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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Aug 28. 2023

과도한 엄살도 ADHD 증상일까

초2 adhd 문제행동 이야기

요즘 아이에게서 눈에 띄게 발견되는 특징, 혹은 문제행동이라고 하면 바로 "엄살"이다.

길게 보면 세 달 정도가 넘은 것 같고, 최근 한 두 달 사이에 그 정도가 굉장히 심해지고 있는 느낌이다.


코로나, 독감, 갑작스러운 복통 등으로 학교를 결석하고 집에 쉬었다. 초1 때에는 그냥 아파서 쉬는가 보다 하며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였다고 하면, 이제는 아프면 쉰다는 공식을 학습한 것 같다.



아이의 엄살공식
갑자기 몸 어딘가가 아프다 → 엄마가 크게 걱정한다 → 병원에 간다 → 진료를 본다 → 결석하고 집에서 쉰다 → 학교, 학원 다 빠지니까 행복하다


이런 공식을 학습했는지, 언제부턴가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가봐야겠다는 둥 너무 아프다는 둥 엄살을 부리기 시작했다. 내가 봤을 땐 괜찮아 보이는데 너무 아프다고 하니 병원에 데려간 적도 있다. 열이 나서 독감과 복통으로 갔을 때는 정말로 아파서 간 거였다. 근데 6월부터인가는.. 별로 아프지 않아 보이는데도 막 병원에 데려가달라고 한다. 학교, 학원을 빠지면서까지 병원에 가겠다는 거다.


키즈카페에서 신나게 놀다가 발가락을 살짝 접질렸다. 조금 빨개지긴 했는데 그다지 크게 다친 것 같진 않았다. 뼈가 다쳤다면 부어올랐다던지, 아니면 아이는 엄청난 통증을 느껴서 울고불고 난리를 쳤을 것이다. 그런데 약간 신경 쓰일 정도로 아픈 것 같았는데도 자꾸 못 놀겠다고 너무 아프다며 병원에 가자고 했다. 결국 일요일에 문 여는 정형외과를 겨우 찾아가서 진료를 보고 엑스레이까지 찍고 물리치료까지 받고 나서 일단락됐다. 의사 선생님은 뼈는 고사하고 근육 쪽도 괜찮아 보인다며 혹시 아이가 엄살이 있는 편이냐고 물어보았다.


그 후로도 이 엄살 증상은 계속되었다. 하기 싫은 축구 교실에 데려간 날에도 계속 무릎이 아프다고 하더니 코치 선생님께 어필해서 결국 10분 정도만 하다가 집에 돌아왔다. 이 날 아프다고 한건, 평소에 같이 다니는 친구가 안 나와서 어색하고 외로워서 그런 거였다. 축구 교실 보강하러 간 건데 아는 친구가 한 명도 없으니 어색하고 괜히 낯설어서 더 축구가 하기 싫어졌고, 괜스레 무릎이 아프다고 징징댄 거다. 나는 이 날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고 집에 와서 엄청 아이를 혼냈다.


교회 예배 시간에도 주일학교 선생님께 율동하다가 자꾸 팔꿈치가 아프다는 둥, 발목이 아프다는 둥 엄살을 피우니 선생님이 관심 가져주고 주물러주면서 앉아서 쉬는 일이 생겨났다.


얘가 관심받고 싶어서 이러나? 아무도 자기에게 관심을 안 가져주는데 아프다고 호소하면 와서 챙겨주니까 주목받고 싶은 마음에 그러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가 이런 관심종자가 돼버린 걸까? 그 심리의 배후에는 뭐가 있는지 궁금했다.


