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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May 16. 2023

그것은 피해의식이었다!

최근에 느낀 ADHD 아이의 몇 가지 특징

그간 아이의 행동 중에서 반복되는 특징이 있었는데,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 하나 있다. 나는 그와 같은 행동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 지도 않았고 주의 깊게 바라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 특징인즉슨, 아이가 다른 사람들과의 신체적 터치에 굉장히 민감하다는 사실이다. 센터 선생님께서도 두어 번 언급하신 적이 있는데 그러 구마하고 지나갔던 적이 있고 그 후로 깊게 생각해보지 않은 부분이다. 예를 들어, 친구와 게임이나 놀이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몸이 부딪힐 수 있는데 그럴 때마다 아이는 과도하게 "아!"라는 소리를 내면서 아프다고 엄살을 부린다. 그러고 나서 자신을 아프게 한 그 친구가 꼭 사과를 해야만 그다음 상황으로 넘어가려고 한다. 만약 사과를 제대로 하지 않았거나, 또는 아프게 한 그 친구가 자신이 남을 다치게 했는지 관심조차 없다면 아이는 끝까지 옆에 서서 자기가 지금 아프다는 걸 몸소 보여주면서 호소한다. 처음에는 엄살이 좀 심한 편이라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센터 선생님은 그룹 수업 중에 재밌는 상황이 갑자기 벌어져서 자연스럽게 아이의 팔을 살짝 때리면서 웃었는데 아이는 그걸 가지고 자기 아픈데 왜 때리느냐고 반문한 일에 대해 지적해 주셨다. 선생님은 곧바로 아이에게 "다 같이 즐겁게 웃는 분위기에서는 서로 아프지 않을 정도로 몸을 만지거나 살짝 건드는 건 기분 나쁜 일이 아니다"라고 설명해 주었다고 했다. 그래도 아이는 그런 사회적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무조건 자기가 맞아서 피해를 입었다는 식으로 주장했다고 한다. 이건 사회적 인지가 약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내 뇌리에 남아있는 또 다른 기억은 학교 체육대회에 갔을 적 일이다. 전문 레크리에이션 체육강사의 운영으로 아이들이 정말 즐길만한 반별 대항 게임들이 이어지고 있는 분위기였다. 나의 시선은 당연히 아이에게 거의 꽂혀 있었다. 반친구들과 어떻게 지내는지, 계속 겉돌지는 않는지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었다. 같은 반 아이들끼리 둥글게 서서 손잡고 뛰고 있었는데 정신없는 상황에서 다른 아이와 내 아이가 살짝 부딪힌 것 같았다. 멀리 있어서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그리 크게 부딪히지 않았고 다칠만한 정도는 아닌듯했다. 


그런데 아이는 주저앉아서 자기 다리를 자꾸 문지르고 주무르면서 자신과 부딪힌 그 아이를 계속해서 쳐다보았다. 아마 사과하기를 바랐거나, 자기랑 부딪혀서 아픈 건 아닌지 물어봐주길 바라는 것 같았다. 다른 게임으로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아이는 계속 주저앉아서 다리만 문지르고 있었는데 담임선생님도 다른 일에 신경 쓰시느라 보지를 못하셨다. 그냥 툴툴 털고 일어나서 괜찮을 것 같은데 왜 오버하면서 저렇게까지 아프다고 엄살 부리고 있는지 속으로 참 답답했지만 직접 내가 가보기도 애매해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태권도 학원을 그만두게 된 이유 중 하나도 도장에서 어떤 6학년 형이 자기를 계속 괴롭힌다고 말해서였다. 그 형이 자기에게 욕을 하고 싸가지 없다고 하면서 때리려고까지 했다고 아이는 주장했는데, 나는 아이가 하는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쉬는 시간에도 늘 사범님들이 함께 있어주는데 가끔은 놓칠 수 있다고 쳐도 그렇게 계속 내 아이만 괴롭히는 고학년 형이 있었다면 제재를 해주셨으리라고 본다. 저학년 동생들에게 가끔 비속어를 쓰면서 장난으로 괴롭히는 정도지 내 아이만 찍어서 유독 괴롭힐 것 같지는 않았다. 계속 그 형 때문에 태권도에 나가기 싫다고 하기에, 그냥 태권도가 다니기 싫어서 대는 핑계라고 여기고 어차피 학원스케줄을 줄어야 했으므로 받아들이긴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피아노학원에서도 어떤 3학년 형아와 누나가 유독 자기한테만 장난을 걸면서 괴롭힌다고 주장했는데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면 그냥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에서 장난을 걸거나 가볍게 건드는 정동의 행동일 뿐이다. 그런데 아이는 계속 그런 걸 보고 과하게 해석해서 자신을 싫어해서 괴롭힌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피아노학원에 다니기 싫어서 대는 핑계인가 싶기도 했다. ADHD 아이는 주의력이 약해서 어떤 활동에 대한 흥미도 금방 잃기 쉽기 때문에 오랫동안 꾸준히 하는 걸 어려워하는 특징이 있다. 괜히 학원에 다니기 싫어서 해보는 말인가 싶기도 했다.


