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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May 02. 2023

다른 건 모르겠고 하늘을 뺏어오고 싶다

일본 여행 중 느낀 의외의 한 가지

가족들과 오사카, 교토 여행 중이다. 첫날은 우리나라에서 출발할 때부터 날이 흐렸고 일본에 도착해서도 구름 낀 날씨가 계속됐기에 잘 몰랐다.

둘째 날부터 날이 개고 맑아지기 시작했는데, 웬걸 날이 좋아도 이렇게 좋을 수가 있는가 싶을 정도로 너무 좋은 거다. 처음엔 우리가 역시 운이 좋았다며, 타이밍 딱 좋게 여행하는 거라고 만족해했다.


그런데 돌아다니면 돌아다닐수록 단지 이건 비가 오지 않고 그리 덥지도 춥지도 않은 따뜻한 봄날씨만의

영향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금각사, 오사카성과 같은 유명 관광지를 다니면서 사진을 엄청나게 찍어대고 있는데 찍는 사진마다 예술이다. 빠듯한 일정에 피곤에 지친 여행객이라 인물 사진은 애나 어른이나 별 볼 일 없다.


아무 데나 들이대고 막 찍는 사진마다 모두 아름다웠던 이유는 바로 맑은 하늘 덕이었다.



하늘색이 너무나 투명하고 진짜 크레파스 종류 중 하나인 그 하늘색이 높고 맑게 눈앞에 펼쳐져서 어느 관광지를 가든 그곳에 있는 건물이나 유적지와 절묘하고 아름답게 더 조화를 이루는 느낌이다.


금빛으로 만들어져 유명한 금각사의 그 금색깔도 배경이 되어주는 하늘이 투명하니까 더 부각되고 선명해 보인다. 거리에 다니는 일본 특유의 형형색색의 자동차들도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하니 더 아기자기하고 개성 있어 보인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런 하늘 색깔을 본적이 언제였지? 우리나라도 물론 가끔 미세먼지가 좀 덜한 날에는 하늘색깔 예쁘다고 느끼기는 하지만, 솔직히 일본에서 본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청명한 하늘에 조각구름 하나씩 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질투심이 이글이글 올라온다.

중국발 미세먼지가 일본까지는 안 오나 보구나. 어째서 우리는 이 깨끗한 하늘색과 맑은 공기를 포기하고 살아야만 하는가.


봄이 되고 날이 따뜻해지면서 동시에 미세먼지도 심해져서 아이는 호흡기 질환을 달고 산다. 감기도, 코로나도 아닌데 늘 목에 가래가 차있고 목이 칼칼하다고 답답하다고 짜증을 낸다. 그렇다고 늘 약을 달고 살 수도 없고 웬만한 증상에는 이제 그냥 병원도 가지 않고 지켜보는 중이다. 우리 동네 이비인후과는 한 번 가면 한 시간 이상 대기가 기본이라 엄두가 나질 않는다. 코로나도 풀리고 마스크 의무 착용도 완화됐지만 마스크를 벗기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미세먼지 때문이다.

미세먼지가 큰 이슈가 되기 전인 나 어리던 시절 우리나라도 이렇게 맑은 하늘이었는지 궁금할 뿐이다.


해봐야 우리나라랑 한두 시간 거리밖에 안 되는데 일본까지는 미세먼지가 오지도 않고 이토록 맑은 하늘을 보고 산단 말이냐. 부럽다. 미치도록 부럽다.


과거 역사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왠지 맑은 하늘 아래 살고 있는 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 얄밉고 부럽고 질투가 난다.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이 깨끗한 하늘이 얼마나 당연하지 않은 것인가를.

뭐 물론 자세히 알고 보면 선진국이기 때문에 환경문제는 다 거기서 거기이고 별반 나은 게 없을 수도 있지만 일단 눈에 보이는 게 그렇다.


마스크 없이 뛰어다니는 아이들 얼굴이 행복해 보인다. 며칠 남지 않은 여행 일정 동안 남은 시간에 열심히 미세먼지 없는 이 깨끗한 공기를 가능한 많이 들이키고 돌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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