이제 어디를 가도 한 번씩은 아픈 척 엄살을 부리는 게 통과의례가 된듯하다. 수영장 수업을 받을 때도 선생님께 팔목이 아프다고 호소하고(결국 수업 끝나고 나면 아무렇지도 않음), 학원 선생님들에게는 꼭 한 번씩 그러는 것 같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건 저번주에는 학교에서도 하루 동안 두 번이나 보건실을 갔다는 사실이다. 하교하면서 만났을 때에는 어디 아파 보이지도 않았고 괜찮았다. 그런데 오후에 다른 일을 하다가 갑자기 생각났는지 "오늘 나 보건실 두 번 갔어. 여기저기가 아파서." 하는 거다.


"너 어디가 아파서 갔어? 진짜로 아팠어?" 두 번 세 번 채근해서 물으니 입을 닫아버린다. 아프지도 않은데 괜히 보건실까지 가서 보건선생님을 귀찮게 한 게 틀림없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애가 쉬는 시간에 놀아주는 친구도 없고 늘 혼자 책상에 앉아 있다 보니 심심하고 외로워서 보건실에 간 게 아닐까. 보건선생님이 왠지 더 친절하고, 어디 아프다고 하면 관심 가져주니까 그게 좋아서 쉬는 시간마다 일부러 보건실로 도피한 건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결국 이런 결론에 다다르니 마음 한구석이 시큰하게 아파온다. 우리 아가 쉬는 시간에 많이 외로웠구나. 그래서 보건실이라는 피난처를 찾아간 건지도 몰라.


어제도 어김없이 주일 예배시간에 어디가 아프다고 했다며 선생님께 끝나고 연락이 왔다. 나는 애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괜찮다고 얘 원래 그렇게 엄살이 심하다고 선생님을 안심시킨 후 끊었다. 선생님도 어느 정도 눈치챘는데 그래도 아이가 귀엽게 굴어서 괜찮다고 하셨다. 아이는 자기 진짜 예배시간에는 아픈 거 맞다며 결백을 호소한다. 특히나 주일학교 선생님들은 정말 친절하고 다정하게 모든 아이들을 품어주시기 때문에 아이는 교회 가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더 맘껏 엄살을 부린 겐가.


애가 엄살쟁이가 된 건지. 아니면 거짓말쟁이가 돼버린 건지.


너무도 작고 사소한 통증에도 예민하게 굴고, 지나친 관심을 바라는 이런 행동도 ADHD 증상 중 하나로 봐야 할지 헷갈린다. 애가 그냥 예민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말 그대로 역치가 너무 낮아서 작은 자극에도 과한 반응으로 이어지는 건지. 아니면 복용 중인 ADHD 약의 부작용 중의 하나라고 여겨야 할지. 이 문제행동 또는 증상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이런 증상은 약으로도 조절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아이의 행동을 보다 보면 가끔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아이를 온전히 그 모습 그대로 바라보고 포용할 줄 아는 게 진정한 부모의 역할이라고 온갖 육아서에서 외치는데, 나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기가 참 어렵다.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얘가 ad라서 그런 거 아니야? 하는 의심부터 먼저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다 ADHD 증상에서 기인한 거라면, ADHD가 원인이 아닌 일반적인 아이들도 보여줄 수 있는 행동 양상은 없는 걸까? 그건 일반아동을 안 키워봐서 모르겠다.


ADHD 아이를 키우면서 어려운 점이 참 많지만 정말 슬픈 일 중 하나는 아이를 자꾸 ADHD 환자로 바라보게 된다는 점이다. "얘가 ADHD라서 그래, 언제쯤 좋아질까? 이 문제 행동은 또 언제 소거될까?"가 기본 관점으로 내 머릿속에 장착되어 있다.


부모인 나부터 아이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봐줘도 모자랄 판에 자꾸 부정적인 관점으로 보게 되니 아이 자신도 나의 이런 감정과 태도에 은근히 영향을 받을지도 모른다. 자꾸 의도적으로 아이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을 줄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금세 나를 지배해 버리는 거다.


ADHD 증상이든, 아니든 이 "엄살병"도 성장기에 겪는 열병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다음 진료 보러 가는 날 원장님께 꼭 상의드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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