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인 현실남매였던 우리 오빠 이야기
친정식구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가게 되었다. 나와 아이 둘이서 친정 식구들의 미리 계획된 여행에 후발주자로 끼어들게 된 셈이다. 처음에 나에게 함께 가자고 제안했을 때는 남편은 휴가를 낼 처지가 못 되기에 나랑 아이만 가는 건 남편에게도 미안한 일이고 아무리 내가 여행을 좋아한다지만 그렇게까지 무리해서 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일이 이렇게 되려고 했는지 아이는 사회성 부족으로 학교 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듯한 모습을 몇 번 보였고 학기 중에 여행 핑계로 체험학습이라도 써서 등교의 의무를 좀 줄여주어야겠다는 생각을 나도 남편도 하게 되었다. 혼자 남아 일해야 하는 남편에게는 조금 미안했지만, 이렇게라도 해서 일주일 정도 아이에게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주고 싶었다. 물론 이런 짧은 여행이 아이에게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 줄 수도 없거니와 어차피 여행 후에는 다시 학교에 적응해야 할 테지만 단 며칠만이라도 후련하고 마음 편히 지낼 시간을 가지고자 했다.
아이는 어찌나 기대하는지 정말 이 여행을 안 가면 어떡할 뻔했나 싶을 정도로 출발 몇 주전부터 계획을 세우고, 간단한 일본어 회화에 관심을 가지더니, 일주일 전부터 창고에 있던 캐리어를 가지고 나와서 짐까지 싸기까지 했다. 또래 친구들과의 원활한 관계 형성이 어려운 처지에 있다 보니 사촌형들이 만나면 늘 챙겨주고 배려해 주고 같이 잘 놀아준다. 아이 본연의 모습을 보여줘도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고 그저 귀여워하고 잘 놀아주는,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형들과 함께 긴 여행을 갈 생각에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들떠 있었던 것이다.
남편 없이 짐을 싸고 공항까지 가는 일은 고됐지만 아이가 설레어하고 기대하는 모습을 보니 견딜만했다. 막상 해외에 나가서도 이제 초등학생인 내 아이와 조카들은 문화 유적지나 관광지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었고 그저 함께 어울려 놀며 장난치고 떠드는걸 더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내 여행의 목적도 아이가 마음 편히 형들이랑 놀 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컸기에 그런 모습을 보는 내내 만족스러웠고 흡족했다.
여행 마지막날 저녁에는 맛있는 생맥주가 무제한 제공되는 호텔에 묵을 수 있었고 무료로 제공되는 라멘을 맛보며 모두 둘러앉아 여유 있는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은 잠시 호텔 놀이공간에 보내고 어른들끼리 남아서 맥주를 한 잔 기울이던 중이었다.
친정오빠는 평소에도 무뚝뚝하고 말이 없는 성격이어서 나와 거의 대화를 나누는 일이 없다. 우리는 현실남매 중에서도 현실남매로서 명절에도 만나면 "왔냐?" "잘 가라."가 대화의 전부라고 할 정도로 따로 이야기를 하는 일이 없다. 싹싹하고 발랄한 새언니와 되려 더 많이 소통하고 이야기하는 편이다. 어릴 때는 한 집에 살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같이 놀거나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특히 결혼을 하고 서로의 가정을 이루고 나서는 더 대화가 없었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전화통화도 따로 하지 않고 가족 간의 일로 상의할 일이 있으면 으레 새언니에게 하는 게 편했고 당연하게 여겨졌다.
오빠는 자신의 조카인 내 아이가 발달의 어려움을 겪고 치료를 받기 시작한 걸 알면서 많이 걱정하고 신경 쓰고 있다는 건 새언니를 통해서 들었지만 나에게 딱히 내색한 적은 없었다. 그런 친정오빠가 조카를 데리고 여행 다니면서 며칠간 지켜보니 확실히 보통의 평범한 아이와는 뭔가 다르다는 게 느껴졌는지 갑자기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들과 잘 지내냐고 물어보았다. 아이의 상태에 대해서 대놓고 물어본 건 처음이라 약간 놀랐지만, 잘 놀 때도 가끔 있지만 아직은 겉돌 때가 더 많다고 대답했다.
"네가 단단히 마음먹고 각오를 좀 해야 할 것 같다. 내년에는 조금 더, 그리고 내후년에는 더욱 힘들어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김서방이 좀 더 신경 써주면 좋을 것 같은데 아쉽네.."
오빠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나와서 견디기 힘든 모양이었다.