남들이 봤을 때는 그냥 엄살이 좀 심한 거라고 귀엽게 봐줄 수도 있지만, 또래 친구들과 어울릴 때 이런 행동이 계속된다면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대하게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을 남들보다 더 과도하게 억울함을 느끼면서 일일이 사과받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린다는 건 같이 어울리기 불편한 특성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아이는 조금만 부당함을 느껴도 선생님이나 주변 어른들에게 잘 이르는 편이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없다고 여겨져서 그런 것 같은데, 그것도 초등학교 1학년까지는 그럭저럭 용인되는 분위기라고 칠 수 있지만 이제는 항상 주변 어른의 도움만 받기는 어렵고 스스로 해결해야 할 수 있는 크지 않은 상황들도 많다.



결국 아이의 이런 특성은 사회성이 부족해서 생기는 행동양상으로 판단된다. 사회적 인지가 약하고 사회적 상황에 대한 이해력과 해석력이 떨어지다 보니 이런 오버액션이 나오는 것이다. 아이의 이런 행동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다가 심리적 용어인 "방어기제"라는 말이 떠올랐다.



방어기제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두렵거나 불쾌한 정황이나 욕구불만에 직면하였을 때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하여 자동적으로 취하는 적응 행위. 도피, 억압, 동일시, 보상, 투사 따위가 있다.


적응기제라는 말도 비슷한 뜻으로 사용되는 심리학 용어인 것 같다. 아이의 특징과 연관되는 심리적 문제 중 하나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방어기제에 대한 나무위키나 다른 블로그 내용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방어기제의 종류 중에는 아이의 특성과 일치하는 내용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단어가 바로 "피해의식"이다.


자신의 생명이나 신체, 재산, 명예 따위에 손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감정이나 견해.


정확한 설명이다. 내 아이는 불필요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아이의 특성을 설명해 줄 수 있는 단어를 떠올리고 나니 속이 시원하다. 그런데 어쩌다 아이는 이토록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고 만 것일까?


ADHD 약물이 일으키는 부작용으로 인해서 아이가 이렇게 예민해진 건지, 아니면 약물 복용을 하지 않았어도 아이는 일상에서 작은 일을 침소봉대하며 과하게 예민하게 굴었을는지, 앞뒤 인과관계는 잘 모르겠다. 이제 와서 그런 걸 일일이 따져봤자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은 안 그래도 부족한 사회성으로 친구 관계 형성에 어려움이 있는데 더 어려워지게 만드는 촉매제가 될 수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이로 인해 가장 힘든 사람은 아이 자신이다.



피해의식에 대한 설명을 나무위키에서 찾아 읽다 보니 굉장히 공감이 가는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불필요한 분노나 스트레스를 일상에서 자주 느끼고 궁지에 몰린 듯이 쉽게 흥분하므로, 논리적인 생각이 어려워진다. 흥분 상태에 있을 때는 스스로 논리적이라고 생각하고 대응하지만, 그 상태에서 빠져나오고 돌이켜보면 전후 상황에 맞지 않는 반응을 했다는 것을 깨닫고 후회한다. 불관용과 고집이 강하기 때문에 인간관계가 협소한 경우가 많으며 상황이 마음대로 통제되지 않는 점에 대해 큰 고통을 느낀다.

이런 사람은 타인으로부터 예민하다, 과민하다는 말을 많이 듣거나 그런 식의 반응을 많이 보게 된다. 만약 자신이 이러한 말을 많이 듣는다면 평소에 무조건 편들어주는 건 아니면서 함부로 질책하지도 않는 수준의 타인에게 의견을 구해보자. 정말 피해의식이 있는 상태였다면 상대방은 기뻐하면서 도움을 주려 할 것이다. 만약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다면 정신건강검진을 받는다는 느낌으로 상담을 받아보자.



피해의식은 강박장애와 관련이 깊고 피해의식이 강한 사람들은 만성적으로 정신적 여유가 부족하고, 언제나 상황통제권을 자신이 가지는 것에 대한 집착적 경향성이나 통제권이 자신에게 없을 때 느끼는 불만이나 분노가 보통사람들보다 더 강하다. 이는 당연히 정신적인 피로도를 매우 상승시킨다.. 등등 아이의 현재 상태와 특징적 행동에 부합되는 내용들이 나와있다. 편집증적 성격장애들도 언급되어 있었다.


항상 마음이 조급하고 불안하고 그래서 예민할 수밖에 없는 아이. 그리고 그것이 과한 피해의식으로 이어져버린 지금. 아이를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해 주기 위해서 내가 어떤 노력을 해줄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일단은 아이가 보여주는 일련의 행동에서 일정한 패턴을 찾아낸 것만으로 뭔가 한 단계 나아간듯한 기분은 든다. 하지만 해결책이 더 중요하다. 이번달 정기검진 상담 시에 꼭 의논드리고 자문을 구해보아야겠다. 어떤 식으로든 아이의 여리고 다치기 쉬운 유리장 같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편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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