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이첼쌤 Apr 04. 2023

SKY는 아니라도 서성한은 갈거라는착각

어머니, 사교육을 줄이셔야 합니다


"책에서 내 자식이 스카이는 아니더라도 서성한은 갈거라는거 부모의 착각이래. 킥킥."

"서성한 가는게 어렵냐? 라떼는 말이야.."

"..."


남편하고는 교육에 관해서든 뭐든 진지한 대화가 되질 않는다. 객관적으로 나보다 훨씬 공부 잘한 모범생이었으니 내가 뭐라 반박할 말도 없다. 이래서 오늘도 자식 교육에 관한 고민은 혼자서 한다 그냥.


유튜브에서 교육채널을 주로 보다 보니 최근 추천 영상에 자주 뜨는 책이 있었다.

제목은 바로 <어머니, 사교육을 줄이셔야 합니다>였다. 과한 사교육의 폐해에 대한 이야기 정도겠지라고 치부하고 넘겼는데, 자꾸만 그 제목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제목에서 간절하게 부르는 그 어머니가 왠지 나일 것만 같은 느낌, 줄이셔야 한다고 간곡하게 외치는 외마디 비명을 외면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일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 번은 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났다. 자주 다니는 도서관에서 대출하려고 보니 이미 대출 중이고 예약자도 여럿 있었다. 주말에 아이 책 사러 들른 영풍문고에서는 품절이라는 말을 들으니 정말 인기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그날 인터넷 서점에서 구매해 버렸다.


책에 쓰는 돈이 아깝지는 않다. 그래도 일회용으로 읽을 법한 그렇고 그런 자녀교육서는 아니기를 바랐다.

서두에는 어김없이 대한민국 입시 현실을 그야말로 팩트체크 해주었다. 몇 가지 인상 깊었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초등 자녀를 둔 부모님들은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가 열심히 공부하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는 아니라도 "서성한중경외시이"대학은 가겠지? 과연 그럴까요?
입학 정원을 따져보겠습니다. 이들 대학의 입학 정원은 전체 수험생의 7% 수준입니다.
과연 우리 아이는 전체 수험생의 상위 7% 안에 들 수 있을까요? 초등학생이 부모 말을 잘 듣고 열심히 공부하면 상위 7% 안에 들 수 있을까요?



입시는 상대적 경쟁이라 우리 아이가 달리고 있지만 옆집 아이도 달리고 있습니다. 사교육으로만 입시에 성공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 가정보다 소득이 더 많고 교육비를 더 많이 지출하는 가정이 전국에 적어도 7% 이상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재고, 특목고, 자사고 학생들의 자살충동 비율이 높습니다.



경쟁은 공정해야 한다는 생각에 논술형보다 객관식을 선호합니다.
개인의 생각보다는 출제자 의도에 맞춘 사고를 해야만 정답을 풀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일자리는 한정적이고, 이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 대학은 서열화되었습니다. 사교육은 우리 사회 전체와 각 가정의 욕망이 만들어낸 시대의 산물입니다.







책의 중반부 이후부터는 한 개인이 사회 제도와 교육제도를 혁신하고 변혁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 주어진 시스템 내에서 최대한 사교육에 돈낭비 하지 않고 아이의 공부 습관을 잡아 줄 수 있는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스티브 잡스는 왜 그랬을까요?


상위권은 갈수록 사교육을 줄입니다.


너 자신을 알라.


스타벅스에서 공부가 잘 되는 이유


거실에서 공부하는 부모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특징


도덕성 높은 아이가 공부도 잘한다


문해력 부족의 유일한 해결책은 독서



결론은 수많은 육아서에 공통분모처럼 외치고 있는 내용들이다.

독서, 산책, 인성, 집안 환경, 스마트기기 노출 자제 등등.


이 넘쳐나는 사교육 전쟁판에서 다시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내 아이는 상위 7%보다는 하위 93%에 속할 확률이 훨씬 높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

항상 우리 집보다 훨씬 더 자녀 사교육에 많은 돈을 투자하는 부자들은 존재한다는 것.

상위 7%가 사교육에 투자하는 만큼 할 재력이 없다면 그냥 하지 않는 게 낫다는 것.


저자 본인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도 간간이 소개되는데, 전교 1등 한 번 놓치지 않았던 누나와 저자 본인도 넉넉하지 않았던 환경이었기에 사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다고 한다.


사교육 없이 오로지 책육아에만 집중하고 전념해서 특목고에 명문대를 보냈다는 책도 꽤 많은데, 이런 글을 볼 때마다 나는 혼란스럽다. 학원을 보내지 않고 최대한 결핍을 경험하게끔 해줘야 학습동기가 생긴단 말인가?


