀다 보면 서로 짓궂은 장난을 치고 몸싸움을 하기도 하고 말다툼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은데 사실 그런 장면들도 다 내 아이에게는 사회성 교육의 장이다. 서로 싸우고 울고 혼나고 화해하며 반성하는 과정들이 외동인 아이에게는 일상에 부재한 경험들이기 때문이다.



1박 2일 같이 놀다가 헤어질 때는 서로 아쉬워하며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한다. 형아들도 동생을 많이 생각해주고 사랑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큰 조카, 작은 조카가 태어났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언제 이렇게 성장해서 내 아이를 위해 함께 놀아주고 노력해줄 만큼 커버렸는지 모르겠다.



조카들이 나에게 없었다면 나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 세상은 상상하기도 싫다.

 어두운 시련과 난관을 나 혼자 헤쳐나가기에는 너무 벅찼을 것이다. 함께 해줄 수 있는 가족이 있어서 정말 고맙고 감사한 마음뿐이다. 나이가 먹어가면서 인생의 굴곡을 겪다 보니 나에게 형제라는 존재의 의미도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일은 나 혼자 잘나서 할 수 없는 일임을 절실히, 매일 깨달으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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