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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Apr 13. 2023

그래, 집에서 노는 건 취미에 맞고?

전업주부가 집에서 노는 거였나요

이 말을 누가 했는지는 언급하고 싶지 않다.

가족일 수도, 지인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꽤나 가까운 사이라고만 해두겠다.

누가 그랬다고 말해봤자 그분의 신상이 미천한 내 글로 인해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어떤 식으로든 누가 그랬는가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이것만은 말해두고 싶다. 그분도 꽤나 오랫동안 전업주부를 하셨고 오랜 세월 두 아이를 길러내고 남편 뒷바라지하며 멀지 않은 시댁도 살뜰히 챙기면서 사신 분이다. 이 사실이 나의 말문을 막히게 한 그 말을 들었을 때 더 충격에 휩싸이게 했음은 분명하다.


그때는 통화 중이었다. 나 나름대로 배려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분이 손해보지 않았으면 싶어서 아직 정확하게 결정되지 않은 미래의 일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이제 휴직 2년 차로 아이를 집에서 돌보고 있는 나는 요즘 부쩍 생각이 많아지고 생각이 많아졌다. "보통 아이들"을 키우는 주변에 일하는 엄마들은 제법 휴직이 용이한 직장을 다닌다면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합식에 6개월에서 길면 1년 정도 휴직을 택한다. 특히나 곁에 시댁이나 친정이 가까이 살지 않을 경우에는 하루 종일 돌봄 역할을 해주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기관을 다닐 때보다 초등 때 엄마의 손길을 요하는 현실이다.


나도 내 아이가 별 문제가 없었다면 1년 정도의 휴직을 마치고 다시 복귀했을 것 같은데, 그러지를 못했다. 아이는 여전히 발달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고, 센터 치료도 필요하고 정기적으로 병원 진료도 받는다. 유치원 때 갑작스레 휴직을 하고 아이에게 올인하려고 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이제 2년 차 전업주부로 집에 있으면서 아이가 내 생활의 주인공이자 중심이 되어 철저히 이 녀석의 스케줄을 기준으로 내 일상이 돌아간다. 나 나름대로 아이가 학교 생활에 적응하고 미미하나마 부족한 사회성을 개발시켜 주려고 없는 인맥 동원해서 또래 아이들과 붙여주고 자주 놀이터에 데리고 다니면서 노력했다. 최선을 다했냐고 물어본다면 그 최선의 기준이란 사람마다 다르므로 당당히 말할 순 없겠지만, 내 선에서는 나름의 노력을 했고 또 학교에 보내놓고 학원에 보내놓고도 오로지 아이 생각만 하고, 아동 발달에 관한 책만 찾아 읽는 생활을 했다.


지금도 완전히 좋아졌다고 하기엔 많이 부족하지만, 그런 노력 덕분인지 감사하게도 아이도 학교 생활에 나름대로 적응하고 있다. 아직 평범한 아이들에 비하자면 서툰 면도 많지만, 그마저도 마음을 내려놓고 아이의 원래 성향으로 받아들이자면 그렇게 불편한 지경은 아니다.


그런데 아이가 이렇게 좋아지게 된 데에는 내가 집에 있으면서 오로지 아이에게 집중하며 케어해 준 덕분인가는 잘 모르겠다. 내가 그냥 휴직 없이 계속 일하고, 예전처럼 기관과 이모님에게 하루종일 맡겼어도 아이는 성장해 나갔을 것이다. 비록 그 속도가 조금 느리고 더디었겠지만, 느린 아이의 성장이란 내가 집에 있다고 해서 갑자기 마법을 부린 것처럼 좋아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남편도, 가족들도 나의 휴직 연장을 당연스레 여겼고 나조차도 큰 고민 없이 또 한 해를 이렇게 아이를 위해 보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도대체 내가 없을 때 아이를 아침, 오후에 남의 손에 맡길 생각을 하면 마음이 놓이질 않았던 것이다. 그전처럼 잘 지낼 수도 있을법한데 한 번 내가 맡아서 내 손으로 직접 해먹이고, 학교 생활을 챙기고, 교우 관계까지도 곁에 딱 붙어서 지켜보니 아직 손이 많이 간다는 사실만 깨달았다. 워킹맘을 하려면 마음을 어느 정도 내려놓고 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독립심을 길러주면 되지만 아직은 나와 내 아이에겐 때가 아닌 듯했다.