어차피 내 아이는 지금 학습 학원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해 봐야 예체능 위주이기 때문에 크게 해당되지는 않지만 주변에서 같은 나이에 영어, 수학 학원에 잘도 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또 의문이 든다.


이 책에서 부르짖는 "어머니"는 과연 누구일까?

성적은 중하위권이라 인서울 명문대는 꿈도 못 꾸는 아이를 뒀는데, 등골 휘어가면서 가정경제는 나몰라라 하고 사교육에 과하게 돈을 지출하고 있는 중고등학생을 둔 엄마일까.

한 달에 백만 원 단위는 우습게 넘어가는 영어유치원을 보내는 유아를 둔 영어 조기교육에 혈안이 된 엄마들일까.

자녀 교육을 위해 잘 살던 삶의 터전을 과감하게 버리고 유명 학군지 전세로 이사를 감행하는 엄마들일까.

공부 잘하는 아들 교육을 위해 대치동으로 이사까지 했다는 우리나라 최고 재벌가 워킹맘을 가리키는 건 아니겠지?

과연 나는 이 책에서 부르는 그 "어머니"에 해당되는 사람일까? 딱히 해당사항도 없는데 괜히 읽은 건가.


책의 제목은 단호했지만 읽고 나니 더 찝찝한 기분이 든다.





얼마 전에 KBS 다큐멘터리 <30살 수능, 길을 잃다>을 시청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처음 시행되었던 과거 영상과 매일 새벽 5시경에 일어나 재수학원으로 향하는 한 재수생의 영상으로 시작되었다. 수능 문제가 깊은 사고력을 요하는 것 같지만, 그것도 "양치기"로 승부하면서 1년을 정말 열성을 다해 올인하면 어느 정도 성적을 올릴 수 있는 시험 유형이라서 재수생 또는 N수생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생기부에 입시에 유리한 스펙을 쌓기 위해 자율활동, 동아리 활동 등 각종 교내 활동과 내신 챙기기에 집중해야 하는 현역 고3 수험생들은 수능을 대비할 시간이 재수생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다. 내신과 생기부가 중시되는 수시로 입시를 돌파하지 못했다면, 정시로 가야만 한다.


내신 등급 따기는 또 쉬운가. 내신은 철저히 상대평가라서 전교생 기준 4% 내에 들어야만 1등급을 받을 수 있다. 그다음부터는 2등급에 9등급으로 나뉜다. 내신 서열대로 대학의 수준이 결정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내신을 아무리 잘 받아서 수능 최저 등급을 맞추지 못하면 입시에 실패하기 쉬우니까 또 수능 준비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지역 특색과 분위기에 따라 고등학교 내신은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수능은 객관식 시험이라 철저히 1등부터 꼴찌까지 줄 세우기가 가능하다. 그런데 사탐, 과탐에 해당되는 선택과목은 표준점수 체계로 점수가 부여되기 때문에 줄 세우기가 불가능하다는 맹점이 있다.


4년간 평가원장을 지냈던 분도 수능 시험 체제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다. 수능이 출제된 지 30년이 됐는데 문제 유형이 이전 시험과 중복되면 안 되고 고유해야 하며 등급을 가릴 수 있게 변별력 있는 문항을 매 해 새로 출제해내야 하는데,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2025년부터 시행되는 고교학점제는 더 가관이다. 고등학생들이 자신의 흥미와 진로에 맞게 스스로 듣고 싶은 과목을 선택해서 들어야 하는데 선택과목의 수가 많아질수록 내신 등급 가리기도 복잡해지고 입시 때 내가 가고 싶은 대학에서는 내가 선택한 과목을 반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면 고등학생은 최소한 선택과목이 본격적으로 많아지는 2학년부터는 자기가 갈 대학의 입시요강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수능은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지만 어쨌든 계속되고 있고, 갑자기 폐지될 것 같지도 않다. 내 아이가 대학을 가게 되는 10년 후에도 여전히 입시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을 것 같다.






지난 2017년 G20 정상회담을 위해 한국을 찾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의 기자회담은 유명한 일화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한국이 정상회담의 주체국으로 훌륭한 역할을 수행해 준 것에 감사를 표하며 수백 명의 한국 기자에게 가장 먼저 질문할 권한을 주었다.


그 후 긴 정적이 흘렀다. 그 어떤 기자도 질문하지 않고, 모두가 숨을 죽이는 가운데, 정적의 시간을 깬 것은 한 중국인 기자였다. 한국인은 아니지만 질문하고 싶다고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래도 한국 기자에게 먼저 기회를 주고 싶다고 했고 필요하다면 통역을 써도 좋다고 배려했지만 결국 질문을 하는 한국 기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어느 인터넷 글에서 이 일화를 이야기하면서 한국 기자들이 조국 전 장관의 집에 짜장면 배달을 하고 온 배달부에게 수십 명이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입이 귀에 걸린 표정으로 질문을 던진 사진을 같이 게재한 글을 보았다. 왜 명문대를 나오고 어려운 언론고시를 통과한 똑똑한 우리나라의 기자들은 그날 미국 대통령 앞에서는 단 한 명도 질문하지 못한 걸까?