친정오빠가 마지막으로 우는 모습을 언제일까. 금세 떠오르지 않는다. 어릴 적 집안 분위기가 안 좋았을 때였나, 사춘기시절 오빠가 아빠에게 대들 때였나 아님 할머니 장례식장에서였나 몇 번 본 것 같긴 한데 기억에서 너무 흐릿하다. 마흔을 훨씬 넘긴, 희끗한 머리카락도 보이는 중년의 나이가 되어버린 친정오빠는 조카랑 내가 너무 걱정되기도 하고 일하느라 늘 바쁜 남편 대신 내가 도맡아서 아이를 케어하고 거의 혼자 육아하다시피 하니 그런 모습을 보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나는 아이랑 워낙 함께하는 시간이 많고 아이의 말투나 행동 양상에 젖어있다 보니 더 이상 그런 특징들이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않게 돼버린 것도 있다. 워낙 어려서부터 항상 그래왔고, 지금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에 그게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가끔 만난 적은 있지만 며칠간 딱 붙어서 지켜본 적이 없던 친정 식구들은 확실히 24시간 함께 있어보니 보통의 아이들과는 좀 다른, 독특한 행동 양식과 말투 그리고 부족한 사회성이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그 상황에서 나까지 함께 울면 그야말로 초상집 치르는 분위기가 될 것 같아서 나만큼은 정신줄을 붙잡고 있고 싶어서 터지려는 눈물을 겨우 아득바득 참아냈다. 어른들이 울고 침울한 표정을 하고 있으면 애들도 금방 눈치챌 텐데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다. 즐겁자고 여행 와서 울고 슬퍼할 일은 없지 않은가.
어릴 적부터 나에게 다정하고 친절한 오빠도 아니었다. 차라리 나는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언니가 있었다면 훨씬 좋았을 텐데 왜 아무 필요도 없는 오빠라는 존재가 나보다 먼저 일찍 태어나서 나를 괴롭히는 걸까 진심으로 의구심이 든 적도 있다. 나이 차이도 꽤 있기에 학년과 학교급 차이도 났고 공통된 관심사도 없었다. 내가 중학생일 때 오빠는 대학교를 갔고 이내 군대까지 가버리니 더욱 서로 얼굴 볼 일이 자주 없었다. 그저 서로 가끔 안부나 묻고 살아있기나 하면 되는 존재라고 여기며 살았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조카들과 내 아이가 어울릴 수 있을 만큼 비슷한 나잇대라 같이 어울릴 수 있으니 그 덕에 만나는 횟수가 더 늘어나게 되었다. 특히나 내 아이에게 발달 문제가 생기면서 사회성 부족이 수반되다 보니 가족의 도움이 더욱 절실하게 되었고 가깝지 않은 거리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함께 만나서 아이들을 어울리게 해주고 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나에게 친오빠라는 형제가 없었다면, 그래서 새언니도 없고, 우리 조카들도 없었다면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지금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을 것 같다. 그런 세상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나는 내 생각보다 더 우리 친정오빠네 가족들에게 의지하고 있고, 정말 많은 응원과 격려 그리고 진심 어린 걱정을 받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어려움을 나 혼자 이고 지고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나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다. 그리고 감사하다.
나와 내 아이를 걱정해 주는 가족들이 있어서 나는 지금의 이 순간을 견디고 힘을 내며 살고 있다. 나 혼자 잘나서 내가 이만큼 잘 살아내고 있는 게 아니다. 알게 모르게 가족들에게서 많은 정신적 도움과 지지를 받고 있고 그 덕에 여기까지 온 것이다.
이 나이가 되고 보니 형제가 나에게 주는 의미가 색다르게 느껴진다. 십 대, 이십 대에 알지 못했던 그리고 겪지 못해서 알 수 없었던 삶이 주는 고통과 시련을 거칠 때 다잡아주는 힘이 되어주는 것 같다. 결혼했으니 남편과 자식이 내 가족이고 우선순위가 되어버렸고, 그게 당연한 거지만. 너무나 예민하고 초조해하며 늘 외손주 걱정뿐인 친정엄마도 고맙고 감사하지만, 평소에 거의 티 내지 않았던 친오빠도 못지않게 나를 염려하고 걱정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커다란 위로가 되었다.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남편이 기다리고 있는 내 집이 가장 좋고 편하다. 하지만 아이도 나도 여행 후유증을 상당히 겪고 있다. 체험학습 내고 일주일이나 학교를 쉰 탓에 아이는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고 자꾸 형아들이랑 같이 놀러 다니고 싶다고만 한다. 나는 나대로 친정식구네와 조금 거리가 있는 지역에 살다 보니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도 왠지 허전하고 외롭고 많이 아쉽다. 자주 볼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산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자꾸 되뇌게 된다. 명절이나 휴가 때 짧지 않은 시간을 지내고 왔을 때보다 더 허전한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이렇게 마음이 약하고 외로움을 많이 타서야 나 같은 사람은 가족과 떨어져서 사는 해외 생활은 꿈도 못 꾸겠다 싶을 정도다.
이번 여행에서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단연코 친정오빠의 눈물을 본 순간이다. 다음날엔 서로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다시 쿨내 나는 현실남매로 되돌아왔지만 왠지 마음속 깊이 찐하고 짠한 감동이 새겨진 것 같다. 이렇게 나를 아끼고 응원해 주는 가족들이 있으니 더 힘을 내서 주어진 생을 살아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