그렇게 2번의 봄을 아이만 바라보며, 나의 주 동선은 아파트 쓰레기 분리수거장, 학교, 학원, 동네 반찬가게, 도서관 정도에 갇힌 생활을 하는 중이다. 가끔 궁금하긴 하다. 내가 올해에는 그냥 일터로 돌아갔어도 아이는 잘 적응하지 않았을까. 굳이 내 손이 가지 않아도 아이도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그 기준에 적응하며 많이 실수하고 부딪히겠지만, 살아내지 않았을까.


많은 걸 포기하고 선택한 나의 2년 차 휴직은 과연 잉여적인 것이었을까.

이 질문을 본의 아니게 마음에 품고 지내는 나에게 갑작스러운 공격이 훅 들어온 것이다.

본인도 전업주부 생활을 오래 하고, 그 누구보다 그 어려움과 애환을 잘 알고 있으신 것 같은데, 나에게 악의 없이 정말 호기심에서, 궁금하다는 말투로 물어보셨다.


"그래서 집에서 노는 건 취미에 맞는 거 같아?"

"..."


너무 당황스러워서 일순간 할 말이 없었다. 잠깐의 어색한 정적을 깨고자, 아니 일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요 집에 있으면 답답하기도 하고. 라며 횡설수설 대답을 찾아냈지만 왠지 모르게 내 대답이 구차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이미 상대방은 내 대답을 궁금해하지도 않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었고 지금 이 시기가 엄마가 가장 필요한 시기라고 굳게 믿고 한 선택이었는데 그 모든 게 한 순간에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어찌 됐든 어떤 사람에게는 돈을 벌지 않는, 경제적 대가가 따르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는 건 그저 노는 일일 뿐인 것이다. 당신도 그 일을 십수 년간 해왔음에도 주저 없이 “논다 “라고 표현한 것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어떤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따르기 마련인데 나도 몇 년씩 일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경제적 부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을 하면 비록 정신적, 체력적 부담도 많이 되고 노동에 따른 스트레스도 적지 않지만 한 달에 한 번 월급이라는 경제적 대가가 따른다. 크지 않은 액수라도 정해진 날짜에 얼마간 예상 가능한 금액이 내 통장에 들어온다는 사실은 상당한 안정감을 부여해 준다. 자산가나 사업가들이 보면 코웃음 칠 수도 있고, 한낱 월급노예라며 너무나 쉽게 온갖 미디어와 사회 전반에서는 직장인을 폄하하기도 하고 또 그들 스스로 노예라고 자처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노동을 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고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일은 신성하고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본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적극적으로 자본가에게 귀속되어 기꺼이 월급노예가 되고자 하지만 그 취업이라는 길마저도 얼마나 어렵고 바늘구멍이 되어버린 세상인가.


주부로서 집에 있으면서 해내야 하는 책임과 의무도 일일이 열거할 필요도 없을 만큼 무겁고 주말도, 출퇴근도 정해지지 않은 고된 노동이지만 경제적 대가가 없으니 그들 스스로도 거리낌 없이 깎아내리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갑작스러운 헤비급 펀치 공격에 맞아서 내 심장과 마음이 너무나 놀라 며칠째 그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고 되뇌고 있다. "나는 집에서 노는 게 취미에 맞는 인간인가."라는 질문이 며칠째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놀고 싶어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닌데 참 억울하지만 어디 가서 항변할 데도 없다. 아이 등교시켜 놓고 매일같이 만나 같이 놀 친구가 많아서 브런치 카페라도 드나들었다면, 마음 놓고 편하게 필라테스라도 등록해서 다니면서 몸매관리라도 할 수 있었다면 덜 억울했을까. 오로지 아이만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이 문득 한심하게 느껴져서 서글프다.


들릴 리 없고, 듣지도 않을 것이고, 뒤늦게 항변할 이유도 없지만 크게 외치고 싶다.

"저 집에서 놀고 있는 거 아닙니다. 우리 가족에게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하고 귀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언젠가는 이 시간이 추억이 되어 눈물 나게 그리울 거라는 걸 저는 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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