객관식 사지 선다형 문제 푸는 기술에만 능하고 출제자의 의도에 맞춘 정답을 찾는 능력만 기르느라 정작 스스로 질문할 기회는 주어지지 못했서인 것 같다. 지식의 권위에 복종하고, 무조건적인 암기식, 주입식 학습만

강요받고 자랐기에 아무리 공부를 잘한 똑똑한 기자들이어도 질문권을 먼저 주어진 상황에서도 할 질문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되니 1학년 때와 크게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면 매주 단원평가를 본다는 사실이다. 1학년 때도 학습지에 국어나 수학 문제를 풀긴 했지만 정식 단원평가 개념은 아니었다. 그러나 2학년이 되니 한 단원이 끝날 때마다 시험을 보고, 서술형도 있긴 하지만 주로 단답형 위주이고 객관식 문항이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형태이다. 놀라운 건 이 시험을 보고 채점을 매긴 다음 본인 이름 위에 크게 쓰인 점수 옆에 부모님 사인을 받아가야 한다.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이고 학습 내용이 그리 어려운 수준은 아니기에 웬만큼 다 잘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게 중에 낮은 점수를 받는 아이들도 있다. 학습 속도가 느린 아이를 키우는 동네 엄마는 단원평가가 있는 전날마다 아이를 붙잡고 앉아서 30분씩 공부를 시킨다고 한다. 시험날만 되면 아이보다 자신이 더 긴장되고 불안하다고.


똑똑하고 야무진 여자아이가 한 말이 생각난다. 짝꿍이 단원평가 볼 때마다 백점 맞아서 짜증 난다고. 자기도 잘하고 싶은데 잘 안된다고. 이제 9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이 벌써 누가 공부를 잘하고 누가 좀 못하는지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엇비슷하게 잘하는 아이들이야 큰 상관없겠지만 배우는 속도가 좀 느리고 학습력이 떨어져서 단원평가에 절반도 못 받는 아이들은 그럼 어쩌란 말인가. 초2부터 벌써 학습된 무기력을 키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도 단원평가가 있는 날이면 조금은 신경이 쓰인다. 아이가 잘 해내야 할 텐데 하는 생각, 안 그래도 사회성 저하로 자존감이 떨어져 있는 아이가 단원평가 점수마저 형편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 등이 엄습한다. 외국에 유학 보낼 능력이 없으면 어찌 됐든 우리나라의 교육체계 관행에 끼워 맞춰 교육시켜야 하는데, 자꾸 그것이 정답인가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나는 뭐든지 갈팡질팡하는 사람이라 무소의 뿔처럼 나만의 교육철학과 확신을 가지고 외길을 고집하는 인물도 못된다.


남편의 친한 친구가 아내와 자녀 둘을 캐나다에 유학 보냈다. 어떻게 보내게 됐는지 궁금해서 자세히 좀 물어보라고 했더니 처음엔 미국을 알아봤는데 물가가 너무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라 포기하고 캐나다로 가게 되었고, 밴쿠버로 가고 싶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아 포기하고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되었다. 아빠가 한 달에 870만 원을 보내는데 그걸로 아이들 교육시키고 기본적인 생활은 하지만, 넉넉하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생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고 한다.


아직 우리말 구사능력도 유창하지 않은 아이를 데리고 해외에 갈 생각은 없지만, 그리고 해외로 간다고 해서 장기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해 봐야 일이 년 체류하는 정도밖에 안되는데 그게 아이의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차라리 한국에 있으면서 열심히 독서시키고 예체능에 투자하면서 아빠와 함께 사는 게 아이의 정서나 성장에 훨씬 나을지도 모른다.


미래에 대한 고민은 끝도 없고, 나 같은 소시민이자 힘없는 개인이 교육에 대해서, 특히나 우리나라의 현존 대입 체제와 교육시스템에 대해서 비판하고 회의적인 시각을 갖는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이런 책을 접할 때마다 고민과 시름만 늘어가는 현실이다.


사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불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사회에 살면서 쉽사리 내려놓는다는 건 용기있는 선택이다. 사교육에 백 퍼센트 의존하기보다는 각자의 능력과 수준에 맞게 적당히 알아서 시키는 게 정답이다. 그리고 학원보다는 집에서 함께 책 읽고 진하게 소통하는 시간을 보내는 게 아이의 정서에는 더 좋고.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인데 실천이 어려운 게 현실 속에서 오늘도 고민만 하고 앉아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1학년 담임은 나를 망쳐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