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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Aug 31. 2023

축구 못하는 남자아이의 미래

ADHD 아이 키우는 이야기

아이가 7살이었을 때 유아축구교실에 등록했다. 그땐 단순언어지연에 대한 고민만 있었지, 아이가 운동신경이 눈에 띄게 부족하다는 건 잘 몰랐다. 또래 다른 남자아이들과 비교할만한 경험이 없었다. 좀 겁이 많고 예민해서 소심한 탓에 운동과는 거리가 멀거라는 느낌만 있었다.


ADHD 진단을 받고, 발달장애 관련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신경 정신과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아이들은 보통 언어가 느린 편이다. 그리고 언어가 느린 아이들은 필연적으로 다들 운동 신경 발달에도 문제가 있다. 그래서 꼭 감각통합치료가 함께 들어가야 언어치료 효과가 더 빛을 발한다. 말이 감각통합치료지 내 생각에는 거의 부족한 운동신경을 일대일 지도로 메꿔주는 수업 같았다.


그렇게 운동 신경이 없는 아이를 데리고 유아 축구교실에 덜컥 등록을 했으니,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일단 공을 차고 팀을 나눠 경기를 하는 것에도 큰 관심이 없었다. 공을 차도 발끝에 힘이 너무 없어서 너무 약했다. 초반 체력 훈련 시간에는 그나마 따라갔는데 팀경기를 할 때에는 전혀 경기에 집중하지 못했다. 아이는 멍하니 서있을 때도 많았고, 수비를 해야 하는데 공격을 한다던지, 지금 우리 팀이 이기고 있는지 지고 있는지에 대한 개념도 좀 없어 보였다.


그러든지 말든지 억지로 욱여넣어서 계속 시키다 보면 조금이라도 하겠지라는 마음에 계속 데리고 다녔다. 곧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아 아이는 축구교실 가는 걸 강하게 거부했고 어쩔 수 없이 그만두게 되었다.


조금 알아보니 축구는 여타 다른 운동 중에서도 "사회성"이 엄청나게 요구되는 중목이었던 것이다. 우리 팀과 상대방 팀이 서로 경쟁해야 하고, 우리 팀원끼리 힘을 합추고 호흡을 맞춰서 골을 내야 하는 게 축구다. 당연히 팀원들과 소통도 하고 어떻게 이길지 전략도 짜는 등 협동심이 요구된다. 유아축구이기에 유치원생들이 모였으니 그 수준이 대단하진 않지만 그래도 보통 아이들은 내 아이와는 좀 달랐다. 승부를 내야 한다는 걸 이해하고, 다 같이 공에 우르르 몰려다니긴 했지만 그래도 이겨보려고 노력하는 데에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했다.


운동신경도 부족하고 사회성까지 뒤처져있는 내 아이가 낄 틈은 없었다. 오히려 아이에게 스트레스만 준 것 같다. 아이의 한계를 인정하기로 하고 축구는 우리가 갈 길이 아니라고 결론짓고 단념했다.


그렇게 2년이 흐르고, 같은 센터에 다니는 친구가 동네 근처 축구교실에 등록해서 다닌다고 들었다. 그런데 거기 코치님들이 정말 유능하고 지도력이 뛰어나서 웬만큼 소심하고 운동 신경 없는 아이들도 잘 적응한다고 했다. 솔깃해졌다. 다시 한번 도전해 볼까?


아이에게 의사를 물어보았지만 여전히 하기 싫어했다. 그래도 자꾸만 욕심이 났다. 그래, 그때 유아축구교실 선생님은 좀 차갑고 냉정했었어. 잘 지도해 주는 코치님 만나면 좀 다를지도 몰라.


싫다고 하면 그냥 바로 그만두게 할 요량으로 데리고 가봤다. 처음 간 날, 아이는 절대로 하기 싫다며 축구장 안에서  울기 시작했다. 경기를 바로 시킨 것도 아니고 출석 확인만 하는 중이었는데도 강하게 거부했다. 어쩔 수 없이 데리고 나와서 대기실에 앉혔다. 코치님들이 와서 달래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하기 싫다고 계속 울기만 했다.


가장 수석코치로 보이는 분이 와서 아이에게 말했다. "그럼 10분 정도만 앉아서 우리 훈련하고 연습하는 거 지켜봐. 그 후엔 OO이도 같이 와서 뛰는 거야." 다부진 외모와는 다르게 다정한 목소리로 달래주셨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는 듯 마는 듯했다. 한창 연습시키다가 10분 후에 정말로 코치님이 오셨고 이번에도 아이는 거절하려고 했지만 코치님은 틈을 주지 않고 "이제 가자!"라고 하며 아이의 손을 잡고 곧바로 데리고 나갔다. 엉겁결에 끌려나간 아이는 기초체력훈련을 함께 했다. 연습경기는 기초 운동을 한창 하고 나서 하기 때문에 사실 축구실력이 필요 없다. 기초 운동이 절반 이상이다. 기초 운동 시에는 딱히 협동력이나 사회성이 요구되지 않기에 아이도 별 거부 없이 할 수 있었다.


노련한 코치님 덕에 아이는 한 번, 두 번, 계속 축구교실에 나가게 되었다. 중간중간에 가기 싫다고, 거부하고 운 적도 있고 그래서 많이 혼낸 적도 있고 속상해서 같이 운 적도 있다. 그래도 3개월 이상 주 1회 꾸준히 하고 있다.


우연히 골도 한 번 넣은 날도 있었는데, 코치님과 같은 팀 형아들이 엄청 칭찬해 줬다며 기분 좋아한다. 몇 개월동안 골을 넣은 건 단 한 번뿐이었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냐.


축구교실 다니니 축구실력이 좋아졌느냐고? 아니다. 그럼 운동신경은? 딱히 아니다. 그럼 사회성은? 더더욱 아니다.


아직도 아는 센터친구가 늦거나 결석하면 불안해하고 혼자 소심하게 경기장 구석에서 불안한 눈빛으로 갈팡질팡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 아프지만 그래도 양보하지 않는다. 축구 실력 늘리자고 시키는 게 아니다. 그저 이런 운동도 있다는 것을 경험시켜 주고자 하는 목적이다.


아이의 발달 상황을 알고 있는 나는 이제 아이에게 운동을 시키는 목표는 단 하나다. 학교 체육 수업 시간에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수준만 하자는 것. 태생적으로 협응능력과 감각통합이 예민하고 부족한 내 아이에게는 이것조차 굉장히 부담스럽고 어려운 목표일지도 모른다.


남자아이들은 무조건 축구를 좋아하고 잘한다고 생각한 건 나의 착각이었다. 중학생들도 담임할 때 보면 점심시간에 그 더운데도 무조건 운동장으로 뛰어나가 온몸에 땀냄새가 밸 정도로 축구 차고 오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축구에는 전혀 관심도 없는 남학생들도 있다. 내 아이는 훗날 후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축구를 잘하고 운동 좀 한다는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들에게 인기도 많다. 체육 대회 때 단연 돋보이기도 한다. 남학생들이 팀을 짜서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으면 여학생들은 자리에 앉아 응원한다. 남학생들은 의식하지 않은 척하면서 더 열심히 뛴다. 나중에 내 아이는 여학생들의 주는 그런 시선과 응원을 받을 가능성은.. 극히 낮겠지?


축구를 꼭 못한다고 해서 불행한가? 모든 남자가 축구를 잘할 필요는 없다. 남자라고 해서 모두 뛰어난 운동신경 유전자를 타고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남자라고 해서 무조건 힘이 세고 운동을 잘한다는 건 사회가 만들어놓은 틀이고 공식일 수도 있다. 올림픽에서도 여자 선수들도 남자선수들 못지않게 선전을 보이는 종목이 많다. 뛰어난 기량을 보이는 분야는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여자 전체에서 운동 신경을 타고난 사람들이 있는 비율만큼, 남자들이라고 모두 운동을 잘하는 게 아니라 그중에 운동 신경과 승부욕을 타고난 사람들이 일정 비율로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 주관적인 견해다. 내 아이도 그쪽 능력은 좀 덜 타고난 기질이라고 이해하면 마음이 좀 편하다.


<별종, 괴짜 그리고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책을 쓴 저자는 영국에서 자란 루크라는 이름의 남자아이다. 영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인데 본인은 아스퍼거 증후군이고 다른 형제들 중에 자폐 스펙트럼과 ADHD 진단을 받은 형과 동생이 있다. 자신의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한 이야기, 학교 생활의 어려움, 가족을 잘 돌보기 위해 엄마가 겪은 이야기들을 재치 있게 풀어낸다.


루크가 해준 이야기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축구"에 관한 것이다.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힘든 장난감 일렬로 줄 세우기, 과학 분야의 백과사전식 지식에 관해 강박증이 있다면 "장애", "문제아"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그 강박증의 주제가 "축구"라면 강박증으로 인정받지 않는다면서 영국이라는 나라의 남다른 축구사랑을 비꼰다. 자신은 축구를 잘할 수 있는 운동신경이 없고, 잘하고 싶은 마음도 없는데 모두가 축구에 열광하는 나라에서 남자아이로 자라다 보니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다.


그러면서 한국 같은 나라는 어린아이들이 대부분 태권도를 배운다고 소개하면서, 축구가 별로 인기가 없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사는 것은 너무 멋질 것 같다고 부러워하는 말투로 말한다. 우리나라도 축구의 인기는 대단한 편인데, 아무래도 영국만큼은 아닌가 보다. 문득 내 아이가 영국 사람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 아들은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성격도 좋아서 리더십도 있는 그런 아이로 자랄 줄 알았다. 그건 다분히 내 욕심이다. 나는 운동 신경도 별로 없으면서 내 배속에서 낳은 아이가 무슨 수로 엄청난 운동 신경을 타고날 거라고 당연스럽게 기대한 건지. 또 내 친정엄마, 아빠는 운동신경이 좋으신 편이고 엄마는 학교 때 육상선수까지 하신 분이다. 그런데 나는 학교 다니는 내내 체육 시간이 가장 끔찍했을 정도로 모든 종류의 운동을 싫어했다. 어떤 분야의 재능은 유전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엄마 아빠가 잘했다고 해서 아이가 무조건 잘할 리도 없고, 엄마 아빠가 못했다고 해서 아이도 못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것에 관해 너무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남자아이가 축구를 못한다고 너무 안타까워하지 말자. 아이는 아이대로 잘하는 게 있고, 좋아하는 게 있고, 그것도 아니면 약간의 관심과 흥미를 가진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 사실에 만족하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 대신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건 적당한 선에서 보강해 주면 된다. 그게 내가 축구를 시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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